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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대해 농담하기, 삶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세상에 대해 농담하기, 삶의 일상으로 돌아가기." 내용보기
성석제의 글쓰기는 '농담'에 근거한다. 작가에게 있어 '농담'은 경망스러운 것만도, 쓰잘데기없는 언어유희만도 아니다. 오히려 농담이란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것을 해석하고 살아가는 논리를 내포하는 하나의 알레고리로 기능한다. 그래서 성석제가 즐겨쓰는 방식은 '세상에 대해 농담하기'다. 작가의 작중인물은 허풍쟁이 아니면 바보 아니면 노름꾼이다. 어차피 삶이란 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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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글쓰기는 '농담'에 근거한다. 작가에게 있어 '농담'은 경망스러운 것만도, 쓰잘데기없는 언어유희만도 아니다. 오히려 농담이란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과 그것을 해석하고 살아가는 논리를 내포하는 하나의 알레고리로 기능한다. 그래서 성석제가 즐겨쓰는 방식은 '세상에 대해 농담하기'다. 작가의 작중인물은 허풍쟁이 아니면 바보 아니면 노름꾼이다. 어차피 삶이란 농담과 도박으로 살아낼만큼, 허술하고도 불투명한 미래이므로. 그 속에서 삶은 다시 해석되고 세상은 한번 해볼만한 것으로 바뀐다. 그것이 성석제의 농담이 갖는 일말의 진정성이라면 진정성일 것이다. 농담에 스며있는 하나의 진리!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는 그런 성석제 글쓰기의 요체를 보여주는 단편집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등단 이후 이리저리 말하기 방식을 모색하던 작가의 글쓰기가 호흡을 고르고 완숙해지기 위해 농익어가는, 포화상태의 절정에서 나온 작품집이랄까. 내가 보기에 이후의 성석제식 글쓰기는 이미 이 작품집에 거진 다 갖추어져있고, 그 가능성도 다양하게 탐색되고 있다. 그러니까 이후의 <홀림>,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는 이 작품집의 연장선상에 있다는 것이다. 새롭게 쓰는 글이라기보다는, '온전'해지기 위해서 일종의 개작을 하고있다는 그런 느낌. 오히려 <홀림>은 (이런 표현도 가능하다면) 이 단편집보다 퇴보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다. 성석제의 글쓰기가 찾는 세상 살아가기, 그 방식. 농담 속에 삶의 진수가 묻어난다는, 그 진부한 역설! 하지만 그동안 한국 문단에서 '가벼운 글쓰기'는 쉽사리 인정받지 못했던 것이 현실이다. 그것이 꼭 우리나라의 현실만은 아닐 터,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서 비극이 최고의 작품형태라 공언한 이후, 공공연히 '무거움'에 밀려 '문학'이 아닌 '일상'으로 밀려났던 '가벼움'의 영역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러나 밀란 쿤데라가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과 <농담>으로 세상을 다시 말하듯, '일상'을 다루고 그것과 관계하는 것이 '문학'임을 되새겨보면 성석제식 글쓰기는 참으로 비웃을만한 것이 아니게 된다. 삶의 정수는 반드시 그 무게와 비례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며, 또한 그 방식도 정제된 틀거리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닐 것이기에. 그런 점에서, 이 작품집은 참으로 탁월하다. 권일독(勸一讀).
