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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과거의 기억들을 자주 떠올린다. 몇몇 기억들은 선명하게 떠오른다. 마치 어제 있었던 일처럼. 서너 살때 증조 할머니랑 창호지가 붙여진 문 밖을 바라보던 장면과 동생이 태어날 때의 기억은 아주 선명하다. 혹은 감겨지는 눈꺼풀을 붙잡으며 친구들과 놀았던 기억들까지. 나이를 먹는 탓일까. 자꾸 과거의 기억들이 선명하게 떠오른다는 말들을 듣곤 했다. 나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오랜만에 읽은 전경린의 소설에서 느꼈다.
라애 혹은 나애라 불리는 여자가 있다. 현재의 그녀는 자기보다 다섯 살이 적은 희도와 함께 살고 있다. 희도는 여행자에 가깝다. 불쑥 떠났다가 불쑥 돌아온다. 완벽한 정장차림으로 출장을 다닌다. 출장길에서 그는 나애에게 줄 선물을 사온다. 바나나케이크라던가 하는 것들을. 나애는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지만 기꺼이 받는다. 특별한 선물처럼. 두 사람은 마치 여행자처럼 살고 있다. 그를 속박하지도 않고, 속박 당하고 싶지도 않다. 결혼 같은 걸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희도에게는 일본에 아이가 하나 있고, 새어머니가 그의 아들을 돌보고, 옆집엔 이복 누나가 살며, 그들의 뒷집엔 전처가 새로운 남자와 살며 아이를 들여다본다. 이러한 관계가 가능할까 싶지만, 물흐르듯 살아간다. 나애가 그 집에 방문했을 때 희도의 2층집에서 며칠을 묵은 적도 있다.
나애에게는 어렸을 적 친구가 있다. 그녀를 라애가 부르는 세 사람. 상과 도이 그리고 종려 할매다. 상과 도이 나애는 유치원을 같이 다녔다. 학예사인 아버지의 발령으로 숙부인 병원집에 2년간 맡겨졌다. 그때의 기억들이 평생을 따라다닌다. 상, 도이, 나애는 항상 셋이 어울려 놀았다. 편부 슬하에 있던 상과 할머니와 살고 있던 도이, 부모를 떠나 병원집에서 기거하게 된 라애는 마치 한 몸처럼 그렇게 어울렸다. 그들의 현재는 어떻던가. 나애는 누군가에게 얽매이는 삶이 싫어 마치 여행자처럼 살고 있고, 폭력을 가하는 상, 누군가에게 폭력을 당하는 도이가 있을 뿐이었다.
과거의 기억들은 선명하지만, 현재의 그들은 서로 함께 있지 못한다. 다른 장소에서 서로를 그리워하며 각자의 삶을 살 뿐이다. 유달리 과거에 대해 천착하는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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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나애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1인칭 소설이었다. 하지만 나애를 바라보는 황연태의 시점으로 나애를 바라보는 챕터가 있다. 나애의 눈으로 바라보는 그녀의 삶과 연태의 시점으로 바라보는 나애는 어쩐지 조금 다른 것 같다. 연태와 나애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서 그들의 관계가 가능했던 것일 수도 있다.
나애는 희도에게 뱀여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 준다. 길을 잃었던 남자가 불빛을 보고 찾아 들어갔던 곳에서 한 여인을 만나 그녀의 이름을 3년 안에 알아내야 했던 것. 그렇지 않으면 그에게 좋지 않는 일이 벌어지리라는 것을 말하는 이야기. 소설의 전체를 아우름과 동시에 빛나는 주제를 가지고 있었던 이야기였다. 마치 소설처럼 조금씩 이야기가 진행되었다. 분신과도 같았던 친구들을 잃어버렸던 이야기, 작별 인사도 하지 못하고 종려 할매와 헤어졌던 것, 부모에게 버림받았다고 여겼던 상처까지 고스란히 드러냈다.
상처는 드러내는 과정이 있어야만 아물지도 모른다. 좀처럼 타인에게 마음을 열지 못했던, 늘 이별을 준비하고 살았던 그녀가 엄마에게 그때의 상처를 말함으로써 알게되었던 진실까지. 무엇이든 과정이 필요한 법이다. 소설을 읽으며 내내 궁금했던 게 종려 할매는 누구고 병원집의 의사는 나애와 어떤 관계냐는 것이다. 어렴풋이 짐작은 했으나 확실하게 말해주지 않아 의문을 가득 안고 소설을 읽었던 듯 하다.
