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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떻게 외국인이 이렇게까지 한국을 깊게 파헤칠 수 있었는가 하는 감탄이 나온다. 내용과 상관없이 저자가 오랜 세월 동안 한국이란 나라를 포착하기 위해 많은 고민을 한 것이 책 전체를 타고 느껴진다. 일본인은 정말 관찰과 기록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한국인보다도 한국을 더 잘 알기 위한 저자의 노력은 상당 부분 성공했다고 생각한다. 2. 언어는 구성원들의 문화를 반영한다. 그러나 이러한 논지에서 언어를 전적으로 문화의 하위 대상으로 환원하는 것이 적절한 태도라고 할 수 있을까? 예를 들어 우리는 '안녕하세요'를 인사로써 사용하지 글자 그대로 상대방의 안녕을 바라거나 묻는 의미로 사용하진 않는다. 어떤 단어들은 단어 본연의 뜻보다 발화의 상황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이러한 생각을 무시한다면 너무 사태를 복잡하게 본다는 인상을 받을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때때로 저자가 한국어를 지나치게 철학적으로 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3. 내가 잘 아는 분야(한의학과 한의대 관련 P. 89~90)에 대해서는 조금 내용을 덧붙일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한의학의 명칭에 대하여: 저자는 한국인들이 전통의학을 漢의학이 아니라 韓의학이라고 표기한다고 얘기한다. 그러나 애당초 韓이든 漢이든 근대 시기 서양의학의 전래와 더불어 창제된 표현이며 그전까지는 단순히 '의학'이었음을 주지해야 한다. 일본이 근대 시기 漢의학이라는 표현을 쓰기 시작했고 이것이 일제 시대를 거쳐 한국에 유입되었다. 몇몇 한의사들이 주장하듯, 나 또한 韓의학이라는 명칭을 굳이 고수해야 할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긴 하지만(대다수의 한의사들은 韓이든 漢이든 동양의학이든 이런 기호학적 문제 자체에 큰 관심이 없을 것이다), 사상의학이나 침법 등 韓의학만이 강조하는 고유한 특징이 있음 또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漢의학이라는 명칭이 엄밀히 말하면 국제 표준 용어가 아니며, 일본 고유의 전통의학을 지칭한다는 점도 지적해야 한다. 오늘날 현대 사회에서 각국의 동양의학에 대해 중국은 中의학을, 한국은 韓의학이라고 표기한다. 다시 말해 漢의학이라는 표기를 고수하는 것은 일본밖에 없다. 그밖에 和의학이라는 말도 자주 쓰는데 이것은 漢의학에 비해서는 조금 내부적인 표현이며, 화한의학(和漢医学)이라는 표현이 보이기도 한다. 이따금 중국의 TCM을 본떠 TJM 등의 단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즉슨, 漢이 아니라 韓을 쓴다고 해서 그것이 논리적으로 부정합한 것은 아니며 굳이 漢을 따라야 하는 당위성 자체도 존재하지 않는다.
