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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풍기를 개발한 분께 새삼 감사하다 했더니 가족들도 동의한다. 리우올림픽을 축하할 겸 브라질 대표작가인 파울로 코엘료의 책을 펼쳤다는 말은 그냥 웃자고 하는 얘기다. 삼주 전 [알레프]를 뽑아들 때 심경은 복잡했다. ‘정작 나는 누가 위로해주지’라는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다시 길 위에 서야 한다는 두려움만큼이나 진로를 새로이 해야 할 때 지난날을 시간낭비로 치부하지 않아야 한다는 양심이 뒤범벅이 된 혼란 상태였다. 인생을 계속 영위할 나에게 해줄 말이 필요했다. 누군가에게 내 처지와 어려움을 구차하게 설명하지 않고 그저 안겨 울만한 공간이 절실했다. 그런 상태에서 만나는 글과 말은 도움이 되는 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비워진 가슴에 날아와 꽂히는 것들은 나를 살릴 수도 있지만 동시에 죽일 수도 있다.
왜 많은 작가와 책 중에서 [알레프]를 뽑았을까. 사람 일이 한치 앞을 알 수 없다더니 책을 선택할 때의 고민은 책을 읽기도 전에 사라졌다. 그래도 당시 어떤 마음이었을지 헤아리고, 완전히 해결된 것이 아니라 잠시 보류된 문제이니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지 점검할 겸 책을 펼쳤다. [연금술사]와 [11분]을 이미 읽은 터라 사실적이고 구체적인 해결책을 원했던 건 아니지만 자전적인 경험을 토대로 신비한 전생을 말해와 다른 때보다 당황스러웠다. 그런가하면 그의 책에 사로잡힌 독자로서 실제로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영적이고 신비한 힘을 글로 증언하는 영험한 작가라면 영접을 위해 줄선 사람들 뒤를 나도 따를 것 같다.
나이든 예술가 옆에 젊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 함께하면 궁금증이 인다. 저들이 하는 게 정말 사랑일까. 자신의 작품밖에 모르는 에고이스트 곁에 머물며 본인이 가진 빛을 잠재우는 실재하는 뮤즈들의 마음이 궁금하다. 무엇이 자석처럼 그들을 끌어들여 예술가 곁에 남게 하는지. 그럴 때 그들이 나누는 에너지와 감정은 말로는 차마 표현할 수 없는 언어 이상의 특수한 옷을 입게 되는 걸까. 없던 문이 확 열리는 사태, 그런 기미에 온 마음을 내던질 수 있는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지 알고 싶어진다. 책의 말마따나 우리는 전생과 환생이 있어 운명의 거미줄에 묶인 존재이려나. 현재의 우리는 과거의 우리와 미래의 우리를 연결하는 고리일까. 여성적인 마법의 힘과 성욕에 사로잡힌 한남자의 사이비적 지식이라고 싹둑 잘라버리기엔 뭔가 묘한 구석이 있다.
중세적인 믿음이자 궤변이라고 막아 세우기엔 [인터스텔라]적인 시간관(우주론)이 투영돼있다. 보이지 않은 사상이나 가치에 마음을 홀려본 사람이라면 외면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알레프]를 작가의 회고담으로 보기보단 허구로 각색될 수밖에 없는 팩션으로 칭하고자 한다. 권태와 정체에 빠진 노작가가 아시아 횡단 기차여행이자 순례를 하며 현재와 과거(전생)를 교차를 통해 이루는 시간 충돌과 교차가 예사롭지 않다. 인생을 기차 여정에 비유하며 이주 간의 기차여행에서 과거의 얽힘을 풀고 오늘의 의미를 새로이 한다.
많은 것을 성취한 작가임에도 여전히 순례길에 오르는 겸허한 마음과 여전히 생동하고자 하는 열의가 느껴져 적지 않은 자극이 되었다. 창조를 일삼는 예술가가 아니더라도 살아가는데 있어 자극과 영감은 반드시 뒷받침되어야 한다. 알고 있더라도 타인의 입을 통해, 라잇 나우 미러를 빌어 다시 듣고 봐야 하는 것들이 있다. 희디흰 함박눈이 땅에 내려와 진창이 되고 나중에는 종적 없이 사라지듯이 사람의 정신과 마음도 탄성을 잃을 수밖에 없다. 아마도 굳이 파울로 코엘료를 찾은 이유는 인조눈이라도 맞고서라도 과거를 잊지 않고 오늘을 넘어 다음을 열어두고 싶은 간절함 때문일지 모르겠다. 한 번에 닫아거는 잠금쇠 같은 삶이 싫어서. 아니면 다른 말로 납득되지 않는 오늘의 힘겨움과 독기를 쓸어내리느라 한 번씩 다시 찾게 되는 건 아닌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는 의심과 진부하게 계속 이럴 건가 하는 까칠한 반기도 내려놓고 작가의 색깔로 인정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비현실적이게 관대한 화가 아내. 여러 번의 결혼. 제 날개가 타는 줄 알면서도 날아드는 화려한 암컷 나방들. 그리고 아직도 만나지 않은 여자들. 시간의 굴레와 쳇바퀴에 매인 듯 매이지 않은 자유로움.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요소들을 많이 가진 작품이지만 이상하게 반감이 들지 않는다. 그라면 그럴 수 있다, 아니 그라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이게 그다! 바뀌지 말아야 할 색계인 것이다.
사념에 빠졌다가 어쩌면 내가 찾고자 한 말은 그가 아니어도 누구라도 해줄 수 있는 말이었던 듯하다. 네가 속한 세상의 주인이 되라는 말, 지금의 나는 과거와 미래를 품은 여럿의 나라는 말은 종교인이나 무술인, 자기계발서 집필자라면 해줄 수 있을 게다. 다만 그런 말을 종교인이나 무술인, 자기계발서의 말을 통해 되새기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이왕이면 문학적인 정기를 머금은, 문학이라는 메신저를 통해 확인하고 싶었을 테지. 찰나적이고 덧없는 생에서 글로 생명을 창조하고 재생시키는 작가 곁에 불쏘시개(화염)로나마 유의미해지고 싶은 숱한 뮤즈들의 열망을 조금은 이해할 수도 있을 듯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