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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逍遙)의 멋, 대이화지(大而化之)하는 삶
마음수련이 아직도 부족한 것일까. 한해 두해 나이를 먹어갈수록 마음 씀씀이가 더 커지고 의연해져야 할텐데 요즘 들어 화를 내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 몸과 마음에 피로가 쌓인 것이 주요한 이유라 생각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건 마음에 여유가 없는 탓이다. 책을 읽고 쓰는 일도 조금은 귀찮아졌다. 점점 코너에 몰리는 듯했다. 그래서일까? ‘장자’를 읽고 싶었다. 올 초 읽다만 원전을 제쳐두고 중국의 왕멍이 재해석한 <나는 장자다>(들녘, 2011)를 읽게 되었다.
장자의 세계는 그 내면으로 들어갈수록 복잡다단하다. 들어보면 별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말장난 하는 것 같기도 하며, 무슨 말인지 도통 종잡을 수 없기도 하다. 그래서 그 철학의 세계를 간파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한 이유로 올해 초 장자 원전에 도전했을 때에는 그만 끝까지 갈 수 없었다. 아쉬웠다. 소요의 멋만 조금 맛보고 말았다니…. 왕멍의 이 책은 그래서 다른 의미로 다가왔다. 원문에 대한 풀이가 아닌 저자만의 장자읽기라 장자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저자는 아예 서문에서부터 대놓고 밝힌다. 나는 장자와 놀겠노라고 말이다. 소를 탄 노자에게로 달려가고, 나비가 된 장자에게로 펄럭이며 날아가듯 장자를 따라다녔다. 꽁무니만 졸졸 따라다닌 것이 아니라 잠시 다른 사람에게 한눈도 팔고, 감히 장자에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기도 했다. 그러니까 이 책은 단순한 원전 풀이가 아니라 장자 제대로 읽기다. 원전에서 필요한 부분만 발췌해 뜻을 밝히고, 제가백자 시대 사상가들의 철학과 비교하거나 근현대 작가들의 사상과 대비시킨다. 이유는 단 하나, 장자를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서다.
그래서인지 읽고 나니 소요(逍遙)의 멋이 큰 의미가 다가왔다. 장자 사상의 모든 출발은 바로 소요에서 시작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만족스러울 만큼 여유롭고 즐거운 삶이 어디 쉽게 찾아오는가. 소요할 수 있는 마음이 있어야 생각도 더 풍부하게 할 수 있고, 삶에서 끊임없이 실천하고 반성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 수 있다. 그래야 대이화지(大而化之)할 수 있다. 대이화지는 문제를 넓게 바라보고 사소한 일에 연연해 다투거나 고민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소요하는 마음이 없다면 절대 그럴 여유도 없다. 이러한 마음가짐들이 모여 결국 장자가 말하는 인간과 자연이 하나 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왕멍의 글을 통해서나마 장자를 조금 알 수 있게 되었다. 장자 원전을 다시 읽는다면 그때보다는 보다 가까이 장자의 세계에 다가갈 수 있으리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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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중국의 큰 사상적 흐름을 이끄는 사상가들이 많이 있다. 물론 그들은 우리나라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물질보다는 정신, 현재보다는 미래를 꿈꾸며, 자신들의 세계에서 신선들이 사는 세계를 살았던 사람들이 많이 있다. 장자! 세상을 꿰뚫어 볼 수 있는 힘이 있고, 세상의 제왕들의 끝없는 요청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던 어쩜 신선같았던 사람! 그렇다고 그게 속세와 절연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후학들을 기르는데 열심이었고, 권력을 가을바람에 날라다니는 낙엽처럼 봤던 사람이었다. 자신의 큰 뜻이 이 세상에서 이뤄질 수 없음을 잘 알고, 사상가들이 몰락하고 있는 현실들을 직시하면서 어쩜 사상으로의 도피를 꾀했는지도 모른다. 속세라고 지칭되어지는 현실에서 벗어나, 자신이 만든 이상세계에서 꿈을 펼치고 싶었던 그!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된 사상가들의 몰락이 그에게 현실에서 벗어나게 만든지도 모른다. 어릴 적 장자를 넘 재미나게 읽어서일까? 나이가 들어서 더 많이 조금 더 다르게 볼 수 있을 것이라는 부푼 꿈을 안고 접한 책이었다. 근데 왕멍이 함께 한 < 나는 장자다 >를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이 교차한다. 왕멍의 생각들이 있어서 장자를 읽는데 여러가지 생각들을 더 할 수 있는 기회가 된 것도 있다.
