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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역사, 이미지 대체의 역사
"인류의 역사, 이미지 대체의 역사" 내용보기
오늘날에야 현실을 모사한, 아니 현실보다도 더욱 생생한 사진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직접 경험치 아니한 세상을 온몸으로 끌어안을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경우에는 누군가가 창조해낸 이미지를 통해 ‘그럴 것이다’라며 막연히 추측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니, 막연하다는 말엔 어패가 있다. 과거의 이미지는 현재의 입장에서는 막연할지도 모르지만 당대엔 어마어마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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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야 현실을 모사한, 아니 현실보다도 더욱 생생한 사진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직접 경험치 아니한 세상을 온몸으로 끌어안을 수 있다. 하지만 과거의 경우에는 누군가가 창조해낸 이미지를 통해 ‘그럴 것이다’라며 막연히 추측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아니, 막연하다는 말엔 어패가 있다. 과거의 이미지는 현재의 입장에서는 막연할지도 모르지만 당대엔 어마어마한 파급효과를 지녔다. 사람들은 이미지가 통제하는 세상에 살았고 이미지가 본인들이 만들어낸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주객전도를 경험했다. 이미지는 법이요, 진리였다. 그 이상을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했을 뿐만 아니라 금지되어 있기도 했다. 애써 금단의 선을 뛰어넘으려 들지 않았던 까닭은 금지된 것을 추구함으로 인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어마어마했던 탓이 크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오늘날 이미지의 힘은 그렇게까진 과도하지 아니한 듯하다. 사람들은 이미지를 하나의 예술로서 받아들인다. 또는 인간이 만들어낸 부차적인 산물이라 평하고는 한다. 이미지에 의한 제약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는 듯하다. 어느 정도 영향이야 받겠지만 적어도 과거처럼 이미지가 전부라는 식의 사고는 통용되지 않고 있다.

이 책은 모호하다. 우선 정체성의 문제에 봉착한다. 이미지의 역사를 다룬, 간단히 말해 이 책은 역사책이다. 역사를 배제한다면 이 책의 성립 자체가 불가능하다. 그만큼 인류가 이미지에 의존적인 삶을 살아왔다는 것이리라. 그런데 역사라 부를 만한 객관적인 팩트(fact)의 문제 앞에서 우리는 망설이게 된다.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이미지는 이 책에서 다루어지는 주된 바가 아니다. 이 책에서 주를 이루는 것은 그런 이미지를 받아들이는 사람에 있다. 오늘날에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여지는 과거의 명작들이 그 당시에는 인간의 벗은 몸을 다루었다는 점에서 외설적인 것으로 여겨졌다. 이미지에는 어떠한 변형도 가해지지 않았으나 이 경우 달라진 것은 시대에 따른 인류의 시선이다. 즉, 보편적인 시각에서 말하는 역사와는 또 다른 역사가 이 책에서는 구가된다. 객관적인 역사가 아닌 주관적인 역사. 이를 역사라 말해도 좋을 것인가의 문제와 함께 당대를 살아보지 아니한 입장에서 서술된 사람들의 주관성이 과연 객관적인가(?)의 문제를 동시에 고민해야만 한다. 이와 같은 주관성의 이면에는 의외다 싶은 정도의 객관성이 또 깔려 있다. 바로 이미지를 가능케 한 기술의 문제가 그것이다. 책의 후반으로 갈수록 우리는 첨단에 가까운 기술과 접목되어 탄생한 이미지들을 만나보게 된다. 인간이 제 능력만을 오롯이 발휘해 만들어낸 것이 과거의 이미지였다면 현재 탄생하고 있는 이미지에서 인간의 힘이 차지하는 비율은 과거만 못한 것 같다. 물론 컴퓨터나 디지털 카메라 등의 매체는 인간이 만든 것이다. 하지만 셔터를 누르고 키보드나 마우스 따위를 두드려 생성한 것들이 인간이 만든 건지 기기가 만든 건지의 문제는 상당히 모호하다. 그래서 이전 시대를 살다간 많은 예술가들은 새로운 기기가 발명될 때마다 예술은 이제 죽었다며 한탄을 드러냈던 게 아니겠는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미지를 제한 인간의 삶은 여전히 상상조차 어렵다. 과거처럼 이미지에 종속된 삶을 살고 있지는 않다고는 하나 어찌 보면 오히려 우리는 이미지에 의존적이 되어버렸다. 전쟁이나 기타 종류의 실행을 앞두고 인류가 시도하는 많은 시뮬레이션의 주는 바로 이미지이다. 실재가 아님에도 우리는 실제로 이미지가 실재하는 것처럼 가상의 적을 향한 포격을 시도한다. 이미 발생한 사건들을 다룸에 있어서도 이미지는 가공할 만한 위력을 보여준다. 벌써 10년도 더 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린 9.11 테러의 경우 이미지가 존재치 않았더라면 그 파급효과가 절반 이상은 줄어들었을 것이다. 세계 유수의 매체가 사건을 보도함에 있어 사용한 것은 바로 이미지. 사람들이 사로잡힌 것은 비행기가 건물을 들이받는 그 이미지였다. 단지 언론에만 이는 국한되는 이야기가 아니다. 장 보드리야르와 같은 학자가 주시한 ‘시뮬라시옹’도 알고 보면 실재를 지배하는 이미지가 아니겠는가?

부제에서도 알아챌 수 있듯 이 책에 깃든 것은 서구적 시선이다. 기독교적인 시선도 다분히 내재되어 있다. 역자는 비기독교의 세계에 속한 이들은 부처나 미륵불, 단군이나 신주 대감 대신 ‘한류우드’ 같은 것을 택하고 있진 않을까 라며 속내를 드러낸다. 그런데 부처나 미륵불, 단군이나 신주 대감이 실재가 아닌 것처럼 한류우드도 실재는 아닌 듯하다. 이미지와 또 다른 이미지 간의 갈등, 실재가 아닌 것 사이에서의 고민의 결과는 무엇이 될지 자못 궁금하다. 이 시대가 흘러가면 그 답을 우린 알 수 있을까? 왠지 어느 쪽이 우세다라는 결론에 도달할 무렵에 또 다른 이미지가 출현해 기존의 결과에 변형을 가져다 줄 것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결국 인류의 역사는 하나의 이미지가 또 다른 이미지에 의해 대체되고 변형되는 과정이 연속이었던 것 같다. 껍데기가 또 다른 껍데기의 자리를 갈음하는...


이달의 사락 q*****2 2012.03.04.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