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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 르 클레지오가 우리나라를 배경으로 한, 우리나라 사람만 나오는 소설을 쓰다니 놀라웠다. 아직도 그의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가 눈에 선하다. 5월의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강의실 옥상에서 그의 첫 소설 '조서'를 읽었을 때가 말이다. 그 때 난 대학 신입생이었다. 늘 분주하기만 하던 봄이 차츰 지나고 모처럼 여유가 나서 손에 든 책이었다. 휴식을 함께 해 줄 편안한 친구가 되어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실수였다. 소설이... 참으로... 너무나 어려웠던 것이다. 도대체 이 작가 무엇을 얘기하는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었다. 반쯤 읽다가 포기하고 친구를 불러 주점에 갔다. 그토록 첫인상이 좋지 않었던 르 클레지오는 '황금 물고기'를 기점으로 내가 읽어야 할 작가가 되었고 그 뒤 많은 그의 소설을 만났다. 눈에 익으면 친해지기 마련이라 그의 소설도 제법 좋아하게 되었다. 그런 작가가 한국 소설과 다름없는 소설을 썼다고 하니 어찌 만나보지 않을 수 있을까? 당장 조우했다. 제목은 '빛나". 주인공 이름이다. 그녀는 전라도 어촌의 가난한 어부의 딸로 태어났다. 딸이라도 성공한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람으로 부모님은 없는 돈에 빚까지 져서 그녀를 서울에 있는 대학에 보냈다. 그러나 빛나는 서울에 와서 자신의 빛마저 꺼버릴 만큼의 차디찬 현실을 경험한다. 그녀는 날마다 자신의 존재감이 왜소해 지는 것을 느끼고 그로 인한 아픔을 다른 이들을 관찰하는 것으로 달랜다. 그것이 어느 정도 치유가 되었던 것은 빛나가 사람들을 바라볼 때 그냥 바라보는 게 아니라 자신이 보고 있는 사람에게 상상으로 빚은 스토리를 대입시켰기 때문이다. 그런 식으로 빛나는 회색빛 콘크리트 빌딩만큼이나 거대한 서울이란 현실에 빛조차 잘 들어오지 않고 누군가 종량제 봉투를 놓고 가는 자신이 사는 반지하 방처럼 짓눌린 자신을 혼자 만들어낸 이야기의 힘으로 버텨나간다. 그러던 어느날 사람들을 관찰하기 위해 자주 들른 서점에서 우연히 혼자만 즐겼던 자신의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들려줄 기회를 얻게 된다. 성경에서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 으스스한 이름의 살로메란 여자에게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들려 줄 기회를 말이다. 그것도 돈을 받고서. 살로메는 성경 속 존재가 그랬듯이 정말 예뻤으나 사지를 쓸 수 없는 여자였다. 그 마비가 점점 심해지고 있어서 시간이 갈수록 자신의 신체 한 부분을 잃어버리고 있었다. 이미 오래도록 세상과 이렇다할 교류를 못해 본 그녀는 빛나가 들려주는 이야기를 통해 그동안 단절되어 있던 세상과 연결되려 한다. 여기서 이 소설이 무엇에 대한 이야기인지 드러난다. 바로 연결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이 말이다. 서울에 사는 우리 모두가 느끼듯이 서울은 단절의 공간이다. 아파트만 봐도 그렇다. 사실 아파트 이웃간 거리는 시골 마을의 이웃간 거리보다 훨씬 가깝다. 시골 마을엔 담장과 마당이 가로 놓여 있지만 아파트에선 달랑 벽 하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그 벽 하나만 둔 사이인데도 우리는 저 벽 건너편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를 때가 많다. 얼굴 한 번 보지 못하고 수 년이 흐를 수도 있다. 격리와 고독은 도시를 살아가는 이라면 누구나 겪는 상황과 감정이다. 소설은 그런 단절의 공간에 연결을 가져 온다. 무엇보다 빛나가 살로메에게 하는 이야기가 그렇다. 빛나는 비둘기를 기르고 훈련시키는 전직 경찰 조씨를 비롯하여 미용실에 홀연히 나타난 키티라는 여자 아이 이야기, 가수로 성공한 나비라는 여자의 이야기, 아기일 때 버림을 받은 나오미의 이야기등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이 중 조씨의 이야기는 단절된 남과 북을 잇고, 키티의 이야기는 아파트에 고립된 사람들을 잇는다. 