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황진규의 글은 그가 운영하는 블로그를 통해서 처음 접했다. 어렵고
딱딱한 이야기를 편안한 문체로 쓰는 젊은 철학자. 다른 책에서 접했으나 정리되지 않던 철학적 주제들이
그의 논리적이고 간결한 설명으로 쉽게 이해되는 경험을 했다. 연애에 관한 그의 철학적 사유도 신선하고
흥미롭다. 오래 생각했던 문제에 대해 깨달음을 주는 부분도 있지만, 쉽게
동의하지 못하는 부분도 있다. 몇 가지 나의 관점에서 저자의 연애에 관한 철학을 해석해 보자.
저자는 자존감은 ‘자신이 사랑받은 기억의 총 합’이라고 얘기하면서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이 된 거라고 말한다. 중요한 말이다. <사랑의 과학>이라는 책에서도 언뜻 본 것 같은데, 인간의 뇌중 변연계는 포유류에
발달한 뇌로 관계와 애정을 관장하는 영역이다. 인간에게 먹고 자고 입을 것만 제공하면 생존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유아기에 적절한 애정과 관심을 받지 못한 아이는 살아남지 못한다는 것이 실험으로 증명되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미성숙한 채로 태어난다. 부모의 돌봄이
없이는 단 하루도 생존할 수 없다. 아이는 일상적으로 생존의 불안을 경험하게 되고 트라우마로 상처를
입게 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애정결핍이 내재된 존재로 자라게 되고,
그 것을 해소하려는 욕구를 늘 지니고 있다. 관계를 통해서 만족을 느끼고 인정과 칭찬을
받으면 행복감을 느끼며 애정결핍을 해소하지만, 궁극적이고 적극적인 해결 방법은 연애라는 것이다.
저자가 다른 글에서도 자주 말하는 것이 라캉의 ‘인간은 금지된 것을
욕망한다’라는 경구이다. 특히, 섹스의 과도한 억압이 반대로 욕망을 부추긴다는 거다. 동물과는 달리
인간에게 섹스가 은밀하고 터부시 되는 이유를 데카르트의 이원론에서 찾고 있는데, 이를 테면 정신과 육체에서
정신을 상위 개념으로 보면서 육체적인 욕망이 저급한 것으로 여겨졌다는 거다. 고대 플라톤 철학이나 기독교
사상에서도 일부 찾아볼 수 있는 논리다.
반대로 예전에 읽은 <털없는 원숭이>의 데즈먼드 모리스는 섹스가 은밀해진 이유를 좀 다른 관점에서 조망하는데,
이는 인간의 행동을 철학적으로 분석하느냐, 아니면 과학의 틀로 보느냐는 두 관점의 비교로도
흥미로울 수 있겠다. 예를 들면, 인간의 성행위는 그 어떤
동물이나 영장류보다 격렬하다. 저자는 아마도 금지된 것에 대한 욕망의 표출이라 보겠지만, 진화심리학에서는 이를 남녀의 성행위를 복잡하고 보람 있게 만들어서 남녀관계를 더욱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한다.
사회적 무리를 이룬 인간조상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서로 협력하는 것이 생존을 위해 유리하다는 것을 인지하고, 한 수컷이 많은 암컷을 차지하기 보다는 한 쌍의 관계로만 만족하는 길을 선택하게 된다. 일부일처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성행위는 더 친밀하고 보람되어야 하며, 다른
동물과는 달리 언제 어디 서고 가능해야 했던 거라는 진화심리학적 이론이다. 성행위가 은밀해진 이유도
금지된 욕망이어서가 아니라, 일부일처에서는 제3자를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도록 해서 성적 신호를 줄일 필요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책에서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유아적 사랑에 대한 논의다. 친구나
직장 동료에게는 한없이 친절하고 착한 사람이 자신의 연인에게는 쉽게 짜증 내고 화를 내는 심리는 어떤 걸까? 이는
바로 아이가 엄마에게 떼를 써도 엄마가 언제나 자신을 받아들여줄 거라고 믿는 것과 유사한 정서다. 바로
상대방의 사랑을 무조건적 사랑인 '상수'로 보는 거다. 아무리 꼴통 아이라도 옆집 아줌마에게 떼를 쓰지는 않는다. 연인에게
무례할 수 있는 것은 상대방이 언제까지 자신을 이해해주고 한없는 사랑을 주는 존재로 보기 때문이다.
연인의 사랑은 변수다. 상대방의 사랑을 상수로 보고 어린 아이처럼
모든 감정을 무례하게 쏟아낸다면, 그 사랑은 성숙하지 않은 유아적 사랑이다. 상대를 지치고 힘들게 한다. 내 연인은 내가 이렇게 해도 다 이해해
주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심각한 오해다. 예전에 신영복 선생의 ‘관대한
사람’에 대한 얘기가 생각난다. 관대한 사람은 약자에게 관대하다. 강자에 대한 관대함은 미덕이 아니다. 마찬가지로 사랑받을 때 상대방에게
하는 모습이 그 사람의 품성이다. 사랑하는 사람에게는 누구나 잘 해주지만 사랑받을 때 무례하고 오만하다면
그 사람이 바로 유아적인 것 아닐까.
저자가 연애 예찬론자이다 보니, 가슴 식은 연애는 뒤돌아보지 말고
헤어지라는 듯 말하는 부분은 나와 생각이 좀 다르다. 사랑이라는 것이 가슴 떨림 그것만을 말한다면, 모든 사랑이 오래가지 못할 거다. 예전에 다큐를 보니 사랑이 뜨거운
열병이라면 그 기간은 최대 3년 미만이라고 한다. 그 열병이
식고 가슴뜀이 잦아들면 이제 나를 다시 끓게 만드는 새로운 연인을 찾아갈 것인가? 세상에는 연애 말고도
해야 할 일이 많고, 열정과 뜨거움만을 찾아 열병을 앓는다면 우리는 자동차를 만들거나 민주주의를 이뤄낼
겨를도 없었을 거다. 인간은 그렇게 일부러 사랑의 유효기간이 길지 않도록 설계된 것인지도 모른다. 그 뜨거운 열병 이후 서로의 유대, 이해, 배려로 연결된 사랑도 괜찮은 사랑 아닐까? 그런 생각을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