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처음부터 그런 건 없습니다 김양지영, 김홍미리 한권의책/2017.12.11. sanbaram 미투 운동이 활발한 요즘 페미니즘의 본격적인 활성화가 우리 사회에 일어나고 있다. 그동안 남성중심의 사회에서 억압되고 은폐되었던 여성에 관한 차별이 하나둘 부각되면서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된다. 진정한 남녀평등을 넘어 성정체성까지를 생각하는 <처음부터 그런 건 없습니다>에서는 성 역할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저자 김양지영은 이화대학교에서 여성학을 전공했고, 충남 여성정책개발원에서 일하며 성평등한 정책을 만들어내는 데 보람을 느끼고 있다. 저서<비정규직 통념의 해부>가 있다. 공저자 김홍미리는 페미니즘을 만나고 나서 자존감은 높아졌고 자만심은 낮아졌다고 한다. 공저<소녀, 설치고 말하고 생각하라>, <그럼에도, 페미니즘>, <페미니스트 모먼트>, <가정폭력-여성인권의 관점에서> 등이 있다. <처음부터 그런 건 없습니다>는 여자란 누구이며, 남자란 누구일까? 성적 차이는 처음부터 있었던 걸까, 아니면 각기 다른 모양과 내용으로 기대 받는 문화와 무리의 실천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 질문은 두 명의 페미니스트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이자, 답해보고 싶었던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의 내용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 성별에 갇힌 여자, 남자. 2장 당당하게 얘기해. 3장 젠더, 그것이 알고 싶다. 4장 함께 만들어가는 변화. 등이다. “성폭력을 성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연결지어 생각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없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피해를 양산하는데 일조하는 셈이다. 성폭력을 모두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문제’로 여기면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가해자의 성별(남성)을 감추고, 피해자만 통제하려고만 드는 우리들 모두가 성폭력을 ‘보통의 경험’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p.36)”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드러내놓고 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세계적인 미투운동의 확산으로 봇물 터지듯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각계각층의 여성들이 쏟아내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의식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성에 대해 말하기를 시작하더라도 아기 출산과 연결된 성만을 간신히 이야기할 뿐인 데다, 생식과 연결되지 않은 성은 쾌락을 추구하는 금기처럼 회자되곤 한다. 성은 생식이자 즐거움이며 쾌락이지만, 즐거움과 쾌락은 지워내는 모양새다. 심지어 추구해서는 안 되는 그릇된 세상의 영역으로 떠밀려버린다. 정작 즐거움을 빼면 앙꼬 없는 찐빵인 성을 이렇게 오랜 시간 내버려두었다.(p.98)” 그동안 우리 사회의 인식처럼, 성은 관계의 윤리이고, 서로의 관계에 대한 사유와 서로를 돌본다는 감각 없이 행위로만 이해될 때 ‘폭력’과 연결되기 쉽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성을 이야기하고, 관계를 이야기하고, 즐거움과 쾌락, 그리고 생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마도 덴마크나 노르웨이처럼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성을 숨김없이 학교에서 성교육을 하고, 국영방송 등을 통해 제대로 된 성정체성을 갖고 아이들이 자랄 수 있도록 교육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랬을 때 잘못된 성에 대한 인식에서 벗어나 서로를 존중하며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성학 수업을 수강하면서 모든 것에 혼란이 왔다. 나의 가족, 나의 기억, 나의 연애까지, 어느 것 하나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 됐다. 세상에 원래부터 그런 것은 없었고, 어디에나 질문이 쫓아다녔다. 그 질문은 나의 가정폭력을 지나 나의 연애에까지 이어졌다.(p.120)” 제대로 된 성교육을 받지 못하고 가부장적인 가정에서 자란 저자가 겪었던 혼란을 이와 같이 고백하고 있다. 그러면서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우리 사회의 성역할에 대한 문화 때문에 힘들었던 경험을 토로하기도 한다. 태어날 때부터 원래 그런 것은 없고 단지 문화적으로 성역할을 부여하여 교육시키고 있었음을 지적한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양성평등, 나아가서 성정체성에 대한 바른 인식을 아이들이 갖고 자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것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는 <제2의성>에서 섹스와 젠더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여성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진다. 사람은 인간 종의 ‘여성(female)’으로 태어날 수 있지만 ‘여성(woman)’을 만드는 것은 문명이며, 문명은 무엇이 ‘여성적인 것’인지를 정의하고 여성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행동하는지를 처방하는 것이다.