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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년 전 언뜻 '노인과 바다'라는 책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당시 독서를 전혀 하지 않던 나로서는, 제목 그대로 노인이 바다에 나가는 내용에 불과하다고 생각하서 신경 쓰지 않으려 했다. 하지만 나의 머릿속 깊은 한구석에서 매년 노인과 바다를 상기시켰고 결국 책을 구매하게 되었다.
이야기는 늙은 어부 산티아고가 84일째 물고기를 잡지 못하고 바다로 나가며 시작된다. 해가 뜨지도 않은 시간에 바다로 나간 산티아고는 평소처럼 낚시를 했다. 물에 미동이 없는 듯 그의 낚싯대는 흔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낚싯대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흔히 입질이라고 불리는 반응이 느껴진 것이다. 산티아고는 열심히, 아주 열심히 낚싯대를 잡고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오도록 힘을 썼다. 하지만 긴 세월 그의 직업인 어부의 직감으로써 이 물고기가 물 밖으로 나오려면 단순히 힘만 필요한 것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래서 산티아고는 물고기를 잡기 위해 긴 시간을 투자하기로 결심한다. 아무리 힘을 써봐야 낚싯줄이 끊어지는 상황을 제외하면, 자신이 할 수 있는 행동은 물고기의 힘을 서서히 빼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는 낚싯줄을 풀고 감고, 다시 풀고 감고를 반복하며 손에 힘이 다 빠질 정도로 낚싯줄을 잡고 있었다. 더 이상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자 낚싯줄을 등에 감아서 버텨냈다. 손에는 쥐가 나고, 등에는 상처가 났으며, 생수도 떨어져 갔다. 그렇게 노인은 3일을 버텼다.
노인은 3일 동안 낚싯대에 걸린 물고기를 청새치이며, 그 크기는 노인이 타고 있는 배보다 크다는 것을 알아냈다. 또한 청새치와 힘겨루기 할 때를 제외하면 스스로가 고독하다고 느끼고, 자신에게 잘해준 소년이 기억나기도 했으며, 심지어는 배에 앉아있는 새에게 말을 걸기도 했다.
그리고 3일의 사투 끝에 노인은 물고기를 잡을 수 있었다. 노인은 스스로를 다독이며 자신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그다지 순탄치 못했다. 노인이 청새치를 잡을 때 창살을 이용했는데 그로 인해 바다에 피가 퍼지고 냄새를 맡은 상어들이 몰려든 것이다. 한 마리 두 마리의 상어가 다가왔고 다행히 노인은 상어들로부터 청새치를 지켜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상어들이 수없이 몰려왔다. 힘든 상어들과의 사투가 끝나고 노인은 한밤중에 집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난 체력 소모로 인해 잠자리에 들었다. 다음날 마을 사람들이 노인의 배 앞에서 모여서 청새치를 구경하고 있었다. 그 청새치는 뼈밖에 남아있었지만 말이다.
개인적으로 소설을 읽으며 저자가 전하고자 하는 바를 느꼈던 점은 <노인과 바다>가 처음이다. 노인은 끝없는 사투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는 모든 면에서 긍정적으로 생각하려 했고 고독과 외로움을 겪기도 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며 필연적으로 느끼는 감정과 거쳐야 하는 과정이고 이를 통해 어니스트 밀러 헤밍웨이가 전하고자 하는 내용을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소설 자체는 대단하나 읽는 도중에 "물고기는 언제 잡히나?", "상어들은 그만 나오면 안 되나?"와 같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책을 집중해서 읽지 않은 탓도 있겠으나 이 또한 헤밍웨이가 독자들에게 주인공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도록 집필한 게 아닌가 싶다. 책을 읽으면서 엄청난 재미는 느끼지 못했지만 책을 읽고 난 후 몰려오는 생각과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괜히 명작과 고전은 사람들의 손꼽히는 책이 아니다. 그에 대한 충분한 가치가 있고 그만큼 의도도 너무 좋다. 마지막으로 헤밍웨이의 명언을 남기고 마무리하겠다. "사람을 단련시키는 것은 사람이 행하는 일들이 아니라 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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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고기야" 노인은 가만히 말했다. "나는 죽을 때까지 너하고 같이 있으마."
이렇듯 엄청난 행운이 오래갈 리가 있나, 노인은 생각했다. 온 힘을 다 쏟아부어 물고기를 낚은 일조차 꿈이었으면 좋겠다. 신문지를 깔고 침대에 혼자 누워 있는 편이 더 좋을 텐데. "인간은 패배하는 존재로 만들어진 게 아니야." 노인은 말했다. "인간은 파괴할 수는 있어도 패하지는 않지."
