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정희 작가 작품들은 신묘한 힘이 있다. 그 힘은 문장 속에 있다. 오정희의 문장은 세상을 세밀하게 묘사하고 인간의 내면을 이미지로 구현한다. 전쟁 후 피폐해진 인간의 심리와 육체적으로 고통을 받는 여성의 삶이 모든 소설에 녹아들어있다. 이 소설은 모성이 부재한 집안에서 살아가는 남매의 삶을 보여준다. 정상적이지 않은 집안에서 그들은 폭력을 겪는다. 죽음과 허무의 이미지로 그려지는 세상에서 그들이 어떻게 내적 성장을 하는지에 주목해서 읽게 된다. 이 작품 외에도 다른 작품집을 읽고 연계하는 것이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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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선생님의 책을 읽고, 권여선 작가의 소설을 읽다가 결국 여기까지 왔다. 한국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피해 갈 수 없는 이름, 오정희. 단편 미학의 대가라고 들었는데, 이 책은 작가의 유일한 장편소설이라고 해서 더 궁금했다. 책 두께는 얇다. 마음만 먹으면 한두 시간이면 다 읽을 분량이다. 하지만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자꾸만 느려졌다. 읽을수록 슬픔이 너무 깊어서 한번씩 멈추고 숨을 골라야 했기 때문이다. 소설은 열두 살 소녀 '우미'의 시선으로 진행된다. 집 나간 엄마를 기다리며 폭력적인 아빠, 그리고 어린 남동생과 살아가는 이야기다. 어른들의 세상은 비정하고 끔찍한데, 그걸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이 너무 담담하고 투명해서 더 마음이 아팠다. 차라리 울고불고 소리쳤으면 덜 슬펐을 텐데, 아이들은 그저 견디고 관찰한다. 제목이 왜 '새'인지 다 읽고 나면 알게 된다. 갇혀 있는 현실에서 벗어나 날아오르고 싶었던 아이들의 꿈이, 결국 현실의 벽에 부딪혀 추락하는 과정이 너무 처연하게 그려져 있다. 작가의 문장은 화려한 수식어 없이도 아름다운데, 그 아름다움이 잔인하게 느껴질정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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훌쩍 떠나는 새처럼 사라져도 아무도 관심 갖지 않는 아이들, 우미와 우일이의 이야기는 이웃들의 폭력적인 자화상을 폭로한다. 부모가 없다는 것, 가족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못 배운다의 의미가 아니다. 사회 안전망의 부재를 의미한다. 아주 최소한의 폭력으로부터 나를 지켜주는 울타리가 없다는 뜻이다. 아무런 울타리 없이 버림받는 것에 익숙해져 둔갑한 폭력을 관심으로 아는 아이들의 비극은 단지 문학적 상상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우미와 우일이에게 필요한 것은 선의나 호기심이 아니라, 가족이 없다는 이유로 당연하게 폭력에 노출된다는 명제의 삭제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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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희 작가님의 <새>라는 작품은 가정폭력이라는 이름의 학대로 고통받는 아이들의 이야기와 그들의 시선으로 보는 당대 여러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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