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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평창 롱패딩이 우리 사회에 대단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처음엔 그 현상이 단순히 평창 동계 올림픽의 성공적 개최에 대한 관심이나 기대를 반영하는 것으로 생각했었지만, 그 제품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거의 맹목적인 열광처럼 번져나가서 언론의 집중적인 조명을 받기도 했다. 그것은 유행에 민감한 우리 사회의 일시적 현상일 수도 있고 어떤 특정 집단에 속한다는 소속감의 표시로 이해될 수도 있을 것이다. 여하튼 이런 현상을 보면서 패션이 우리의 인식과 삶에 끼치는 영향과 파장이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 간접적으로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같은 평창 롱패딩 현상만큼이나 흥미롭고 재미있는 주제를 다루는 작품이 아마도 연희원이 쓴 『소크라테스 씨, 멋지게 차려입고 어딜 가시나요?』가 아닐까 싶다. 제목부터가 대단히 신선하면서도 독자의 이목을 끈다. 도대체 소크라테스가 어떤 옷을 입었기에 이렇게 질문하는 걸까? 그러고 보면, 우리 대부분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에 대해서 적어도 한번쯤은 들은 적이 있고, 학창 시절 교과서나 다른 여러 교양서적들을 통해 그들을 주제로 하는 조각이나 회화나 동상을 본 적이 있다. 하지만 우리 중에 그들이 차려입은 의상에 주목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런데 이 책에서 저자는 우리가 대단히 무심코 보고서 지나쳐버린 것들, 곧 위대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의 패션에 주목함으로써 그 시대의 의식과 유행과 지배질서와 권력구조를 분석하는 대단히 독특한 발상을 전개한다. 왜냐하면 흔히 앞서 언급한 위대한 세 명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을 떠올릴 때 무엇보다 가장 먼저 우리에게 생각나는 것은 누가 뭐래도 그들이 주장하고 제안한 철학이나 사상이지, 결코 미술 작품 속에 표현된 그들의 복장이나 외형은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남성 시민 중심의 그리스 사회에서 가장 대표적이고 전형적인 복장이 나체룩이라는 저자의 제안이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나체 자체가 하나의 의상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당시 고대 그리스의 상황을 생각하면 납득이 된다. 당시에는 남성 시민들만 전쟁에 참여할 수 있었으며, 그런 이유로 남성 시민이라면 누구나 평상시 운동을 통한 체력 단련과 군사 훈련은 필수였다. 그래서 남성 시민들은 체육관에서 나체로 운동을 했는데, 이렇게 보면 나체는 당시에 일종의 스포츠웨어인 셈이었다. 우리에게 위대한 철학자로 깊이 각인되어 있는 소크라테스나 플라톤도 여느 그리스 남성 시민들처럼 이런 모습으로 운동을 즐겼다니, 조금은 낯설면서도 신기한 느낌을 감출 수 없다. 또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고대 그리스가 우리의 상식적인 이해(민주주의의 기원)와 달리 남성 시민 중심의 사회여서 패션의 주도권이 남성 시민에게 있었을 뿐 아니라 남성 시민의 패션을 통해서 정치권력과 사회구조의 위계질서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좀 전에 언급한 나체 스타일의 패션도 결국은 시민권을 소유하고 특권을 누리며 권리를 행사할 뿐 아니라 시민으로서 의무를 담당한 모든 남성 시민들의 전유물이어서, 시민이 아닌 모든 대상은 여기에서 철저히 배제된다. 물론 헤타이라(고대 그리스의 고급 매춘부)가 화려한 의상과 화장으로 패션의 각도에서 독특한 지위를 차지하긴 하지만, 그들도 결코 주류가 될 수는 없고 단지 패션의 변방에 위치할 뿐이다(물론 그 밖의 보통 여성들은 시민 남성들과 비교할 때 독특하고 개성 있는 패션과는 거리가 멀다). 저자가 이 책에서 위대한 철학자들의 패션을 분석하여 당시 시대상과 권력구조를 분석하는 내용을 읽으면서, 나는 아무리 위대한 철학자들도 자신이 속한 시대적 상황과 환경에서 완전히 동떨어져서 독자적으로 자신만의 사상체계나 철학체계를 구축할 수 없으며 결국 그들 역시 시대의 아들로서 시대적 한계와 제한 속에서(물론 그것이 제약으로 작용한다는 명확한 인식을 갖지 못한 상태로)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음을 더욱 절감하게 되었다. 