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특유의 음산한 풍광과 날씨가 사람 심성마저 속속들이 지배할 듯한 러시아야말로 레이디 맥베스가 출현하기 좋지 싶은, 어떤 배경이 될 자격이 있다. 따라서 니콜라이 레스코프가 지지난 세기에 쓴 중편 <므첸스크의 맥베스 부인>은 일단 그 완성도를 떠나 제목부터가 뭔가 기대를 단단히 부른다. 개인적으로는 그리 높이 평가하는 편이 아니지만, 원작에 충실하기보다는 뭔가 그로부터 적절히 끄집어낼 다른 흥미진진한 요소, 영감을 많이 담은 작품이라 현대에 이르기까지 자주 언급되고 연극 대본으로도 많이 (각색된 후) 쓰인다.
소담출판사에서 나온 한국어 번역본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표지는 바로 이 영화의 스틸 컷을 담았는데, 영화와 소설의 진행은 달라도 너무 달라서 원작이라 부르기가 애매할 정도다. 배경이 러시아 므첸스크에서 영국 어느 탄광촌으로 바뀐 외에도, 모든 플롯이 바뀌었으며 심지어 주인공 캐서린(소설에서 카테리나 이즈마일로브나)의 성격마저 전혀 다른 색깔이다. 하지만 원작보다 오히려 더 강렬하고 개성적이라 이를 놓고 더 많은 이야깃거리가 생길 만하다.
우선 셰익스피어의 피조물인 레이디 맥베스와, 이 영화의 캐서린 사이에는 별 공통점이 없다. 캐서린은 그 영주의 부인과 달리, 권력과 명예욕에 찌들어 자신의 영혼 그 무게가 감당 못 할 추악한 범죄를 꾸미는 유형이 아니다. 가난한 형편 때문에 늙은 남자에게 팔려오긴 했으나 시아버지나 남편이 적절한 동기를 제공하고 올바른 가족 관계를 형성하려는 최소한의 노력만 했더라면 그녀는 품위 있고 유능한 안주인 노릇을 충분히 해 내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편은 캐서린 같은 여성에 어떤 열등 강박이 있는지 온전한 성적 결합을 못 이루고, (이후에 드러나지만) 먼 거리에 정부 하나를 두고 아들까지 이미 본 처지다. 물론 캐서린은 이 사실까지는 알지 못한 채, 남편을 성불구로 지레짐작한다.
시아버지인 보리스는 압제적이지만 그리 영리한 인물이 못 되며, 가부장제의 형식적 틀에 그녀를 가두려다 비참히 실패한다. 원작을 전혀 모르는 관객들은 이 시아버지가 며느리의 비행을 눈치 채고, 앞으로 그녀가 겪을 혹독한 운명에 대해 판에 박힌 상상을 전개하다가, 의외로 전광석화처럼 이뤄지는, 별 갈등 없이 생존 본능과 분노에 의해 거침 없이 결행되는 그녀의 '존속살인'에 대해 큰 충격을 받게 된다, 여성 관객들이 보낼 환호와 공감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신기한 건 남성 관객들 역시 이 빠른 템포에 다소 당황하다가, 이내 거침 없는 그녀의 행보에 의외의 응원을 보내기 일쑤라는 사실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레이디 맥베스하고는 동기가 크게 다르다. 캐서린은 그저, 남편이라는 게 왜 성적으로 그 아내(즉 자신)를 만족시키지 못하는가, 시아버지는 왜 그 아들에게조차 존경을 못 받고 제 스스로 잔뜩 쌓아올린 (허위) 에고에 걸맞은 통제력마저 발휘 못 하는가. 욕구가 충족 안 된 여자가 적당한 상대를 찾는 건 당연하며, 머슴 세바스천이야 안주인과 눈이 맞아 힘 좀 쓴 것뿐인데 저렇게까지 가혹하게 대할 게 뭐 있나, 무엇보다, '저놈마저 사라지면 나는 누구하고 속을 푸나' 같은, 아주 일차원적이고 정직한 분노가 폭발한 그녀는, 마치 목마른 자가 물을 들이키듯 장애물인 시아버지를 처단해 버린 것이다.
