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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逍遙)의 멋, 대이화지(大而化之)하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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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逍遙)의 멋, 대이화지(大而化之)하는 삶   마음수련이 아직도 부족한 것일까. 한해 두해 나이를 먹어갈수록 마음 씀씀이가 더 커지고 의연해져야 할텐데 요즘 들어 화를 내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몸과 마음에 피로가 쌓인 것이 주요한 이유라 생각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마음에 여유가 없는 탓이다. 책을 읽고 쓰는 일도 조금은 귀찮아졌다. 점점 코너에 몰리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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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逍遙)의 멋, 대이화지(大而化之)하는 삶

 

마음수련이 아직도 부족한 것일까. 한해 두해 나이를 먹어갈수록 마음 씀씀이가 더 커지고 의연해져야 할텐데 요즘 들어 화를 내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몸과 마음에 피로가 쌓인 것이 주요한 이유라 생각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마음에 여유가 없는 탓이다. 책을 읽고 쓰는 일도 조금은 귀찮아졌다. 점점 코너에 몰리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장자’를 읽고 싶었다. 올 초 읽다만 원전을 제쳐두고 중국의 왕멍이 재해석한 <나는 장자다>(들녘, 2011)를 읽게 되었다.

 

장자의 세계는 그 내면으로 들어갈수록 복잡다단하다. 들어보면 별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말장난 하는 것 같기도 하며, 무슨 말인지 도통 종잡을 수 없기도 하다. 그래서 그 철학의 세계를 간파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한 이유로 올해 초 장자 원전에 도전했을 때에는 그만 끝까지 갈 수 없었다. 아쉬웠다. 소요의 멋만 조금 맛보고 말았다니…. 왕멍의 이 책은 그래서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원문에 대한 풀이가 아닌 저자만의 장자읽기라 장자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저자는 아예 서문에서부터 대놓고 밝힌다. 나는 장자와 놀겠노라고 말이다. 소를 탄 노자에게로 달려가고, 나비가 된 장자에게로 펄럭이며 날아가듯 장자를 따라다녔다.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닌 것이 아니라 잠시 다른 사람에게 한눈도 팔고, 감히 장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단순한 원전 풀이가 아니라 장자 제대로 읽기다. 원전에서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 뜻을 밝히고, 제가백자 시대 사상가들의 철학과 비교하거나 근현대 작가들의 사상과 대비시킨다. 이유는 단 하나, 장자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읽고 나니 소요(逍遙)의 멋이 큰 의미가 다가왔다. 장자 사상의 모든 출발은 바로 소요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족스러울 만큼 여유롭고 즐거운 삶이 어디 쉽게 찾아오는가. 소요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생각도 더 풍부하게 할 수 있고, 삶에서 끊임없이 실천하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그래야 대이화지(大而化之)할 수 있다. 대이화지는 문제를 넓게 바라보고 사소한 일에 연연해 다투거나 고민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소요하는 마음이 없다면 절대 그럴 여유도 없다. 이러한 마음가짐들이 모여 결국 장자가 말하는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왕멍의 글을 통해서나마 장자를 조금 알 수 있게 되었다. 장자 원전을 다시 읽는다면 그때보다는 보다 가까이 장자의 세계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

l*******g 2011.11.21.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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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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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중국의 큰 사상적 흐름을 이끄는 사상가들이 많이 있다. 물론 그들은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물질보다는 정신, 현재보다는 미래를 꿈꾸며, 자신들의 세계에서 신선들이 사는 세계를 살았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장자! 세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힘이 있고, 세상의 제왕들의 끝없는 요청을 귓등으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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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중국의 큰 사상적 흐름을 이끄는 사상가들이 많이 있다. 물론 그들은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물질보다는 정신, 현재보다는 미래를 꿈꾸며, 자신들의 세계에서 신선들이 사는 세계를 살았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장자!

세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힘이 있고, 세상의 제왕들의 끝없는 요청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던 어쩜 신선같았던 사람!

그렇다고 그게 속세와 절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후학들을 기르는데 열심이었고, 권력을 가을바람에 날라다니는 낙엽처럼 봤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큰 뜻이 이 세상에서 이뤄질 수 없음을 잘 알고, 사상가들이 몰락하고 있는 현실들을 직시하면서 어쩜 사상으로의 도피를 꾀했는지도 모른다.

속세라고 지칭되어지는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이 만든 이상세계에서 꿈을 펼치고 싶었던 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사상가들의 몰락이 그에게 현실에서 벗어나게 만든지도 모른다.

어릴 적 장자를 넘 재미나게 읽어서일까? 나이가 들어서 더 많이 조금 더 다르게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접한 책이었다.

근데 왕멍이 함께 한 < 나는 장자다 >를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왕멍의 생각들이 있어서 장자를 읽는데 여러가지 생각들을 더 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도 있다.

 

약간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간혹 원문만 있고 해석이 없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나같은 무식한 사람에겐 그 부분이 안타깝고 그저 넘어가야만 해서 속이 상하기도 했다.

 

사상과 문화를 그 시대를 반영한다.

한때 공자의 전성기에 유학이 발달하고 노자, 장자, 묵가 사상이 중국을 감쌀 때 우리는 그들을 대국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사상은 몇 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사상은 시간을 따라서 지금의 중국을 무서운 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공부하는 사람은, 백성은 망하지 않는다.

장자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오히려 그것을 즐겼다.

초월적인 것들을 생각해 내고 그것들에 위로를 받으면서 세속을 무시하기도 했다.

물질문명이 너무나 강한, 보이는 것만이 대세가 되어버린 지금에 무척이나 시사해 주는 바가 큰 책이었다.

