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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전라박물지 - 최승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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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은 저렇습니다만 기행문이나 역사 유물 안내서가 아닌 시집입니다. 그런데 순전히 시로만 구성되어 있긴 하지만 시 본문도 그렇고 부수적인 글들에서도 전라도 지역의 구수한 민담과 전설이 은연중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신(新)"과 "박물지"라는 단어가 전혀 어색할 바도 없다고나 할까요. 서정시이면서도 서사시인 셈인데 이 경계를 묘하게 넘나드는 노(老)시인의 입담이
"신전라박물지 - 최승범" 내용보기

제목은 저렇습니다만 기행문이나 역사 유물 안내서가 아닌 시집입니다. 그런데 순전히 시로만 구성되어 있긴 하지만 시 본문도 그렇고 부수적인 글들에서도 전라도 지역의 구수한 민담과 전설이 은연중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신(新)"과 "박물지"라는 단어가 전혀 어색할 바도 없다고나 할까요. 서정시이면서도 서사시인 셈인데 이 경계를 묘하게 넘나드는 노(老)시인의 입담이 맛깔납니다. 


회안대군은 독특하게 군호에 회(懷)라는 글자가 들어 있습니다. 책 중 한 시에서 이분이 언급된 이유는 전주 법사산에 그와 부인의 묘가 위치했기 때문입니다. 본디 전주 이씨 왕족이니 그의 묘가 전주에 위치한 건 조금도 이상할 게 없으나 대부분의 왕족 묘는 수도권, 즉 서울 외곽이나 경기도 일원에 소재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입니다. 


회안대군은 아마 드라마 <용의 눈물>에서 배우 김주영씨의 열연으로 현대 한국인들에게 더 유명세를 탄 인물 아닐까 생각합니다. 본디 태조 이성계는 경처이자 현재의 배우자인 곡산 강씨 신덕왕후와의 사이에서 낳은 의안대군 방석에게 왕위를 물려줄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강비가 승하한 후 방석 친위세력이 다소 약화되고 삼봉 정도전이 다소 경계를 게을리한 사이 정안군이 기습적으로 권력을 빼앗죠(드라마에서는 반대로 묘사합니다만). 헌데 이런 골육상쟁, 혹은 궁정 쿠데타, 나아가 패륜 행위를 태조가 좋게 볼 리 없어서, 실세와 공식 권위 사이에 큰 괴리가 생깁니다. 


아마도 회안대군은 "부왕이 그렇게 싫어하시는 다섯째 동생 방원보다는 형인 내가 더 쉽게 인정을 받을 것"을 기대하고 일종의 절충안으로서 자신을 들이민 게 아닌가 싶습니다. 본디 쿠데타는 총 병력과 자원이 우세해야만 성공하는 게 아니죠(만약 그렇다면 세상에 성공하는 쿠데타는 친위 쿠데타 말고는 거의 없을 겁니다. 친위 쿠데타라고 해도 대부분은 열세를 딛고 감행하는 모험입니다). 회안대군은 물론 실패했고, 부왕 이성계는 "그 소 같은 위인"이라며 한심히 여겼다고는 하나, 제 생각에는 해 볼만도 한 모험 아니었나 싶습니다(이방간의 인품이나 기량 따위는 일단 논외로 하고요. 누가 뭐래도 태종은 제2의 창업자라 할 만큼 능력자입니다). 성공을 했으니 후세에 "기막힌 타이밍을 잡은 놀라운 군재"라 칭송 받는 거고, 실패를 했으니 "소 같은 놈"이라며 조롱거리가 되는 겁니다. 


결국 위와 진이 교체된 계기가 되었던 고평릉 사변도 아슬아슬한 빈틈을 잘 파고든 것이며 운이 상당히 따라 주었습니다. 소위 인조 반정, 능양군의 쿠데타도 얼마나 준비가 허술했는데 상대 측의 실책으로 성공했을 뿐 운이 많이 따라주었다고 봐야 합니다. 역사책을 읽다 보면 어떤 필연, 법칙 같은 건 애초에 없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여튼 다시 노 시인의 시세계로 돌아오겠습니다. "송무백열"이라는 고사성어를 아시나요? 고사성어는 대개 인간 심리의 모순과 사악함을 날카롭게 꾸짖거나, 그 배후에 씁쓸한 고사를 까는 경우가 많죠. 그런데 저 고사성어는 뜻을 새길 때마다 입가에 흐뭇한 미소가 떠오릅니다. "소나무가 무성하면 잣나무가 기뻐한다." 저는 세상에서 가장 보기 좋은 게, 내 일이 잘되어 기뻐하기보다 그저 친한 친구의 경사에 더 만세를 부르고 마치 그동안 잘 안 풀리던 친구의 운이 비로소 트여 이제서야 정의 구현이 된 듯 좋아해 주는 것, 이거야말로 인간사에서 가장 보기 좋은 의리, 정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저 짧은 성어 안에는 그런 흐뭇한 광경이 그림처럼 묘사된 것입니다. 


책에 담긴 풍경은 아름다우면서도 수수하고, 인심 그득한 향토의 단아한 모습이 잘 배어납니다. 전라북도 쪽에 치우친 게 조금은 아쉽지만 여튼 오랜 역사를 간직한 전북 지역의 구석구석 깨알 미관을 시 속에 잘 담아내신 듯합니다. 

v*****7 2019.12.0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