연극적 에고가 작위적으로 지어낸, 비뚤어진 욕구를 만족시키기 위한 과정도 아니었고, 혹은 이 집안의 가산을 독차지해야겠다는 클뤼타임네스트라 같은 속물적 동기와 계산이 작용한 것도 아니었으며, 그냥 한 마리의 암컷 호랑이가 정글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제 부모와 동기까지 영역에서 축출해 버리듯, 아무 생각 없이 저 한 몸 살기 위해 저지른 짓이었다. 이러니 보는 입장에서, '허 참, 아 그러나 어쩌겠어 저 판에?' 같은 탄식과 동정이 자연스럽게 나올 밖에.
러시아에서 스테레오타입처럼 등장하는 게 (픽션이건 현실이건) 남자는 남편 구실을 못 하고 대신 여성들이 강인한 생명력으로 뭔가를 해 내는 사연이다. 예를 들자면 작년(2017) 3월 31일에 리뷰를 쓴 <바탈리온>이라든가, 작년 10월 8일에 글을 올린 <세바스토폴 상륙 작전> 같은 작품이 있다. 여기서도 마치 <컬러 퍼플>의 흑인 찌질이들처럼 보리스 부자는 결정적인 순간에 진짜 용기, 의지를 보여 주지 못하는데, 남편 역시 간만에 집에 와선 고작 한다는 소리가 '다 잊을 테니 앞으로는 그러지 마' 정도이다. 이에 더 경멸감을 느낀 캐서린은 급히 숨긴 정부 세바스천을 아예 대놓고 보여주며, 이성을 잃은 남편 알렉산더는 세바스천과 격투를 벌이다 (이제 살인이 주특기가 되어 버린) 캐서린에게 둔기로 맞고 절명한다. 아 물론 이 극의 남자들이야 영국 출신, 국적이지만, 여튼 이런 성격의 아주 아득한 기원만큼은 니콜라이 레스코프의 원작에 기대고 있기에 지금 하는 소리다.
캐서린이 그저 자신의 욕구와 정직한 기질에 충실하여 일을 저지를 뿐이라는 또다른 증거는, 남편 알렉산더에게 말하자면 '장모'가 될 아그네스란 노부인이 어린 사생아 테리(흑인이라서 더 놀랍다)를 데리고 이 레지던스에 찾아온 이후에 보이는 태도와 행동이다. 아그네스는 흑인이지만 교양과 품위가 드러나는 처신(이래서 캐서린이 그녀를 함부로 보지 못함)이며, 캐서린 역시 법적으로 대항할 여지가 없다는 판단에 꼭 이른 듯하지 않은 단계(그런 생각을 하고 어쩌고 할 머리가 안 됨)에서 순순히 노부인의 요구를 들어 준다. 물론 이에는 귀엽게 생긴 꼬마가 자신(캐서린)을 예쁘다며 따르고 드는 품도 한몫하긴 했겠으나, 그런 동기에 좌우된다는 자체가 캐서린을 흔한 속물로 볼 수 없는 근거가 또한 된다. 정말 못된 년 같으면 이 단계에서 반드시 머리끄댕이를 잡고 싸우게 되어 있다.