b********g 2003.08.13.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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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재밌는 책이 절판되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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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절판이라는 말에 통한의 정을 토할 수 밖에 없다. 성석제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을 맛보기 시작한 작품이 내겐 이것이다. 거침없는 속도와, 문학의 진리값을 교묘하게 뒤틀어 무시하는 그의 만수산 드렁칡같은 문장에 우선 누구든 '이것이 무슨 장르인가'하는 당황과 함께 '푸욱' 빠져들고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성석제의 문장은 그렇게 입담의 재미를 향해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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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절판이라는 말에 통한의 정을 토할 수 밖에 없다. 성석제 문학의 가장 큰 특징을 맛보기 시작한 작품이 내겐 이것이다. 거침없는 속도와, 문학의 진리값을 교묘하게 뒤틀어 무시하는 그의 만수산 드렁칡같은 문장에 우선 누구든 '이것이 무슨 장르인가'하는 당황과 함께 '푸욱' 빠져들고 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성석제의 문장은 그렇게 입담의 재미를 향해 고삐풀린 망아지처럼 달려가면서 주제에 대해 배포큰 무시를 벌이고 있다. 그러나 그의 문장이 결코 주제가 결여된 말장난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드문드문 그의 문장에서 발견되는 일관된 그의 문학관은 오히려 문학순수주의에 가까운 것이다. 그의 순수주의는 모든 적극적 가치와 윤리의 분식을 벗고 있다는 점에서 거칠어 보이면서도 되려 가장 많은 체를 거른 허무주의에 가깝다. 그것은 그의 유난한 - 어쩌면 문학인에게 그리 유난한 것은 아닌지도 모르지만 - 독서편력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하는데, 농담인지는 몰라도 각종의 무협지로 '만권'을 읽으면서 비로소 '주화입마'에 들어섰다는 그의 고백은 세상의 모든 글과 사상에 대한 폭넓은 그의 여정, 그리고 그에 대한 그의 평화로운 피로감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그의 문장에서는 세상의 작고 좁음에 대한 불가해한 피로의식과, 세상 모든 것이 크고 낯설고 아름다웠던 어린시절에 대한 애상적 향수마저 배어나온다. 이 책은 단편집이다. 성석제의 문장은 사실 단편을 그리기 위한 탁월한 붓이라고 할 수 있다. 낯설고 황당하지만 사실 우리 마음 속 어디에나 숨어 있었던 비합리적 인물들에 대한 묘사를 통해서 성석제는 세상의 진지한 가치관에 대한 '깊쑤욱한' 일침을 놓는다. 세상은 좀더 다양하고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성석제의 문장은 매우 탐미적이다. 그리고 그런 점에서 매우 순수하다. 순수와 가장 거리가 먼듯한 문장이면서도 가장 순수하다.
s*******i 2000.05.09.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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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담 좋은 이야기꾼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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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를 읽으면 입담 좋은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하다. 그의 소설은 활자화된 책을 읽는 독자 일반을 겨냥하고 있다기보다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청중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렇듯 이야기 공간의 현장성과 직접성을 확보하고 있는 성석제의 소설은 근대 이후 확립된 소설의 장르적 특성에 얽매이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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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석제의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를 읽으면 입담 좋은 이야기꾼의 이야기를 듣고 있는 듯하다. 그의 소설은 활자화된 책을 읽는 독자 일반을 겨냥하고 있다기보다는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 청중을 대상으로 하고 있다. 이렇듯 이야기 공간의 현장성과 직접성을 확보하고 있는 성석제의 소설은 근대 이후 확립된 소설의 장르적 특성에 얽매이지 않고, 과거의 서사 양식을 현대의 소설로 불러들이는 자유로움을 보여준다. 성석제 소설에 나타난 이와 같은 개방된 서술 구조는 입담 좋은 얘기꾼의 얘기가 그러하듯 계속해서 이야기를 듣고 싶은 재미를 유발한다. 「조동관 약전(略傳)」은 제목이 시사하듯이 서술 방식을 설화에 기대고 있는 소설로, 전설과 민담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다. 