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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하는 인간이란 뜻의 호모 에코노미쿠스 모델에서는 경제학적 측면에서 많은 것을 파악하지 못하거나 간과해버린다. 특히 인간이 합리적이라는 믿음은 너무나 현실과 동떨어져 있어서 인간이 어떤 과정에 의해 경제 활동을 하는지를 파악해내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나 이 방식은 경제학을 수치로 이해하고 그 다음의 예상 반응을 산출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곳에서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지금은 인간은 그리 합리적인 동물이 아니고, 경제 활동에 한해서만 봐도 충동구매나 주변 사람들의 반응에 따라 좌우되는 경우가 있다는 것을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파악해내고 있는 연구 분야가 있는 실정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제 행복이라고 하는, 이제껏 수치로 환산해낼 수 없다고 생각했던 비경제학적인 요소를 가지고 경제학을 살펴봐야 할 때가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은 이제껏 호모 에코노미쿠스적인 모델에서 파악해왔던 현대의 경제학을 행복 연구라는 입장으로 다시 평가해 봐야 함을 역설하고 있다. 사실 인간이 무언가를 선택할 때는 모든 선택에 있어서 경우의 수를 다 생각해볼 수도 없고, 만약 다 생각해본다고 하더라도 기회비용 때문에 오히려 수만 가지의 경우의 수를 생각하느라고 선택했을 때의 만족감이 더욱 떨어진다면, 대략적인 경우의 수만 생각해서 그 안에서 가장 마음에 드는 것을 충동적으로 선택해서 만족감을 높이는 것이 훨씬 이익이다. 그래서 인간은 되도록 합리적으로 선택하긴 하지만 모든 경우의 수를 파악할 수 없으니 제한된 합리성을 가지고 있기에 호모 에코노미쿠스적인 경제학 모델에서도 그런 비합리적이지만 결과적으로 합리적으로 보이는 인간의 성향을 도입해야 할 것이다. 이제까지 추구해왔던 경제학 모델로는 돈으로 환산되는 것만을 이익으로 산출되었다. 여가 생활을 보내거나 부모님을 간병하기 위해 직업을 그만 두었다면 사회학적으로는 이익이나 경제학적으로는 오히려 손해를 본 것으로만 여겨졌다. 그래서 돈을 받지 않고 하는 모든 노동들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것이 이제껏 받아들여졌던 경제학 모델이다. 그러나 흔히 잘못 생각하는 오류 중 하나로, 돈을 많이 벌기만 하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점을 고려하지 못했다. 물론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에서는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건이 마련되어 있어야 행복을 추구할 수 있는 기본적인 제도를 세워갈 수 있지만 많은 선진국에서 본 것과 같이 돈이 많다고 해서 행복하기만 한 것을 아님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2010년 4월에 미국에 치명적인 환경 오염을 일으켰던 석유 시추 플랫폼 딥워터 호라이즌의 폭발 사고를 들어보면 사고에 책임이 있는 석유 회사 BP는 경제적으로 거의 타격을 입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시추공을 메우고 유출된 기름을 방제하는 작업, 그리고 기타 직접적인 피해를 복구하는데 드는 비용으로 인해 GDP을 올려주는 효과를 보여준다. 그러니 환경오염에 대한 피해액을 수치로 산출하지 않고 그것을 복구하는 비용만 산출되니, 실제로 봤을 때는 부정적인 상황이지만 수치로는 이득인 것으로 보이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러니 행복지수를 연구할 때는 경제적인 수치로 산출되지 않는 것도 무시하지 못함을 증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렇다면 앞으로 우리는 행복지수를 산출할 때 단지 GDP가 아니라 어떤 부가가치가 생길 때마다 벌어지는 이득과 손해를, 보이는 부분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폭넓게 고려해야 한다. 축구공이 하나 만들어져 팔릴 때 가격과 이윤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지는 작업장의 환경과 노동 임금, 농동 시간까지 고려해야 전체적인 행복지수가 드러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 이 순간 나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으로 보이는 나라에서 노동을 착취당하면서 만들어냈던 것을 그저 사기만 해서 내 만족을 추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진정한 행복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 것이다. 