이러한 연결의 테마는 주인공의 이름에 이미 나타나 있다. 어둠 속에 단절된 존재들이 밝은 빛과 함께 모두 드러나는 것처럼 빛은 무엇보다 연결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연결이 다 좋은 것은 아니다. 그 중엔 나쁜 것도 있다. 권력이 개입될 때가 그렇다. 그것은 대등한 연결이 아니라 자기에게 종속시키는 연결이다. '빛나'는 그 위험도 제대로 자각하고 있다. 그것은 빛나가 좋아했던 남자 프레데릭과의 관계 그리고 살로메와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그녀의 현실은 그녀가 만들어내는 이야기와 차이가 난다. 이야기는 연결을 도모하지만 현실 속 빛나는 살로메와 서로 권력을 다투고 있기 때문이다. 빛나가 살로메에게 종속되어 있다고 느낄 때마다 그녀는 세헤라자드처럼 이야기를 뚝 끊어 살로메가 궁금증 때문에 이야기를 계속 들려달라 애원하는 모습을 통해 자신의 권력을 만끽한다. 이런 빛나와 살로메의 관계는 가수 나비의 이야기로 표상된다. 이렇게 소설은 연결이 가지고 있는 밝은 것과 어두운 것을 모조리 담아내면서 진정한 연결의 모습을 찾아 나간다. 읽으면서 놀랐다. 르 클레지오는 우리나라 작가가 썼다고 해도 믿어버릴만큼 진짜 우리나라 소설처럼 썼기 때문이다. 아무리 봐도 프랑스 작가의 소설 같지 않았다. 이런 걸 뭐라고 해야 할까? 현지화가 정말 잘 되었다고 해야 할까? 어쨌든 그래서 더 놀라며 읽게 된 소설이었다.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분단이라는 현실과 아직도 남아 있는 이념 갈등과 지역 감정 거기다 점점 심해지고 있는 빈익빈 부익부 때문에 우리 사회는 갈수록 단절이 확장되고 심화되고 있다. 그 와중에 사람들은 SNS를 통한 피상적인 연결에 만족하며 자신에게 침윤된 고독을 애써 잊으려 한다. 그러므로 '빛나'는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르 클레지오는 이방인이다. 때로 이방인은 내지인보다 우리가 가진 문제에 대해 더 잘 볼 수 있다고 했던가? 그런 게 느껴지는 소설이다. 나는 얼마나 많은 것에서 단절되어 있는지 한참 생각해 보게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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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어부의 딸, 빛나. 빛나는 대학공부를 위해 서울에 사는 고모의 집에서 머문다. 세상에 바라는 것 없는 순수한 배품은 없는걸까? 빛나가 고모의 집에서 지내는 대신 고모는 그녀의 딸 백화를 돌보고 바른 길로 갈수 있게 인도하는 역할을 빛나에게 부여한다. 그 의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빛나는 집을 나온다. 프레데릭 박을 만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샬로메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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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어부의 딸, 빛나. 빛나는 대학공부를 위해 서울에 사는 고모의 집에서 머문다. 세상에 바라는 것 없는 순수한 배품은 없는걸까? 빛나가 고모의 집에서 지내는 대신 고모는 그녀의 딸 백화를 돌보고 바른 길로 갈수 있게 인도하는 역할을 빛나에게 부여한다. 그 의무에서 벗어나기 위해 빛나는 집을 나온다. 프레데릭 박을 만나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샬로메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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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나_서울 하늘 아래] / J.M.G. 르 클레지오 지음 / 송기정 옮김 / 서울셀렉션(주) 펴냄 서울 도심 곳곳, 밝은 태양 아래 활기, 달빛에 숨어든 온기,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걸음이 뿜어내는 체온이 머무는 그림자는 이곳에 있다. 삶이 있기에 수반되는 죽음은 그늘에 숨어들었으나 그것을 끄집어내니 그 또한 삶의 한 부분이다. 뒤를 돌아볼 새도 없이, 한눈팔 새도 없이 내가 살고 있는 '서울'은 무심하다. 