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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담한 마음으로 이 책을 펼쳐 읽기 시작했다. 이 일기의 주인인 이춘기 옹은 아내가 암 발병 때부터 일기를 쓰기 시작한다. 그전엔 왜 일기를 안 썼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그래도 그가 왜 그때를 기점으로 일기를 쓰기 시작했는지 알 것도 같다. 물론 아내의 발병 사실에 만감이 교차했겠지만 그렇다고 속절없이 무너질 수마는 없지 않았을까? 스스로 마음을 다잡기 위해 그는 일기를 써야겠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읽는 나는 왜 이리도 마음이 먹먹하던지. 뭔가 동화된 느낌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내가 이 책을 20대 초반에 읽었더라면 그냥 그런가 보다 했을 것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가까운 누구도 불치의 병으로 죽은 사람이 없었으니까. 그때까지 불행은 다 나와 한 다리 건너의 사람들의 것인 줄 알았다.
당시는 1960년대가 막 시작됐을 때다. 나의 아버지 돌아가셨던 90년대도 암은 어려웠는데 그 시절은 더 암담하지 않았을까? 시간차만 있다뿐이지 그나 우리 집이나 하루 세끼 밥 먹고 돈 버느라 일했고, 밤이면 자는 똑같은 일상을 살았을 텐데 이렇게 누구는 병이 들고, 누구는 그 병든 가족을 간호해야하며 고통을 견뎌내야 한다는 게 참 아득하다. 그때부터 시작된 이춘기 옹의 일기는 참 담담하고 담백하다.
내가 남의 일기를 이렇게 문학으로 향유해 본 적이 언제였던가? 물론 최근 카프카의 일기를 읽어 본 적이 있다. 남의 일기를 읽는 것만큼 관음의 즐거움과 감동을 선사하는 게 어디 그리 흔한가? 그런 기대를 가지고 카프카의 일기를 읽기 시작하다가 그만 학을 떼었다. 어찌나 어렵고 난해하던지. 카프카에 대한 이해가 어느 정도 있으면 모를까 나 같이 지식이 일천한 사람은 멋모르고 펼쳐들다 낭패 보기 쉽다. (그건 또 어쩌면 시간에 쫓겨서 읽느라 더 그랬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내 기억 속엔 사춘기 때 읽었던 <안네의 일기>를 읽었던 감동은 여전하다. 그렇게 엄혹하고 참혹한 세상에서도 그녀의 일기는 얼마나 순수했는지. 하지만 그것이 끝이었던 것 같다. 그나마 최근 들어 유명 작가의 일기가 나오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한동안 일기를 문학의 범주에 넣어 주지도 않았(던 것 같)다. 이 책 말미에도 이춘기 옹의 일기를 엮은 이복규 교수가 그런 말을 하지 않는가, 이 책은 우리 학계에서 비교적 열세에 있는 일기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고. 그도 그럴 것이 이 책은 일기인 만큼 이춘기 옹의 개인 일상사를 다루고 있지만 아내의 간호기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물가, 사람 사는 표정, 역사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한 이름 없는 사람으로 어떻게 보고 있는가를 다루고 있다.
솔직히 우리나라처럼 사대주의가 강한 나라가 또 있을까? 같은 말을 하더라도 누가 하느냐에 따라 그 말의 값어치가 달라진다. 어느 분야든 그 분야의 전문가가 아니면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특히 역사를 보는 시작은 더하다. 전문가가 어떻게 말하느냐에 따라 그것만을 들으려고 하고 믿으려고 한다. 그래서 너무 한정적이다. 예를 들면, 이 책 읽다보면 1997년 6월 25일에 이춘기 옹이 쓴 6.25 회상 부분이 나온다. 한 개인으로 그날이 어땠는지를 짧지만 강렬하게 쓰고 있다. 벌써 29년이 지난 시점인데도. 거기에 그런 말이 나온다. ......아이들이 개 두 마리하고 마당에서 놀고 있는데 난데없는 총성이 나더니 마당의 개 두 마리가 그만 피를 토하고 죽어 나자빠지고, 아이들은 마당에 그대로 쓰러졌다(354p). 얼마나 놀랍고 사실적인가? 그 일이 일어났던 똑같은 시간에 어떤 사람은 또 어떤 것을 보고 어떻게 쓸지 새삼 궁금하기도 했다. 어떤 역사적 사건을 인지하는 것이야 똑같겠지만 보고 느끼는 것은 저마다 다를 수 있다. 하지만 우린 사실이란 관점에서 이것을 좀 더 넓게 수용해야할 필요가 있는데 개인이야 어떻든 오직 교과서에만 의존하려고 하니 우린 역사를 너무 소극적이고 소홀하게 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새삼 개인의 6.25 회상기란 책이 있으면 한 권 사 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내 시대를 표현한다면 나는 박정희 대통령 서거 다음 날을 회상하고 싶다. 그날 내가 일기를 썼는지도 기억에 없다. 워낙 오래 전 일이라. 하지만 그 시절 나는 그 어느 때 보다 열심히 일기를 썼던 것도 사실이다.