캐서린이 태도를 바꾼 건, 테리와 노부인이 결국 자신과 세바스천 사이의 밀애를 이어가는 데 방해가 될 뿐이라는 인식이 생기고부터이다. 캐서린은 정말로 일차원적 사고만 할 뿐이라, 내가 나 좋아서 머슴놈하고 붙어 먹겠다는데 저 노부인이 뭔 상관이랴, 이 정도로 안이하게 생각했고, 상황의 심각성을 일러 준 건 그나마 세바스천이었다. 마치 키우는 강아지가 부담 된다 싶을 때 혼을 내 쫓아버리고 크게 상처 입은 채 집을 떠나는 안타까운 풍경처럼, 테리는 어느날 캐서린 부인(자신으로서는 엄마처럼 따르던)이 자신에게 화를 내자 큰 상처를 받았는지 폭포 근처에 넋을 놓고 머물다 폐렴에 걸린다. 세바스천이 천신만고 끝에 다 죽어가던 애를 업어오지만, 노부인은 그에게 '천한 머슴놈이 감히 여기가 어디라고 들어오냐'며 화를 벌컥 낼 뿐이다. 흑인인데다 사회적 지위, 경제력이 불안정하긴 하나 의식만큼은 철저히 기득권의 스탠스에 맞춰 놓고 사는 인물이다.
머슴이지만 남이 자신을 대놓고 무시하는 건 또 못 참는 세바스천은 그날밤 캐서린과 합세하여 테리를 죽인다. (사후 가담에 가까움. 혼자서도 캐서린이 애를 질식시켜 죽일 수 있었으므로) 외할머니지만 캐서린(으로 상징되는 기성 질서의 위선과 권위)을 철석같이 믿던 그녀는 캐서린의 '설명'에 한치의 의심도 품지 않으나, 의사는 '낮에 막 구조해 왔을 때는 없던 멍자국이 있다'며 미심쩍어한다. 이때 세바스천이 (할매가 그러지 말라고 헸는데) 다시 거실에 '난입'하여 모든 범행(캐서린의 것 포함)을 실토한다. 자, 우리의(?) 캐서린은 과연 <태양은 가득히>의 톰 리플리(러브크래프트의 탤런티드 리플리가 아니라)처럼 일거에 파국을 맞고 말 것인가?
세바스천의 난입과 자백도 최적의 플로팅이었지만, 일순간에 위기를 극복하고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캐서린의 침착한 대응이 또한 압권이다. 이 영화가 관객과 평론가의 한결같은 칭찬을 받는 이유가 바로 이런, 대단히 고전적이면서도 영리한 구성상의 미덕 때문이다. '세바스천 저놈은 시아버지를 죽였다. 그 전날 흠씬 맞았기 때문이다. 아그네스 부인에게 질타를 당하고 앙심을 품은데다, 하녀 아나와의 밀통사실이 드러날 걸 걱정했기에 남편, 꼬마 테리까지 죽였다. 아니라면 아나 쟤가 바로 반박을 하겠지(사실은 보리스의 죽음 이후 실어증으로 그녀는 말을 못하는 상태)' 이런 그녀의 반격과 고발은 논리적 근거가 대단히 취약하지만, 주장의 정합성과 진실성보다 발언자의 사회적 권위가 더 중요했기에, 아그네스와 의사, (나중에 찾아왔을) 공권력 집행자 들은 세바스천과 아나를 범인으로 몰아 짐승처럼 포박해 간다. 이제 레스터 부인은 진짜 '레이디 맥베스'로 거듭난 후, 이 막대한 유산과 너른 저택을 혼자 지배하며 거리낌 없이 제 뜻을 펴고 살 것이다. 결말에서 그는 맥베스 부인 못지 않게 타락하고 악독한 음모자, 범죄자로 변모하지만(게다가 실패자인 맥베스 마누라와는 달리 그녀는 후환도 전혀 안 남기는 깔끔한 성공까지), 꼬인 것 없이 화통한 정직한 한 마리 짐승의 영혼을 우리는 보았기에, 구태여 화면 속으로 들어가 그 끔찍한 악행을 폭로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를 않는다.
배경이 된 '므첸스크'는 두음이 모음 없이 자음 m으로만 시작한다는 점에서 특이한데 이는 러시아어의 개성이다. 현 트럼프 행정부의 재무장관(이자 각종 블록버스터에서 '제작자'로 자주 이름이 보이는) 므누신도 유대계 러시아인이 그 선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