이런 인식이 단순히 그들의 사상이나 철학에 대한 직접적 분석이나 연구로 얻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이 일상적으로 착용했던 의상들을 조사하고 해석하는 이 책을 통해서 자연스럽게 도달한 것임을 생각하면, 이 책은 참으로 삶의 인문학, 생활의 인문학을 가장 훌륭한 본보기로 보여주는 작품이 아닌가 한다. 위대한 철학자들의 패션에 숨겨진 기호학적 의미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한번 읽어볼 것을 권유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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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 - 패션으로 본 인문학 이야기 저자 - 연희원 어렸을 때 우리 집에는 세계 역사 전집이 있었다. 지도와 사진, 그림과 함께 작은 글자가 아주 빽빽하게 적혀있던 10권이 넘는 책이었다. 당연히 어릴 적의 나는 작은 글자보다는 거기에 수록된 다양한 사진들을 더 좋아했다. 그 중에서도 바로크와 로코코 시대의 화려한 드레스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소재로 한 다양한 그림들을 특히 좋아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그리스 시대에는 남자들이 헐벗고 있고, 그리스 로마 신화를 그린 그림은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다 벗고 있었으며, 르네상스 이후에는 여자들이 옷을 안 입고 있었던 것이다. 그 당시에는 그냥 옷을 벗는 성별도 시대에 따라 유행을 타는 건가라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을 잊고 있다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어린 시절의 그 기억이 떠올랐다. 이 책에서는, 왜 그리스 시대에는 헐벗은 남자들 그림이 많았는지 이유를 알려주고 있었다. 저자는 그리스 시대의 지배계층인 재산과 참정권이 있는 남자와 고급 매춘부인 ‘헤타이라’, 그리고 남자들의 아내와 딸인 여자들과 노예로 나누어 각각의 패션을 설명하고 있다. 그 시절에 외모를 꾸밀 수가 있는 부류는 남자와 헤타이라 뿐이었다. 헤타이라야 남자들을 유혹하는 것이 목적이기에 그러려니 하겠지만, 남자가 외모를 가꾼다고? 여자가 아니라? 책을 읽으면서, 뭔가 많이 불공평하고 황당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건 전형적인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예가 아닐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경우에 그는 국가란 남자 시민들로 이루어져야 하고, 여자들은 밖으로 돌아다니지 말고 집안일이나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여자들이 남자와 똑같이 운동을 하고 바깥일을 하는 스파르타를 싫어했다고 한다. 그는 스파르타 여자들이 화장을 하고 다니는 것을 보고 온갖 방종과 사치에 탐닉했다고 비판했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그리스의 고급 매춘부인 헤타이라가 패셔니스타로 활동하는 것이나, 남자들이 자신을 꾸미고 심지어 멋진 근육을 자랑하기 위해 나체로 운동하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여겼다고 한다. 그건 ‘플라톤’이나 ‘소크라테스’ 역시 그리 다르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스 시대에 나체로 몸매를 자랑할 수 있는 건, 오직 남자들뿐이었다는 사실 역시 좀 웃겼다. 심지어 ‘프리네’라는 헤타이라는 연극에서 나체를 보였다고, 재판에 회부되기까지 했다고 한다. 나체로 멋진 몸매를 자랑할 수 있는 건, 오직 남자들뿐이었던 것이다. 물론 남자라고 해서 다 그럴 수 있는 건 아니다. 참정권이 없는 사람들은 제외된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그리스가 말한 민주주의라는 것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게 된다. 학교 다닐 때 금권정치라든지 차별적 민주주의라는 말을 들은 것 같은데, 이런 부분까지 나누어놓았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단지 옛날 중국처럼 황제나 황족들만이 사용할 수 있는 색이나 신료들의 지위에 따라 관복색에 차이를 두었을 것이라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리스에서 한 건, 색차별보다 더 심했다. 