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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 의미에 대한 절대적 믿음이 완전한 실패를 영웅적인 승리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솔직히 위의 문장은 완전히 수긍이 가는 말은 아니다. 완전한 실패는 완전한 실패일뿐이지 않은가? 완전한 실패를 영웅적인 승리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는 말은 그저 정신 승리 할 수 있다는 말 밖으로는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빅터 프랭클씨가 그의 로고테라피에서나 인생관으로나 삶에 있어서의 의미찾기와 삶에 대한 인간의 태도에 얼마나 깊은 믿음 그러니까 인간과 삶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던가를 말해 주는 문장이라고는 생각된다. 삶의 의미를 찾아서라는 본서는 [죽음의 수용소에서]라는 그의 저서에서 언급된 로고테라피에 대한 이론 전반이 이해하기 쉽게 서술된 대중적 학술서랄 수 있을 저작이다. 많지도 않은 페이지에 확실히 그의 이론적 체계를 들려주고 있다. 그리고 모호한 행복보다 확실한 의미 찾기가 분명 삶을 풍요롭게 하리라는 생각은 들게 한다. 언젠가 부터 내게는 행복을 느끼는 감각이 사라진듯 했고 그래서 그 반향인지 더욱 행복하고 싶다는 욕구가 샘솟았다. "행복하고 싶다" "행복해 보고 싶다" 이런 막연하지만 끈질긴 욕구가 말이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과잉 반사 , 지나친 주의 집중이 오히려 행복을 가로막을 수 있겠다는 이해가 들었다. 목표의 성취가 행복을 느낄 이유를 만들어낸다. 다시 말하자면 만약 행복할 이유가 있다면 자동적으로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은 인간이 행복을 추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인간이 행복을 동기의 목표로 삼으면 필연적으로 그것을 관심의 목표로 삼게 된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행복할 이유를 보지 못하게 될 것이 분명하고, 그러면 행복 그 자체가 사라져 버리고 만다. 그의 이런 말에 자연스러운 삶의 목표를 성취해 나아가는 과정 중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어야지 행복만을 추구하는 무턱대는 행동은 오히려 행복을 멀어지게 만들고 마는 것이구나 하고 납득해 버렸다. 그리고 내 삶에서 끊임이 없던 시련들에 매몰되어 가던 내 영혼이 이런 삶에서도 의미를 찾아야 겠다는 자성을 하게 하는 저자의 말들이 울림이 깊다. 시련의 경우에 있어서, 인간은 실제로 자기 운명에 대해 어떤 입장을 취한다. 그렇지 않으면 시련이 의미를 가질 수 없다. 바뀔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운명이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을 바꿀 수는 있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인간이 아니다. 지나온 생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그에 대한 해석을 달리 하는 것도 의미가 없는 것은 아니겠으나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의 고난에 대한 태도를 달리 갖는 것이라는 깨우침을 주었다. 그리고 삶에 있어서 자신에게만 주의 집중하는 것도 역효과를 가져온다는 것을 빅터 프랭클씨는 일깨워줬다. 과잉 반사란 지나친 주의 집중을 의미한다. ... 집단적 과잉 반사...... 미국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자신에 대한 해석과 자아 실현이 지고의 가치를 지닌 행위로 여겨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런 풍토에서 성장한 사람들은 심하게 훼손된 과거가 운명적으로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히게 되고, 결국은 실제로 무능한 존재가 되어 버리고 만다. 자신에 대한 해석, 자신의 삶에 대한 집요한 집중과 해석, 자기 실현을 지나치게 주요한 일로 치부하는 것 등이 오히려 자신을 망칠 수도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내게는 이러한 경향이 짙었기에 더더욱이나 필요한 일깨움이 아니었나 싶다. 저서에 등장하는 저자의 동료(?)인가가 구소련의 모스크바를 다녀오고는 그곳에서는 신경증 환자가 드물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공산사회에서는 주기별로 완수해야 할 목표가 주어지기 때문일 것이라는 해석을 하던데. 