바쁜 일상을 핑계로 타인에게 무관심으로 일관하다 가끔 들려오는 뉴스거리에 귀 기울인다. 그제서야 비로소 누군가 지독한 외로움과 공허함에 가냘픈 몸짓을 퍼득이고 있었음을 안다. 그마저도 시간이 흐르면 그저 흘러간 이야기로 희미해진다. [빛나]를 집필한 저자는 프랑스인이다. 한국에 적을 두고 있지 않음에도 그가 쓴 [빛나]의 서울 도시 곳곳은 그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다. 휘황찬란한 도심의 불빛이, 경사진 골목 끝에 위치한 어둠을, 유유히 흐르는 한강이 품은 시간의 흐름이 표현되어 있다. 서울 지하철을 따라 만나는 동네와 그 안에 살아가는 소시민의 삶이 있다. 하루하루를 유심히 살펴 무심하지만 열심히 살아가는 삶이 있다. 윤동주의 [별]을 노래하고, 섬집아기의 악보가 그려진 정서는 저자가 타국인이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 가난은 빛나'의 삶을 옭아맨다. 전라도 어촌의 정적인 미로를 빠져나왔으나 서울은 녹록지 않다. 우연한 기회에 몸을 움직일 수 없어 죽음을 기다리는 '살로메'에게 이야기를 해주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액자 형식으로 이어지는 소설은 빛나의 현 이야기와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로 분류된다. 살로메는 오로지 빛나의 이야기를 통해서 휠체어에 얽매인 자유를 푼다. 살로메에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고통의 억압을 벗어나 자유를 향한다. 하늘을 누비는 비둘기의 눈으로, 골목골목을 스치는 고양이로, 자신의 모습을 찾아 결국 스스로 버린 한 소녀와, 부모에게 버림받은 갓난 아이의 모습을 통해 자유와 생명의 경중을 이야기한다. 이것은 빛나의 이야기이며, 살로메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제 곧 해방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현재만 중요하고 산 사람만 중요한 이 큰 도시에서, 이제는 나 자신을 위해 살 수 있을 것이다.'(p187 본문 발췌) 환한 빛에 둘러싸인 도시가 품어내는 온기는 차갑다. 그 속에서 많은 인생이 도시를 밝힌다. 서로를 향한 작은 관심이 온기를 퍼지게 한다. 우리의 이야기, 삶의 이야기는 "끝나지 않은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계속되는 이야기이지요."(p190 본문 발췌) 나에게 들려주는, 당신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빛나, 서울 하늘 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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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화려하다. 기본적으로 마천루의 높은 빌딩과 화려한 건물들에 낮에는 사람의 화려함으로, 밤에는 건물들의 세상을 비추는 환한 불빛들로 빛이난다. <빛나>라는 책의 제목은 서울의 모을 나타낸 단어인 듯 하다. 작가도 이런 서울의 모습 속에서 서울의 진정한 모습이 무엇인지 찾아내려 하는 듯 하다. 화려한 대도시에서 화려하지만은 않은 사람들이 살고 있고, 그렇게 사는 사람들이 대다수 일 것 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빛나,서울 하늘 아래>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는 르 클레지오라는 작가의 화려함 때문이다.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가 내가 살고 있는 도심 서울을 어떻게 그렸을지 너무 궁금했다. 외국인 작가가 대한민국의 작은 도시 서울을 배경으로 어떻게 소개를 했을까, 어떤 시각으로 바라봤을까 등이 궁금했고 더욱 친근하게 느껴졌다. 책은 '빛나'라는 주인공의 이야기 속의 몇 개의 이야기를 함께 다루고 있다. 타지에서 올라 온 힘든 서울살이의 주인공 빛나는 서울의 어둠을 대표하는 인물이고, 빛나가 살로메에게 들려주는 세상의 이야기들은 서울에서 일어나는 어두운 일들을 하나씩 다루고 있다. 작가가 빛나를 통해 본 서울이란 모습은 기본적으로 사회와의 단절을 의미한다. 정상적으로 소통하지 못하고 관계를 맺는 것에 힘들어 하는 모습에서 관계에 속아 더이상 맺지 않으려하고 이로 더욱 홀로 고립되어 간다. 이런 고립이 점점 세상과 자신의 관계를 멀어지게 하는 것임을 알지만 벗어나지지 않음에 힘들어한다. 