(p.128)” 시대에 따른 여성상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변화되어 왔다. 또한 세계는 여성과 남성, 2개의 젠더만을 고집하던 것에서 점차 다양한 성별 정체성을 말하는 방향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71개의 젠더로 분류하고 있는 페이스북에서 알 수 있듯, 다양한 성정체성이 현존하고 있기에 각자 자기의 성정체성에 대한 차분한 고찰을 해볼 필요가 있음을 역설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의 성 정체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해해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의 군대도 평등과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하여 군인들이 민주주의와 평등을 배우고 발전적인 경험을 할 수 있다면 어떨까? 그리고 군을 민주적인 공간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에 여성 징병제가 필요하다면, ‘나만 가니 억울하다’가 아니라 성 평등의 관점에서 우리사회 모두를 위한 제도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p.176)” 이와 같은 예로 양성평등에 의한 징집제도를 도입한 이스라엘이나 스웨덴, 노르웨이의 사례를 이 책에서 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직장생활에 대해서도 스웨덴 사람들이 중시하는 “덜해도 안 되고, 더 해도 안 된다‘는 뜻의 ’라곰‘과, 안락하고 아늑한 가정을 뜻하는 덴마크인들의 ’휘게‘를 우리가 이룰 수 있기 위해서는 남녀가 공동육아를 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남녀 공동육아의 필요성을 사회적 인식으로 바뀌어제도적으로 시행할 때야 비로소 진정한 양성평등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또한 우리 사회가 이루어야할 과제 중 하나가 아닌가 생각한다. “아이는 부모가 키우는 게 아니다. 부모가 키우는 대로 자라지도 않는다. 서로의 영향력 속에서 아이는 그저 자랄 뿐이고, 부모도 그저 달라질 뿐이다.(p.210)”와 같이 말하는 저자처럼 성역할을 정해놓고 키우는 것이 아닌 자기 스스로 성정체성을 찾아갈 수 있는 진정한 성평등 교육이 필요하다. 좀 더 나은 미래사회를 위하여 우리가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보다 상대의 성을 존중해주고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된다. 이 책을 보다 많은 사람들이 읽고 자기의 성정체성과 지금까지의 성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
|
여자들은 결혼을 하게 되면 '시집 간다'고 말한다. 남자들은 '장가 들다'라고 말한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이상하다. 그래서 '시집 간다'와 '장가 들다'를 찾아봤더니, 남자들은 혼인하여 남편이 되는 거고, 여자들은 시집 즉 결혼한 남자의 집에 들어가 산다고 하여 여자가 혼인하는 것을 시집간다 라고 표현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이때까지 잘 살아왔는데, 왜 지금 불편하게 느껴질까? 아무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으면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지만 이상하다고 여겨지는 그 순간, 그 질문 속 사회적 전반에 흐르는 무언의 의미들은 뭔가 첫 단추가 잘못 꿰어진 것처럼 잘못된 느낌이 든다. 이런 불편함은 사회 곳곳에 다른 의미들로 또는 굳건한 신화처럼 퍼져있는 것 아닐까? 사회의 뿌리깊은 불평등의 관행들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예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불편함이다. 또 씁쓸한 우스갯소리의 신조어로 '취집'이 있다. 취직을 못하면 여자는 시집을 가면 된다는 말, 결혼이 재테크 수단이라는 의미로 쓰인다는데, 어떻게 이 지경에까지 이르렀을까? 서로에 대한 불신이 팽배해져있고, 비아냥거림이 낯설고 거슬린다. 이런 불편함과 불평등, 부조리함과 함께 페미니즘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페미니즘에 대해 자주 들어봤지만 그 의미들은 잘 모른다. 블러그 내에서 페미니즘에 대한 책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며 고민하는 계기가 될 것 같아 참여했다.
여자와 남자를 편 가르는 이분법적 생각이 아니라 정말 궁금해서다. 내가 어줍잖게 알아 편견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의미를 알고 사회를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다. 페미니즘 책읽기 첫 책 <처음부터 그런 건 없습니다>이다. 언제부터인가 페미니즘에 대한 책도 많이 나오고, 페미니즘에 대한 시각들도 점점 바뀌고 있는 것을 느낀다. 가부장적인 남성 위주의 요소들이 있지만 심각하게 생각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쭉 이어져왔구나 생각만 들었을 뿐이다. 여자의 입장에서 본 차이 뿐 아니라, 남자의 입장에서 본 또다른 차이가 감정싸움에까지 이르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페미니즘에 관한 글들이 올라오면 서로의 입장차이가 너무 커서 험한 말들도 난무한다. 사회가 남녀를 상호배타적인 범주로 나누는 바람에, 우리는 다양성의 세계와 마주하지 못하고 서로를 '남자답게' '여자답게'라는 역할 놀이에 매진시킨다. (p145) 페미니즘의 본연의 의미는 너무 좋다. 하지만 이것이 사회 속에서 남녀의 감정싸움으로 치닫게 하거나 다양성을 존중하지만 또 다른 생각을 가진 어떤 개인들의 생각까지 폄화하고 한정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 그대로 다양한 생각을 가진 그 지점에서부터 조금씩 변화가 시작될 테니까.