 



 

r********k 2011.10.29. 신고 공감 1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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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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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하기'란 고도의 창의성과 기이한 상상력, 독특한 생각, 그리고 아무것에도 구속당하지 않는 자유로움이자 자극적인 요소다. 또한 이것은 소설가로서의 장자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본문 448페이지 중에서)    무엇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죽고 사는 것이 큰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변화하지 않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엎어진다 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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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낯설게 하기'란 고도의 창의성과 기이한 상상력, 독특한 생각, 그리고 아무것에도 구속당하지 않는 자유로움이자 자극적인 요소다. 또한 이것은 소설가로서의 장자가 지닌 가장 큰 특징이기도 하다. (본문 448페이지 중에서) 

 

무엇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죽고 사는 것이 큰 일이기는 하지만 그것 때문에 변화하지 않고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엎어진다 해도 자기 주관을 버리지 않으며, 만물이 자연적으로 변화하는 이치를 훤히 알고 있기 때문에 변화에 따라 흔들리지 않고, 만물의 변화 속에서도 영원히 중심을 지키는 '경지에 다다를 수 있는지 탐구해야 한다. (331쪽)

 

요즘들어 인문학 강의를 들으면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또 듣게 되는것이 노자, 장자 등의 저서들이다. 이 책 [나는 장자다]는 장자 [내편] 에 대한 내용과 [외편]의 일부를 담아내고 있다. 장자만을 그냥 읽게 되면 이해하지 못하고 어려울수 밖에 없는 부분들을 이 책의 저자는 좀 더 쉽게 일반인들이 접근할수 있도록 풀어내고 있다.

 

요즘 [나는 꼼수다] 에 꽃혀있는 와중이라 이 책을 읽으면서도 참 당당하고 보기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 도올 김용옥이 꼼수다에 나와서 중용에 대한 강의 관련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김어준 총수가 이 책도 다 읽어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시대를 거슬려 폭 넓게 사고할수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통한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사람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어느 시대에나 힘겨운 시련은 있게 마련이고 그 시련가운데에서 지혜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더구나 이 책은 작가가 원문 해석과 함께 일흔 몇 해쯤 되는 자신의 인생경험과 그간의 학문연구, 글쓰기, 공직 생활을 하면서 얻은 정보, 생각들을 담아내고 있으니 더욱 의미깊은 시간을 갖게 해준다.

 

장자는 중국 역사에서 둘도 없는 기재이고, [장자] 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기서라고 한다. 철학서이며 산문이고 신화, 우화이면서 논문이라고 한다. 책을 읽는내내 아! 정말 시원하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그때나 지금이나 사는게 고달픈건 똑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끔은 누가 내 인생에 대해 이렇게 이렇게 사는 거야. 라고 조언을 해주고 지혜로운 사람이 이끌어주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할때가 있다.

 

당장 결정해야 할일이 있는데 어떤게 옳은 길인지 종잡을수 없는경우.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단 한번뿐인 소중한 인생이기에 고민도 많이 하게 된다. 그렇게 고민하는 와중에 이 책을 보면 삶을 더 거시적으로 보고 여유롭게 이해할수 있는 폭넓은 사고의 시간을 줄수 있어서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y****4 2011.11.1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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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세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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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장자 내편에 대한 주석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주석서와는 다른 구성을 보인다. 이 책의 구성은 장자 본문을 따라가면서 본문에 대한 코멘트를 더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그 코멘트는 김용옥을 떠올릴 정도로 상당히 장황하다. 김용옥을 닮은 것은 양만이 아니다. 내용도 그렇다. 표지를 보면 ‘왕멍, 장자와 즐기다’란 말이 있는데 광고문구로 적당히 붙인 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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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장자 내편에 대한 주석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주석서와는 다른 구성을 보인다. 이 책의 구성은 장자 본문을 따라가면서 본문에 대한 코멘트를 더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그 코멘트는 김용옥을 떠올릴 정도로 상당히 장황하다. 김용옥을 닮은 것은 양만이 아니다. 내용도 그렇다. 표지를 보면 ‘왕멍, 장자와 즐기다’란 말이 있는데 광고문구로 적당히 붙인 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저자는 장자라는 책을 해석하려는 것이 아니라 장자라는 저자를 읽어내려 한다.

근대 이전에 성립된 주석서들은 자신의 의견을 자제하고 문구 자체의 의미를 밝히는 형식을 취한다. 그렇기 때문에 주석은 자구 대 자구로 본문이 한줄이면 그 아래 두줄로 축자적으로 붙이는 형식이다.

그러나 저자는 책 자체의 글자 하나 하나에는 관심이 없다. 그보다는 자신이 장자라는 책에서 무엇을 읽어낼 수 있는가에 더 관심이 있다. 대만이나 본토에서 나온 책들을 보면 본문이 있고 그 다음에 백화 번역이 달린다. 그러나 저자는 그런 형식을 취하지 않는다. 그냥 본문을 달아놓고 번역을 하는 대신 자신의 의견을 말하고 엄청난 의역을 한다. 그리고 나서 엄청난 길이로 ‘설’을 늘어놓는다. 게다가 본문을 전부 싣지도 않고 자신의 ‘설’로 연결이 되면 본문을 생략하기 까지 한다. 그리고 그 내용은 장자라는 책 자체보다는 왜 장자가 이런 말을 했는가를 묻는다.

새로운 형식이다. 분명 이책의 체제는 내편 6편의 주석 형식이다. 그러나 그 형식과는 달리 이 책의 내용은 장자라는 책에 대한 전반적인 입문서에 가깝다.

그러면 저자가 읽어낸 장자는 어떤 사람인가? 그리고 저자가 읽어낸 장자의 세계는 어떤 세계인가? 이책을 읽으면서 떠오른 것은 루루티아(ルルティア)의 음악이다.

20세기 음악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라면 아마도 일렉트로니카의 등장이 아닐까 싶다. 일렉트로니카는 신디사이저가 보급된 1970년대에 성립했다. 지금은 공기같은 존재가 되어버렸기에 간단하게 키보드라 불리는 신디사이저는 음악에 혁명을 일으킨다. 구체적으로는 바로크 음악의 부활이었다.