사방 어디를 보아도 그 끝을 알 수 없는 대양. 먼 바다는 신비로움과 막연한 두려움이 있는 장소이다. 그 거대한 공간 안에 작디작은 배 하나를 띄워놓고 장장 5일여간 사투를 벌이는 늙은 어부의 이야기. 노인은 과거에는 어느 누구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할 기술과 힘이 있었지만 지금은 한참 어린 소년의 도움 없이는 당장의 끼니도 해결하기 힘든 지난 세월의 사람이 되었다. 팔십일이 넘도록 고기를 잡지 못하고 빈 손으로 돌아오는 나날이지만, 노인은 바다 어딘가에 자신의 큰 물고기가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일상처럼 바다로 향하는 어느 날, 거대한 청새치가 노인의 미끼를 물었다. 노인은 능숙하게 청새치의 힘이 빠질 때까지 힘겨루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청새치는 노인의 예상보다 훨씬 거대한 물고기였고, 미끼를 문 채 노인의 배를 멀고 먼 망망대해까지 끌고 나간다. 노인은 그 거대한 바다의 한 가운데에서 청새치와의 힘겨루기를 멈추지 않으며 그 만의 고독한 싸움을 완수해낸다.
거대한 자연 앞에서 인간은 초라하기 그지없고, 끝이 보이지않는 수평선과 심해의 깊이 앞에서는 무섭도록 고독하다. 노인은 그 지독한 상황에서도 낚시줄 위에 잠시 쉬어가는 새와 힘겨루기 중인 바닷 속의 청새치를 벗 삼아 형제 삼아 고독을 달랜다. 지난한 힘겨루기의 끝에 노인은 청새치와 함께 뭍으로 뱃머리를 돌리지만, 이번엔 청새치를 노리는 상어떼들과 격투를 벌인다. 뭍에 다다른 노인의 허망한 발걸음과 거듭 쉬어가며 올라가야 하는 판잣집까지의 걸음에서 사투를 벌이고 돌아온 인간의 허무함과 망연한 쓸쓸함이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하지만 노인은 끝까지 희망을 놓지 않았고 아무리 절망적이고 극에 달한 상황에서도 인간으로서의 고아함을 잃지 않는다. 초라한 노인의 우아한 인간성에 감동받은 시간이었다.
고전은 영원하고 거듭 읽힐수록 그 깊이가 더 깊어지는 것 같다. 그리고..잠이 오지 않는 다며 이런 박진감 넘치는 명작을 집어드는 실수는 두 번 다시 하지 않을 것이다....ㅠ ㅠㅠㅠ ps. 초판본 디자인으로 이런 고전을 연이어 발간해주시고 있는 더스토리 출판사에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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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유명해서 제목은 들어봤는데 어릴때 읽은거 같기도 한데 내용은 기억이 안났어요 받아보니 책도 얇은편이고, 글씨가 살짝 커요 애들읽는책 느낌... 내용은 정말 별게 없는데 이상하게 맘에 드는 책이에요 인간이 별을 죽일 필요가 없는게 얼마나 다행이야. 이부분이 너무 좋아서 그 아래 내용까지 적어뒀어요. 한번쯤 읽어보면 좋은 책 같아요ㅎㅎ 유명한데는 이유가 있는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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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은 팔십사일 내내 물고기를 한마리도 잡지 못했다 그 결과 소년이 곁을 떠나게 되었다 노인이 배를 틔우고 바다로 나아갔다 청새치가 미끼를 물었으나 시간이 갈수록 느려지고 힘이 빠졌다 상어가 청새치를 물어뜯었으나 노인은 결국 성공한다 소년은 다시 노인의 배로 돌아왔으며 피곤한 노인은 깊은 잠에 빠졌다 인간은 패배하는 존재로 만들어진게 아니다 인간은 파괴될 수는 있어도 패하지는 않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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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에 누구나 가지고 있는 어린이 고전 전집에 노인과 바다는 늘 있습니다. 저희집에도 늘 노인과 바다가 꽂혀져 있었는데 왠지 모르게 읽고 싶지 않았지요. 노인과 바다라니.. 노인도 외로운 단어고 바다도 뭔가 쓸쓸한 느낌이 들어서 였던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 책을 읽어보니 왜 헤밍웨이 역작이라 불리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노인과 바다의 미묘한 관게.. 미묘한 사투.. 그속에 빠져들어 이야기에서 나오지 못한 저를 발견하게 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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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 읽어보신 분들이 거의 없을 정도로 유명한 소설이라 생각됩니다. 처음 노인과 바다를 읽었을 때는 청새치가 어떠한 물고기인지, 멕시코만은 정확히 어디에 있는 만인지, 이름은 멕시코 만인데 왜 주인공은 미국인인가 같은 나이가 들어서 생각해보면 참 실없던 내용 때문에 소설에 집중은 못하고 온갖 다른 것에만 집착했다가, 나이가 들어서 다시금 읽어보닌 더욱 여러가지 의미를 가진 소설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