지들은 매춘부 끼고 먹고 마시고 노는데, 그 음식이랑 장소 준비 다 한 부인이랑 딸은 방구석에 처박혀 있으라고 한 게 말이 되나? 아, 그래서 요즘은 술집이나 룸살롱으로 가는 건가? 책을 읽으면서, 인간이란 고대 그리스 시대나 요즘이나 별로 다를 바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은 다른 사람들과 차별되는 뭔가를 갖기 원했고,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그 뭔가를 따라하거나 갖기 원했다. 그리스 시대에는 차별되는 뭔가가 화장이었다. 지금은 화장이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허용되었고, 다른 뭔가가 또 차별을 가르는 요소가 되었다. 예를 들면 집이나 자동차? 어쩌면 역사라는 건, 계속해서 차별적인 그 뭔가를 발견하고 그것을 따라 갖고, 그러면 또 다른 뭔가를 찾아내는 것의 연속인가보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를 투쟁의 역사라고 하는 걸까? 어린 시절의 궁금증을 거의 30년 만에 해결할 수 있었던, 재미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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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복이 인간의 삶에 차지하는 비중이 지대하다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패션이 우리 삶을 좌우한다고 해도 된다는 말이다. 이 책은 그리스의 철학자들을 전면에 내세우면서 패션과 인간 존재 방식을 생각해 보고 있다. 패션이 권력이 되고 패션이 정치학이 되는 삶은 그리스뿐만이 아니리라. 우리나라도 복식에 따라 신분의 차이를 나타낸 적도 있고, 그것으로 삶의 질을 나타낸 적도 있다. 오늘날도 명품브랜드를 추구하는 명품 족들의 돈 자랑을 우리는 목도하기도 한다. 이처럼 옷이 삶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하다. 이것을 그리스의 대학자들인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의 이야기를 통해서 생각해 본다. 육체를 영혼의 감옥으로 생각했던 플라톤이 나체로 운동하는 것을 선호했다는 것은 무척 낯선 내용이라고 할 수 있을 듯하다. 육체는 생생한 현실의 불순한 것이니까? 하지만 그는 <국가>에서 나체 운동을 열렬히 지지한다. 그리고 자신도 나체로 운동하는 것을 즐긴다. 그것은 아마 일상의 힘든 노역에 허덕이는 노예들의 육체와 구분되는 근육과 탄력이 빛을 발하는 육체에 대해 우월감이 가져온 생각이 아닌가 여겨진다. 나체에 대한 관대함을 나타낸 것이 육체미에 대한 자랑과 힘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리라. 그는 건장한 육체를 가지고 있었고 군인으로도 나갔으며, 운동으로 면류관도 받았다. 그는 당시의 이종격투기격인 판크라티온 경기의 대가였다. 그 경기가 올림픽 종목이 되었을 때 우승한 적도 있다고 한다. 이런 그의 강건한 육체가 비교적인 관점에서 나체 운동의 선호로 나타난 것이리라 여겨진다. 그것은 패션이었고, 그들의 힘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헤타이라는 코린트 시에 기거하는 그리스 시대에 남성들을 유혹한 고급 매춘부라 할 수 있다. 이름 있는 사람들이 그들과 관련이 되지 않은 사람이 없다시피 한다고 한다. 그것은 하나의 문화라 보면 될 듯하다. 아름다움을 찾는 문화. 그들은 화려한 패션을 하고 예쁜 화장을 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한껏 드러낸다. 그 모습이 좋아 보여 어느 곳에선 본받아 일반화되기도 했다고 한다. 아리스토텔레스도 이 헤타이라와 밀접한 관련을 가졌다. 그는 육체적으로 빈약했다. 그래서 화려한 복색을 좋아했고, 그렇게 코린트 시를 찾았다 한다. 그는 헤타이라인 필리스를 만날 때도 이런 차림으로 만나고 그녀에게 푹 빠진다. 그는 국가는 차별 없는 평등을 지향한다고 했지만 그것은 국가의 남성들에게만 한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여성, 노예 등을 지극히 낮춰 보면 경향이 있었다. 그것은 그의 문제가 아니라 당대 사회의 문제이긴 했다. 하지만 그의 사고에서 여성들에 대한 부정적인 관점은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그들의 헤타이라에 관한 관점은 조선의 명기 황진이를 생각하면 되리라 여겨진다. 지체 있는 선비들이 그의 치맛폭에 놀아난 것을 우리는 안다. 