남성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배어 지나치게 익숙해서 그것이 문제인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위계적이고 폭력적인 군사 문화/남성 문화. 그것을 알아채는 것, 그리고 무엇이 문제인지 이야기하는 것, 지금 시작해야 하는 일이 아닐까? 생각지도 않았던 은연 중의 성 차별 사례가 이렇게 많은 줄 몰랐다. 예전에 방과후학교 선생님들이랑 모여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는 중에 어떤 한 선생님이, 바지는 남녀 모두 입을 수 있는데, 치마는 왜 여자만 입을까? 그 편한 것을 남자도 입을 수 있는 것 아냐? '헤헷 그럼 선생님 남편이 치마 입고 다니면 아무렇지도 않게 볼 수 있겠어요?' 되묻는데, 모두들 'No' 남은 되고 나는 안 된다는 심리다. 너무 뿌리 깊이 박힌 생각 틈에 다르게 볼 수 있는 생각이 들어올 수 없다. 오늘 포털 뉴스에 '초등교사 이우혁씨에게 듣는 페미니즘과 인권 교육' 기사를 보았다. 치마를 입고 수업하는 남자 선생님, 아이들에게 인권을 설명하는 선생님. 남자 선생님이 여성의 인권에 대해 말하는것이 한편 이상하면서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성역할은 사회가 만드는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사람 간의 차이를 성별이 아닌 개인의 차이로 이해하는 것, 공감이 갔다. "모든 인간관계는 권력관계라고 생각해요. 제가 페미니스트가 된다고 남성이 본래 가지고 있는 권력을 내려놓을 수 없는 것처럼 권력이 있는 사람이 그걸 내려놓기란 정말로 어려워요. 권력자가 자신의 권력을 인식할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내가 가진 권력을 아는 것, 이것이 평등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강자가 더 조심하는 사회였으면 좋겠어요.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약자가 더 조심해야 해요. 가지지 못한 사람이나 힘 없는 사람은 항상 자신을 단속하고 주의를 살펴야 하니까요. 특히 성범죄를 포함한 젠더 문제는 책임을 약자에게 돌리기까지 하는 것 같아요. 디케의 저울과 칼 끝이 강자에게 더 엄격했으면 좋겠어요. 약자보다 강자가 더 조심할 수 있게요." 우리 사회는 성별과 관련된 차별도 많지만 약자와 가지지 못한 자에 대한 차별이 많다고 생각했다. 무소불위의 권력이 아닌 비교했을 때 나보다 못하거나 비슷한 경우 사람들에 대한 은연중의 권력이 작용한다는 것에 놀랍기도 하면서 나에게는 관대한 잣대와 남에게는 엄격한 잣대를 대는 이중성이 인간이라면 누구나 거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많은 생각이 뒤죽박죽 든다. 페미니즘에 관한 책 한 권 지금 읽었을뿐인데....... 처음부터 그런 건 없습니다. ^^ 아비토끼랑 페미니즘과 페미니스트에 관한 얘기를 한번씩 나누는데, 그 생각의 간극이 크다. 페미니스트에 관해 좀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아비토끼와 달리 조금은 다르게 보는 나는 잘 모르니까 앎이 더 필요하다. 서로가 바르게 잘 알아야 조금 더 다양하게 편견없이 함께 얘기를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좀 앞서나가는 아비토끼에게로부터 지금은 한 발짝 빼는게 답이고^^
|
|
<처음부터 그런 건 없습니다>는 여자란 누구이며, 남자란 누구일까? 성적 차이는 처음부터 있었던 걸까, 아니면 각기 다른 모양과 내용으로 기대 받는 문화와 무리의 실천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일까? 이 질문은 두 명의 페미니스트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이자, 답해보고 싶었던 것이라고 한다. 이 책의 내용은 4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장 성별에 갇힌 여자, 남자. 2장 당당하게 얘기해. 3장 젠더, 그것이 알고 싶다. 4장 함께 만들어가는 변화. 등이다. “성폭력을 성 불평등한 사회구조와 연결지어 생각하려는 구체적인 노력이 없다면 남녀를 불문하고 누구나 피해를 양산하는데 일조하는 셈이다. 성폭력을 모두의 문제가 아니라 ‘여성 문제’로 여기면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가해자의 성별(남성)을 감추고, 피해자만 통제하려고만 드는 우리들 모두가 성폭력을 ‘보통의 경험’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p.36)” 이런 상황에서 그동안 드러내놓고 말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세계적인 미투운동의 확산으로 봇물 터지듯 지금 우리 사회에서 각계각층의 여성들이 쏟아내고 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의 현실을 직시하고 바람직한 방향으로 의식이 발전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길 기대한다. “성에 대해 말하기를 시작하더라도 아기 출산과 연결된 성만을 간신히 이야기할 뿐인 데다, 생식과 연결되지 않은 성은 쾌락을 추구하는 금기처럼 회자되곤 한다. 