이 책이 기억해 줄만한 건 이춘기 옹이 그날의 시세를 일기에 자주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때는 화폐개혁이 있기 전이라 원 대산 환으로 계산을 했다. 그리고 62년인가? 그때 화폐 개혁이 되면서 원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그게 좀 이해가 갔다. 당시론 복숭아를 재배해 그것으로 살림을 꾸리곤 했는데 넉넉한 살림은 아니었을 테니 돈의 들고 남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되었을 것이다. 나의 아버지도 자수성가한 자린고비 스타일이라 병으로 사경을 헤매시기 전까지 조그만 수첩에 돈의 지출내역을 꼬박꼬박 적으셨던 기억이 난다. 그걸 지금도 가지고 있었다면 좋은 기록이 되지 않았을까? 일기였다면 내가 어떻게든 보관했었을 텐데 저런 건 써서 뭐하나 구두쇠니까 저러시겠지 하며 관심도 갖지 않은 게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난 중학교 들어가면서 일기를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했다. 그전까지야 방학숙제로 썼으니 그걸 일기라고 할 수도 없고 그걸 쓴 노트는 남아 있지도 않았다. 그런데 확실히 중학교는 초등학교완 달라도 많이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쓰기 시작한 일기 쓰기가 성인이 되고부터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다. 내 주위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일기를 쓰지 않았다. 그런 사람을 쫓은 건 아니지만 어떤 신념 비슷하게 안 쓰는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는 죽을 때 가급적 흔적을 남기지 않기 위해 일기를 쓰지 않는다고 했다. 일기를 쓰는 많은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이 이 세상을 살다 갔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라고 하는데 이 친구는 그 반대였던 것이다. 그래도 너만의 고백이나 정리가 필요하지 않겠냐고 했더니 그러자고 살아 있는 사람에게 짐을 지울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되면 그 일기를 태워줄 사람이 필요한데 번거롭게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일견 타당한 것도 같았다. 아니 오히려 멋있게 보였다. 그렇다면 내가 지금까지 쓴 일기는 어떻게 할 것인가?
아마도 난 이때부터 일기에 대한 애증이 시작이 된 같다. 정말 나도 그 친구처럼 죽을 때 될 수 있으면 흔적을 남기고 싶지 않다는 것과 기록의 의무와 흔적이 서로 충돌했다. 그런 와중에 인터넷에선 블로그가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이걸 쓰니 굳이 일기라고 따로 쓰고 싶지 않았다. 이 책의 엮은이도 노트든, 스마트폰이든 블로그든 어디든 열심히 기록하라고 권한다. 그런데 일기를 블로그에다 쓰는 건 간단치가 않다. 그건 낙서나 잡담의 의도가 많고, 아무리 짧은 글이라도 몇 번의 정서가 필요하다. 또 아니 할 말로 함부로 대놓고 누구 욕도 못하겠다(물론 비밀글로 쓸 수도 있지만 블로그의 기본은 글을 공개한다는 것에 있다). 책엔 이 옹이 재혼녀와 의붓딸에 대한 미움도 가감 없이 쓰곤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고전적 일기 쓰기는 그것이 가능하다. 누가 문법 틀리고, 철자 틀려도 뭐랄 사람이 없다. 요즘엔 다시 고전적 일기 쓰기를 하고 있는데 블로그에 쓰는 것 보다 훨씬 편한 마음으로 쓸 수 있어 좋다. 하지만 난 엮은이의 말에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무엇이 됐든 써라다.