하지만 빛나는 살로메의 죽음에 있어, 새로움을 깨닫게 된다. 빛나는 살로메의 세상에 갖는 관심과 자신과 살로메가 맺었던 관계를 통해서 이렇게 고립되어 가는 것이 바른 것이 아님을 깨닫는다. 살로메와 맺었던 관계가 살로메와 자신이 서로 의지하는 관계였고,이 관계로 아직도 정이란 것이 존재하며 이 것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임을 깨닫게 된다. 이런 것도 하나의 관계맺는 방법이며 세상으로 나가고자 하는 결심을 하게 된다. <빛나>는 주로 서울의 어두운 면을 다루고 이를 깨달아 가는 과정을 다룬다. 사실 서울에 사는 대부분의 서울 시민들이 생각하는 서울의 모습도 이런 어두운면 일 것 이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쓰고, 다른 사람과의 경쟁을 통해서만 내가 승자가 된 것만 같은 기분을 갖는 것. 그 것이 정녕 행복을 쟁취하는 방법은 아닐텐데, 어느덧 그런 사회적 분위기가 있다. 작가도 화려하고 세련된 서울의 모습에서 이런 어둡고 부정적인 면을 보고 이러한 '빛나'라는 소설을 쓴 것이 아닐까 한다. 우리는 각자의 빛나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것을 잊고 어렵게만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을 우리에게 알려주기 위해 제 3자인 외국인이,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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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 클레지오 이야기는 섬세하다. 처음 읽었던 그의 첫작품 <사막>은 이야기가 너무 강렬해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이야기가 생생히 기억에 남는다. 당시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에게 그 책을 막 선물하기도 했었네. 그런 그가 그려낸 서울 이야기는 어떨지 책을 펼치기 전부터 기대가 컸다. 르 클레지오는 여러 차례 한국을 방문하면서 한국 작가와 교류도 해왔거니와 2007년부터 2008년까지는 이대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며 서울에 머물기도 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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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작가가 표현한 '서울 속 이야기' 처음 이 소설을 접했을때는 "과연 외국인이 대한민국 을 어느정도 이해하고 있을까?"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수 없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이 소 설은 대한민국의 이야기였다. 한국인인 '나'스스로가 읽고,공감하고, 감동까지 했으니 두 말 이 필요없지 않은가? 실제로 '나' 는 소설속에 등장하는 빛나라는 이름을 가진 여성. 그리 고 그녀가 표현한 삶과 이야기에서 많은 공감대를 발견하게 된다. '빛나' 소설 속의 그녀는 많은 부조리를 감내한다. 자신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고모와 '열정 페이'로 빛나를 착취하는 대학 교수에 이르기까지, 그야말로 빛나의 존재는 오늘날 힘든 삶을 감내하는 많은 젊은이들의 모습을 연상시킨다. 그러나 현실과는 다르게 빛나는 운이 좋을 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소위 '살로메'라고 불리우는 여성에게 고용되어, 그녀의 이야기 상대 가 된다. 살로메는 중병을 앓고 있기에 거동이 자유롭지 못할 뿐 만이 아니라, 점점 생명 력을 잃어가는 '시한부'의 인생을 사는 여인이다. 허나 그녀는 빛나를 '언니'라 부르며 따르 고, 빛나가 필사적을 쥐어짠 '가상의 이야기'를 믿는 순진함을 보여줄 뿐만이 아니라, 그 대가 로 빛나가 '서울에서 혼자 살아갈' 비용을 기꺼이 치른다. 생각해 보면 빛나에게 있어서, 살로메는 은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살로메가 '자주 와 달 라' 애원하고, 심지어 사람을 써서영향을 행사함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살로메의 요구를 무조 건으로 따를 의사가 없다. 