클래식이라 하면 구체적으로 하이든 이후의 고전파를 말한다. 고전파 이후의 음악은 고전파에 의해 정립된 작곡논리를 따르기 때문이다. 고전파 이전의 바로크 음악과 고전파 음악은 사운드 레이어의 구성법이 달랐다.

서양음악의 사운드 레이어는 4개로 이루어진다: 리드, 백그라운드, 레퍼런스, 패턴. 밴드 구성을 예로 들어 설명하면 리드는 멜로디 레이어로 보컬이나 기타 등의 멜로디 악기를 말한다. 백그라운드는 리드 레이어의 화음을 연주하는 레이어로 역시 기타나 피아노 등의 화음악기와 백코러스를 말한다. 레퍼런스는 토닉과 기준이 되는 레퍼런스 화음의 레이어로 베이스 기타를 말한다. 패턴은 드럼이나 신디사이저로 어택감이나 공간묘사를 담당한다.

고전파 음악에선 리드 레이어를 중심으로 일치된 진행을 만든다. 그러나 바로크 음악에선 4개의 레이어가 서로 독립된 진행라인을 갖는다. 그런 진행을 대위법이라 한다. 댄스뮤직으로 출발한 일렉트로니카는 바로크적 진행을 부활시킨다.

댄스홀에선 화음진행이 아니라 리듬이 중요하며 대위법적 진행이 더 어울린다. 결국 일렉트로니카에선 레퍼런스와 패턴 레이어의 진행을 음악의 중심으로 삼아 분위기와 리듬감을 강조하게 된다. 4개의 레이어가 일치된 협화음적 진행이 아닌 대위법적 진행을 갖는 바로크적 논리는 80년대 드림 팝, 노이즈 팝 90년대 트립합, 고딕 메탈의 혁신을 일으켰다.

멜로디 진행과 독립된 대위법적 진행으로 모호해진 공간과 사운드 윤곽은 불안정한 느낌을 만들어 앰비언트와 같이 꿈꾸는 듯한 느낌을 연출하거나 스칸디나비아 메탈처럼 슬픔, 분노 등 부정적 정서의 배경을 만드는데 적합하다.

보통 루루티아의 음악를 '환상적이다' '신비감과 광기가 느껴진다'고 한다. 이런 인상은 바로크적 논리의 연출효과이다. 루루티아 음악의 의미는 곡의 분위기가 만드는 이미지이다. 루루티아의 음악에서 우선되는 것은 사운드가 만드는 '분위기'이며 분위기는 레이어의 대위법적 관계에서 만들어진다.

그러나 바로크적 논리의 문제는 멜로디 라인이 거의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댄스뮤직이면 모를까 아시아에선, 거의 멜로디만 듣는 아시아인들에겐 그런 음악은 호소력이 없다.

루루티아 음악의 특징은 바로 바로크와 고전파의 절충이다. 보컬이 아예 없거나 존재감이 약한 앰비언트나 스칸디나비아 메탈과 달리 보컬의 존재감이 강하고 멜로디가 아름다운 루루티아 음악의 정서는 보컬과 하위 레이어의 긴장관계에 의해 결정된다. 그리고 루루티아 음악의 매력 역시 그 긴장관계에서 나온다.

작곡가가 아닌 보컬로서의 루루티아는 특이하다. 그녀는 숨을 내쉬고 바로 삼키듯, 맑고 가는 달콤한 음색으로 언제나 소곤거린다. 웅얼거리듯 소곤거리는 것은 지금, 여기의 사건보다는 여기가 아닌 과거에 일어난 일을 회상하는데 적합하며 자기주장이 약하다. 그녀의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것은 사라져간 것에 대한 아픔과 슬픔이며 깨질 것 같은 덧없는 아름다움이다. 그녀 음악의 신비감은 이러한 보컬의 정서에 하위 레이어의 윤곽이 불분명한 텍스쳐가 대비되어 만들어진 효과이다. 그러나 바로크적 텍스쳐가 만드는 분위기에 멜로디 라인의 통일성이 더해져 만들어지는 아름다움은 그녀가 원용한 앰비언트나 스칸디나비아 메탈에선 보기 힘든 것이다. 그러나 그 통일감은 환상이다.

루루티아 음악의 정서와 사운드는 스칸디나비아 메탈에 가깝다. 시끄럽다는 말이다. 메탈의 정서가 그렇듯 루루티아 음악의 배경은 탐욕과 위선, 광기, 잔인한 폭력의 세계이며 그런 세계에 대한 분노, 슬픔, 절망, 좌절을 표현한다.

보컬과 백그라운드 레이어는 세계에 대한 정서를 멜로디로 표현하고 부정적 세계는 레퍼런스와 패턴 레이어의 어두운 노이즈로 표현한다. 루루티아 음악의 의미는 레이어의 긴장관계에서 만들어진다. 문제는 세계에 대한 정서를 표현하는 멜로디 레이어, 즉 보컬이다.

루루티아는 속삭인다. 보통 팝에서 whisper라 말하는 것으로 보사 노바에 잘 어울리지만 하위 레이어가 두껍고 시끄러운 메탈에선 묻혀버리는 목소리이다. 들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해법은 프로듀싱이다. 바로크적 텍스쳐에 묻히지 않게 편집한다는 말이다. 라이브로 들을 수는 없는 음악, 그것이 루루티아의 음악이며 루루티아의 음악이 환상인 이유이다.

저자는 장자의 세계가 그와 같은 환상이라 본다.