그들도 여성들에 대한 생각이 그리 너그럽지 못했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황진이에게 그의 마음을 내줬고, 더러는 조롱을 당하기도 했다. 아리스토텔레스도 황진이와 관련한 조선의 선비들과 비슷한 상황을 보이고 있다. 그의 학문은 지금에도 곳곳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그의 삶이 주는 희극적인 요소도 없잖아 있다. 그것은 필리스와의 관계를 풍자한 판화, 조각들을 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이다. 그것들은 말이 된 아리스토텔레스와 그 위에 탄 필리스의 모습을 표현하고 있다. 필리스가 대학자인 그를 손아귀에 쥐고 흔들었다 볼 수 있는 내용이다. 물론 후대에 상상력을 동원해 표현하고, 풍자했겠지만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녀와 결혼했다는 사실을 통해 우리는 그러한 일들을 인지할 수 있다.
스크라테스는 건장한 사람이다. 그를 사랑한 청년 알키비아데스는 어떻게 하던 그의 마음을 잡아보기 위해 노력한다. 심지어 나체로 운동을 같이 하자고 부추겨 그렇게 한다. 하지만 플라톤의 향연에서 보면 소크라테스는 그의 노력을 거부한다. 이 아름다운 청년은 마음의 아픔을 지닌다. 하지만 소크라테스는 다른 아름다운 청년인 비극 시인 아가톤은 가깝게 둔다. 향연에서 그를 만나러 가면서 한껏 멋진 차림을 한다. 누가 그에게 묻는다. 왜 그렇게 아름답게 치장을 하고 가느냐고? 그는 “아름다운 자의 집에 아름다운 자로 가려고 하네.” 라고 대답한다. 그처럼 탁월한 영혼과 정신의 소유자인 소크라테스가 이렇게 의복에 대해 마음을 쓰는 것은 의외다. 아가톤과의 애정은 일상화된 내용은 아니리라. 그런 사연들이 그리 달갑게 다가오지 않는다. 치장과 권력 그리고 의복의 인간 관계가 정치적 목적으로도 이해가 되는 상황에서 군인들이 지배했던 당대에 투구, 군복 등은 위엄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로 인식되었다. 또한 화려한 의복은 부를 상징하기도 했다. 하지만 아테네를 중심으로 한 그리스는 나체에서 상당한 매력을 찾고 있다. 그리고 나체는 빛나는 노래를 발산하고 있다. 아마 아름다움의 원형을 그곳에서 찾기 때문인 듯하다. 이상과 도덕, 고상한 인격을 지향하는 자들도 거의 헤타이라의 유혹에 합류된다. 그들의 삶이 헤타이라와 접맥되는 것에 부정적인 시각이 없었기 때문인 듯하다. 지금의 항상 같으면 많은 문제가 되었을 것이지만 시대적 상황과 흐름이 그들에게 그 같은 자유를 용인하는 시대였던 듯하다. 이런 일은 아래의 프리네와 관련된 예에서 본질을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진다.
프리네는 신성 모독죄로 법정에 선다. 소크라테스가 부여받은 죄목이다. 배심원들을 둔 법정에서 재판를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 과정에서 프리네에게 결과가 불리하게 돌아가고 남자 친구가 배심원들을 설득하지 못하자 그는 프리네의 옷을 벗겨버린다. 배심원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난 완벽한 미의 여성, 그것을 본 배심원들은 그 몸매를 신의 의지로 받아드리고 무죄로 선고한다, 어찌 보면 황당할 수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미를 추구하고 가치를 수용하는 그들의 모습이 잘 보여 지는 예화라 할 수 있다. 의복이 생활을 지배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틀어 당연한 일들이다. 꾸밈이 그 가치를 만드는 것도 일반적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성형과 화장은 그런 예가 되리라 생각된다. 그런데 이 책에서는 많은 치장의 부분을 나체에 할애하고 있다. 그것은 자연 상태 그대로의 미를 나타내기 위한 구성이 아닐까 여겨진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서 그리스의 유명 철학자들이 갖는 본질적인 애욕을 드러내면서 그것이 당대의 일반적인 문화였고, 삶이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철학, 문화. 예술 등의 격조 높은 배경 뒤에 인간적인 본능이 존재하고 있었음을 의복과 치장을 통해 드러내 보여주고자 하고 있는 책이라 여겨진다. 그런 가운데 삶의 본질을 찾아보고 있다고 생각된다. 우리가 호텔이나 공식적인 장소에 갈 때 어떤 차를 타고 가느냐에 따라 대우를 달리 받는 것도 이런 각도에서 보면 될 듯하다. 하나의 필요에 의한 문화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