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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끌어내는 오늘날의 대한민국. 이제 하루가 멀다 하고 대형 사고가 일어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 무엇부터 고쳐야 할지 곳곳에서 물음을 던지고 있다. 던진 물음에 답을 하려면 집중해서 들여다보고 고민할 시간이 필요할 텐데, 그럴 겨를도 없이 빠르게 새로운 문제가 떠오르니 사회구성원인 국민들은 물론 지도층으로 일임해둔 사람들마저 방황하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이 판국에 선거라니. 어찌보면 이만큼 절묘한 타이밍에 선거철을 맞이한 게 다행일 수도 있지만 진보적 발언이 유행처럼 번진 오늘, 유독 그들의 정책에 믿음이 가지 않는다. 게다가 잘 가려내서 뽑을 수 있을지 진흙탕에서 원하는 진주를 찾지 못하고 계속 허우적대는 기분이다.
구입했던 것도 꽤 되었지만 출간도 이미 3년이 지났다. 한 시대에서 '양심'으로 인정받는 다는 것은 시대의 '어른'이 되어야 가능한 일이다. 양심은 마음의 진심이라 한 두 해의 행동으로 보여질 수 없고, 거의 일생을 바쳐야 보일 테니 말이다. 덕분에 이 책의 인터뷰이들은 대부분 노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이고, 하워드 진이나 에드워드 사이드는 안타깝게도 이미 생을 마감했다. 이미 생을 통해 보여준 일이 워낙 대단하고 많으니 이들의 영면을 '안타깝다'라고 말하며 조금 더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것은 욕심일 수도 있다. 다행히 이 책을 구입하게 만들었던 노암 촘스키는 여전히 보이는 바로는 무척 정정하다.
각설하고, 스무 명의 양심이 살아 있는 세계적 인사들과의 인터뷰는 아주 직설적이고 분명하다. 인터뷰어인 데이비드 바사미언의 질문도 적절해서 좋은 흐름으로 흥미로운 답변을 끌어내는 데 충분한 역할을 한다. 그의 질문들은 답변을 더욱 도드라지게 보이는 효과를 준다. 인터뷰이들은 글로 정리를 거치며 더 정돈되었을 테지만 대부분 질문에 답하는 동안 격양되어 있다. 사회 전반에 대해서나 책임이 큰 정치적 인사를 꼬집어내는 동안 이들은 진보적 움직임을 부르짖는다. 격양된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차분하고 점잖은 이들의 기록된 발화 속에서, 혹자는 지나치게 선동적이라는 인상을 받을지도 모르겠다. 좋든 싫든 이 책이 선동적이라는 데에는 이견을 갖기 어려울 것이다.
나는 진보적 성향을 지녔으나 적극적인 행동을 하지 않는 비겁자로 살고 있기 때문에 유난히 마음이 울컥울컥 동요됐고 그만큼의 죄책감을 느끼며 이 책을 읽어야 했다. 진보를 외치면 여전히 피해를 입는 사회에서 나같은 사람들이 과감히 행동할 수 있는 날이 오고 있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쉽지 않을 터. 이 책에서 만난 양심의 인물들이 말하듯, 미디어와 그에 속하는 기자들의 역할도 상당하다. 사회의 변화에 미디어는 빠질 수 없는 요소이고, 이들이 어떤 시각으로 어떤 행동을 취하느냐에 따라 변화는 속도와 방향이 결정될 것이다. 이제 선거가 1주일도 채 남지 않았다. 포기하고 싶을 만큼 누구 하나 믿을 사람이 없어보이지만, 최악은 피하기 위해 투표하러 가야겠다. 그게 곧 변화를 위한 가장 작은 시작일 테니까. 국민이 평화롭게 모여서 정부에게 불만을 토로하는 권리가 이제는 따뜻한 가래침을 모은 주전자 정도의 가치밖에 안 됩니다. 텔레비전이 그런 권리를 비중 있게 다뤄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이 정말로 문제입니다. (38쪽, 커트 보네거트)
기자들이 프로파간다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자각할 때, 어떤 기자도 독립적이고 정직한 기자이면서, 동시에 권력의 대리인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 그때야 세상은 변하기 시작할 겁니다. (86쪽, 존 필저)
어떤 주장이 한 목소리로 주어진다면 의심해봐야 합니다. 세상에 명확한 것은 없습니다. (224쪽, 노암 촘스키)
우리는 사회적 변화를 보여준 역사적 사례에서 용기를 얻어야 합니다. 변화는 갑자기, 전혀 예기치 않았던 순간에 일어나는 법입니다. 그렇다고 하늘에서 내린 기적은 아닙니다. 민중이 오랫동안 인내하고 고통받은 결과입니다. (365쪽, 하워드 진)
미디어는 내부적 요인보다 외부적 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내 작은 바람이 있다면, 그 외부적 요인이 사회적 의식을 지닌 진보적인 정당들의 출현이면 좋겠습니다. (387쪽, 벤 바그디키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