사실 일기는 어떠한 비판이나 가치 판단 없이 있는 그대로 봐주는 것이 쓴 사람에 대한 예의 같기는 하다. 그런데 아무래도 시대 차와 성의식의 차이로 인한 해석과 가치 판단이 개입될 수밖에 없는 것 같다. 나는 이 옹이 아내를 잃고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도 이해가 갔지만, 이후 재혼과 삼혼을 하는 동안 결혼에 대한 생각이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 새삼 놀랍기도 하고 좀 아쉽기도 했다. 그것은 그때는 가부장이 문제가 되지 않았던 시대였고, 또 그러니만큼 여성의 지위가 그리 높지 않았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게 한다. 그는 그저 가정을 건사할 여인이 필요했다. 식모와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그래서 결국 재혼녀는 이를 견디지 못하고 나가는데 그가 일기 중 성경 잠언을 인용한 바 있는 이 ‘현숙한 여인’이 당시의 남자들에게 어떻게 이해됐을지 알고 새삼 놀라웠다. 하지만 그것은 그것대로 봐줄 필요는 있어 보인다. 그래야 연구 가치가 있는 거니까.
하지만 한 가정을 책임져야 하는 가장의 짐, 두 어린 아들에 대한 애틋함, 하다못해 기독교인으로서 너무 바빠 예배를 드리지 못한 생활인으로서의 버거움이 일기에 올올이 드러나 찡했다. 문체가 좋은 글만이 문학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진솔한 글을 읽으면 자신이 평범해서 초라하다고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간의 위대함은 이런 평범함에서 오는 것이다.
난 이 책 계기로 엮은이 말대로 우리나라가 개인의 일기를 활발히 연구하는 풍토가 조성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것조차도 사대주의에 빠져 유명하고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사람의 일기만을 연구하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책은 그야말로 초야에 묻힌 한 노인의 일기고, 기록이며 미시사이기도 하다. 그가 원래 유명해서가 아니라 30년을 일기를 쓰다 보니 유명해졌다. 작지만 한 가지 일을 매일 성실하게 한다는 건 중요하다. 그러므로 일상이 무료하다, 의미가 없다 말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평범한 사람은 평범함에 묻혀 사는 거지만 그 평범함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는 걸 이춘기 옹은 몸소 보여줬다.
사실 처음엔 책의 두께가 만만치 않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건 이춘기 옹이 30년간 쓴 것에 비하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다. 좀 더 편집을 다양화 하거나 내용이 겹치는 것을 제외하고 그대로를 보여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그러기엔 이 옹이 유명하지 않아서인지 뭔지 모르게 아쉬웠다. 하지만 하루를 의미 없이 보냈다는 사람에게 말하고 싶다. 그러지 않으려면 관찰하고 일기를 쓰라고. 그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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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복숭아밭 농부의 일기를 통해 떠나는 30년간의 시간여행 「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 학창시절 방학숙제에 늘 포함되어 있던 일기쓰기는 가장 힘든 숙제중 하나였다. 여차하면 밀리기 일수였던 일기쓰기는 방학이 끝날 즈음 한달동안의 일과를 떠올리며 머리를 쥐어짜야했기에 힘든 숙제였다. 그런데 숙제도 아닌 꼭 해야할 일도 아닌 그런 일기를 30여년간 기록한 노인을 알게 되었다. 책의 제목에서 느껴지는 쓸쓸함과 고됨이 책속 그대로 묻어나 있었다. 부인을 먼저 떠나 보내고 복숭아 농사를 지으며 살다 간 이춘기 선생님 30년 생활의 기록! 그 안엔 선생님의 삶 자체가 그대로 기록되어 있었다. 몸의 이상을 느끼고 한참을 미룬 후에야 병원에 간 아내를 살리기 위한 그의 절실함. 어렵게 암이라는 걸 알았지만 어디에서도 약을 구할 수 없었으며, 제대로 먹지못해 눈에 띠게 말라가는 부인을 그저 지켜봐야만 하는 그의 안타까움이 느껴졌다. 아내의 병원비로 많은 재산을 사용 한 후 형편이 좋지 못해 아이들의 학비를 걱정하게되고, 당장 먹고 살 일을 막막해 하던 선생님의 얼굴이 언뜻 눈에 스치는 듯 했다. 