그 대목을 보며 생각했다. 삶에서 주어지는 시련이나 고난에 대한 태도와 입장을 변화시키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막연한 의미 찾기를 어떻게 구체화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을. 삶을 관통하는 인생 전체의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면 그때 그때 다가오는 목표들을 의미로 생각하면 되겠구나 하는 생각도 했다. 인간은 세계 안으로 들어가 어떤 행동을 하는 존재, 하이데거의 말을 빌자면 '세계 내의 존재' being-in-the-world이며, 그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인간이 그것을 향해 자기를 초월할 수 있는 다른 존재와 의미들로 충만해 있는 곳이다. 한정된 자기를 초월하고 희미하고 막연한 삶의 의미를 뚜렷히 찾을 수 있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빅터 프랭클씨의 인간관 세계관의 깊이도 적지 않은 감상을 갖게 한다. 그럼에도 아직은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것이 너무도 모호하고 막연하지만 "우리는 반신반의하는 동시에 전심전력할 수도 있다."는 고든 W. 알포트씨의 말을 곱씹으며 빅터 프랭클씨가 말하는 의미 찾기를 바탕으로 살아가 봐야 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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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의학박사,철학박사로서 정신요법의 제3학파라 불리는 로고테라피학파의 창시자! 의사로서도 신경학과 정신의학 두 분야에 종사하는 학자이면서, 동시에 4군데 강제수용소를 거친 후 살아남은 사람이다. 그 과정에서 그는 인간이 최악의 조건에서도 그에 저항하며 용감히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존재임을 직접 목격했다. 저자는 정신의학 치료에서 중요한 것은 테크닉이 아니라, 의사와 환자 혹은 한 개인과 실존적 대면자 사이의 인간적인 관계라고 말한다. 로고테라피는 인간존재의 인간다움, 환자가 지닌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중요시 여긴다. 보통 흰 가운의 의사에게서 느껴지는 차가움, 거리감, 기계적 냉랭함, 불친절과는 거리가 먼 저자의 글에서 따뜻함과 위로 안도감이 느껴진다. 고난을 겪은 사람만이 지닐 수 있는 인간에 대한 초연한 긍정적인 믿음...제목(삶의 의미를 찾아서)과 부제(실패를 승리로 바꾸는 절대적 의미에 대한 절대적 믿음)에서 드러나듯, 의학과 심리학과 철학을 통해 고통과 절망 가운데서 다시 삶의 의미를 되찾게 되고, 실패도 승리로 바꿀 수 있는 용감한 선택을 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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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빅터 프랭클이 1966년 여름 학기에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에 있는 대학교의 퍼킨스 신학교에서 초청 강연의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로고테라피는 여타의 실존주의 정신의학파와는 대조적으로 자기만의 고유한 정신요법을 발전시켜 왔다. 로고테라피는 자유 의지, 의미를 찾으려는 의지, 삶의 의미가 포함되었다.
그의 대표작 [죽음의 수용소에서] 와 [삶의 의미를 찾아서]라는 책을 번역하게 되었다. 누구나 가끔 ‘의미’라는 화두 앞에 언제나 망설이게 되고 도대체 내가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해야 하는지, 생각하면 할수록 아득한 느낌이 들 때가 있는데 이시형 역자님은 이 책을 펼친다고 한다.
강제수용소에서 나는 자살한 여자의 시신을 본 적이 있다. 그녀의 유품 중에 그녀가 쓴 글이 적힌 종이가 있었다. “운명보다 더 강한 것은 그것을 견디는 용기이다.” 정신분석은 모든 종류의 정신치료에 없어서는 안 될 기초가 되고 있으며, 앞으로 어떤 새로운 학파가 나타난다고 해도 영원히 그럴 그럴 것이다.
억압은 증대하는 의식의 반작용을 받는다. 억압된 인격은 자각을 하도록 해야 한다. 19세기의 기계론적인 이데올로기를 버리고 20세기 실존철학의 눈으로 보면 정신분석은 인간의 자기 이해를 촉진시켰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인간이 자신을 초월해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견지에서 행동을 판단하고 평가하는 인간 고유의 능력을 갖기 위해서는 먼지 지각력이 있어야 한다.