장자의 첫편은 소요유이다. 논어의 학이편 1장이 그렇듯 중국 고전에서 처음에 오는 장은 그 책 전체를 규정한다. “장자가 주는 첫인상은 ‘소요’라는 두 글자로 함축할 수 있다. 장자는 일생동안 줄곧 소요에 이르는 길, 즉 인간 내면의 초탈과 해방을 얻을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 소요라는 것은 지극히 개인적인 정신 상태이자 개인이 사회와 집단의 관념적 구속에서 벗어난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하면 내면 정신세계의 자유와 독립을 의미한다. 이것은 근현대에 서양에서 들어온 개인주의 관념과는 차이가 있다. 후자는 사회적 관계 속에서 개인의 중요성을 강조하지만 중국의 소요는 사회와 집단에 이미 형성되어 있는 가치판단에 대한 주관적인 해방 또는 일시적인 망각을 의미한다.” 그리고 그 ‘주관적인’ 해방과 ‘일시적인’ 망각이 장자가 지금까지 읽혀온 이유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그 해방과 망각은 아Q정신과 닮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살다보면 실패할 때도 있고, 패배할 때도 있기 마련이다. 이유 없이 구박을 당하고 모욕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중국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인 루쉰(魯迅)의 소설 『아Q정전』에 나오는 주인공 아Q는 그런 상황에서 매우 독특하게 대처한다. 시골에서 날품을 파는 아Q는 마을 사람들에게 자주 멸시당하고 이유 없이 맞기도 한다. 현실에서 그는 늘 패배자이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당한 멸시와 패배를 아주 간단한 방법을 통해 승리로 바꾸어 버리고, 마음의 평정을 회복한다. 아Q가 애용하는 방법은 세 가지다. 하나는 자신을 높이는 것이다. 이유 없이 자신을 때린 사람보다 자기가 훨씬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고 여기면서 자신처럼 지체 놓은 사람이 하찮은 인간들을 상대해 무엇 하겠느냐고 생각한다. 무서워서 상대를 피하는 것이 아니라 더러워서 피한다고 생각하고는 자신의 패배와 굴욕을 잊는 것이다. 두 번째 방법은 앞의 방법과 반대로 자신을 완전히 낮추는 방법이다. 자신은 형편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런 모욕을 당하거나 그런 패배를 당할 만 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아Q가 애용하는 세 번째 방법은 자신이 당한 패배와 모욕을 자기보다 약하고 못한 존재에게 전가시키는 방법이다. 강자에게 뺨 맞고 약자에게 분풀이 하는 것이다.
소설에서 아Q가 늘 얻어맞고 모욕을 당하면서도 늘 즐겁고 낙천적인 것은 이처럼 현실의 패배와 굴욕을 그 나름의 조작법을 통해 정신적인 승리로 전환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아Q는 늘 패배하지만 늘 승리자이다.” (이욱연)

장자는 어렵다. 그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은 배운 사람 그것도 엄청나게 배운 사람이다. 그런 사람들에게 2천년이 넘도록 읽혀온 이유는 장자가 정신승리법을 말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실에서 패배할 수 밖에 없는, 현실에선 한없이 작아질 수 밖에 없는 “가련한 사람들, 특히 글 읽는 지식인들은 장자를 만나고 나서야 비로소 거대함과 웅대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정신승리법의 최고봉이 아닌가. 정신적인 승리가 아니라면 어디에서 이렇게 확실하고 영원한 승리를 얻을 수 있겠는가? 춘추전국시대부터 그들은 세상에 나아가 쓰이지 못하면 한평생 허송세월하고 어저다 운이 좋아 높은 벼슬에 앉는다 해도 느닷없이 재앙이 닥쳐 하루아핌에 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곤 했다. 일이 뜻대로 풀리지 않아 여러 차례 남에게 모함을 당하기도 하고 큰 뜻은 품었으나 재주가 변변찮고 운이 없는 탓에 가난과 실의에 빠져 시름겨운 한세상을 살다 가기도 했다. 현실이 이러할진대 온전히 정신적이고 완벽하게 무조건적인 승리조차 얻을 수 없다면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겠는가? 장자가 기재이고 독특한 논리로 훌륭한 글을 썼다 해도 그의 글을 읽다보면 ‘아Q 정신’이 응집되어 있다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울 것은 없는 말이다. 중국혁명 직후 장자는 철저하게 부정당했다. 중체서용이니 떠들며 너희가 힘은 셀지 몰라도 우리는 정신적으로 더 고귀하는 식으로 현실의 패배, 정신의 승리를 말하며 중국을 말아먹은 아큐정신의 궁극이라는 논리였다.

물론 지금까지 그런 논리가 살아남지는 않았다. 눈 감고 아옹하는 아Q가 되기에 장자는 지나치게 똑똑한 사람이었고 현실을 비참할 정도로 철저하게 알았던 사람이었다. 그러면 장자가 보았던 세상은 어떤 세상이었는가?

“노담의 제자 백구가 제나라에 도착하자 형벌을 받아 기시된 시체를 보았다. 시체를 밀어 바로 누이고 조복을 벗어 덮어주엇다. 그리고 하늘을 우러러 곡하며 말했다.

오 그대여! 천하에는 피살자가 많은데 그대가 먼저 당했구려! 말끝마다 도둑질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하지만 영욕으로 핍박하니 이런 병통이 나타났고 재화가 한곳으로 모이니 이런 쟁투가 나타났다. 지금은 사람을 몰아 세워 병들게 하고 사람을 모아 싸우게 하고 사람의 몸을 곤궁하게 하여 한시도 쉬지 못하게 하니 이런 지경에 이르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재물을 위해 간계를 부리고 지혜롭지 못하면 어리석다 하고 어려운 일을 시키고 감내하지 못하면 죄를 주고 무거운 임무를 맡기고 다하지 못하면 벌을 주고 먼 길을 가게 하고 이르지 못하면 죽인다. 그러므로 부득이 민(民)은 지혜와 힘을 다해 꾀로 죄를 모면하려 한다. 무릇 힘이 부치면 꾀를 쓰고 지혜가 부족하면 도둑질을 하는 것이다. 도둑이 횡행하는 것은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옳은가?” (장자 잡편 칙양)

이런 세상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제자백가 모두가 물었던 질문이다. 제자백가의 아버지라 해야 할 공자는 성인의 질서로 돌아가자(복례 復禮)를 말하면 지배층의 질서를 바로잡아 천하를 바로잡으려 했다.