약간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간혹 원문만 있고 해석이 없는 부분들이 있었는데 나같은 무식한 사람에겐 그 부분이 안타깝고 그저 넘어가야만 해서 속이 상하기도 했다.
사상과 문화를 그 시대를 반영한다. 한때 공자의 전성기에 유학이 발달하고 노자, 장자, 묵가 사상이 중국을 감쌀 때 우리는 그들을 대국이라고 불렀다. 그들의 사상은 몇 년에 걸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들의 사상은 시간을 따라서 지금의 중국을 무서운 속도로 변화시키고 있다. 공부하는 사람은, 백성은 망하지 않는다. 장자는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고, 오히려 그것을 즐겼다. 초월적인 것들을 생각해 내고 그것들에 위로를 받으면서 세속을 무시하기도 했다. 물질문명이 너무나 강한, 보이는 것만이 대세가 되어버린 지금에 무척이나 시사해 주는 바가 큰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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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들어 인문학 강의를 들으면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러면서 또 듣게 되는것이 노자, 장자 등의 저서들이다. 이 책 [나는 장자다]는 장자 [내편] 에 대한 내용과 [외편]의 일부를 담아내고 있다. 장자만을 그냥 읽게 되면 이해하지 못하고 어려울수 밖에 없는 부분들을 이 책의 저자는 좀 더 쉽게 일반인들이 접근할수 있도록 풀어내고 있다.
요즘 [나는 꼼수다] 에 꽃혀있는 와중이라 이 책을 읽으면서도 참 당당하고 보기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마전 도올 김용옥이 꼼수다에 나와서 중용에 대한 강의 관련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김어준 총수가 이 책도 다 읽어보지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들었다. 어쩌면 시대를 거슬려 폭 넓게 사고할수 있는 사람들의 생각을 통한다는 생각도 들고 말이다.
사람을 어떻게 살아야하는지에 대한 이야기, 어느 시대에나 힘겨운 시련은 있게 마련이고 그 시련가운데에서 지혜롭게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더구나 이 책은 작가가 원문 해석과 함께 일흔 몇 해쯤 되는 자신의 인생경험과 그간의 학문연구, 글쓰기, 공직 생활을 하면서 얻은 정보, 생각들을 담아내고 있으니 더욱 의미깊은 시간을 갖게 해준다.
장자는 중국 역사에서 둘도 없는 기재이고, [장자] 는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기서라고 한다. 철학서이며 산문이고 신화, 우화이면서 논문이라고 한다. 책을 읽는내내 아! 정말 시원하구나..라는 생각도 들고 그때나 지금이나 사는게 고달픈건 똑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가끔은 누가 내 인생에 대해 이렇게 이렇게 사는 거야. 라고 조언을 해주고 지혜로운 사람이 이끌어주면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할때가 있다.
