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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던바의 수’라는 게 있다. 사람이 개인으로서 맺을 수 있는 사회적 관계의 최대치가 150명이라는
것인데, 인간 집단의 적정 크기가 된다. 바로 로빈 던바가
제시하고 주장한 것이다. 이 150명이라는 숫자는 그냥 그런
것 같아서 제시한 게 아니다. 개인적 관계나 비즈니스적으로 구성되어 있는 집단의 크기도 그렇고, 군사적으로도 그렇다(전투 단위로서).
역사적으로도 그렇고(전통 사회의 마을 규모), 진화적으로도
그렇다는 것이다. 그냥 이 150명이라는 숫자를 그냥 흥미로운
관찰의 결과라고 볼 수 없는 이유는 던바가 이 ‘던바의 수’를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때문이다. 던바는 이를 개체 간 관계에 대한 정보의 제약에서 온다고 본다. 즉, 영장류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으로 수컷의 서열과 그 수컷이
짝짓기할 수 있는 암컷의 수 사이에 상관관계가 존재하지만, 신피질의 크기가 큰 종의 경우 그 상관관계가
느슨한 점, 그리고 신피질의 크기가 클수록 전술적 속임수도 다양하다는 점을 그 증거로 제시하고 있다. 이게 왜 증거가 되냐 하면, 관계라는 측면에서 보았을 때 영장류에서
집단 구성원의 수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관계의 질의 중요하기 때문에 집단이 엄청 커질 수 없다는 것이다. 즉, 관계를 지속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 사용해야 하는 자원의 한계 때문에 특정 수준 이상의 친밀감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의 수에는 한계가 존재한다. - 던바의 『발칙한 진화론』, 이 책의 원제는 이 던바의
수를 설명한 2장의 제목 『How Many Friends Does
One Person Need?』, 즉 “당신의
진짜 친구는 몇 명입니까?”이다.
2. 우리말 제목으로 “발칙한 진화론”이라고
했지만, 그다지 ‘발칙’하지
않다. 발칙하다는 ‘하는 짓이나 말이 매우 버릇없고 막되어
괘씸하다’는 뜻이다. 아마도 기존의 상식과는 차별되는 좀
도발적인 내용이 포함되어 있어서 제목에다 ‘발칙’이라는 말을
넣은 듯 싶다. 그렇다면 대체로 진화론에서 상당히 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지는 내용을 포함시킨 이 책에서
도발적인 내용은 무엇이 있을까? 현대인의 많은 수가 칭기즈칸의 자손이라든가, 남자는 자신의 이야기, 여자는 남의 이야기를 즐긴다는 것, 지적 설계론의 모순, 옥시토신에 관한 이야기 등이 도발적일 수는 없다. 대신 많은 결함을
안고 태어나는 아이를 살리는 것에 대한 질문이라든가 IQ가 수명에 영향을 미친다는 내용은 좀 도발적이다. 즉, 정치적으로 옳지 않다. 특히
의학이 발달하기 전에는 죽었을 아기를 살려서 평생 고통 속에서 살아가도록(아이뿐만 아니라 부양자까지) 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하는 질문은 많은 사람들이 쉽게 동의하지 못할 내용이긴 하다. 이를 진화적으로 봤을 때 인간에게 이롭지 않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일을 진화적으로만 판단하는 게 과연 옳은 것인가, 라는 비판은 당연한 것이다. - 그러나 던바가 쓰고 있는 내용 모두가 이처럼 발칙한 것은 아니다.
한 책에서 저자의 주장, 견해에 대체로 동의하는 경우에도 일부는 동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3. 적지 않은 내용이 새로이 접하는 것은 아니지만(많은 진화론 책이 반복적인
경우가 많다), 던바의 경우에는 (적어도 내게는) 신선한 내용들이 있다. 대표적인 것이 인간이 침팬지를 비롯한 유인원과
다른 점에 대한 것이다. 던바는 다른 사람들이 주장하는 문화라든가, 언어 등의 기준을 의심쩍어
한다. ‘마음 이론’도 있지만 역시 그다지 탐탁스럽지 않다. 대신 그가 제시하고 있는 것은 ‘지향성’이다. ‘지향성(intentionality)’이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데, 가정하다, 생각하다, 궁금해하다, 믿다 등의 동사를 사용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으면 일단
1차 지향성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던바는 동물들도 이 1차 지향성은 갖고 있다고 본다. 즉,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다음은 “내 생각에 너는 ...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와 같은 2차 지향성인데, 이것은 상대방의 마음 상태를 고려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는 얘기다. 이
단계는 마음이론을 갖게 된 것을 의미하는 데 인간으로 따지자면 4, 5살 정도에 해당한다. 일부 동물들도 이 단계까지는 온다. 던바는, 그러나 동물들은 이 2차 지향성 이상은 올라가지 못한다고 본다. 사람은 어떤가? 던바에 따르면 대부분의 사람은 5차 지향성이 한계다. “내가 ...를 의도한다고 네가 생각하기를 내가 원한다고
네가 믿는 것을 나는 가정한다.” 마치 ‘유상무상무’와 같은 개그와 같은 이 문장은 복잡하긴 하지만 조금만 보면 이해가 된다. 우리는
이 정도까지는 온다. 바로 이런 복잡한 지향성을 갖추었다는 게 인간이 인간인 이유이며, 인간이 침팬지와 다른 이유라는 게 던바의 이론이다.
그렇다면 그럼 이를 뛰어넘는 경우는 없을까? 있다. 바로 셰익스피어와 같은 경우이다. 셰익스피어는 6차 지향성을 능수능락하게 사용했다고 보는데, 즉 관중의 심리 상태까지
고려하고, 그 모든 것을 머릿속으로 상상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셰익스피어의 의도는 데스데모나가 카시오를 사랑하고, 카시오도
데스데모나를 사랑한다고 오셀로가 믿도록 이아고가 계략을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관중이 믿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셰익스피어는 천재다.
이 지향성의 관점은 종교에까지 나아간다. 2차 지향성까지만 갖는 동물은
종교를 가질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선한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기를 신께서 원하신다는 나는 믿는다”와 같은 3차 지향성을
갖추면 개인적인 차원에서 종교가 가능해지고, “우리가 선한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기를 신께서 원하신다는
네가 믿기를 나는 믿는다”까지 나아가는 4차
지향성 수준에 이르면 사회적인 종교가 발생한다. 그리고 “우리가
선한 의도를 가지고 행동하기를 신께서 원한다는 것을 우리 모두 믿는다는 것을 네가 알기를 나는 바란다”, 5차 지향성, 즉 우리 인간이 다다른 지점에 이르면 지금 종교라
부르는 그와 같은 것을 갖게 된다는 것이다.
이에 덧붙여 인간 사회에서 종교가 생겨난 시기와 이유에 대해서 진화론적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던바는 유일신 교리의 종교를 옹호하지는 않는다. 그건 던바의
논리에 의하면 당연하다. 종교는 인간의 의식이 발달하면서 가능해지고,
인간 사회의 필요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신이 존재하기 때문에 종교가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던바에 따르면, “진화가 신을 발견했다”.
4. 로빈 던바에게서 스티븐 제이 굴드의 향기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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