그러나 논어 미자편의 5장에서 7장까지 나오는 은자들은 공자에게 이렇게 충고했다. “탁한 물이 도처에 도도하게 범람하는데 누가 바꿀 수 있겠는가? 그대는 나쁜 사람을 피하는 사람을 따르는 것보다 세상을 피하는 사람을 따르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하려고 하는’ 사람이란 은자들의 조롱에 대해 공자는 이렇게 자신을 변호햇다. “벼슬하지 않는 것은 도리가 없는 것이다. 어른과 어린이의 질서를 폐기할 수 없는데 군주와 신하의 관계를 어떻게 폐기할 수 있겠는가? 자기 한 몸을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 중요한 사회관계를 파괴한 것이다. 군자가 벼슬하는 것은 의무를 이행하기 위한 것이다. 도의가 행해질 수 없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었다.” (리쩌허우의 해석)

공자와 은자들의 차이는 세상이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엿다. “새나 짐승과 함께 살 수 없지 않느냐? 사람의 무리가 아니면 누구와 함께 하겠느냐? 천하가 태평하다면 내가 바꾸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기에 인간으로서 신념을 지키기 위해 현실에 굴복하지 않는 의지를 말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말에서 공자 자신이 항상 말한 사람에 대한 사랑 또는 사람다움이란 뜻인 인(仁)의 의미가 드러난다. 그러나 은자들은 동의할 수 없었을 것이다.

공자는 사회의 근간인 질서가 무너지는 것을 바로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군주와 신하는 오늘날 상급자와 하급자라는 직무상의 관계이고 그 원칙은 의(義), 즉 공평하고 정직하며 공적인 일을 받들고 법을 지키며 편을 들어 사사로움을 도모하지 않으며 윗사람을 속이거나 아랫사람을 억누르지 안는 것이다. 남편과 아내 사이에 구별이 있다는 것은 가정 중심의 가치관이다. 사랑에 그치지 않고 은혜를 베풀어서 피차에 언제나 돕고 이끌어주며 관용하고 양해하며 어른을 높이고 어린이를 어루만져주는 것” (리쩌허우) 공자가 하려한 것은 그런 당연한 도리가 천하에 행해지는 것이었다. 그러나 공자와 그를 조롱한 은자들이 살던 시대는 그것이 당연할 수 없는 시대엿고 시대가 그렇다는데 공자와 은자들은 이견이 없었다.

논어에서 공자는 자신을 조롱하는 은자들을 존경했다. 그러나 은자들은 그런 공자를 조롱하며 공자가 되돌아가자는 성인의 질서(예)를 조롱했다. 그 은자들은 도가 계열의 선구였을 것이다.

그 은자들의 맥을 잇는 노자는 전쟁과 살육, 착취와 억압은 권력의 본성이라 생각했다. 그들은 권력이란 것 자체가 없는 세상을 꿈꾸었다. 그러나 “노자는 사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부정하지 않았다. 입신출세를 철저하게 부정한 것은 장자가 처음일 것이다.” 치국의 도를 말하던 제자백가와 달리 장자는 “완전히 상반된 길의 극단에 있었다. 그는 사회적이고 집단적인 노력을 모조리 부정했다. 왕후와 귀족을 부정하고 학문을 추구하고 논쟁하는 것 자체도 부정했다. 그가 자기 자신과 제자들이 추구해야 할 모델로 삼은 것은 왕후도 제자백가도 아니요 곤이나 붕새, 이백이나 베토벤 같은 천재도 아니었다. 바로 작디작은 뱁새와 두더지였다. 천재형 지식인들이 정신적 우월감을 느끼며 세상을 업신여기고 잘난 척했다면 장자는 자신에 대한 기준을 보이지도 않을만큼 낮춰서 뱁새와 두더지 같은 마음으로 세속의 명리와 권력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소요와 자유를 추구했다. 그는 밖에서부터 먼저 출발하지 않고 내부에서 먼저 모든 명리를 부정하고 세속에서 멀리 떨어져 화를 피하고 근심을 멀리했다. 세속에서 자신의 안녕과 행복을 얻기 위해 추구하는 모든 수단을 멀리했다. ‘자기 자신’의 편안함과 자유로움, 만족감, 다른 사물과 환경에 대한 무관심 외에는 그 어떤 감정도 인정하지 않았다. 장자가 이렇게 극단적으로 행동한 것은 자기 앞에 놓인 현실에 대한 무력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장자의 소요는 절망이다.

공자가 천하를 유세한 것은, 도를 다시 세우려 한 것은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사명감이었다. 장자를 읽어보면 장자는 유가계열에서 공부한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공문에서 장자는 출중한 학생이었을 것이다. 그의 글에 엿보이는 “강한 자신감, 강한 자부심, 강한 사명감”은 천하를 논하는 유가 선비의 태도이다. 주자를 비롯한 송유들은 노자는 싫어해도 장자는 좋아했다. 자신들과 뿌리가 같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에 나왔을 때 천하는 무도(無道)했고 그가 설 자리는 없었다. “알아주는 이가 없어 번번이 실패했고 결국엔 자살과 모험, 정신적 해탈의 사이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을 것이다. 막다른 길에 몰리면 사람은 위험한 모험을 하든가 자신의 지혜를 숨기고 어수룩한 것처럼 핻동하든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내편 전체를 통해 장자가 바라보는 공자에 대한 시선은 따뜻하다. 그러나 공자의 주장에 대해선 냉정하다. 공자의 논리에 대한 장자의 비판은 “결코 추상적인 부정이 아니라 그것이 당시의 시대에 부적합하다고 생각해서 나온 것이다. 용기는 가상하지만 비극적 운명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다. 결과를 분명히 알 수 있는 형국에서 한발 물러설 줄 모르니” (왕보) 지혜라 할 수 없다.