- 일본 한의학 고유의 특성에 대하여: 한의학의 기본적인 진단 체계를 변증시치라고 하는데 일본은 한국 중국과 다른 독특한 기혈수 이론이 존재하고 이를 통해 변증을 하기도 한다. 이것은 한국의 사상의학처럼 중국과 다른 일본만의 독자적인 진단 이론이다(일본 최고의 대학 중 하나인 오사카 대학 의학과의 자료를 참조). http://www.med.osaka-u.ac.jp/pub/kanpou/kampo/diagnosis.html ![]() 그 외에도 일본의 많은 대학병원(일본은 한국과 달리 의사가 한약을 처방하고 연구를 하는 일원화 체계이다)의 한방내과나 한방외래 자료를 검색하면 이러한 일본 漢의학 고유의 특징을 아주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처럼, 미국의 현대의학과 유럽의 현대의학이 조금씩 다른 방향을 가질 수 있는 것처럼 (<의철학의 개념과 이해> 참조) 한국 일본 중국의 동양의학도 조금씩 그 학문적 강조점이 다를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어떤 면에서는 한국보다 일본이 더 '제도적으로' 한의학에 친화적이며 융합적인 면이 있다. 한국의 의료 사회는 대단히 보수적이며 한의과와 의과의 갈등은 의료계의 갈등 중 아주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것은 저자가 지적하는 것처럼 상대방의 '리'에는 '리'가 존재하지 않는다거나, 상대방에게는 리를 따르는 '기'가 부족하다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그 결과 갈등은 반지성적이고 퇴행적이며 소모적이다. 더 큰 문제는 나날이 그 골이 깊어지기만 한다는데 있다. 반면 일본은 한의사와 의사가 분리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이러한 갈등의 여지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밖에, 한방 제약회사가 거의 없고 규모도 작은 한국과 달리 일본은 한약만으로 시가 1조 원 가량의 매출을 올리는 거대 제약회사인 츠무라 제약회사가 있다. 그리고 일본의 한약은 탕약 위주의 처방을 하는 한국과 달리 제제와 제형이 훨씬 다양하고 현대적이다. 이 문제에 관심 있는 사람은 <일본 한방의학을 말하다>(조기호)와 <일본에서의 한방의학(漢方醫學)에 대한 국비 지원 연구 동향과 그 함의>(정창운 외)를 참조할 것. 4. 1998년에 이러한 책이 쓰여졌다는게 아주 신기하다. 왜 이 책이 지금에 와서야 출간되었던 것일까? 안타까운 점은, 이 책의 내용 중 많은 것들이 아직까지 바뀌지 않았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저자가 지적한 '일제 단맥설'이라든가 일본인에 대한 부정적인 인상이나 도덕과 민족 중심의 역사관 등은 오늘날까지도 현재진행형이다. 그중 특히 내 관심을 끌었던 것은 정과 관련된 저자의 항변이었다. 도덕적 논쟁을 좋아하는 한국인에게 정이 없다는 말은 단순히 글자 그대로의 의미를 넘어 리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의 리와 일본의 리는 다를 뿐이며 여기에 도덕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저자는 그것을 "한국형 사회구조에 의해 만들어진 한국형 정이 없을 뿐"(P. 233)이라고 일축한다. 안타까운 것은 마지막 말이다. "지금까지 한국 혹은 조선을 제대로 성실하게 인식한 일본인은 적지만, 그 얼마 안 되는 존경할 만한 사람들이 마침내 피폐하고 야위고 고독하고 초연한 모습으로 황야에 서성거리는 것을 나는 보아 왔다."(P. 258) <제국의 위안부>와 <대화를 위해서>에 따르면 오늘날 일본의 많은 지한파 지식인들이 한국에 커다란 벽을 느끼고 더 이상 관여하길 포기하게 되었다는 서술이 있었다. 대체 언제까지 이러한 사태가 계속될지 안타깝기만 할 뿐이다. 연속성이 사라지고 단절의 벽만 남는다면 관계는 밑을 향해 내려갈 수밖에 없다. 3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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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인의 시선에서 내부의 문제를 더 잘 파악할 수 있을 때가 있다. 내부자이기 때문에 내부의 문제를 잘 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이 책은 일본인인 오구라 기조가 외국인의 시선에서 '도덕 지향성'이라는 렌즈로 한국을 바라본 책이다. 외부인이기 때문에 우리가 미처 느끼지 못했던 우리 자신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저자는 일본과 달리 한국이 도덕지향적 국가라고 지적한다. 사람들이 도덕적으로 살아간다는 뜻이 아니라 도덕적 가치판단이 우선시되는 나라라는 뜻이다. 그것이 우리 주변의 수많은 모순과 갈등을 만들어낸다. 2022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진단이다. 한일관계뿐 아니라 한국 내부의 모순을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고민이 깊어지는 지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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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일본인 작가가 외부인의 시선에서 한국인들의 행동을 서술한다. 