그러므로 전세계적으로 분업이 활발해진 요즘 시대에서는 이런 행복지수를 산출하는 것이 강제 규정으로 확립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몇몇 의식 있는 기업에서나 시행하는 작은 이벤트가 아니라 인간의 권리를 보호하는 입장에서(당연히 행복은 기본적인 권리가 보호받아야만 얻을 수 있는 요소이므로) 적극적으로 시행되어야 한다. 그렇기에 앞으로의 경제 문제는 인간의 행복을 추구하느냐 그렇지 않느냐가 큰 기준이 될 수 밖에 없겠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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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해지기위해 살아간다. 나 떠한 예외는 아닌데 예전에 비해 훨씬 살기 좋아졌음에도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하면 부를 누리며 잘 산다고해서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니라는 말과 같을 것이다. 책에서는 이 처럼 행복이 경제적으로는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묻고 행복해지기위해서믐 대기업, 중소기업이 동반성장을 이루고 국민 모두가 행복해지는 자본주의 4.0을 지향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더 높은 소득이 더 행복하다는 생각을 버릴것을 주문하는데 부와 상관없이 느끼는 행복을 생각하면 될 것 같다. 이는 행복지수는 GDP와는 상관이 없다는 것을 뉴스를 통해 많이 접했으므로 특별할 것이 없을 것 같다. 이처럼 부를 기준으로하지 않을 때 행복이라는 것은 상대적 이라 생각된다. 나를 기준으로 나보다 상대적으로 적은 부를 가진사람들에게 우월한 행복감을 느끼는 것을 특별히 탓 할 수는 없을 것이며 소득이라는 것도 상대적인 위치가 소득 평가에 중요한 기준이 됨을 알 수 있는데 이렇게 본다면 소득과 행복의 연관성은 그리 크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누구나 자신의 소득과 소비수준을 올리려고 애쓰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책에서 얘기하는 바와 같이 소득이나 소비수준이 높아진다고 더 행복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개인은 물론 국가에서도 빨리 인지하는 것이 필요한 지도 모르겠다. 소비욕구의 상승으로 선진국들은 물론 신흥 강국이라 할 수 있는 급성장을 하고 있는 나라의 경우를 보더라도 원료소비는 급속도로 늘어나게 되고 이는 환경오염과 기후변화 등으로 삶의 기반이 뿌리째 흔들리는 경우가 될 수 도 있음을 기억해야 될 것 같다.
책에서는 우리가 경제활동의 목표가 무엇인지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고 경제활동으로 돈을 지출 할 때 사람들에게 무엇이 중요한 지를 먼저 생각 할 것을 주문한다. 그렇게되면 행복과 만족에 대해 생각하게 되고 개인과 사회는 행복을 이루는 본질에 대해 고민하게 될테니 말이다. 새로운 생각을 실행에 옮기기 위해서는 우선 기존의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고 우리 자신 말고는 이 일을 대신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경제가 목적이 아니라 행복을 위해 적절히 쓰여질 때 우리 모두는 행복해 질 수 있음을 꼭 기억하고 실천해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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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이 책은 경제에 관한 책으로서는 매우 특이하게도 이제껏 경제의 대상이 되어 오지 않았던 주제를 다루는 책이다. 바로 행복이라는 것은 경제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를 묻는 책이며, 동시에 행복을 위해서는 어떤 경제를 추구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답하는 책이기 때문이다.
이제까지의 모든 경제학은 더 효율적인 경제는 바로 행복이라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더 많은 부는 당연히 더 많은 행복을 가져올 것이라는 전제하에 어떻게 하면 더 많은 부를 일굴수 있을 것인가를 연구해 온 것이 바로 경제학이었다.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전제를 버리고 경제라는 것을 다시 생각해보자고 설득하는 책이다. 돈이라는 것을 떠나서 삶의 행복이라는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본다면, 그리고 우리가 삶의 행복이라는 관점으로 경제를 바라본 다면 우리가 어떤 결론을 볼 수 있을 까를 묻는 책이다.