과거의 기억과 현재의 삶, 과거는 현재를 이루는 중요한 수단이다. 어떤 과거가 있느냐에 따라 타인과 살아가는 현재의 내가 보인다. 고독한 삶. 스스로 고독을 택했지만 과거의 추억들 때문에 버텨냈다고 볼 수 있는. 어쩌면 과거의 기억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양분인지도 모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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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전경린, 2017, 문학동네) -그.녀.가. 돌.아.왔.다. 전.경.린.이. 전경린, 그녀가 돌아왔다.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이라는 가장 긴 제목을 들고서 다시 심장을 열고 돌아왔다. 그런데 그녀가 낯설다. 마치 뜨겁게 끌어안던 애인이 어느날 냉랭한 표정으로 거리를 두고 앞자리에 덤덤히 앉아 여전히 뜨겁게 바라보는 상대에게 덤덤히 입을 떼듯이..그렇게 그간의 관계를 무위로 끌어다 놓는 원치 않는 성숙을 한가득 담고.. 자리에 돌아왔다.
대화를 나눈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차라리 만나지 말았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결국 옛사랑에 대한 예의와 반듯함 때문에 자리를 끝내 떨치고 일어날 수 없었던 아득한 과거의 그때처럼, 난 이 책을 펼치고 몇 장 못 넘겨 가슴이 아득해지고...시렸다.
“이렇게 높은 곳까지 올라온 줄 몰랐어요. 당신 손을 잡고 당신 눈길을 따라가느라, 이렇게 높은 곳에 올려진 줄도 몰랐어요. 날개라도 달린 듯..... 그런데, 당신은 없고 이렇게 높고 외딴 곳에 나만 남겨졌어요. 세상은 나를 향해 일제히 불을 꺼버렸는데, 나 혼자 어떻게 내려가나요? 이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는데. 내가 한 발도 못 움직일 거라는 거 당신도 알잖아요...” (물의 정거장에서)이렇게 욕망의 속내를 고스란히 그려내며 온통 사랑에 매달리던 그녀가 “그때는 함께 있는 것 자체가 전부였다는 말 이외엔. 사람 사이엔 함께하는 시간의 양과 깊이를 채워야 하는 관계의 법칙이 존재하는 것 같다. 현실의 모든 조건이 비켜간다 해도, 둘은 정해진 시간을 공유해야 하는 것이다. 그게 아니면 타인들이 서로의 삶을 있는 힘을 다해 포개는 시간을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그것은 어떻게 생겨나는 것일까. 우리의 마음과 꿈과 욕망이 만들지 않는 것이 과연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을까”(이마를 비추는에서)이렇게 차분하게 관조하는 사람이 되어 그 열정을 의심하는 자로 달라졌다. 이 소설엔 작가의 전작과의 변화만큼이나 예전과 확연히 달라진 인물이 등장한다. 소설의 서사 역시 어린 시절의 기억과 지금의 처지, 두 개의 세계가 아무 관계없이 내용의 씨줄과 날줄로 섞여 있다. 글의 스타일도 묘사도 심지어 책장을 넘길 때 맞틀 수 있던 냄새마저 달라졌다. 인물의 고백보다는 대화와 주변에 대한 묘사가 내용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점 또한 과거완 달라진 경향이다. ...사람이 사랑의 열정이 식은 후에 옛 경험을 돌아보는 것이 과연 온당한 일인가. 그렇다고 해서 예전에 보지 못했던 진실의 한 조각을 발견해 지금의 내 생각의 빈자리를 메꿀 수 있는 것도 아닌데, 차라리 과거의 기억 그대로를 실체로 인정하고 꼭꼭 숨겨두는 것도 삶의 현명한 처신이 아닐지. 작가는 이 소설에서 유년의 기억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심지어 유년 시절의 동네 소꿉친구들을 현실의 자리로 불러내선 기어이 그들의 민낯을 알고 나서야 냉정히 잊을 수 있다고 믿는다. 유년 시절의 ‘도이’는 기억이 온전치 못한 상태로 요양병원에서 병든 부랑자로 늙어간다. 그뿐만 아니라 과거의 사람들은 모두 어느 장소에서 아래로 추락하거나, 어느 순간 인생의 무대에서 돌연히 사라지거나, 잊히거나, 죽음이라는 장막 뒤로 꽁꽁 숨어버린다. “나는 언젠가 할말이 있었다. 도이야, 너를 줄곧 생각했다.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은 틀린 말이었다. 사람이 줄곧 그것을 생각할 수는 없다. 이따금 생각한 것이다. 늘 잊고 살다가 문득문득 생각한 것이다. 평생 그럴 것이다....기억한다. 나의 진실은 이것뿐이다. 기억이란 이야기가 아니다. 이야기라고 하기엔 너무 짧은 영상들, 끊어지는 장면들, 흩어지는 표정들. 그러나 순간이라고 하기엔 너무 깊다. 나는 기억한다는 것의 의미를 모른다. 다만 줄곧 도이를 생각해온 것만 같다....” 