어린 아이들을 두고 떠나는 어머니의 심정 또한 안스러웠겠지만 그렇게 남겨진 선생님 또한 삶이 무척 고되고 힘들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아이들을 생각해 재혼을 결정하지만 이마저도 편안한 삶은 아니었다. 서울에서 살다 온 어린 신부와 그녀의 딸은 불만투성이다. 결국은 이혼을 결정하게되고 다시 예전의 고단한 삶으로 돌아간다. 돈에 쪼들리고, 식량이 떨어지고, 농사일은 해야하니 사람도 부려야겠고.. 아이들 학자금에... 걱정투성이다. 삶이 참 힘들다. 글로 읽기만 하는데 몹시 답답하기만 하다. 평생을 써온 일기를 추려 한권의 책으로 담으려니 두껍지 않을 수가 없었겠지만 읽힘이 좋아 순식간에 책이 끝나버렸다. 당시의 시대상황과 우리나라의 과거의 모습들, 과거 사람들의 삶까지 엿볼수 있는게 많았다. 오늘 쓴 나의 일기가 미래엔 내 삶의 흔적이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나또한 일기를 써보는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의 삶이 참 힘들다 느낄때가 많았는데.. 선생님에 비한다면 너무 풍족하고 너무 여유로운 생활을 하고 있다는 걸 느꼈다. 매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겠다 다짐도 했다. 이책은 누구나 꼭 한번 읽어보라 권하고 싶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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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보다 더 극적이고 감동이 큰 이야기를 만났다, 누가 지어낸 이야기가 이렇게 가슴절절하고 마음을 울릴수 있을까, 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는 익산시 춘포면 용연리에 살면서 복숭아 농사를 지으며 한가정을 이루고 사시던 이춘기 할아버지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꼼꼼하게 써내려간 일기를 책으로 엮은 책이다. 초등학교때 학교 숙제로 마지 못해 썼던 일기를 생각하면 참 귀찮은 과제물로밖에는 여기지지 않는다, 그리고 내 일기가 머가 그렇게 중요할까 하는 생각에 대충 아무이야기나 썼던 기억이 난다, 이춘기 할아버지의 이야기는 1961년 부인이 중병을 앓아 몹시 위중한 상태로 서울 큰병원으로 방문하는 이야기부터 시작된다. 그 시절 병원시스템도 엉성하고 또 병원 한번찾아가기 힘든때에 모두드러하였듯이 몸이 아파도 병원갈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병을 키워 종국에는 손쓸수 없는 상태까지 이르게 된 부인은 그렇게 아픔을 겪으며 가족의 품에서 임종을 맞게 된다. 하루 하루 죽어가는 부인을 보면서 자신에게 고통을 호소하며 원망의 말을 쏟아내는 부인의 심리상태를 감내하며 하루하루 써내려간 일기에는 자책감과 슬픔이 녹아들어 있다. 부인을 그렇게 보내고 남겨진 가족과 다시금 생활에 쫒기에 삶의 터전으로 뿔뿔이 흩어진 장성한 자식과 아직 부모의 손길이 필요한 어린 아들들과의 넉넉지 못한 안주인이 없는 엄마가 없는 아이들의 뒷 바라지를 하며 쓸쓸하게 지내는 모습에서는 정말 짠한 마음이 든다, 이 일기는 그 시대를 이야기하는 사실의 기록으로 그 시절 우리나라의 실정이나 경제사항 물가사항등 여러 가지 전반적인 일상의 이야기를 사실적으로 묘사하고 있어서 흥미롭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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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숭아밭을 일구고 살아갔던 농부 이춘기씨의 30년 동안의 일생을 담아 낸 일기형식의 책이다. 시골생활 속으로 푹 빠져들게 했던 이 책은 어린 시절 나의 어머니 그리고 할머니 때 시절이 떠오르게 하는 그런 책이었다. 시골 생활이라는 것이 그리 넉넉지 않았을 터인데 이춘기 옹의 생활은 그다지 평탄하지가 않게 굴곡이 참으로 많았던 것을 알수가 있다. 사랑하는 아내를 병으로 먼저 떠나보내야 하는 남편의 마음이 그대로 일기 속에 담겨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하루도 빼놓지 않고 무려 30년 동안이나 자신의 일상을 빼놓지 않고 기록하여 마치 자서전처럼 만들어 놓았던 그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새해가 되면 일기를 쓰자고 마음먹고 계획을 세우기도 한다. 하지만 작심삼일이 되어 버리게 되기 마련이고 꾸준하게 단 일년도 이어나가기가 상당히 어렵다는 것을 이미 다 알고 있다. 