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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자체가 재미가 없지는 않다. 상소문을 요즘 말로 알기 쉽게 풀이도 잘 되어있다. 그런데 과연 책으로 낼 만큼의 가치가 있었는가 반문 해본다면 마땅한 답을 고를 수가 없다. 부실한 분량이 그 중에서도 가장 실망스러운 부분이다. 상소문에 대한 풀이보다 상소문 그 자체의 비중을 좀 더 늘렸다면 좋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게 남는다. * 전하의 정치는 이미 잘못되었고, 나라의 근본이 흔들려 하늘의 뜻도 민심도 이미 떠나갔습니다. 비유하자면, 오래된 큰 나무의 속을 벌레가 다 갉아먹어서 진액이 말라버렸는데, 회오리바람과 사나운 비가 당장이라도 몰아쳐 올 것 같은 형국입니다. 조정에 충의로운 선비와 근면한 신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관리가 백성의 고통은 아랑곳하지 않고 있으니, 아래에서는 시시덕거리며 주색에 빠져 있고 위에서는 어물쩍거리며 재물만 불리고 있습니다. * 신이 쓸 만한 사람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마땅히 당면한 일들에 대해 하문하셔야 합니다. 그리하여 신의 말이 채택할 만한 것이 못 된다고 여기신다면 다시는 소신을 부르지 마옵소서. * 폐하께서는 물욕에 마음이 끌리고 욕심이 습관이 되셨습니다. 부드러우나 강단이 부족하고 자잘한 일은 잘 챙기면서도 큰 그림을 그리는 일엔 어둡습니다. 아첨을 좋아하고, 정직을 꺼리며, 안일함에 빠져 노력할 줄 모르십니다. 지난 30년 도안 위에서 하늘이 견책하였으나 깨닫지 못했고, 아래에서 백성이 원망하였으나 돌보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화란이 있게 된 이유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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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독서 모임으로 선정된 책의 소개는 그동안 읽었던 그 어느 책보다 더 흥미가 갔다. '권력을 향한 조선 선비들의 거침없는 직언직설' 이라니. 목숨도 마다 않고 임금에게 충언을 아끼지 않던이들의 이야기가 어찌 궁금하지 않겠나. 역사에 대한 흥미가 높았던 나는 <다시는 신을 부르지 마옵소서>를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다. 조선 시대에는 성리학과 유교와 같은 학문에 충실히 임하는 것을 도로 여겼다. 현시대에 와서 이러한 학념은 다소 진부한 부분에 있어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선조들이 이같은 것들을 이념 삼아 살아가게 된 것은 분명한 이유가 있다. 무릇 충신이란, 임금이 국정을 다스리는 데 있어 중심을 바로 잡지 못할 때 이를 바로 잡기 위한 충언을 서슴치 않고 하는 이들이다. 그리고 그러한 충언의 궁극적인 목표는 나라의 기강을 바로 세우고 백성의 삶을 온전하게 함에 있다. 역사책에서는 그저 한 줄, 한 단어로만 알게 된 각종 정책과 사건들 속에 이러한 선비들의 평생을 거친 필사적인 노력과 실리가 담겨있다는 걸 알게 되는 동시에 부끄러운 마음도 들었다. 선조들의 노고를 잊고 현 사회에 불만만 품으며 살아가는 나 자신에 대한 치욕스러움이었다. 물론 해당 책에 실린 선조들은 모두 국정을 담당하던 실무 관직자들이기 때문에 목소리를 내는 것은 당연지사였으나, 개인의 목소리가 보다 더 멀리 퍼질 수 있게 된 현대에 이르러서 내가 이들처럼 사람들을 위해, 나라를 위해 목소리를 낸 적이 몇 번이나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다.
현대 사회는 많이 암울하다. 나라와 국민을 위해야 할 몇몇 국정 실무자들은 본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 급급해 망조에 이르는 나라의 국면을 보지 못하고, 끝내는 삶을 마감하는 국민(백성)들을 보살피지 않는다. 지금 이 나라를, 대한민국이라는 이곳을 다스리는 저들에게 조금은 과감한 마음으로 내밀어야 할 책이 아닌가 싶다.
선조들의 뜻을 이어 받고, 역사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세워가며 보다 많은 사람들이 풍족히 살 수 있도록 하는 것. 이 때문에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란 없다는 말이 생긴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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