성은 생식이자 즐거움이며 쾌락이지만, 즐거움과 쾌락은 지워내는 모양새다. 심지어 추구해서는 안 되는 그릇된 세상의 영역으로 떠밀려버린다. 정작 즐거움을 빼면 앙꼬 없는 찐빵인 성을 이렇게 오랜 시간 내버려두었다.(p.98)” 그동안 우리 사회의 인식처럼, 성은 관계의 윤리이고, 서로의 관계에 대한 사유와 서로를 돌본다는 감각 없이 행위로만 이해될 때 ‘폭력’과 연결되기 쉽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성을 이야기하고, 관계를 이야기하고, 즐거움과 쾌락, 그리고 생식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을까? 아마도 덴마크나 노르웨이처럼 실질적이고 현실적인 성을 숨김없이 학교에서 성교육을 하고, 국영방송 등을 통해 제대로 된 성정체성을 갖고 아이들이 자랄 수 있도록 교육할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그랬을 때 잘못된 성에 대한 인식에서 벗어나 서로를 존중하며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
|
처음부터 그런 건 없습니다.
바로 들어가자. 책 제목, 은근히 도발적이다. 그런 건 없다, 니! 그것도 ‘처음부터’ 없다니, 아니 없었다니!
그런 건, 그렇다면 무엇일까 그게 무언데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일까
이런 글에서 ‘그런 건’을 찾아볼 수 있었다.
<나는 대학 졸업 후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 싱글일 때는 야근도 가능하고 장기 출장도 가능해 어떻게든 남자 동료들처럼 일할 수 있었다. 달라진 건 결혼 후 아이를 낳고부터다.>(184쪽)
이 글은 24장 <라곰과 휘게, 평등과 행복>이라는 장에 나오는데, ‘그녀/ 그가 말하길 ....’에 등장하는 she 의 말이다.
‘달라진 건’은 ‘결혼 후 아이를 낳고부터다’라고 했으니, 그전에는 어땠을까 she says 바로 아래 he says 가 있는데, ‘그’의, 그러니까 ‘남자’ 말도 같이 읽어보자.
‘나는 대학 졸업 후 좋은 직장에 취직했다.’ 로 시작한다. ‘나는’ 까지 타이프 하다가 이어지는 말이 앞에 인용한 she 의 말과 같길래 더 이상 타이프 하지 않고, 복사해서 가져다 붙였다.
복사해서 가져다 붙여도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 문장만 같은 게 아니라, 그들이 말하는 대학 졸업후 시작하는 직장생활이 똑 같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달라진다. 언제? 결혼 후부터, 결혼 후 아이를 낳고부터 달라진다는 것이다.
그러니 책 제목이 시사하는 바, ‘그런 건 처음부터 없다’는 말이 바로 이런 것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것, 처음에는 같았는데 어느새 남자 여자라는 것 때문에 달라지는 것을 짚어주고 있다.
그러면, 이 책을 읽는 나, '남자'인 나는 그렇게 달라지는 것, 처음에는 같았는데 여자 남자라는 것 때문에 달라지는 것을 인식하고 있었던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여성이 직원으로 같이 근무하는데, 그녀들이 결혼하고 난 후에 저절로 달라지는 것을, 심각하게 느껴본 일이 있던가
이 책은 그런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해서 저자 - 두 명의 여성 - 가 말하는 바, 그게 모두다 나를 향한 질문으로 여겨진다.
그런 질문 받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찜찜하다. 나는 '그래도, 그래도' 조금은 덜한 편이 아닐까, 하는 변명 거리, 피난처를 만들어 그리로 도망치려는 마음, 부인할 수 없다.
지난 번 읽었던 책, 『맨 박스』도 그랬다. 그 책, 남성들에게 ‘남성이라는 박스’에 갇혀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자꾸만 ‘나는 착한 남자인데, 그러니 이런 맨박스에 갇혀 있지 않다고 항변’ 하려는 나를 읽을 수 있었다.
이 책은 일단 그 책으로 예방주사를 맞았으니, 조금 덜하다. 나를 포함한 남자들의 모습이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그런 건 없습니다, 라고 말하는 여성들의 음성이 들리기 시작한다. 귀를 열고, 들어볼 결심이다. 물론 듣기만 해서는 안 되겠지, 그 다음, 다음 단계를 향하여 걸어가는 내 모습, 잠시 상상해 본다. 이 책 그래서 첫 걸음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