잘 쓰다가도 자칫 하루 정도 빼먹게 되면 괜히 더 이상 하기가 싫어져서 포기하게 되고 만다. 그런데 이 책의 원본 저자인 이춘기 옹은 단 하루도 빼먹지 않고 자신의 이야기를 회고를 하듯이 그렇게 기록해 두었다. 책을 읽다보면 그의 일상을 따라가면 아내의 이야기도 두 아들에 대한 이야기도 줄줄이 다 읽게 되고 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알게 된다. 몹쓸병으로 아내가 병을 얻어 병원을 찾아다니게 되고 약을 구하게 되면서 가지고 있던 재산이 점점 줄어들게 되었고 그로인해 모진 생활을 해야만 했다. 또 어린 두 아들을 챙겨야 하겠기에 주변에서 주선하는 재처자리를 마다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재혼을 하게 되었고 새로 얻은 아내와 그녀가 데리고 온 딸아이까지 함께 생활하게도 되었었다. 시골 농부의 일상이란 것이 그리 편하지 않을터였다. 그런 생활에 도시에서 살다 온 두 번째 부인이 불만이 없을 리가 없었겠지요 여러 가지로 사건이 있었고 그로인해서 결국 그녀도 떠나게 되었지요 또 다시 혼자가 된 이춘기 옹은 두 아들만 바라보고 열심히 복숭아 농사를 지었답니다. 농사꾼으로서 어려움도 많았고 힘든 점도 많았지만 그의 꿋꿋한 농부생활은 계속 이어져서 아들들에게 최선을 다하고자 노력했지요 이렇게 한 농부의 이야기가 마치 한편의 영화처럼 쭈욱 이어지는 것이 이 책의 스토리입니다. 어쩌면 우리 아버지 때 이야기 같기도 하고요 또 어쩌면 우리 할아버지 때 이야기 같기도 한 이 책의 내용을 읽다보니 예전의 우리 부모님들 세대가 생각이 납니다. 어렵고 힘든 생활 속에서도 가족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큰 힘이 되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지금 내 곁에 있는 우리 가족들과 좀 더 사랑하고 아끼고 위해주면서 그렇게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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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년1월1일 ~ 1990년11월11일 까지의 일기를 담았다. 거의 30년 가까이의 일기들이다. 여기에 담긴 내용들은 그렇게 30년이지만 일기의 주인공인 이춘기님은 1906년11월30일 생으로 일제 시대와 해방기를 경험한 역사의 큰 일들을 직접 겪었고 보고 들은 분이다. 1991년6월8일에 돌아가셨으니 거의 돌아가시기 반년전까지 일기를 쓰신 셈이다... 참 대단하다. 그래서 그의 일기 속에는 시대의 이야기, 당시 사회 분위기, 사람들의 삶의 모습들이 잘 드러나있다. 그저 역사의 이야기로 가끔 듣게 되고 교과서나 역사소설, 역사를 담은 이야속에서 보지 못했던 생생한 사람들의 생각과 반응을 만날수 있다는 점에서도 가치가 있다고 한다. 그래서 역사속의 위인이나 어떤 큰 일을 해 낸 인물이 아닌 일반인의 일기를 이렇게 책으로 내놓게 된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책은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선호해서 고르게 되는 책이 아닐수도 있다. 아.마.도... 출판사 입장에서도 기왕이면 하고 바라는 수익이 일어날, 선호하는 책이 되기를 기대하기 보다 30년의 일기가 가지는 가치와 사람들이 이 이야기를 통해 알았으면 하는 역사속 일반인의 거의 거르지 않고 꾸준히 써내려간 일기속 이야기들을 남기고 읽게 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것 같다. 무엇보다 30년간 한결같이 일기를 써 왔다는 것이 참 대단하다. 원본 일기장의 부분을 책속에 담아놓아 읽기 쉽게 잘 정리해 놓은 페이지속의 이야기들이 더 생생하게 느낌있게 다가온다. 아마도 이춘기님은 그 이전에도 일기를 쓰지 않으셨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거의 50대 중반에 일기를 쓰기 시작해 꾸준히 기록처럼 적어놓기가 쉽지 않다. 그 이전의 기록은 따로 없다고 해도 꾸준히 글을 쓰던 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의 글체나 정리해 놓은 내용의 간결함과 요점을 담아낸 감성들이 그런 느낌을 준다. 하루의 이야기를 생각을 담아서 그렇게 길게 주저리주저리 담아내지 않았다. 아내가 아프기 시작해서 병원에 가서 확실하게 진단을 받기도 전에 세간을 정리하고 빚 정리를 하고... 참 진실한 성향을 가진 부부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일기속 가족들과 만남을 시작한다. 다 큰 자녀들도 있지만 터울이 있는 어린 두 아들에 대한 걱정과 병을 대하는 마음과 생각들이 우리의 옛 부모들의 모습을 그대로 떠올리게 한다. 