이 책은 어떤 소비를 할 떄 얼마의 행복이 오는가라고 행복을 계량화하려는 시도를 하지는 않는다. 이 책을 행복을 극대화하기 위한 경제적인 해결책을 시도하지도 않는다. 이 책은 사람이 더 행복하기 위해서 돈이라는 것이 과연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묻는 책이다.
이 책은 지극히 간단하지만 사람들이 묻지 않았던 질문을 던진다. 더 많은 부가 더 많은 행복을 보장하는가라고. 그리고 그 답은 놀랍게도 부의 수준과 행복의 정도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난한 나라의 대명사인 어떤 국가의 국민들의 행복도의 수준이 가장 높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이야기이다. 그러나 그것을 우리에게 일반화하기에는 그 나라는 너무 가난했고, 그것을 우리들의 삶에 대입할 수 없는 독특한 경우라고 생각하지 않을수 없었다. 그러나 이 책은 행복이라는 척도에서 인간을 바라볼떄 행복은 돈 순서가 아니라는 것을 논리정연하게 우리들에게 설명해준다.
그러나 이 책은 행복을 위해 경제적 효율과 경제적 만족을 포기하라고 주장하는 류의 책은 아니다. 이 책이 제시하는 대안은 훨씬 더 온건하고, 또한 훨씬 더 실현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인제까지 나왔던 새로운 삶을 주장하는 많은 책들이 그 통렬한 문제제시에도 불구하고, 대안제시가 지극히 빈약했던 것에 비하면 이 책은 놀라운 것을 지적하지 않으면서, 훨씬 더 실현성이 높아보이는 대안을 제시한다.
이 책은 그런 면에서 온건한 책이기도 하고, 또 다른 면에서 무척 현실적인 책이기도 하다. 공상에 빠져 우리가 가지 못하는 다른 인류의 선택에 만족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 책에 실린 온건하지만 훨씬 더 현실성이 높은 대안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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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높은 소독은 곧 더 큰행복이 맞는가? 성공하면 과연 행복할까? 요즘 특히 성공이라함은 경제적으로 많은 부를 얻을때를 주로 말해왔다. 특히 경쟁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한정된 재화를 얼마나 더 상대적으로 많이 보유하는냐에 따라 사람을 평가해왔다. 세계각국의 국력은 예전에는 전쟁에서 이기는 것이 국력이었지만 이제는 얼마나 많은 달러를 보유하고 얼마나 많은 경제성장을 하여 경제적인 부를 소유하는냐에 따라 국력을 평가한다. 무한경쟁의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하서는 더 많은 소득을 얻어야 하는 것이다.
이책에서는 더 높은 소득은 곧 더 큰행복이다는 명제는 틀리다고 말한다. 근대 애덤스미스는 부의 원천은 분업에 있다고 말한이후 전문화된 기술발전으로 인하여 막대한 부를 개인적으로 가져올 수 있었다. 이후 19세기에 경제자유주의가 활성화됨으로 더우더 개인주의적인 부의 축척이 더 커지게 되었다. 원래 원시시대 경제활동을 하면서 행복함을 누렸다. 즉, 사냥을 통해 부족의 생산활동 즉 경제활동이 되었고 같이 나누어 먹음으로 공동체의 행복도 가져왔다. 그러나 지금은 경제활동이 바로 행복이다는 공식이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는 아리스토텔레스는 경제 그자체는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말했지만 현재는 경제는 행복이라는 단어는 피하고 그대신 이윤이라는 개념 중심으로 언급되고 있다. 따라서 저자는 이제는 경제에 행복이 다시 포함되어 논의되고 경제활동에 녹여내야한다고 한다. 바로 그것이 인간의 삶의 궁극적인 목표인 행복을 추구하는 기본적인 조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제는 행복을 꿈꾸는 경제학이 필요하고 연구되어져야 하고 인간다운 경제를 만들도록 우리모두 노력해야 한다. 행복한 미래의 해답이 바로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 부에 대한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고 기업 또한 성공에 대한 생각을 전환하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소비자들의 큰 힘을 보여줄 때가 온 것이다. 삶의 질을 높이는 책임감있는 소비생활로 경제속에 행복을 다시 찾아가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책을 마지막장을 덮으면서 가볍게 읽는 책이 아니라 곰곰히 곱씹어 보면서 읽을 책이었다. 경제학속에 숨은 행복을 찾아가는 시간이 되었다. 