당장 결정해야 할일이 있는데 어떤게 옳은 길인지 종잡을수 없는경우.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누구에게나 단 한번뿐인 소중한 인생이기에 고민도 많이 하게 된다. 그렇게 고민하는 와중에 이 책을 보면 삶을 더 거시적으로 보고 여유롭게 이해할수 있는 폭넓은 사고의 시간을 줄수 있어서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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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책은 장자 내편에 대한 주석이다. 그러나 전통적인 주석서와는 다른 구성을 보인다. 이 책의 구성은 장자 본문을 따라가면서 본문에 대한 코멘트를 더하는 형식이다. 그러나 그 코멘트는 김용옥을 떠올릴 정도로 상당히 장황하다. 김용옥을 닮은 것은 양만이 아니다. 내용도 그렇다. 표지를 보면 ‘왕멍, 장자와 즐기다’란 말이 있는데 광고문구로 적당히 붙인 말이 아니라 정말 그렇다. 저자는 장자라는 책을 해석하려는 것이 아니라 장자라는 저자를 읽어내려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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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참 시대를 앞서간 인물인 것 같다. 읽으면서도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이 한 두가지가 아니다. 심지어 해설해 놓은 것이 더 이해하기 힘든 부분들도 너무 많았다. 이 책을 어떻게 썼는지, 저자가 더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자의 철학사상이 이렇게 깊은 줄은 미처 몰랐다. 사실 학교에서조차도 동양철학에 대해서 가르치기 보다는 서양철학에 대해서만 많이 배웠던 기억이 있기에, 서양철학자에 대해서는 조금이라도 알기는 하지만, 동양철학에 대해서는 별로 알고 있는 바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장자의 이 책을 읽으면서 어쩌면 동양철학의 깊이가 서양철학의 깊이에 견주어 볼 때에 오히려 더 깊이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초월한다. 사실 이것처럼 힘든 것이 없는 것 같다. 과연 장자와 같이 자기 자신을 초월하고, 자기 자신의 욕심과 논쟁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는지. 우리조차도 자기 자신을 그저 위로하려고만 하지, 자기 자신과 논쟁하고, 자기 자신의 잘못에 대한 치열한 반성을 하는 사람들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다. 그뿐만이 아니라, 초월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하는데, 과연 세상을 초월한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거기에다가 물욕이라니. 우리말에도 견물생심이라는 말이 있듯이 물욕을 초월할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기 때문이기도 하다. 또한 장자가 가지고 있는 인생의 여유라니. 그런 여유를 가져야만 자신이 이야기해 왔던 소요유나 제물론을 궁극적으로 이룰 수 있기 때문에 이 양생주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라. 마음을 비우기가 쉬울까? 보통의 모든 사람들이 가지게 되는 선입견도 사실 마음에 이미 정해져 있는 기준을 가지고 상대방을 보기 때문에 가지게 되는 것인데, 궁극적으로 마음을 비우면 선입견도 사라지게 되고, 어느 누구와도 친해질 수 있으니, 사귈 수가 있게 될 터이니, 오히려 이것이 더 좋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참 자신을 돌아보기에 좋은 내용들을 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내용이 힘들다 보니까, 읽는다고 하는 것이 좀처럼 쉽지많은 않은 것이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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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왕멍을 통해서 <나는 장자다>란 책을 만나게 되었다. 462쪽의 다소 긴 분량을 조금은 힘겹게 읽었다. 그림은 없고 수없이 많은 한자와의 전쟁 아닌 전쟁을 치러야만 했다. 위대한 날개짓과 자유로운 휴식 소요유(逍遙遊), 투시와 초월로 세상을 고르게 하는 제물론(齊物論), 여유를 가지면 애락이 깃들지 않는다는 양생주(養生主), 세상에 쓰이는 현묘함과 허물이 없는 상태인 인간세(人間世), 결코 패배하지 않는 자기 수호인 덕충부(德充符), 좌망과 통달의 자신감과 쓴웃음인 대종사(大宗師), 주체성, 염담, 심장, 변역, 그리고 혼돈으로 나뉘어 있고, 총 28가지의 작은 챕터로 되어있다.
저자는 장자 '내편'에 대한 내용이 주로 담겨 있으며 그 외에 '외편'의 일부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장자의 전체 내용은 얼마나 광범위할까도 생각해보게 된다. 고대 경전의 경이로움도 느낄 수 있게 했다. 70여년이 넘는 인생경험을 살았던 저자 왕명의 경험은 집필하는 동안 장자와 함께 춤을 추는 것과 같았다고 하는 대목에서 느낄 수도 있었다. 각장마다 들어가는 말과 맺는 말을 덧붙여 놓는 배려도 고마웠다.
학자들은 장자 내편은 장자 본인이 쓴것이지만 외편과 잡편은 대부분 후대의 사람들이 덧붙인 것이라고 했다는 저자의 친절한 설명이 장자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그리고 '거협', '마제', '추수' 등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한 이야기라는 대목도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욕망을 앞세운다.