먼저 부인을 떠나보내고 자녀들을 바르게 키워가는 아버지의 노력과 신앙생활, 농사일, 사람들과의 관계 등 자신을 끊임없이 돌아보고 다독이고 힘들 시간을 견뎌내는 이야기들이 과하지 않은 감성으로 담백하게 담아놓았다. 그저 시골에서 복숭아밭 일구며 살아간 촌 농부의 하루 하루를 담은 이야기라고 하기에는 사회과 가정, 주변을 보는 넓은 시각과 관심을 담아낸 지식인의 느낌을 준다. 역시나 뒤에 약력과 가족에 대해 정리해 놓은 걸 보니 배움도 있고 여러 활동도 하신 분이었다. 6형제를 어머니 없이도 반듯하게 잘 키워냈고 모두 자신이 속한 곳에서 인정받는 인재들이 되었다. 어머니 없이 아버지가 아이들을 키우면서 생활을 해 나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새 어머니가 들어와 가족들과 함께 잘 조화되기 위해 서로간에 얼마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지 등 개인적인 여러 이야기부터 세상의 여러 이슈들과 사안들에 대한 생각 등등 그냥 누군가의 일생의 이야기구나 하기보다 우리 인생에 대한 이야기구나 하는 같은 생각, 고민, 감정을 공유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무엇보다 가족들은 자신들의 아버지, 할아버지가 살았던 시간들과 그 시간들 속에서 자신들이 성장한 역사를 오래도록 같이 할 수 있게 이렇게 책으로 출간되었다는 것이 가슴 먹먹하고 의미있을것 같다. 나도 몇년전 아버지께서 정리해주신 이야기들을 타이핑해서 제본으로 엮어드렸는데... 누구나 자신의 오랜 이야기들을 남겨놓고 싶은 열망이 있는것 같다. 그 이야기를 정리하면서 내 아버지의 생각, 인생을 생각해 볼 수 있었는데... 이 책을 정리한 저자도 일기의 주인공이 적어놓은 일기장을 하나씩 정리해 가면서 그분의 인생에서 우리 조상들, 어른들, 그리고 자신을 들여다보고 많은 생각을 했을것 같다. 누군가의 일기가 아닌 내 어머니, 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이웃 어르신의 이야기와 만난 느낌이다. 올해 시작하면서 결심했던 것이 매일 성경 읽기, 성경필사였는데... 이리저리 미루다 한달이 가버렸다. 이 책을 읽으며 늦었다 포기말고 이제라도 다시 하루하루 꾸준하게 시작해보자 하는 결심을 품는다. 어릴적 적어놓은 일기가 아직 있다. 중간에 몇십년이 이미 지나갔지만 지금이라도 단 몇줄이라도 내 삶의 내 하루하루의 소소한 이야기들도 담아놓아야겠다. 이춘기님이 돌아가시기 얼마전 쓰셨던 일기에서 자신의 오랜 일기들을 펼쳐보고 든 생각을 또 일기속에 담아내었듯이 돌이켜 봤을때 내 삶의 모습에 대해 또 나는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그것이 지금부터 얼마나 후의 일일지 모르지만 내 삶을 단 한줄이라도 기록해 놓는 것은 참 의미있을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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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그리움일까 시린 겨울이면 아버지를 떠올린다. 어느 겨울 새벽 유난히 별이 밝았던 날 먼 여행을 떠나신 그 겨울이다. 가난한 농촌 집안의 장남으로 때어나 땅을 일구며 일가를 이루시기까지 말로 다하지 못할 일상을 한국 현대사와도 그 맥을 같이 한다. 아버지 세대들이 고스란히 겪었을 그 모든 것과 무관하지 않다. 같은 시대를 살아온 다른 한 사람을 만났다. 전리북도 지금의 익산 지역에서 복숭아 농사를 지으며 살다 간 이춘기(1906~1991) 옹이 그분이다. 이 책 ‘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 는 이춘기옹의 일기다. 1961년부터 1990년까지 30년 세월이 하루도 빠짐없이 담겨있다. 농촌지역에서 과수농사를 지으며 어려운 경제활동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그래왔듯 자식 교육에 매진하여 아버지와는 다른 삶을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곳곳에 담겼다. 아내를 먼저 보내고 겪게 되는 일상의 어려움과 주변 사람들의 강압에 못 이겨 재혼하고 다시 파혼하는 과정을 비롯하여 한 농촌 가정이 겪을 수 있는 대부분의 일이 기록되어 있다. 이제는 옛날 이야기가 되어버린 일꾼이나 품앗이를 비롯한 농촌지역의 공동체문화를 비롯하여 전라북도 익산 지역의 생활문화가 담겨 있다. 뿐만 아니라 전쟁을 비롯한 굵직했던 현대사의 한 흐름 속에서 한 개인이나 농촌 지역사회가 공통으로 감당해야할 이야기들이 담겨 있어 한 시대를 아우르는 생활문화 전반에 대한 귀중한 정보를 제공해 주기도 한다. 한 개인의 이와 같은 기록이 갖는 가치는 무엇보다 크다. 