많은 경제학도들이 반드시 읽어볼만 한 책이라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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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소 제목이 도발적이고 행복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 것 같은 이 책은, 그 첫 장을 읽는 순간, 행복이 무엇에서 오는가에 대한 예기가 아닌, 경제학적인 관점에서의 행복과 상대적인 행복에 대해서 예기하고 있는 책으로써 어렵게 느껴졌다. 경제에 대한 체계적 사고를 철학적으로 확립한 최초의 인물인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과 근대경제학의 아버지인 애덤 스미스의 분업을 통한 국부의 원천에 대한 예기로 출발하는 이 책은 어떻게 해야 행복한지, 무엇을 해야 행복할 것인지에 대한 예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경제학이라는 관점에서 우리들이 부를 축척하고 GDP 성장률만을 따지는 그러한 자본주의에 살면서 과연 행복한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러면서 유럽국가들이 행복지수가 높고, 아시아권의 국가들이 행복지수가 낮은 것에 대한 도표를 보여주는 데,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행복지수가 10점 만점에 6점대라는 것은 정말 다시 한 번 우리들이 추구하고 있는 발전에 근거한 행복이 올바른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들었다. 그러하기에 행복의 요소로써 이 책이 언급하고 있는 안정된 직장과 일에 대한 만족이라는 부분이 정말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들었다. 분노의 시대, 전 세계가 분노라는 단어에 익숙해져서 중동지방은 정권이 교체되고, 미국은 시위대가 월가를 점령하고, 그리스는 죄수복을 입은 사람들이 시위를 하면서 분노를 표출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이 책이 말하고 있는 행복에 관한 경제학의 관점에서 보여지는 저자의 식견을 정말 놀라웠다. 물론 최근 우리사회의 화두 중의 하나가 보편적 복지를 생각해 볼 때, 이 책이 언급하고 있는 심화되는 불평등 문제를 다루되, ‘평준화’와 ‘대가가 비싼 취향의 문제’의 제물이 되지 말아야 한다는 일갈은 정말 깊이 있게 생각해 볼만한 부분이었다. 행복 공리주의의 덫에 빠져서 정말 우리들이 학창시절 배웠던 벤덤의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 원칙을 잘못 이해하고 있지는 않은 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이 책은 오늘날 우리사회가 어떻게 경제학적으로 발전해 왔으며, 이러한 발전과 더불어 행복이라는 부분을 어떻게 다루어 왔고, 희생해 왔는지에 대한 역사적인 부분을 잘 설명해 주고 있다. 만약, 이러한 설명만을 했다면, 이 책은 그냥 경제학과 행복에 관한 상관관계를 다룬 논문을 읽었다고 느끼게 되겠지만, 저자는 행복은 곧 삶의 기회를 얻는 것이라며 ‘시장기회, 사회보장, 사회적 기회, 정치적 참여권, 투명성 보장’의 다섯 가지 기본적인 자유를 제시하고 있으며, 또한 우리들에게 사회적 부에 대한 생각의 전환을 할 것을 말하고, 기업의 성공에 대해서도 생각의 전환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으며, 경쟁과 협력의 밸런스 등의 해결책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 책을 통해 행복과 경제, 돈을 버는 것과 행복과의 관계를 한 번 더 생각해 보고, 앞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점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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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하는 일에는 목적이 있다. 시장에서 사람이 하는 일 역시 목적이 있다. 그러나 시장이 어떤 목적이 있는가는 말하기 힘들다. 시장 역시 사람이 만든 제도인 한 정부나 학교, 기업처럼 존재이유 즉 목적이 있게 마련이다. 시장이 있는 이유는 거래를 하기 위해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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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 경제학과 관련한 책들을 여러 권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사실 나에게 '경제'란 것은 생각외로 관심 밖이었는데, 저자들이 쉽게 경제용어들을 설명해주고 있었고,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사례들을 통해 '경제'를 설명해주니 뜻밖에 재미도 있어서 자꾸읽게 되는 것을 보게된다. '경제' 어쩌면 인간 삶 가운데 없어서는 안될 일이고, 가장 먼저 뒤 따르는 것도 역시 경제가 아닐까 싶다.