과연 빛나가 살로메에게 소원한 이유는무엇일까? 소설에선 그 이 유까지는 드러나지 않지만, 아마도 죽음을 앞둔 존재에 대한 꺼림직함이나, 저항감이 큰 이유 가 아일까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허나 결국 그 둘은 만나게 되어 있다. 어찌되었든 그녀는 (나름) 고용된 몸이 아닌가? 그렇기 에 그녀는 살로메를 위하여 어김없이 거짓과 사실을 뒤섞은 '기묘한 이야기'를 풀어 놓다. 그렇다! 결과적으로 빛나는 살로메에게 '살아있을 이유'를부여한다. 그것이 '아라비안 나이 트든' '마지막 잎새'이든 그 유사성은 따지지 말자, 중요한 것은 빛나가 표현하는 그 이야 기 보따리에, 한 프랑스인이 이해한 '대한민국의 모습' 그 모든것이 표현되고 있다는 것에 있다. 실제로 빛나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비둘기를 키우는 노인, 흔적없이 사라진 살인마, 외로워진 가수, 보이지 않는 용과 같은 수 많은 존재는 생각하기에 따라 한국의 과거와 오늘을 상징 한다. 점점 더 각박해지는 삶, 소원해지는 이웃간의 인연, 분단된 현실에서 드러나는 이산가족 의 아픔과 괴로움... 이렇게 빛나는 '삶'에 대하여 미숙한 살로메에게 이야기로 나마 '인생'이라 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다. 살로메가 마지막 숨을 내쉬는 그날까지 빛나 는 그야말로 그녀의 작디작은 빛이 되어 주었다. 이에 그것은 무엇이라 표현할 수 있을까? 자비? 의무? 연민? 아니다. 그것은 아마도 情 정이 아닐까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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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엔 유난히 타향살이하는 사람들이 많다. 취업을 위해, 학교 진학을 위해, 꿈을 이루기 위해, 자식 교육을 위해 등등 각각의 이유로 다양한 지방 사람들이 모여드는 도시다. 때문에 의외로 서울 토박이보다 지방 사람들이 더 흔한 도시가 바로 서울일 것이다. 나도 서울에 온 지 어느덧 10년이 훌쩍 넘었다. 무섭고 신기하기만 하던 도시가 이제는 고향보다 친근한 곳이 되었다. 이 소설은 외국 작가, 그것도 평범한 외국 작가가 아닌 노벨 문학상 수상 작가가 서울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다. 배경뿐만 아니라 등장인물도 모두 한국인이기 때문에 장소만 빌려서 쓴 것도 아니다. 외국인으로서 한국의 정서를 얼마나 이해해서 썼을까 싶었는데, 책을 읽으면서 아마 작가가 누군지 모르고 읽었다면 당연히 한국소설이라고 생각했겠다 싶었다. 서울 도심 곳곳의 장소나 분위기 묘사가 세부적이면서 사실적이었고, 소설 속 캐릭터들도 한국적이면서 흥미로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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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이 너무나도 익숙하게 들리고 그가 명예 제주도민이라고 하여 더욱 끌렸다. 작가의 이름을 검색해 작품 목록을 살펴 보아도 내가 읽은 작품은 없고, 읽다 보면 생각이 나겠지 했는데 결국 떠오르지 않았다, 어떻게 작가의 이름을 알고 있었는지, 어디서 접했는지가. 그냥 작가의 이름만 알고 있었던 건가 보다. 그게 좀 아쉽다. 다른 작품들도 읽어 보거나, 어떻게든 배경지식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노벨문학상 수상 작가라는데, 그렇게 들었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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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나이는 올해로 77세이다. 정말 나이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펜을 놓지 않고 여전히 집필하고 있다. 1963년 23살의 나이로 <조서>를 출간한다. 그의 작품은 비평가들 입에서 많이 오르내리고 그들의 글에 많이 인용되었다. 2008년엔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프랑스 문학의 거장으로 불리 운다. 