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진솔하고 무거운 글이다. 글을 읽는 동안 마음이 들떴다가 또 멀리 멀어졌다가 그랬다. 서럽고도 쓸쓸해 나는 소녀의 얼굴을 좀처럼 떠올리지 못했다. 가난은 익숙해지지 않는 것이어서 등 떠미는 비극들이 끔찍하고 괴로웠다. * 겨울이 지나고 봄이 지나고 여름, 가을이 지났다. 다시 겨울이 오고 봄이 오고 여름이 오고 가을이 왔다. 눈과 비와 바람과 햇빛이 엄마의 얼굴을 지웠다. 우묵한 눈자위와 불룩한 코의 자취도 스러지고 나지막한 한숨과 중얼거림, 머리숱이 좋아 아홉 가지 흉을 가릴 거라면서 내 머리에 한없이 빗잘하던 손길도 차츰 사라졌다. 엄마의 얼굴은 뿌옇게 흐린 껍질 속을 안타깝게 숨어버리고 삭지 않은 피멍으로 언제나 꽃이 핀 듯 울긋불긋하던 무늬, 엄마의 얼굴에 그려지던 그림만 남았다. 문득 훅 스쳐가는 친숙한 냄새, 희미하게 떨리는 가녀린 부름을 들은 것 같아 뒤돌아보면 햇빛, 바람, 엷어진 그림자 같은 것이 있었다. 누가 엄마의 얼굴에 그림을 그렸나? 슬픔의 그림을 그렸나? * 나는 책상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헝겊인형일 뿐인 것을 알면서도 왜 이런 따위 바보 같은 연극을 해야 하는지 웃음이 터질 지경이지만 꾹 참는다. 야단을 맞거나 매를 맞을 때 나는 눈에 띄는 것 중 한 가지만을 뚫어지게 본다. 그러면서 나는, 나 자신이 지금 바라보고 있는 책사이나 의자, 꽃병, 날아다니는 파리, 라로 생각한다. 그것들은 어굴이 빨개지거나 매에 대한 두려움으로 비굴하게 부들부들 떨지 않는다. 나는 책상이다. 나는 의자다. 창밖의 나무다. 아무것도 아니다. |
|
* 날카로운 슬픔에 손등이 베였다 한장 한장 넘기는 일이 쉽지 않았다 고개를 숙이거나 돌아서지 않는다 모두가 이 세계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다
* 부엌에서는 배고픈 쥐가 간단없이 달그락거리며 빈 그릇을 뒤지고 있었다. 나는 눈을 말갛게 뜨고 조그맣게 말했다. 늬 집에 가아, 먹을 건 아무것도 없단다. 나는 나를 잠들지 못하게 하는 조바심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문지방에 찧은 발은 이미 아프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몸을 오그려 발을 싸쥐고는 사납게 얼굴을 찡그렸다. 어둠 속에서 징그리고 또 찡그렸다. 맹렬히 이빨 가는 소리 속에 우리들이 저마다 뿜어대는 땀냄새, 떨어져 내리는 살비듬 내, 풀썩풀썩 뀌어대는 방귀 냄새, 비리고 무구한 정욕의 냄새, 이 모든 살아 있는 우리들의 냄새는 음험하게 끓어올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