흔히 불난 집의 비유를 들어 공자와 장자의 차이를 설명한다. 이웃에 불이 났으면 물 한 통 가져다 뿌린다고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공자는 마땅히 뿌려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도리니까. 그러나 장자는 그것은 의(義)도 인(仁)도 아니라 말한다. 그것은 동정일 뿐이며 자기만족일 뿐이라는 것이다. 장자라면 아무 도움이 되지 않으니 그냥 앉아 있겠다고 말한다. 장자는 냉정하다. 이 차가움을 장자는 ‘무정(無情)’이라 말한다. 대붕이 되어 소요하는 것은 무정해야만 할 수 있다. 저 하늘 높은 곳에서 인간세의 자잘함은 보이지 않을 때 소요는 가능하다.

무정을 말할 때 친구 혜시는 정(고대 중국에서 정은 감정을 말한다)이 없는 인간을 인간이라 할 수 있는가 논박한다. 혜시가 옳다.

이웃집에 불이 났는데 물 한 통 뿌리는 수고도 하지 않는 사람은 인(仁)하지 않다. 인(仁)은 손익계산이 아니라 사람이면 마땅히 느끼는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다. 공자가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인(仁)할 수 있고 한 것은 그것을 말한다. 장자는 공자의 말을 잘 알고 이해했을 것이다. 그러나 인(仁)해서는 천하의 불을 끌 수 없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불을 끄려는 마음 자체를 없애야 한다. 사람이 아닌 것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무정이란 말은 소요란 말은 철저한 절망의 표현이다.

언뜻 장자의 소요, 좌망, 무정 등은 불교의 해탈, 무욕, 무아 등과 닮았다. 실제 불교가 처음 중국에 들어왔을 때 중국인들은 장자의 개념을 빌려 불교를 이해하고 불경을 번역했다. 그리고 선불교는 도가식으로 불교를 이해한 결과였다.

그러나 장자의 소요를 불교의 열반이라 할 수 있을까? 저자는 의문이다. 그렇게 이해하기에는 장자의 논리에 자기모순이 많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다투지 않고 논쟁하지 않을 것을 주장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논쟁하고 다투었고 한편으로는 마른 고목 같은 몸과 식은 재 같은 마음으로 홀로 앉아 세상의 모든 외물은 물론 자기 자신까지 완전히 잊어버리는 ‘좌망(坐忘)’을 주장하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모든 걸 꿰뚫을 듯 날카로운 기세와 현란한 언변, 웅대한 기백을 과시하며 자신을 드러내 자랑했다. 이런 글이 마른 고목 같은 몸과 식은 재 같은 마음에서 나왔을 가능성은 전혀 없다. 자기과시욕과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고 열정으로 잔뜩 격앙된 상태라야만 이런 글을 쓸 수 있다. 장자는 세속을 거부하고 거듭 반복해서 초월하고 또 초월하는 이야기를 한다. 그 이야기들에0서 수신제가평천하라는 이상을 하찮은 것으로 조롱하고 비웃었고 입신출세하려는 이상을 부정했다. 그랬던 장자가 왜 뒤에서는 ‘응제왕’을 통해 자신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제왕과 유토피아에 대해 논했단 말인가? 그의 논리대로라면 비(非) 제왕과 무(無) 제왕을 쓰든가 최소한 망(忘)제왕을 썼어야 하는 게 아닌가?”

결국 장자의 소요란 자발적인 은퇴가 아닌 강제된 유배였다. 유배된 장자가 쓴 글을 저자는 ‘처연한 아름다움’이라고 한다. 천하 속에서 천하를 떠나는 장자의 글은 ‘사변적 기능보다 심미적 기능이 훨씬 강하다. 이것은 철학이 괴로운 처지에 빠진 인간을 위해 찾아낸 아름잡지만 힘없고 속이 텅 비어 있는 열매와도 같다.” 장자의 글은 “훌륭하지만 읽는 이를 탄식하게 하고 감탄하면서도 가슴 한구석이 씁슬한 건 어쩔 수가 없다.”


평점 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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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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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참 시대를 앞서간 인물인 것 같다. 읽으면서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심지어 해설해 놓은 것이 더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도 너무 많았다. 이 책을 어떻게 썼는지, 저자가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자의 철학사상이 이렇게 깊은 줄은 미처 몰랐다. 사실 학교에서조차도 동양철학에 대해서 가르치기 보다는 서양철학에 대해서만 많이 배웠던 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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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참 시대를 앞서간 인물인 것 같다. 읽으면서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심지어 해설해 놓은 것이 더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도 너무 많았다.
이 책을 어떻게 썼는지, 저자가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자의 철학사상이 이렇게 깊은 줄은 미처 몰랐다. 사실 학교에서조차도 동양철학에 대해서 가르치기 보다는 서양철학에 대해서만 많이 배웠던 기억이 있기에, 서양철학자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알기는 하지만, 동양철학에 대해서는 별로 알고 있는 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장자의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동양철학의 깊이가 서양철학의 깊이에 견주어 볼 때에 오히려 더 깊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초월한다. 사실 이것처럼 힘든 것이 없는 것 같다. 과연 장자와 같이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 자기 자신의 욕심과 논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는지. 우리조차도 자기 자신을 그저 위로하려고만 하지, 자기 자신과 논쟁하고, 자기 자신의 잘못에 대한 치열한 반성을 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초월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데, 과연 세상을 초월한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거기에다가 물욕이라니. 우리말에도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물욕을 초월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장자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여유라니. 그런 여유를 가져야만 자신이 이야기해 왔던 소요유나 제물론을 궁극적으로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이 양생주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라. 마음을 비우기가 쉬울까? 보통의 모든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선입견도 사실 마음에 이미 정해져 있는 기준을 가지고 상대방을 보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것인데, 궁극적으로 마음을 비우면 선입견도 사라지게 되고, 어느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으니, 사귈 수가 있게 될 터이니, 오히려 이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참 자신을 돌아보기에 좋은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힘들다 보니까, 읽는다고 하는 것이 좀처럼 쉽지많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i*******2 2011.11.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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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사상가 '장자'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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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를 통해서 방영되는 '나는 가수다'에서 딴 듯한 책의 제목 <나는 장자다> 가 시선을 끌었다. 요즘 서양에서는 동양의 사상과 철학이 인기라고도 한다. 공자와 맹자에 비해 '장자'는 생각외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최근에 난 맹자에 대해서도 노자에 대해서도 책을 통해서 조금이지만 접해 보았다. 따라서 거의 못 읽어본 '장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책을 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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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TV를 통해서 방영되는 '나는 가수다'에서 딴 듯한 책의 제목 <나는 장자다> 가 시선을 끌었다. 요즘 서양에서는 동양의 사상과 철학이 인기라고도 한다. 공자와 맹자에 비해 '장자'는 생각외로 많이 알려져 있지 않았다. 최근에 난 맹자에 대해서도 노자에 대해서도 책을 통해서 조금이지만 접해 보았다. 따라서 거의 못 읽어본 '장자'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고, 이 책을 통해서 그 궁금함이 어느정도는 풀렸다. 얘전 중고등학생 시절을 생각해보면 장자는 노자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배웠었다. 그래서 '노장사상'이라는 말이 있었으니까. 우리가 알고 있는 도교의 근본사상이 노장사상이므로.  