여행을 좋아하는 만큼 여러 나라를 여행하며 강의를 했는데 2007~2008년에 이화여자대학교에 석좌교수로 강단에 섰다. 한국에 머물면서 운주사라는 절에 매료되면서 우리나라를 누구보다 잘 아는 지한파 작가가 되었다고 한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폭풍우>란 소설을 집필하였고, 이번에 서울을 배경으로 <빛나 - 서울 하늘 아래>란 소설을 발표했다. 소설은 주인공인 빛나는 사정이 여의치 않아 혼자 서울에 살기로 결심한다. 그리고 생활비를 벌기 위해 불치병을 앓고 있는 소녀 여인 살로메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르바이트를 한다. 몸이 불편한 여인은 빛나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유일한 낙이다. 빛나의 살로메에게 하는 이야기는 총 다섯가지이다. 한국전쟁으로 북에 있는 고향을 떠난 조 씨와 비둘기 이야기, 신비로운 메신저 키티가 전해주는 쪽지를 통해 이웃 간 연대와 관계성을 회복하는 이야기, 버려진 아이 나오미와 그녀를 품고 살아가는 한나가 또 다른 생명의 삶과 죽음을 마주하는 이야기, 아이돌 스타가 되지만 탐욕과 거짓말에 희생당하는 가수 나비 이야기, 그리고 얼굴 없는 스토커를 통해 빛나가 느끼는 일상의 공포와 도시에서의 삶 이야기 등을 살로메를 만날 때 이야기를 해준다. 작가는 빛나의 입을 빌려 우리나라의 삶을 통찰하고 있다. 6.25로 인한 분단의 아픔을 조씨 아저씨 이야기로 풀어내는 것이 놀라웠다. 북으론 사람이 갈 순 없지만 동물은 아무런 문제없이 갈 수 있다며 비둘기를 길러 훈련시키는 모습은 읽는 내내 가슴이 먹먹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웃간의 소통이 단절된 우리 사회의 문제점을 날카롭게 묘사하고 있으며, 아이돌 스타 이야기를 통해 탐욕에 대해 묘사하고 있다. 나오미 이야기로는 각자의 사정으로 인해 육아를 회피하고 아이를 버리고 간 매정한 부모의 모습을 이야기한다. 소설의 큰 그림은 빛나가 불치병에 걸린 살로메게 이야기를 전해주는 것이지만 아무것도 하지못한체 누워만 있는 살로메 또한 빛나의 삶에 뛰어들어 그녀의 삶을 흔들고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 냈다. 각각의 이야기는 서로서로 연결된다. 지하철 같은 칸에 탔던 사람들이 언젠가는 서울이라는 대도시 어디에선가 다시 만날 운명이라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190쪽 빛나의 입에서 나온 이야기들은 거짓말처럼 한 곳에서 만나며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우리 삶과 다를 것 없었다. 모든 사람들은 각자의 사연이 있다. 각자의 사연이 있지만 서로 얽히지 않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이 사연들은 개인이 만들어낸 것이 아니라 같이 공존하고 있는 사람들과의 보이지 않는 유기적인 관계로 서로 얽혀있다는 것을 작가는 말하려는 것이 아닐까. 르 클레지오는 지한파 작가라고 한다. 지한파라는 말은 우리나라 사람이 아니면서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역사 등의 각 분야에 걸쳐서 많은 지식과 경험을 갖고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책을 읽다보면 외국 작가가 지은 소설이 아니라는 생각 마져 든다. 지명은 물론이거니와 지역적 특징도 알고 있었으며 우리나라의 문화적, 사회적 특성 또한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많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소녀적 감성으로 시작한 이야기는 풍부한 감수성을 유발하기 충분했고 빛나의 입을 빌려 말한 이야기들은 우리가 한 번 생각해보아야 될 문제로 보인다. 소설의 내용은 우리가 익히 알고 접할만한 내용이라 새롭지는 않다. 하지만 외국 작가의 눈으로 바라본 우리 이야기라는 점이 매력이 넘친다. 소설은 다른 나라에도 출간되었다고 한다. 다른 나라사람들은 작가의 이야기를 어떻게 받아드릴지 궁금하다. 그들 또한 전 세계라는 동네에서 보이지 않게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면 작가의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를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