인생의 멋과 자유를 향한 2500년 간의 대화. 인간이 알아야 할 모든 것, 동서양 사상의 분화와 융합, 인류의 역사와 문화 위에서 펼쳐지는 지성의 향연이란 말은 조금은 넘치는 표현이라 할지라도 이 기회로 장자의 폭넓은 사상들을 배울 수 있었다. 이 한권으로 어떻게 장자에 대해 모든 것을 알수 있을까마는...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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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누구인가? 보통 중국의 성인이라면 공자와 맹자 ,노자와 장자를 들고 있다. 그 중에 한 명이 바로 장자이다. 그 만큼 놀라운 성인임에 틀림 없다. 하지만 공자에 비하면 너무 적게 알려진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나는 오늘 장자에 대해서 자세히 알 수 있을 만큼의 좋은 책인 [나는 장자다]라는 왕멍이 지은 책을 접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에서 나는 첨 알았다. 장자가 철저하게 소요의 멋을 즐기고, 추구했던 인물이라는 사실을. 인간 내면의 초탈과 행방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일까? 장자는 바로 이런 주제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학자였던 것 같다. 중국의 대표적 지식인 답게 이 책의 저자 왕멍은 자신의 박학다식을 이 책을 통해서도 유감없이 발휘하는 듯 하다.
가련한 지식인들은 장자를 만나고 나서야 거대함과 웅장함이 무엇인지 알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현실에 아랑곳하지 않고 온전히 정신적이고 완벽한 무조건적인 승리를 얻은 것이 장자가 아닐까? 장자의 글은 상상과 도전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점은 도입부부터 잘 나타나 있다. 재능을 감추고 때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파격적인 이야기로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고, 자기 처지에 만족하여 안주하는 게 아니라, 기세등등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노장 사상으로 대변되는 노자와 장자는 비슷한 평가를 받아 왔지만, 전혀 다른 처세의 모습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노자는 '스스로 낮은 곳으로 임했던' 것이고, 장자는 자부심과 대범함, 과장과 여유를 거침없이 드러내며, 자신을 높은 곳에 두려고 한 듯 하다. 노자는 철학자 스타일이다. 교주나 학파의 창시자 스타일이 느껴 지는 데, 반해 장자는 문인이나 개성 강한 인재, 저술가, 웅변가, 강연가 스타일이 연상 된다.
심지어 궤변가나 상상의 대가, 몽상가 같은 느낌이 드는 장자의 맛이 느껴진다.
노장 사상의 관점에서는 충만한 자신감이 있어야 진정으로 겸손할 수 있고, 멀리 내다볼 줄 아는 식견이 있어야 스스로를 낮출 수 있으며 높은 지혜를 갖춰야 치욕을 참아가며 막중한 임부를 수행할 수 있다. 원대한 시야를 가져야만 자기 처지에 만족할 줄 알며 자신이 거인이어야 작은 것이 될 수 있고, 모든 것을 품을 수 있다고 말한다.
장자의 글은 자유다. 그리고 모험이다. 상상력이다. 그것이 매력이다. 그의 글은 힘차게 날아오르고, 한 순간에 정상까지 솟구친다. 이것이 장자다. 그는 글을 통해, 과학이나 자연의 법칙을 논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었다. 이 모든 자연 현상이 큰 도와 서로 통한다는 걸 말하고자 한 것 같다고 한다.