앞선 시대인 조선의 선비들의 개인적 기록이 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시대정신을 반영한 삶의 지혜를 전해주듯 ‘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로 정리된 이 일상의 기록 역시 그와 같은 가치를 가진다고 할 수 있다. 시대상을 반영하고 한 시대의 생활방식의 구체적인 이야기가 담겨 있기에 민속을 증거 할 자료로도 가치를 부여받을 수 있어 그 가치는 더 높아진다고 본다. 한 개인의 지극히 사소한 기록이 가지는 가치를 재발견 하는 시간이다. 1938년 생이셨던 내 아버지보다 한 세대 앞선 사람이 몸으로 그려온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담긴 일기다. 나와는 다른 세대의 이야기지만 할아버지와 아버지로 이어지던 기억 속 농촌의 모습과 다르지 않으며, 내 기억 속 아버지의 삶과도 다르지 않다. 다른 이의 기록에서 아버지를 떠올리는 것은 같은 시대를 살았던 공감대의 발로이리라. 한국 땅에서 태어나 머나먼 타국에서 삶을 마감한 일상을 따라가는 것이 앞선 세대에 대한 채무의식을 가진 사람에게 감당하기에 버거운 무게로 다가온다. 이춘기 옹의 삶에 비추어 보며 자꾸 반복해서 먼 하늘을 바라보는 것, 어쩌면 그리움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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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련꽃 필 무렵 당신을 보내고’는 고 이춘기님이 쓴 30년 일기를 담은 책이다. 원래 일기는 그 분량도 많고 한자와 방언이 섞여 있어 읽기 힘들게 되어있다. 그래서 이 책은 그것들을 바꾸고, 일기마다 제목을 다는 등 일부 편집하게 읽기 편하게 한 것이다. 내용에서는 부인 발병으로 투병하다 작고하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그 후를 담은 1961년, 1962년을 고스란히 담았고 나머지는 주제별로 일부만 발췌하여 실었다. 그렇게 했는데도 400여 쪽이나 되는 두꺼운 분량이다. 일기는 부인의 암 발병을 눈치챈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일기이니 개인의 생각이나 느낌이 솔직하고 풍부하게 담길 법도 하건만, 심각한 상황에서도 담백하게 사실 위주로 써 내려갔다. 그래서 조금은 ‘일기’라기 보다는, 마치 어떤 ‘기록’을 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아내의 발병을 눈치챈 1961년 1월 1일부터 갑작스럽게 일기가 시작되는 것도 조금은 그런 느낌이다. 그렇다고 그가 감정이 없거나, 무디거나 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그저 그것이 겉으로 내보일 수 있는, 그의 서툰 표현 방법인 거다. 그가 얼마나 슬퍼하고 괴로워하고, 또 외로워하는지는 보다 보면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어쩌면 그게 유교 문화에서 자란 ‘사내’이며 ‘가장’인 그의 절제이자 한계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것마저 담담하게밖에 적어내지 못한 것을 보면 조금 짠해지기도 한다. 그의 일기에는 자신의 이야기뿐 아니라 세시풍속이나 당시 시대상 등을 보여주는 학술적인 의미도 있다는데, 나는 그보다 그의 가족사가 더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그냥 어떤 드라마 같다기보다, 마치 한 인생을 보는 것 같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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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기 힘든 습관, 강박에 가까운 일상의 습관을 '벽'이라 한다. 내가 보기에 살아오면서 몇 십년간 매일 일기를 적는 것도 굉장한 벽이다. 물론 일기 쓰기는 보통 생산적인 벽에 해당하지만, 초등학교 때의 일기 숙제를 떠올려보면 감당하기 쉬운 일이 결코 아니란 사실도 알게 된다. 숙제가 아닌 이상, 일기 쓰기의 작심도 계기가 필요한 법이다. 전북 익산군의 복숭아 농사꾼 이춘기 옹(1906~1991)은 1961년부터 1990년까지 무려 30년 동안 하루도 빠짐없이 일기를 적었는데, 그 계기가 바로 아내의 암 투병이다. 자신이 죽기 직전까지 일기의 벽은 계속되는데, 그 방대한 일기 기록을 서경대 문화콘텐츠학부 이복규 교수가 깔끔하게 책으로 정리했다. 책 제목처럼 하얀 목련꽃이 필 무렵 아내가 세상을 떠났기에, 아내의 기일이 되면 옹은 목련을 무덤 앞에 꼭 헌화하고, 자신이 가지 못하면 자식을 시켰다.
