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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사람들 대부분이 발해를 우리의 역사로 인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정작 발해의 역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고 있을까? 교과서에서도 그 존재감이 미미한 발해의 역사는 현재 사료에서 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으며, 중국의 사료 역시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부분은 드물 정도로 상당히 제한적이어서 그 실체를 파악하기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조선 시대에 유득공의 [발해고]가 발해 관련 역사를 서술하였다고 하지만, 그 책도 당시 문헌들에 대한 정리에 불과하기 때문에 발해의 역사를 이해하기에는 부족해 보인다. 이런 점에서 우재훈의 [발해제국 연대기]는 시선을 끌 수 밖에 없는 책이다. 발해의 역사를 다룬 책이 드문 상황에서 '연대기'라는 이름처럼 발해에 대한 많은 부분을 다루고 있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실제로 이 책을 통하여 발해에 대하여 새로이 알게 된 것이 많기 때문에 현재 시점에서는 발해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발해를 우리의 역사에 포함시키기 위하여 쟁점이 되는 부분은 과연 발해가 고구려의 후예로 볼 수 있느냐라는 점이다. 특히 발해 구성원의 대부분이 말갈인이었으며, 지배 계층이 일부 고구려 출신이라는 점을 들어서 우리의 역사라고 주장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지는 솔직히 애매한 상황이라 할 수 있다. 이는 우리가 발해 건국에 대한 단편적인 지식 이외에 이후 발해의 역사에 대하여 자세히 아는 바가 없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도 혼란스러울 수 있다. 더구나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이후 698년 발해가 건국(삼국유사에는 678년으로 언급되어 있음)되었으니 그 사이에 어떠한 일이 벌어진 것인지 잘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고구려와 발해의 연결에 대하여 의구심마저 갖게 된다. [발해제국 연대기]는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통하여 그러한 의문을 해소시키고 있는데, 이는 발해가 고구려의 후예임을 알 수 있는 중요한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그간 대조영이 발해를 건국하였고, 그 대조영이 고구려 장수 출신이라는 점만으로 발해는 우리의 역사라고 생각했던 우리에게 보다 객관적인 사실을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고구려 유민과 반당적 색채의 말갈 집단을 규합하여 독자 세력화에 성공함으로써 요동 지역에서 나름의 조직을 갖추게 되었고, 이후 거란과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면서 당나라로부터 독립을 쟁취할 것을 준비해오던 중 거란의 영주 봉기가 발발하자 기다리던 그 순간이 드디어 온 것이라고 깨달은 것 같다. - p. 26~27 中에서 - 696년 5월 당의 영주 지방에서 거란 출신 이진충이 반란을 일으키며 기세를 올리는 사건이 발생하는데, 이를 틈타 고구려 유민과 말갈 세력이 예전 고구려 지역으로 이동하면서 발해 건국의 기틀을 마련하게 된다. 특히 이 부분은 이진충의 반란 사건 전부터 꾸준히 조직을 정비하여 기회를 노린 고구려 부흥 세력의 동향을 알 수 있는 부분인데, 이를 통하여 발해 건국이 일순간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시간을 두고 미리 준비의 과정을 거쳤음을 추측할 수 있게 된다.
이는 이진충의 반란의 진압에 대하여 애를 먹던 당(唐)의 다급한 상황에서도 증명된다. 고구려 유민과 말갈 세력을 지휘하던 걸걸중상(대조영의 아버지)과 걸사비우에게 각각 진국공, 허국공이라는 제후로 봉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하면서 거란족의 반란에 협조를 구한 당의 기록은 발해 건국 이전부터 이들이 세력을 형성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또한 이들은 당과 손만영(이진충 세력)의 다툼 속에 개입하지 않고, 영주의 서남쪽이 아닌 요수를 건너 동쪽(요동)으로 진출을 꾀하면서 발해 건국의 기틀을 마련한다. 또한 이 기록을 보다 세밀히 들여다보면 고구려 유민과 함께 고구려의 뒤를 이으려는 걸걸중상과 말갈인의 독자 세력을 기반으로 하고 있던 걸사비우의 존재를 알 수 있게 되는데, 걸사비우가 거란족의 반란에 참여하였다가 패전한 뒤로 그 세력을 걸걸중상 및 그의 아들 대조영이 흡수함으로써 실질적인 발해의 건국 세력을 조직화하였음을 살펴볼 수 있다. 이는 속말말갈인이 큰 비중을 차지하는 상황에서 대조영을 고리로 하여 고구려의 유민과 결합함을 의미하는 것이기에 왜 발해를 고구려의 역사로 보는지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고구려 멸망 이후 조직적인 세력 정비와 더불어 속말말갈인 출신이며 동시에 고구려 장수로 활약했던 대조영의 행보는 단순히 발해를 말갈의 역사가 아닌 고구려의 뒤를 잇는 역사로 보는 것에 대하여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 [발해제국 연대기]는 이후 잘 알려지지 않은 발해의 역사를 통하여 그러한 근거를 더욱 보완한다. 독자적인 시호와 연호를 사용함에 있어서 제국의 면모를 과시하면서 동시에 왕태자를 '계루군왕'으로 칭한 부분은 발해가 당의 속국이 아닌 당당한 독립국으로 나아가서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제국으로 당당한 국가를 지향하였음을 보여준다. 특히 '계루군왕'은 고구려 시대의 '계루부'를 연상케 하는 부분인데, 왕태자의 칭호가 왕이라는 점은 발해의 왕은 그러한 왕 위의 왕이니 황제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왕이라 자처한 이유는 당 제국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응이라 할 수 있다. 이 부분은 저자의 추측과 생각이 꽤 많이 반영된 부분이지만, '계루군왕'이라는 지위와 독자적인 연호와 시호를 사용한 부분은 그러한 생각이 어느 정도 타당함을 보여준다.