인간을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층이나 켜의 견지에서 생각하는 것은 곧 인간 존재의 신체적인 면과 정신적인 면, 그리고 지적인 면이 각각 분리될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인간에 관한 문제를 취급한다는 것을 의미한다.p44
이기주의나 이타주의와 같은 도덕적 이분법은 진부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기주의자는 다른 사람을 오로지 주시함으로써 이익을 얻을 수 있고, 반대로 이타주의자는 ? 바로 그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 항상 자신에게 신경을 써야만 하는 사람이다. 로고테라피는 오히려 인생에 대한 낙관적인 접근법이다. 로고테라피는 인간이 그것에 대해 취하는 입장에 따라 긍정적인 성취로 바꾸는 것이 불가능한 비극적이고 부정적인 요소는 우리 삶에 없다고 가르치기 때문이다.
noological 신경증의 경우, 로고테라피가 매우 탁월한 치료법이라고 할 수 있다. 자기 삶에 명백한 무의미함으로 인한 실존적 좌절의 포로가 된 환자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정신요법보다는 로고테라피라는 말이다. 정신분열증 환자의 경우, 로고테라피는 그에 관한 원인적 치료를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정신요법의 보조요법으로서 반응 억제라고 하는 로고테라피의 기법을 그런 환자에게 사용할 것을 권하고 있다.
아내가 죽은 후 우울증에 걸려 저자를 찾아온 개업의에게 소크라테스 대화 기법을 이용했다. 만약 아내 대신 그가 먼저 세상을 떠났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고 물었다. <아내가 그것을 어떻게 견디겠어요>그가 말했다. <보세요. 선생님. 부인께서는 그렇게 큰 시련을 면하셨습니다. 부인이 이런 시련을 당하지 않도록 해주신 분이 바로 선생님이십니다. 살아남아서 부인을 애도함으로써 그 대가를 치러야 합니다> 대화가 그로 하여금 시련의 의미를 찾도록 해주었다. 존재와 사물 사이에 있는 존재론적인 차이 혹은 그런 측면에서 궁극적인 존재와 인간 존재 사이의 차원적인 차이는 인간이 진정으로 신에 대해 말하는 것을 금지한다. 신에 대해 말하는 것은 존재를 사물로 만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은 자신이 쓴 저명한 저서에서 이렇게 결론을 맺었다. “무엇에 대해 말할 수 없으면, 그것에 대해 침묵을 지켜야 한다.”p229
로고테라피는 인간의 의미를 추구하는 존재로, 그리고 그것을 완수할 책임이 있는 존재로 간주하고 있다. 로고테라피는 인간으로 하여금 그가 ‘책임져야 할 것에 대해’ ‘책임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식하도록 하는 것을 그 자신의 과제로 삼고 있다. 이것은 로고테라피 치료 의사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그 역시 스스로 자기 책임이 무엇인지 자각하고 있어야 한다. 다른 말로 하자면 그가 하나의 독립된 영혼이 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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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터 플랭클의 책들 특별 보급판이나왔습니다. 빅터 플랭클의
삶의 의미를 찾아서실패를 승리로 바꾸는 절대적 의미에 대한 절대적 믿음저자가 미국 텍사스 주 댈러스에 있는 남부 감리교 대학교의 퍼킨스 신학교에서 했던 로고테라피의 기반을 이루고 있는 기본적인 가설과 교의를 제시한 강연의 내용을 정리한 책 |
| 삶의 의미. 저자는 먼저 이 로고테라피의 기본적인 원리에 대해서 말하는데 이것을 발견하게 되었던 것은 이전에 강제수용소에서 겪었던 것을 토대로 만들어지게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구체적인 사항을 인간의 정신세계에서 어떻게 비추어볼 수 있는지 전하고 있습니다. 처음 접하게 되는 정신적인 내용을 담고 있어서 그것들의 의미에 대해 깊이 있게 알아갈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