옹이 사용한 일기장은 매년 일기용으로 만들어 시중에서 판매하는 다이어리였다. 일기 글씨는 국한문 혼용으로 만년필과 볼펜으로 기록했고, 직접 그린 삽화가 적지 않다. 부인의 암투병과 사망(61년 4월), 남겨진 늦둥이 어린 두 아들(당시 초등학교 5, 6학년생)을 건사하는 어려움, 재혼의 실패, 말년에 상경해 자취하며 지내다 아들들의 초청으로 도미, 기독교 신앙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일기 벽을 가진 사람답게 옹의 꼼꼼한 성격을 확실하게 엿볼 수 있는 대목은 많지만 특히 가계부 역할을 하는 재정출납상황에 대한 메모가 특색이다. 나름 당시의 물가를 비교해 볼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있다. "사람마다 얼굴이 다르듯 인생의 내용도 각각인데, 이분 일기에도 독특한 사연들이 담겨 있습니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부인의 발병과 죽음, 여러 달에 걸쳐 구완하느라 기울어 버린 시골 살림, 혼자 복숭아 농사를 지으며 어린 두 아들에게 밥해 먹이고 학교 보내는 것의 어려움, 노년에 아들의 초청을 받아 미국으로 떠나 살기……, 이것이 주요 내용입니다."(6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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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북 익산군 춘포면에서 복숭아 농사를 지으며 살다가 부인 김정순 님이 불치병 판정을 받은 날부터 자신이 죽기 직전까지, 하루도 거르지 않고 30년간 적은 이춘기 옹의 일기를 보고 서경대 문화콘텐츠학부 이복규 교수는 문화 콘텐츠적인 의의가 가득하다고 생각해 책으로 엮었다고 한다. 30년을 꼬박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록했다니 정말 한 사람의 인생뿐만 아니라 그 시대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특별한 기록인 것 같았다. 하루하루를 금쪽 같이 살다 가신 분의 30년을, 1961년부터 1990년까지 시대 여행을 하는 느낌은 참 대단했다. 일생의례와 세시풍속, 사전에 나오지 않는 익산 지역의 속담, 방언부터 시시콜콜한 물건 값 따위는 정말 기록왕 자체였다. 1962년도에 조합 공판장에 출하된 제일 상품의 복숭아가 관당 30원에 낙찰되었단다.^^ 1961년 1월 1일부터 아드님들을 따라 미국에 이민 가 살기 시작한 1990년 11월 11일까지, 거의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록했는데 빠진 날이 있으면 나중에라도 채워 넣어서 자신의 삶을 역사로 남기려던 할아버지의 집념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기를 공개하기란 쉬운 결정이 아니었을텐데...사별 후의 그리움, 자녀 양육의 부담감, 사별 후 혼자 어린 두 아들을 돌보다 힘이 들어 재혼했다 실패한 사연 등 세상에 드러내고 싶지 않은 허물들이 있을텐데 공개하기로 한 유족들의 용기도 대단한 것 같다. 이춘기 옹의 일기장이 30권이나 되었으니 그 귀한 기록을 외면할 수 없었으리라. 그래도 그 가치를 알아보고 이렇게 편집되어 세상에 알려졌으니 정말 다행이었다.
일기를 안 쓴지 좀 됐는데 일기를 쓰고 싶게 만드는 책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