더구나 발해의 무왕은 굴복하지 않는 흑수부 말갈을 공격하면서 동시에 당에 대한 공격을 감행하면서 위세를 과시하는데, 732년의 당나라의 등주(산둥반도) 침공과 마도산 전투가 바로 그것이다. 특히 당에 대한 침공은 장문휴를 선봉으로 한 수군에 의한 공격이었다는 점이 눈여겨 볼만한 부분이다. 이는 당시 발해의 서쪽 영토가 발해만에 달하였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무왕의 흑수부 말갈에 대한 침공에 반대하면서 당나라로 망명한 무왕의 동생 대문예에 대한 낙양에서의 암살 시도는 발해가 결코 당의 속국이 아님을 자세히 보여준다. 물론 이러한 것들은 발해의 화해 요청에 따라 크게 확대되지 않았지만, 당에 대한 발해의 이러한 투 트랙 전략은 발해가 당으로부터 책봉을 받는 과정이 속국이 아니라 실리에 입각한 의례적인 행위라는 사실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당시 동아시아에서 당이라는 제국은 만만히 볼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또한 발해 역시 무왕을 제외한다면 당나라와 직접적인 전쟁을 선호하지 않았기에 발해와 당은 일정 부분 긴장감을 유지하되 전면전을 벌일 상황은 아니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해의 외교 행보에 돋보이는 부분은 바로 일본과의 외교였다. 발해가 멸망할 때까지 꾸준히 일본으로 사신을 파견하여 그들의 정통성을 확보하고자 하였으며, 일본 역시 신라와의 관계 악화에 따라 중국과의 교류를 발해를 통하여(당시 바다로 직접 중국과 교류하는 것은 기술적으로 쉽지 않았기에) 이루고자 하였기 때문에 이들의 교류는 어렵지 않게 성립된다. 발해와 일본의 교류에서 중요한 대목은 바로 일본이 발해를 고구려의 후예로 인정한 부분이다. 처음 일본에 사신을 파견했을 때에는 고려(고구려)라 지칭하다가 훗날 발해로 명칭을 변경하였으니 일본 입장에서는 발해를 고구려의 뒤를 잇는 나라로 보고 있음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발해가 당나라에 사신을 보내는 경우에는 '대'씨 성(발해 왕족)을 보낸 것에 비하여 일본으로 사신을 보내는 경우에는 '고'씨 성(고구려 왕족)을 보낸 것을 감안한다면 확실히 발해는 일본에게 자신들이 고구려를 계승한 것을 각인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러한 교류에도 문제는 있었다. 1. 일본에서 부여한 관품이 기재되지 않았다는 점. 2. 발해 국왕이 천손이라고 표현한 점. 일본 입장에서는 자신들이 당과 마찬가지로 발해의 국왕보다 위라는 생각과 더불어 천손을 의미하는 일본 왕의 입장에서 천손을 자처하는 발해의 국서 내용에 불만을 가졌던 것이다. 이러한 두 가지 대목은 이들의 교류에서 계속하여 등장하였지만, 이에 대하여 발해는 국왕 입장에서 별다른 반응을 하지 않고, 수정도 하지 않았기에 이 또한 일본과의 고대사 관계에서 쟁점으로 떠오르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된다.
