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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알고 경험해 온 일상이 시로 들어왔다. 그래서 편하게 읽히면서도 때론 코끝을 찡하게 만드는 시들이 모여 있다. 가장 아름다운 건 사실 우리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아주 가까이 있는 것들인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가장 슬픈 건 혹은 가장 아픈 건 사실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일상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시라는 생각을 들게 만든다... 살아온 세월이 시이어야 했고 앞으로 살아갈 세월도 시일 수밖에 없는 삶을 말하고 보여주고 있는... 그런 시를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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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대한민국은 시를 읽지 않는다. 시를 읽지 않는 사회는 그 만큼 병들었다는 사실을 극적으로 웅변한다.
며칠 전 제천 화재사건도 어찌 보면 시를 읽지 않는 사회의 단면을 드러냈다고 확신한다. 부실한 건물 외장재로 인해 불이 났을 경우 얼마나 많은 사람을 순식간에 죽일 수 있다는 엄연한 사실조차 망각한 채, 단지 외관이 미려하고 공사비가 저렴하다는 이유만으로 아무런 사회적 제지없이 시공되는 사회는, 시인이 죽어버린 사회의 단면이다.
양극화란 말의 대상은 돈과, 지위에도 걸쳐지지만 엄연히 감성의 영역에도 존재할 수 밖에 없다.
이 시집이 지금은 잘 팔리지 않는 '최영미 류'의 쟝르라고 누가 진단한다.
강남의 스타벅스에 앉아 '체 게바라 평전'을 쳐읽을지언정, 마창대교 난간에서 열살배기 아들을 먼저 밀어뜨리고 자신도 자살한 어느 대리운전기사의 삶은, 서울의 많고도 까마득한 골목길 수만큼이나 다양한 '선택 사양'에 불과한 것이다.
저자의 삶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그 솔직함이 존경스럽다.
지구상 어느 누구도 예외없이 '작은구멍'에서 내팽겨쳐져서, 결국은 우주의 먼지로 사라지는 것 아니던가?
이건희던 마창대교의 대리기사던 인간의 삶은 동등하다.
문학작품 일반이, 특히 시란 쟝르의 특징이 현재시점을 강조한다는 측면에서, 김지하의 오적보다 박인애의 작은 구멍이 천배는 훌륭한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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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이 시집을 쓴 작가의 남편입니다. 리뷰를 쓰기에는 덜 객관적인 입장에 있지요 그래도 저는 리뷰를 씁니다. 저와 아내는 시를 보는 관점이 조금 다릅니다. 저는 모름지기 시는 쉬워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래서 서로 많이 다투기도 합니다. 마누라의 시는 상당히 쉬운편입니다. 그래도 저는 조금 아쉽습니다. 좀더 쉬웠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시는 소설과 달리 기본적으로 은유와 상징이는 어렵죠 그래도 저는 일반 시민이 아하 하고 고개를 끄덕일수 있는 쉬운 시어로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마누라의 시에는 깊은 인생이 있습니다. 그래서 좋아합니다. 깊은 절망조차도 사람에 대한 인생에 대한 깊은 긍정을 깔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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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지속될 것 같은 비참과 비애, 번갈아 반복되는 사물과 상품의 시간을 뚫고도 시의 비의는 솟아오르는 법. 박인애의 언어는 무정형의 일상성의 장막이 살짝 찢긴 자리에서 해방의 잠재력을 발견하려는 안간힘이다. 박인애의 시에 의해 '작은 구멍들'은 가면을 벗고, 다시 불 켜진 새롭고 환한 '속의 일상'은 입술을 얻는다. 그녀의 시른 비루한 삶의 시간이 어떻게 분절되는지, 지루한 임무와 진부한 언어의 표면을 뚫고 어떻게 '환상과 진리'가 교차하는지, 그 작은 시간이 어떻게 서사 속에 서정의 열매를 맺는지를 보여준다. '슬픔의 전류가 일만 볼트' 흘러서 어떻게 '죽은 내가 밥을 해서 식구들을 살리'게 되는 지를 말이다. - 김혜순(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