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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터 카멘친트』는 헤세의 데뷔작이다. 나는 그래서 이 작품이 정돈되기 보다는 거칠은 어떤 것을 갖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그런 것을 아무것도 찾아낼 수 없었다. 작품은 깨끗했다. 데뷔작에서부터 우리가 흔히 '헤세적'이라고 말하는 것들이 잘 드러나고 있었다. 가령 자연 친화, 기독교적 신의 거부, 민중적 삶에 대한 애착 등이 여기서 페터 카멘친트라는 인물을 통해 제대로 드러나고 있었다. 아마 이것들은 이미 그의 유년기에 형성된 것이기가 쉽다. 인도 선교사였던 그의 아버지와 동양학자였던 외할아버지의 영향이 크지 않았을까 상상해 볼 수 있겠다. 카멘친트는 '촌뜨기'다. 그는 도회지에서 사교생활을 해보지만 결국 그는 촌뜨기로서 시골로 돌아간다. 줄거리만 가지고는 『수레바퀴 아래서』와 비슷한 면이 있는, 소박한 소설인듯 싶지만 실제로는 교양소설이나 예술가소설의 범주에 넣을 수도 있을 정도로 카멘친트의 생각의 궤적들이 잘 형상화되어 있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으면서 나는 내가 헤세와 화해할 수 없는 근본적인 차이, 곧 '시골주의'를 발견해냈다. 『수레바퀴 아래서』나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에서 보여준 그런 생각들이 여기서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었다.
이 소설은 그의 가장 도시적인 소설이라 할 수 있는 『황야의 이리』와는 대척점에 있었다. 가령 그가 "산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은 오랫동안 철학과 자연 과학을 공부해서 옛날의 신을 다시 버렸을지라도, 푄을 다시 한 번 느끼거나 눈사태가 나무를 부러뜨리는 소시를 듣게 되면, 그는 가슴이 철렁 떨리고 다시 신과 죽음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법이다." (19쪽) 라고 말할 때, 나는 이를 인정하고 수긍하면서도 '그렇다면 소설은 도회지 삶에 대한 도피처 정도로 되고 말 수도 있다, 소설은 오히려 사람들의 삶을 더 드러내야 한다'고 아직은 어설픈 반대입장을 내놓게 되는 것이다. 기독교적 신에 대한 그의 입장은 변한 적이 없는데, 내 입장은 자꾸 변했다. 처음에는 그토록 적대시한 그의 신관神觀을 나는 이제 조금씩 받아들이고 있다. 언젠가 헤세는 중고생용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지만, 나는 거기에 전혀 동의하지 않는다.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노벨상을 수상했다는 사실은 차치하고서라도 소설에 담긴 그의 사상들은 현재까지도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하는 점은 다른 무엇으로도 가릴 수 없는, 그의 깊은 사상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인상깊은구절] …어머니는 평소의 방식대로 조용하면서도 진지하고 용감하게 죽음을 맞이하였고, 내게 좋은 모범을 주여주었다. 방은 조용했고, 서서히 밝아오는 아침 노을의 붉은 빛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마을과 집들은 아직도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이런저런 상념에 젖어 죽어가는 사람의 영혼과 함께 하면서 집과 마을, 호수와 눈 덮인 산봉우리 위를 지나, 맑은 새벽 하늘의 서늘한 자유 속으로 날아 들어가는 여유로움을 누리고 있었다. 고통 또한 거의 느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놀라움과 경외심에 사로잡힌 채, 하나의 거대한 수수께끼가 어떻게 풀리는지, 삶의 둥근 고리가 잔잔한 떨림 속에서 어떻게 닫히는지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불평 없이 용감하게 삶과 이별하는 어머니는 너무나 숭고해서 어머니의 장엄한 영광으로부터 한 줄기 서늘하고 맑은 빛이 내 영혼 안으로도 비쳐드는 것 같았다. 아버지가 곁에서 잠자고 있다는 것, 신부님이 없다는 것, 고향으로 돌아가는 영혼을 복되게 동행해 주는 성사도 없다는 것을 나는 의식하지 못했다. 나는 밝아오는 방을 통해 쏟아져 들어오는 영원의 입김이 나의 존재와 함께 뒤섞이고 있음을 감지했을 뿐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