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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우의 장편소설 백년여관은 특이하게 이인칭 시점의 화자가 등장한다 소재도 우리 시대의 국가폭력 사건을 다루고 있다 1948년 제주 4.3사건 1905년 보도연맹 사건 19080년 5월 광주민주화혁명을 경험한 인물들이 그려지고 있다 주요 인물들이 한 섬에서 만나게 된다 죽음과 삶이 공존하는 공간 백년여관을 찾아오는 사연은 제각각 다르지만 공통점이 있다 그들은 모두 국가폭력 사건의 희생양이었다 작가 임철우는 대한민국 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을 소설로 썼다 그는 광주에서 1980년 5월에 대학생으로 처참한 살육의 현장에 서 있었다고 한다 그는 어떤 죄의식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5.18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소설을 썼다고 고백했다 백년여관 속 2인칭 화자는 곧 작가 임철우의 분신이기도 하다 당신은 백년여관에서 만나는 인물들이 겪었던 사건들을 소설로 쓰는 형식을 취한다
연노랑색 눈 빛나는 하얀색 손 어떻게 생각해도 비현실적인 것들임엔 확실하다 그럼에도 이런 장치들이 그럴 법하게 다가오는 이유는 이 소설 속 주인공들이 겪었던 아픔이 비현실적으로 큰 고통이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이들이 눈앞에서 죽어갔고 이들을 살릴 수 있는 기회를 놓쳤다는 죄책감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이들 4.3사건 보도연맹사건 5.18 베트남전 등 한국사 속 비극들은 각 세대의 개인들에게 돌이킬 수 없는 큰 영향을 미쳤다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한 상식으로 현실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기상현상 정도는 이상한 것이 아니다
붉은 샘과 하얀색 손 이 기이한 현상의 원인을 다 같이 이야기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각자 인물의 개인적 아픔 역시 치유된다 아픔을 겪은 이들 기억하는 이들은 영도 백년여관에 한데 모이고 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덮으려던 것들을 끄집어내기도 하고 잊었던 것들을 기억해내기도 한다 이들은 서로의 기억을 찾는 것을 도와주고 오해를 풀어주고 아픔에 공감하며 서로를 치유한다 그런 점에서 이 모든 치유가 일어나는 장소는 마지막 조천댁이 했던 굿판이다 초자연적 현상이 일어나는 가운데 이를 함께 보고 함께 뜨거운 눈물을 흘린다 기억하는 살아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기억해야하는 망자들까지도 한 데 모이는 이 자리는 서로가 잘못이 없음을 확인해주고 서로의 아픔에 모두 공감해주는 치유의 장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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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죽인 조선인들, 북한군이 죽인 남한 사람들. 그때도 많은 사람이 죽었겠지만 4.3이나 5.18에 죽은 사람들이 더 안타까운 건 이 땅에 함께 살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납득할만한 이유도 명분도 없었던, 그야말로 개죽음을 당한 사람들. 죽는 순간의 당사자와, 그걸 지켜보는 가족들의 원통함을 감히 헤아릴 수나 있을까. 그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늙어 죽어가고, 분노와 원통함도 시간의 바람결에 메말라간다. 하지만 여전히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쓰고, 또 누군가는 그걸 읽는다. 기억을 지키기 위한 필사적인 마음으로. 이 소설에는 4.3, 6.25, 5.18 때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목격했던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4.3과 6.25를 겪은 뒤 30년이 지난 5.18에도 같은 일이 반복된다. 그러면 지금은 끝난 걸까. 불리할 때마다 빨갱이 타령을 하는 그 사람들은 아직도 떳떳하게 살아있다. 박근혜가 탄핵되지 않았다면 2016년에 그런 일이 실제로 벌어질 수 있었고 지금의 정권도 총과 칼을 들지 않았을 뿐 똑같은 탄압을 가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이 가장 위험한 시기일지도 모르겠다. 이미 사람들은 제정신이 아니다. 권력을 쥔 사람도, 그 권력을 지지하는 사람도. 4.3 당시 정방폭포에서 집단 처형이 있기 전, 토벌대는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가족 집단을 향해 말한다. 아이를 살리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겠다고. 부모들은 주저 없이 손을 들었다. 하지만 절반의 부모들은 손을 들지 않았다. 살아도 살아있는 게 아닐 거란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4.3 사태의 공식적인 사망자는 3만 명. 숫자가 많아서 그 죽음을 기억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게 단 한 사람이었더라도 인간이 그런 식으로 죽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기억해야 한다. 죽음으로 결론 나기까지 겪었던 배고픔과 추위, 그리고 무한한 공포까지 다 기억해야 한다. 소설에는 죽었지만 이승을 떠나지 못한 영혼들과 살아있지만 이미 죽은 것과 다름없는 사람들이 조우한다. 서로의 아픔을 알아줄 수 있는 유일한 존재들이다. 꼭 이런 집단 학살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마치 죽은 사람처럼 살고 있는 사람은 지금도 수두룩하다. 내가 그런 사람이라면 나와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을 알아볼 줄 알아야 한다. 알아봤다면 손을 잡고 안아주어야 한다. 문학만이 그것을 가능하게 해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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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서울의 봄'이 곧 천만 관객을 돌파할 거라는 소식이 들려오던데. 백년여관을 다 읽고 난 후 내 기분은 이 영화가 천만이 안 넘으면 대한민국 이상한 거지. 현실 권력에 맞서고 있는 국민이라는 상징 권력자의 수가 어디 영화를 보는 천만인뿐일까. 임철우 작가님은 1954년 생. 엄청난 다작을 하시진 않았는데, 쓰신 책들의 대부분이 20세기 후반 한국에서 행해졌던 국가 폭력에 관한 글이다. 광주 항쟁 때에는 현장에 있으셨고 당시 적극적으로 나서 동료들을 돕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죄책감에 대한 부채를 글로 갚으려는 마음이 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1998년에는 십 년이라는 시간을 통해 완성한 광주 항쟁을 다룬 <봄날> 전 5권 세상에 나왔고, 광주 항쟁뿐만 아니라 한국 전쟁, 제주 4.3 항쟁, 베트남 전까지 한 줄기로 엮어, 아픈 역사들이 결코 분절의 시간으로 존재하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우리의 시간까지 물들이는 연속성을 갖고 있음을 보여주는 <백년여관>이 탄생했다.