이 책 <경제학이 깔고 앉은 행복>의 저자 요하네스 발라허는 독일인이다. 독일인의 눈으로 본 경제이지만, 이것을 통해 대한민국 경제가 얼마나 인간적인지 다시 살펴보는 것이다. 인간다운 행복을 외면하는 경제적 사고에 제동을 거는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 인간다운 경제를 꿈꾼다. 행복이란 개념을 이익의 개념과 맞바꾼 오늘의 경제를 반성하고 부와 경제학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는 것이다. 책을 읽다보니 기후와 환경에 관한 이야기들이 많이 거론되는 것을 보게된다. 그렇잖아도 연일 터키의 7.2 지진이나 태국의 수해소식이 들려와 안타까운 마음이 간절하다.
우리의 경제양식이 '더 높은 소득은 곧 더 큰 행복'이라는 공식에 의거하고 있는 데 과연 그것이 사실일까? 몇달전 신문을 보니 '행복지수'에 관련하여 여론조사가 이루어지고, 또 세계 여러나라들의 행복지수에 관해서도 연재되는 것을 보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만족할 만한 상황이 아니었다. 그런데 기사들을 읽으면서 놀라왔던 것은 우리나라보다 경제상황이 그리 더 낫지 않은 나라들이, 개발도상국이라 칭하는 나라들에서 행복지수가 높게 나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반드시 소득의 증대가 행복의 잣대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전세계적으로 자신의 소득과 소비수준을 끌어올리려 애쓰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것이 나쁘다고 할 수 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노력들이 앞에서 말한 것처럼 더 높은 소득이 더 큰 행복이라는 공식 때문만이라면 지금 이 시점에서 다시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우리의 삶의 질과 우리들의 태도를 포함하는 문명을 위태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제활동을 할 때 더불어 행복과 만족을 나누는 일을 생각해야 하며, 개인과 사회전체의 행복을 이루는 본질에 대해 생각해보아야 한다.
"인간이 돈의 노예가 되는 것이 아니라, 경제가 인간의 노예가 되어야 한다. 이 관계가 재정립되어야만 우리에게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질 것이다."라고 한 말을 기억해야 겠다. 경제학이 꿈꾸는 행복, 호모 에코노미쿠스의 삶, 행복에 대한 경제학적인 시선, 미래의 행복도 인간다운 경제에 의한다는 것. 결국 그것은 우리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사실들을 이 책 <경제학이 깔고 앉은 행복>은 확인시켜 준다. 그러므로 다시 확인하는 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경제와 아주 밀접한 관계에 있으며 또 그렇기에 경제와 미래와 현실과의 삶속에 책임감 있는 소비, 협력, 상생의 관계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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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책 표지에 있는 것과 같이 이 책은 경제적 사고만을 갖고 있는 현재의 우리들에게 경제적 사고가 아닌 다른 사고도 함께 지녀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책이다.
저자는 인간의 욕구가 경제적 사고만 가지고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와 미래의 모든 사람들에게 인간다운 삶ㅇ르 살 기회를 열어줄 사고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점차 시대가 변할 수록 경제발전이 온 세계의 관심의 화두가 되었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이 책은 경제부분의 문제는 비용과 이익을 고려하고 단기간에 이익을 최대화하기 위한 아젠다로 인하여 다른 아젠다가 접근할 수 없다고 이야기 하고 있다. 모든 사회문제에는 비용의 제한 부분을 두고 접근을 한다. 또 사회문제가 발생 후, 1년 안에 효과를 보지 못하면 다른 것으로 접근하는 등이 경제적 관점일 것이다.