한국인들은 개인보다 관계와 집단적 상황에 순응하는 특징이 있다. 그러면서 동시에 서로의 강한 경쟁의식이 있지만 동시에 강한 정을 가지고있는 특징이 있다. 한국이 짧은 시간에 발전하면서 보인 국민적인 특징을 외국인의 시선에서 설명한것이 매우 흥미로웠고 이런 이중구조적인 사회속에서 급격한 발전과 양극화 등 득과 실을 함께 가지고 있는 것이 한국인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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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의 한국을 이해하기 좋은 책인듯 싶다. 우리의 선배들 과장님, 부장님들을 이해하기 위해 읽는다. 무기력해진 한국이 다시 치열한 철학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을까. 알면 알수록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인으로 본 한국의 철학은 다시 살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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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조 이래로 우리는 도덕성에 미쳐 있는 국가가 된 것일까? 아니면 유학이 전래된 이래 조선에서 꽃을 피워 오늘날 이렇게 도덕에 미쳐 있는 나라가 된 것일까? 같은 말이지 뭐. 여하튼 철학의 나라 조선이 끼친 영향은 우리 대한민국에도 많이 미쳤다. 정치와 도덕을 하나로 묶어 무릇 지도자라면 청빈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신랄하게 비판한다. 조금의 흠도 없어야 하는데 우리는 발견하기만 하면 서로 끌어내리려고 하니... 근데 오구라 기조는 어떻게 해서 우리의 이런 면까지 바라보게 되었을까? 한국인의 철학을 그것도 외국인의 시각에서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책이다. |
| 외부 시선으로 본 한국에 대한 책입니다. 이 책의 작가인 오구라 기조는 한국을 잘 아는 일본인이죠. 너무 한국적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한국에 대한 몰이해가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책은 한국이 어딴 사상을 가지고 사는지에 대해 날카롭게 파헤치고 있습니다. 리기론 즉 리와 기에 대한 철학이 한국을 관통하는 사상이라고 보는데요. 상승과 경쟁에 매몰된 한국 사회에 도움이 될 만한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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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직히 외국인의 시각에서 보았을 때, 한국에 대하여 이해가 덜 된 부분은 없잖아 있는 것 같기도 해요. 하지만 정말 예리한 지적이라고 그리고 한 번 읽을 가치가 있는 책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이 책을 사서 선물하기도 했었네요. 조금은 편파적이고 (그리고 모든 지식이나 방대한 양의 무언가를 하나로 해석할때 생기는 괴리감)은 감안하고 보셔야 합니다. 거의 모든 리뷰가 그런 내용을 다루고 있는 것은 기우가 아닌것이에요. 이와 기 그리고 성리학적인 측면에서 접근한 면이 없잖아 많습니다. 하지만 한국인 정서를 설명한다는 점에서 약간은 흔적처럼 남아있는 것일수도 있겠네요. 등에 남아있어서 우리는 확인할 수 없는 상흔이요. 그래서 조금은 반감을 가지게 되는 것일수도 있겠습니다만. 한국인으로서 한국인이 가지고 있는 편견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보면서 깨달았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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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철학일까 "한 개의"철학일까? 내용이든, 해석이든 한국이라는 사회를 단순히 해석하는 저자의 입장이다. 다양하고 복잡한 대상을 너무나도 단순하게만 접근하는 입장이 부적절해 보인다. 한국을 주자학의 "리"와 "기"로 이해해보려는 저자의 입장은 새롭기는 하다. 다만 진행되는 흐름을 보면, 신선한 접근에서 부적절한 예를 드는 것에서 폭을 좁게 보고 있다는 실망감 마지막에는 일본인스럽게만 보는 데서 이질감이 보인다. 근현대사에 주자학을 지우고 해석할 수는 없겠지만, 주자학으로만 보는 것은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또한 "리"와 "기"의 두 축으로 해석하는 시도는 앞서 말한바와 같이 신선하다. "리"와 "기"를 혼동해서 보는 것은 아닌지 조심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요즘드는 생각은 "리"의 영역은 생각보다 더 고귀하고 뭔가 사명으로 삼는 분야로 고민된다. 그런 영역을 정의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