 

저자 왕멍을 통해서 <나는 장자다>란 책을 만나게 되었다. 462쪽의 다소 긴 분량을 조금은 힘겹게 읽었다. 그림은 없고 수없이 많은 한자와의 전쟁 아닌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위대한 날개짓과 자유로운 휴식 소요유(逍遙遊), 투시와 초월로 세상을 고르게 하는 제물론(齊物論), 여유를 가지면 애락이 깃들지 않는다는 양생주(養生主), 세상에 쓰이는 현묘함과 허물이 없는 상태인 인간세(人間世), 결코 패배하지 않는 자기 수호인 덕충부(德充符), 좌망과 통달의 자신감과 쓴웃음인 대종사(大宗師), 주체성, 염담, 심장, 변역, 그리고 혼돈으로 나뉘어 있고, 총 28가지의 작은 챕터로 되어있다.  

 

저자는 장자 '내편'에 대한 내용이 주로 담겨 있으며 그 외에 '외편'의 일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장자의 전체 내용은 얼마나 광범위할까도 생각해보게 된다. 고대 경전의 경이로움도 느낄 수 있게 했다. 70여년이 넘는 인생경험을 살았던 저자 왕명의 경험은 집필하는 동안 장자와 함께 춤을 추는 것과 같았다고 하는 대목에서 느낄 수도 있었다. 각장마다 들어가는 말과 맺는 말을 덧붙여 놓는 배려도 고마웠다.  

 

학자들은 장자 내편은 장자 본인이 쓴것이지만 외편과 잡편은 대부분 후대의 사람들이 덧붙인 것이라고 했다는 저자의 친절한 설명이 장자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리고 '거협', '마제', '추수' 등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한 이야기라는 대목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욕망을 앞세운다.

 

인생의 멋과 자유를 향한 2500년 간의 대화. 인간이 알아야 할 모든 것, 동서양 사상의 분화와 융합, 인류의 역사와 문화 위에서 펼쳐지는 지성의 향연이란 말은 조금은 넘치는 표현이라 할지라도 이 기회로 장자의 폭넓은 사상들을 배울 수 있었다. 이 한권으로 어떻게 장자에 대해 모든 것을 알수 있을까마는...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j******1 2011.11.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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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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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누구인가? 보통 중국의 성인이라면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를 들고 있다. 그 중에 한 명이 바로 장자이다. 그 만큼 놀라운 성인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공자에 비하면 너무 적게 알려진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 장자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을 만큼의 좋은 책인 [나는 장자다]라는 왕멍이 지은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서 나는 첨 알았다. 장자가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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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누구인가? 보통 중국의 성인이라면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를 들고 있다. 그 중에 한 명이 바로 장자이다. 그 만큼 놀라운 성인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공자에 비하면 너무 적게 알려진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 장자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을 만큼의 좋은 책인 [나는 장자다]라는 왕멍이 지은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서 나는 첨 알았다. 장자가 철저하게 소요의 멋을 즐기고, 추구했던 인물이라는 사실을. 인간 내면의 초탈과 행방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장자는 바로 이런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학자였던 것 같다. 중국의 대표적 지식인 답게 이 책의 저자 왕멍은 자신의 박학다식을 이 책을 통해서도 유감없이 발휘하는 듯 하다.

가련한 지식인들은 장자를 만나고 나서야 거대함과 웅장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온전히 정신적이고 완벽한 무조건적인 승리를 얻은 것이 장자가 아닐까? 장자의 글은 상상과 도전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점은 도입부부터 잘 나타나 있다. 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파격적인 이야기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자기 처지에 만족하여 안주하는 게 아니라,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노장 사상으로 대변되는 노자와 장자는 비슷한 평가를 받아 왔지만, 전혀 다른 처세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노자는 '스스로 낮은 곳으로 임했던' 것이고, 장자는 자부심과 대범함, 과장과 여유를 거침없이 드러내며, 자신을 높은 곳에 두려고 한 듯 하다. 노자는 철학자 스타일이다. 교주나 학파의 창시자 스타일이 느껴 지는 데, 반해 장자는 문인이나 개성 강한 인재, 저술가, 웅변가, 강연가 스타일이 연상 된다.

심지어 궤변가나 상상의 대가, 몽상가 같은 느낌이 드는 장자의 맛이 느껴진다.