전설은 자아와 세계의 대결을 세계의 우위에 입각해서 다루기 때문에 자아의 패배를 귀결로 삼으며, 합리성을 추구하다가 더욱 큰 불합리에 부딪히고 마는 이야기이다. 반면 민담은 실제로 있는 일에 구애되지 않고 자아가 세계보다 우위에 있다는 가정을 구체화할 수 있다. "다만 똥깐이와 한 시대를 산 사람들이 똥깐이를 낳고 똥깐이를 만들고 똥깐이를 죽이는 과정에서 자신들의 일부로 평범한 사람 조동관을, 자신들과는 다른 비범한 인간 똥깐이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하다."라는 서술에서 알 수 있듯이, 「조동관 약전(略傳)」은 세계와의 대결에서 결국 패배하고 만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는 측면에서 전설적 세계의 비극성을 보여준다. 그러나 '조동관' 이라는 인물은 세계와의 대결에 있어서 '무대뽀 정신' 혹은 '헝그리 정신'으로 대항함으로써 "세계의 횡포에 대항하는 자아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에 민담적 인물이다. 「경두」는 전설적 세계의 횡포를 표면에 내세우고 있으나, 결말에 이르러서는 탈주하는 자의 자유로움을 보여줌으로써 닫힌 세계에서의 자아 찾기 혹은 자아의 가능성이 어떤 것인가를 암시하고 있다. 「경두」의 결말은 김중식의 「이탈한 자가 문득」깨닫게 되는 성찰의 지점과 맞닿아 있다.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 그 똥, 짧지만, 그래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 그래서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조동관 약전(略傳)」의 '똥깐이'나 「경두」의 주인공이나 모두 비극적 죽음을 당하지만 그들은 세상의 정상 궤도에서 이탈함으로써 문득 자유로울 수 있었다. 그러나 두 인물이 택한 자유의 방식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똥깐의 이야기는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달구어지고 이야기 속에서 다듬어져 마침내 그의 짧고 치열한 일생이 전(傳)으로 남기에 이른다."라는 서술에서 알 수 있듯이 '똥깐이'의 죽음은 '똥깐이 바위'라는 분명한 흔적을 남기면서 세상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지만, '경두'의 경우는 개인적인 차원의 탈주에 머무른다. 「조동관 약전(略傳)」, 「경두」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변두리 인생을 살아간다. 성석제는 이들 주변인을 주동인물로 내세우면서 그들의 삶을 따스하게 끌어안는 인정을 베풀고 있다. 그의 소설에는 전설적 세계의 횡포나 그로 인한 인물의 좌절 혹은 세계의 횡포에 맞설 수 있는 자아의 가능성이 나타나고 있으나, 그는 쉽게 어느 한 쪽만을 부각시키지 않는다. 이와 같은 균형감각은 주변인의 삶이라고 해서 3류 인생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음과 -주변인의 삶이 오히려 중심적인 삶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삶은 세상의 통념에 비추어 볼 때 3류로 치부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에 놓여 있다. 이것을 달리 말하면 이미 정해진 세상의 '게임의 규칙'과 그 규칙을 거부하고 스스로 자신의 법칙을 만들어 가는 이들의 팽팽한 대결구도라 할 수 있겠다.
a****1 2001.08.28.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무조건 유쾌하다.
"무조건 유쾌하다." 내용보기
참 이상하다. 성석제의 소설들은 여느 소설들이 내게 주었던 느낌과는 다르다. 성석제의 소설들은 자- 웃겨볼테니 어디 한 번 웃어봐라, 이런 느낌이다. 절대 폼을 재지도 무게를 잡지도 않은 채, 특유의 문장으로 나를 웃긴다. 언어 유희가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겠지. 이 단편집에서 가장 재밌게 읽었던(이 말이 성석제에게는 최대의 찬사가 아닐까.) 글은 표제작인 아빠 아빠 오,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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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이상하다. 성석제의 소설들은 여느 소설들이 내게 주었던 느낌과는 다르다. 성석제의 소설들은 자- 웃겨볼테니 어디 한 번 웃어봐라, 이런 느낌이다. 절대 폼을 재지도 무게를 잡지도 않은 채, 특유의 문장으로 나를 웃긴다. 언어 유희가 가장 잘 어울리는 말이겠지. 이 단편집에서 가장 재밌게 읽었던(이 말이 성석제에게는 최대의 찬사가 아닐까.) 글은 표제작인 아빠 아빠 오, 불쌍한 우리 아빠인데 이 글은 일부를 '재미있는 세상'에서 읽고는 '무슨 얘기지?' 하고 갸우뚱- 했던 글이었다. 이제 찬찬히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보니, 그 재미가 확실히 느껴진다. 정말 희한한 아빠와, 아빠 못지 않은 특이함을 자랑하는 형, 그리고 아빠 대신 우악스러워진 엄마. 그 셋을 화자인 '나'가 관찰하는 형식으로 쓰여진 이 소설은 군더더기 빼고 '재밌다'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다. 대입에 실패하고 저수지에서 낚시하는 아들을 추스리려 갔다가, 자신이 되려 낚시에 푹 빠져버려 날 새는 줄 모르는 아빠. 그냥 식구들을 깜짝 놀라게 하려고 육십 나이에 공사판에 취직해버린 아빠.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아파트 경비원이 되길 꿈꾸는 아빠. 생각만 해도 기가 막히는 데 이 얘길 성석제가 해 준다고 생각해보라. 기가 막힌다. 이 한 권으로, 나는 오늘도 행복했다. 웃을 수 있어서.
s*****j 2001.11.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