무엇 때문에 유년 시절의 그를 잊지 못한 것인지 소설은 끝내 그것에 대해선 명확하게 밝히지 않는다. 전경린, 그녀는 왜 이렇게 그녀답지 않게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를 꺼내고 극복하는 제의를 신작 소설에서 펼친 것일까. 등장 인물이 자신의 어머니와의 오래 묵은 상처를 극복한 뒤에 급작스럽게 포옹을 하며 모든 걸 이해해버리는 에피소드는 신파적인 위로가 필요한 나이가 된 것을 인정해버린 결과인가. 설마 “꺼져버려, 난 엄마가 없어졌으면 좋겠어”라고 외치던 그녀가 몇 년 만에 이렇게 갑자기 바뀌었다는 말인가. 이 소설에서 쉽게 화해하고 이해하고 한걸음 물러나는 인물을 그린 전경린은 내게 마치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선 누이”처럼 생경하고 서운했다. 간간이 소설 한 귀퉁이마다 등장하는 현실의 사건들도 과거의 그녀의 작품 속 인물들이라면 절대 사랑하는 사람과 관계가 없는 일이라면 일어나지 않은 일처럼 일절 관심을 두지 않았을 내용이다. 그런데 이번 작품의 등장 인물들은 ‘무언가 빠져버린 넋’인 양 뜬금없고 생뚱맞게 근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진 사건을 스크랩하듯 다루고 있다. 그건 굉장히 안 어울리고 불편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서운함에도 불구하고, 내 개인적으론 끝내 전경린이 다시 돌아온 것만으로 이 소설을 읽는 사나흘 내내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넘기며 떨리고 행복했다. 아마 재기발랄하고 귀기어린 누이가 안 어울리는 수녀복을 입고 점잔을 빼는 걸 흐뭇하게 바라보는 심정이랄까. 어쩌면 여전히 새빨개진 볼을 부여잡고 산등성이를 헤매고 있는 누이를 만날까봐 걱정했는데 그것이 지나친 기우였음을 알고 안심이 된 남동생처럼. ,,,독자로서 가학적인 즐거움을 예상한다면 더 치열하고 상처입은 인물이 그려져 가슴을 할퀴고 갔으면 좋았겠지만, 전경린, 전경린이라는 작가마저 결국 시간이 흐르니 다소 차분해진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작가의 말까지 모두 읽고 책장을 덮으면서는 이젠 나의 누이가 그녀만이 오롯이 감당해야 했던 사람살이의 어둠을 다 뚫고 나온 것이려니 생각하니 안심이 되었다. 굳이 곁에 누가 있는지 걱정할 필요가 없이 혼자서도 잘 살아가겠다는 결기가 보였다. 하지만. ...그녀가 현명해질수록 내게서 한 걸음씩 멀어지는 것처럼 까닭 모르게 아쉬운 건 여전히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다. 그래도, ...전경린, 그녀가 꾸준히 작품을 발표하니 감사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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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에서 연애소설을 가장 잘 쓰는 작가'라고 일컬어지는 전경린 작가님의 아~주 오랜만의 작품입니다. 자극적이고 화려한 소설만 읽었던 요즘의 나에게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 이란 작품은 신선한 충격으로 다가왔어요. 주인공이 담담하게, 순수하게 추억하던 기억도, 슬프게, 괴로워하던 과거도 작품을 읽는 독자로 하여금 감정이입되어 옛 생각이 조금씩 나게 하네요. 줄거리 내에 있어 화려함, 자극은 없었지만, 이마를 비추며 발목을 물들이며 은은하게 스며드는 작품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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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무수히 접힌 커튼으로 연결된 부피 없는 밀실 같았다. 아무리 걷고 들어가도 다시 눈앞에 나타나는 것은 진상을 가리는 가림막들이었다. 인생의 흐린 창문을 닦는 기분이었다. 점점 맑아지는 시력으로, 하루가 왔다가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가는 것을 그저 바라보는 것으로 충분했다. "네 목소리는 세상과 섞이지 않은 것 같아" 내 목소리가 어떠냐고 물으면 그렇게 말했다. 그에겐 내 목소리를 표현할 더이상의 단어가 없었다. 나애에겐 라애라고 불러주는 사람이 세 사람 있었다. 도이, 상, 종려할매다. 그들은 우연에서 시작되었다. 위의 글들은 책에서 좋았던 문장들을 적어봤다. 이마를 비추는, 발목을 물들이는... 제목처럼 잔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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