경제라는 용어의 명명자는 아리스토텔레스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성공적인 삶을 'eudaimonia' 라고 부르고 있는데, 흔히 '행복' '다복'으로 번역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행복은 무엇일까? 인간은 다른 사람들과 연관되어 있는 사회적 관계이기에 공공의 이익은 각 개인의 성공적인 삶에 꼭 필요한 요소라고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 우리는 우선 내가 잘 살아야 공공의 이익을 생각해보자는 이야기를 하였다. 과연 내가 잘 사는 기준은 무엇일까?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보유하고 있어야 잘 사는 것일까? 우리가 이런 관점을 갖게 된 경제개념의 역사와 변화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있다. 깜짝 놀랐던 것은 그 시기가 얼마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경제적관점의 문제는 무엇일까? 최대한 빠르고 높은 이윤이나 연수익에만 치우치는 목표 설정은 경제를 눈멀게 해 관련 리스크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그 결과는 우리가 경험한 바가 있다. 금융위기에 이어 경제위기가 닥쳤고 그 다음 부채위기가 뒤따랐다...(P 64~65) 위의 사례들을 설명하고 우리는 변화되어야 한다고 책에서는 말한다. 경험적 연구가 말해주고 있듯이 우리는 일반적으로 이익에 대해 기뻐하는 것보다 정도가 더 심하게 손해에 대해 애통해 한다. 손해 보기를 끔찍이 싫어하는 이같은 현상은 금융시장에서 특히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P75) 내 이익만 극대화 하면 나는 행복하고, 즐거울 것인가? 이에 인간의 심리 등에서 우리가 많은 이익을 내는 것 보다 다른 이들보다 손해보지 않기를 바라는 부분에 대한 설명이 공감이 갔다. 고위층의 납세비리에 우리는 흥분한다. 만약 이들이 납세의 의무를 잘 지킨다면? 우리는 세금에 대한 인식이 어떨까? 이러한 경제적 관점에서 인간의 심리를 배제한다면, 급여가 높고 쉬는 일정이 적은 것을 택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심리상 급여가 높아 아무것도 못하는 것보다 사회의 일원으로써 휴식하고 싶고 동등한 대우를 받고 싶어한다. 중학교 사회시간, 위의 내용과 같이 빵이 먼저냐?(경제), 빵을 나누어 주는 것이 먼저냐(분배)? 를 묻는 질문에서 우리는 정답으로 배운 것이 어느 정도 경제와 분배는 고루 되어야 한다고 배웠다. 지금 그러한가? 경제적 관점으로 수치변동과 관점에 따라 실업문제, 빈곤문제들이 달라지고 있다. 우리는 소득과 분배 혹은 행복에 대하여 생각해보라고 이야기 하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저지르는 치명적인 실수는 개인적인 이익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다고 한다. 행복이란 무엇인가? 를 생각하게 함으로써 경제적관점에서 자주 저지르는 실수, 단기적 사고로는 미래를 꾸려갈 수 없다며 우리 스스로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고 싶고,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 를 고민해봐야 한다고 한다. 이러한 행복을 만드는 것도 우리요, 지키는 것도 우리라는 것이다. 경제적관점만을 고수하지 않고 돈이 아닌 그 외의 인간다운 행복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는 '경제'에 대하여 생각하고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자소들의 미래를 위해서 좁은 시야가 아닌 넓은 시야로 문제를 바라보아야 참 행복을 느낄 수 있을 것같다는생각이들었다.
경영을 전공하지 않은 나에게는 조금은 어려웠지만, 우리가 누구나 국민으로써 고민하고 생각해야 하는 부분을 말해주고 있다. 결국 경제적 관점만을 고수하다가는 돈의 노예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와 다양한 관점으로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되었다.
행복은 나만 생각하는 것이 아닌 다른 이들을 위해 조금은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자세가 바탕이 되어야 나에게 오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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