장자가 중국 문화에 기여한 것은 소요라는 두 글자이며, 이미 이것을 알고 있으니 조급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중국 문화의 독특한 진수, 정신적인 즐거움이 장자로 인해 기인한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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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어릴 때 장자의 붕이라는 새를 듣고 매혹된 적이 있었다 수천리의 크기의 등을 가지고 있고 한번 날아오르면 구천리를 난다는 상상 속의 아니 신화적인 새 그 붕은 곤이라는 물고기가 변하여 되는 것이라는데 곤은 북명이라는 바다에 사는 물고기로서 역시 크기가 수천리가 되는 거대어이다 가히 상상이 되지 않는 압도적인 상상력과 의식의 결과물인 장자의 사유란 어떤 것일까 궁금할 법도 했건만 아뿔사 그때는 너무 어려 장자의 심원한 사유에 관심을 가지기 보다는 단지 붕과 곤의 가공할 스케일과 그 거대함을 낳은 자유분방한 호방함에만 관심이 가고 매혹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흘렀다 나는 조금은 머리가 큰 상태가 되었고 장자의 붕이 현실세계를 초탈해 영원과 무한을 향해 날아가는 정신적 존재라는 것쯤을 어렴풋이 알게 되는 나이가 되었다 그동안 주워 들은 것이 있어서 장자 혹은 장자의 사상에 대해서도 조금쯤은 알게 되고 말할 수도 있게 되었다 그러나 어디 그렇게 쉽게 재어보고 속단할 수 있는 것이 거인 장자일까 장자는 단 한권의 책을 남겼다 그것은 노자 역시 마찬가지이다 장선생 노선생 모두들 지고한 신공의 절정고수들이다 이 강호의 냉혹한 세계에서 몇 천년동안 그리고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위대한 저술을 하신 분들이라는 말이다 나같은 미미한 존재가 감히 안다고 말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범접할 수 없는 드높은 정신의 소유자들이다 이런 뜬구름 잡는 푸념 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읽어도 실체가 잡히지 않는 오리무중한 그러니까 난삽한 사상을 남기신 분들이다 장자는 더욱 더 그런 경향이 심했다 제길슨 우화라고 하면 쉬워야 하는데 읽을수록 태산이 나타나는 이 어지러움은 무언가 그런 장자에 대한 난독의 고민은 강호의 유수한 대학자들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장자에 대한 그많은 학설들과 하나로 정립되지 않는 이론들은 장자가 괴물이라는 반증에 다름아니다 장자는 그러니까 많은 사람들을 잡아먹는 다시 말해 미로같은 또는 안개속의 책이었다 지난 장구한 시간 동안 장자를 읽고 글 좀 쓴다는 사람들이 수고를 기울였지만 그들이 남긴 논문들은 모두 하나같이 다 제각각 백가쟁명의 다른 목소리들이었다
이런 장자에 대한 접근방법의 난공불락에 장자는 그냥 하나의 감상하는 우화 그렇다 말 그대로 우화로만 읽었던 것이 나의 장ㅂ자 독법이었다 장자를 읽는 좀 더 정확한 길은 없을까 이런 의문에서 나온 필요성의 열망이 이 책 [나는장자다]를 소구하게 되었다 작가 소개에 나온 대로 이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대단한 석학임을 몸소 실감할 수 있었다 동서를 하나로 관통시키고 고금을 하나로 원융하여 종합적이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장자에게 다가가는 길을 제시해 준다 다만 지은이의 주관적인 독법이 때로는 지나쳐 새롭고 독창적인 읽기를 지나 지은이의 주관적인 독단에 이르는 대목이 있음을 지적 아니할 수가 없다 중국 고전에 대한 교양적 배경 뿐만이 아니라 서구의 철학과 문학에까지 이르는 폭넓은 지식으로 동양 철학의 제반사항의 특징들을 나란히 서구의 그것과 대비 대조하면서 때로는 공통점을 때로는 차이를 지적하는데는 감탄할 수 밖에 없다 이 책은 장자중에서도 내편만을 주해 해설한 책이다 내편이 진짜 장자의 저작이고 외편과 잡편은 장자의 이름을 빌린 다른 이의 저술이라고 알려져 있다 장자의 내편을 저자가 자신만의 독특한 인생공부를 바탕으로 새롭게 해석한 이 책은 장자를 이해하는 데에 새로운 방법을 알려준다 요컨대 장자의 마음을 헤아려 소요유와 양생과 제물로 특징되는 장자의 사상을 나아가 장자의 인생과 성격까지도 어렴풋하게 짐작하게 하는 혁신적인 책이다 그러나 아마추어가 쓴 책이라는 느낌도 지울 수가 없는 것은 저자의 연구가 넓긴 하지만 얕은 것이라는 단점과 관련이 있다 그러나 그런 맹점을 감안하더라도 장자 읽기에 새롭게 독창적이며 대담하기까지 한 시도를 가했고 일정이상의 소기의 성과를 이루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가 없다 장자를 객관적으로 읽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동의할 수없는 부분들이 있지만 새로운 장자 그리고 장자의 마음과 성격 그리고 장자의 환경까지 헤아려 일고 싶은 사람들에게라면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