발해의 건국 이전과 건국, 전성기와 더불어 당과 일본의 외교 관계를 들여다보면 확실히 발해는 고구려를 계승한 우리의 역사로 볼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다만, 발해가 중후반 이후에는 그 존재감이 소멸하였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남게 된다. 자체 문자가 있었으리라 생각되지만, 자체 역사 기록이 남지 않은 상황에서 당의 기록에서도 발해의 중후반기는 아예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패배하는 것보다 기록되지 않고 잊혀진다는 것이 얼마나 심각한 것임을 인지한다면 이러한 발해의 후반부의 역사는 확실히 의문으로 가득 차 있다. 더구나 마지막 왕 대인선이 이끌던 발해는 거란의 태조(야율아보기)가 발해에 대한 전쟁을 선언한 925년 12월 16일을 시작으로 불과 몇 개월 만에 멸망하였다는 점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는 항목이다. 단 한 번의 진군으로 순식간에 도성까지 내어주는 이러한 발해의 멸망은 어쩌면 중국의 기록에 남지 않았던 그 시기가 발해의 세력이 급속도로 약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첫째, 발해의 신민이 중국의 풍습을 숭상하고 익히고 문예를 좋아하여 시간이 오래 지나자 점점 문약해져갔다. 지난날의 굳세고 전쟁을 좋아하는 풍조가 점차 사라져버렸다. 둘째, 발해 말기에는 이미 해북의 여러 부를 복속시키지 못하였다. (예로 흑수부와 철리부의 이탈을 든다.) - p. 415 ~ 416 中에서 - 발해 연구의 권위자인 진위루가 말하는 발해의 멸망 원인이 무조건 맞다라고 볼 수 없지만, 확실히 발해가 내부적으로 소멸의 길을 걷다가 거란족의 급습에 순식간에 무너진 원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저자는 발해 왕가 내부의 분열과 암투로 인하여 중앙 정부의 제어권이 무너지면서 지방에 대한 통제와 재정 악화를 이유로 들고 있지만, 내 생각에는 기록으로 남지 않았을 뿐이지 발해는 분명 한 국가가 망하는 모든 원인을 가지고 있지 않았나 생각된다. "선제(태조 야율아보기)께서 그 분열된 마음을 틈타 군사를 움직여서 싸우지도 않고 이겼습니다."라는 거란국 야율우지의 말과 발해 멸망 직전에 발해의 태자인 대광현을 비롯하여 많은 발해인들이 고려에 망명하였다는 것은 발해의 멸망 조짐이 이전부터 팽배해졌음을 추측할 수 있다. 도성 함락 이후에도 발해 곳곳에서 반란이 일어나지만, 그러한 반란이 어렵지 않게 평정되었음을 보더라도 발해의 쇠락은 그 과정이 기록에 남지 않았을 뿐, 진행되고 있었으리라 볼 수 있다. 어찌보면 발해가 당이라는 제국 앞에 별다른 확장을 하지 못하였고, 심지어 당이 '안사의 난'과 이후 절도사들의 반란에 힘겨워 하는 동안에도 당을 공격할 시도도 하지 않은 것을 보면 발해의 운명은 현상 유지에 급급한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게 된다.
중국은 발해의 역사를 말갈인의 역사로 보고 있다. 당의 사신들도 발해를 말갈의 수장으로 기록하였으니 그러한 부분을 통하여 말갈의 역사로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은 발해를 고구려의 계승자로 보고 있지만, 이는 훗날 그들이 만주국을 통치하기 위한 하나의 논리로 활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꺼림칙하게 보여진다. 이러한 상황에서 발해를 우리의 역사라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거의 알지 못하는 우리의 상황은 상당히 아이러니하다. 저자마저도 발해를 우리 역사라고 말하면서도 발해인이라는 아이덴티티를 부여한 것을 보면 우리의 역사가 아니라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해 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마저 들게 된다. 이 책에서 유득공의 [발해고]가 당시 문헌에 나타난 발해에 대한 부분을 정리한 것으로 평가절하하고 있지만, 이 책도 그러한 한계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물론 저자의 역량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발해 역사 연구에 처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더구나 발해의 부흥 운동에 대해서는 인터넷 상의 내용들을 인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위 논란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기존의 문헌을 통한 내용마저도 제대로 알지 못하는 우리의 입장에서 이 책은 발해의 알려지지 않은 역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된다. 역사 문헌은 물론 오늘날 제기되는 발해에 대한 다양한 내용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설명하고자 하는 저자의 의지와 노력이 엿볼 수 있으니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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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해가 이렇게까지 입체적인 나라였나 싶었다. 연대기 형식이라 흐름이 잘 잡히고, 발해를 ‘스쳐간 역사’가 아니라 ‘제대로 존재했던 제국’으로 느끼게 해준 책. 발해를 몇 줄로만 배워왔던 내가 많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이 책은 발해를 하나의 완결된 국가이자 제국으로 또렷하게 보여준다. 연대기 형식이라 사건의 흐름이 자연스럽고, 발해가 동북아 정세 속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도 이해하기 쉬웠다. 발해사를 처음 제대로 읽고 싶다면 충분히 추천할 만한 책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