사람들은 작가에게 '아직도 그 소리냐? 이제 지겹지 않나?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라고 말하며 작가를 소외시킨다. 하지만 작가는 이 이야기를 멈출 수가 없다. 아픈 과거는 하루빨리 잊어버리고 모두가 예전의 상처를 극복하고 앞날을 내다보며 잘 살아보자는 추임새에 결코 동조할 수 없다. 국가가 개인에게 가한 폭력이라는 것이 광주 항쟁 이후 완벽히 사라졌을까. 책을 읽으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념적 이데올로기로 인하여 개인의 삶이 박살 나는 경우는 거의 사라졌을지 몰라도 이제는 '자본'과 '정보'라는 야누스의 얼굴을 가진 새로운 권력이 등장하여 사람의 눈을 가린 채 진실을 은폐하고, 그렇게 소외되는 사람은 점차 사회적/인간적 죽음을 면할 수가 없다. 이제 지겹지 않나?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라는 소리는 몇 십 년 전 일어난 광주항쟁이나 제주 4.3 항쟁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10년 전 세월호 참사를 향해서도 자신들의 시내 출근길이 불편하다고 불평하는 사람들 입에서 그런 소리가 나온다. 사람들은 점점 공감 능력이 부족해지고, 나와 내 가족이 견고한 성 안에 안전하게 살고 있다면 더더욱 자신이 사고에 노출될 위험과 타인의 아픔에 대해 무감각해진다. 어쩌면 그것이 나와 내 자식 남부럽지 않게 잘 키우며 사는 것도 녹록지 않은 세상에서, 자연스러운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 한 편에는 마음속 죄의식을 덜어내는 일에 자기의 노동과, 작업 그리고 행위를 집중시키며 삶의 의미를 부여하는 사람도 있다. 아마 임철우 작가님을 비롯한, 당시 그 항쟁에 연루되었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반세기를 살아가오고 있지 않을까. 그래서 읽으면서 가슴이 먹먹하고, 나도 모르게 9년 전 방송되었던 세월호 참사를 다룬 영상을 찾아본다. 서영채 평론가에 따르면, <백년여관>에 드러난 임철우 작가의 자기 고백이 너무 뜨거워서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을 것 같을 정도라는데, 이 책이 세상에 나오고 나서 사람들은 옛일을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듯싶지만. 그래서 임철우 작가님의 끈질기고 멈추지 않는 자기 고백이 '과잉'이나 '과장'으로 느껴질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불행 중 다행인지, 다행 중 불행인지 우리 사회에는 '죄의식'과 '부채'를 절대로 잊지 말고 살아가라는 하늘의 선물인지 재앙인지 모를 사건이 계속해서 일어난다. 그래서 작가님이 그리고 또 다른 사람들이 계속해서 죄책감과 부채감을 엮고 또 엮으며 흐르는 역사의 강물 위에 띄울 수 있을 것 같다. 충분히. 임철우 작가님이 몸소 겪었던 광주 항쟁을 시발점으로 또 다른 과거의 참사들과 고통받는 이들을 이해하며 포용할 수 있었던 것처럼, 죄에 대한 자각과 책임에 대한 열망으로 들끓는 심장을 가진 그의 뒤를 따르는 후배 문인들 그리고 수많은 독자들이 그의 뒤를 이어서 이 사회에 벌어지는 수많은 참사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펜을 잡고 있으니. 한 가닥 일지라도 절대로 끊어지지 않을 희망을 걸어볼 수 있음이 다행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