노장 사상의 관점에서는 충만한 자신감이 있어야 진정으로 겸손할 수 있고,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식견이 있어야 스스로를 낮출 수 있으며 높은 지혜를 갖춰야 치욕을 참아가며 막중한 임부를 수행할 수 있다. 원대한 시야를 가져야만 자기 처지에 만족할 줄 알며 자신이 거인이어야 작은 것이 될 수 있고,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장자의 글은 자유다. 그리고 모험이다. 상상력이다. 그것이 매력이다. 그의 글은 힘차게 날아오르고, 한 순간에 정상까지 솟구친다. 이것이 장자다. 그는 글을 통해, 과학이나 자연의 법칙을 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모든 자연 현상이 큰 도와 서로 통한다는 걸 말하고자 한 것 같다고 한다.

장자가 중국 문화에 기여한 것은 소요라는 두 글자이며, 이미 이것을 알고 있으니 조급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중국 문화의 독특한 진수, 정신적인 즐거움이 장자로 인해 기인한 것이 아닌가?

YES마니아 : 로얄 b******3 2011.11.0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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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장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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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어릴 때 장자의 붕이라는 새를 듣고 매혹된 적이 있었다 수천리의 크기의 등을 가지고 있고 한번 날아오르면 구천리를 난다는 상상 속의 아니 신화적인 새 그 붕은 곤이라는 물고기가 변하여 되는 것이라는데 곤은 북명이라는 바다에 사는 물고기로서 역시 크기가 수천리가 되는 거대어이다 가히 상상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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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어릴 때 장자의 붕이라는 새를 듣고 매혹된 적이 있었다

수천리의 크기의 등을 가지고 있고 한번 날아오르면 구천리를 난다는 상상 속의 아니 신화적인 새

그 붕은 곤이라는 물고기가 변하여 되는 것이라는데 곤은 북명이라는 바다에 사는 물고기로서 역시 크기가 수천리가 되는 거대어이다

가히 상상이 되지 않는 압도적인 상상력과 의식의 결과물인 장자의 사유란 어떤 것일까 궁금할 법도 했건만 아뿔사 그때는 너무 어려 장자의 심원한 사유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단지 붕과 곤의 가공할 스케일과 그 거대함을 낳은 자유분방한 호방함에만 관심이 가고 매혹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나는 조금은 머리가 큰 상태가 되었고 장자의 붕이 현실세계를 초탈해 영원과 무한을 향해 날아가는 정신적 존재라는 것쯤을 어렴풋이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그동안 주워 들은 것이 있어서 장자 혹은 장자의 사상에 대해서도 조금쯤은 알게 되고 말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어디 그렇게 쉽게 재어보고 속단할 수 있는 것이 거인 장자일까

장자는 단 한권의 책을 남겼다 그것은 노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장선생 노선생 모두들 지고한 신공의 절정고수들이다

이 강호의 냉혹한 세계에서 몇 천년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위대한 저술을 하신 분들이라는 말이다

나같은 미미한 존재가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범접할 수 없는 드높은 정신의 소유자들이다

이런 뜬구름 잡는 푸념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읽어도 실체가 잡히지 않는 오리무중한 그러니까 난삽한 사상을 남기신 분들이다

장자는 더욱 더 그런 경향이 심했다 제길슨 우화라고 하면 쉬워야 하는데 읽을수록 태산이 나타나는 이 어지러움은 무언가

그런 장자에 대한 난독의 고민은 강호의 유수한 대학자들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장자에 대한 그많은 학설들과 하나로 정립되지 않는 이론들은 장자가 괴물이라는 반증에 다름아니다

장자는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을 잡아먹는 다시 말해 미로같은 또는 안개속의 책이었다

지난 장구한 시간 동안 장자를 읽고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 수고를 기울였지만 그들이 남긴 논문들은 모두 하나같이 다 제각각 백가쟁명의 다른 목소리들이었다

 

이런 장자에 대한 접근방법의 난공불락에 장자는 그냥 하나의 감상하는 우화 그렇다 말 그대로 우화로만 읽었던 것이 나의 장ㅂ자 독법이었다

장자를 읽는 좀 더 정확한 길은 없을까

이런 의문에서 나온 필요성의 열망이 이 책 [나는장자다]를 소구하게 되었다

작가 소개에 나온 대로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대단한 석학임을 몸소 실감할 수 있었다

동서를 하나로 관통시키고 고금을 하나로 원융하여 종합적이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장자에게 다가가는 길을 제시해 준다

다만 지은이의 주관적인 독법이 때로는 지나쳐 새롭고 독창적인 읽기를 지나 지은이의 주관적인 독단에 이르는 대목이 있음을 지적 아니할 수가 없다

중국 고전에 대한 교양적 배경 뿐만이 아니라 서구의 철학과 문학에까지 이르는 폭넓은 지식으로 동양 철학의 제반사항의 특징들을 나란히 서구의 그것과 대비 대조하면서 때로는 공통점을 때로는 차이를 지적하는데는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장자중에서도 내편만을 주해 해설한 책이다

내편이 진짜 장자의 저작이고 외편과 잡편은 장자의 이름을 빌린 다른 이의 저술이라고 알려져 있다

장자의 내편을 저자가 자신만의 독특한 인생공부를 바탕으로 새롭게 해석한 이 책은 장자를 이해하는 데에 새로운 방법을 알려준다

요컨대 장자의 마음을 헤아려 소요유와 양생과 제물로 특징되는 장자의 사상을 나아가 장자의 인생과 성격까지도 어렴풋하게 짐작하게 하는 혁신적인 책이다 그러나 아마추어가 쓴 책이라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는 것은 저자의 연구가 넓긴 하지만 얕은 것이라는 단점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런 맹점을 감안하더라도 장자 읽기에 새롭게 독창적이며 대담하기까지 한 시도를 가했고 일정이상의 소기의 성과를 이루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장자를 객관적으로 읽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동의할 수없는 부분들이 있지만 새로운 장자 그리고 장자의 마음과 성격 그리고 장자의 환경까지 헤아려 일고 싶은 사람들에게라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