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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단적 사고 때문에 위험하고 피곤한 세상이다. 저자는 테러, 인종청소, 나치즘, 부동산 버블, 주가 폭락 등을 극단적 사고의 예로 들어 설명한다. 나는 인터넷 세계에서 많은 시간을 사는 사람이라 인터넷 지형도에 초점을 두고 저자의 이론을 적용시켜보며 읽었다. 참사 때마다 고개를 드는 음모론, 유사과학 신봉 집단. 또 서로의 거울쌍들, 가령 일베-오유, 극렬 페미니즘-극렬 안티 페미니즘, 여초 커뮤니티-남초 커뮤니티... 어떻게 오유가 극단이냐, 어떻게 페미니즘이 극단이 될 수 있느냐,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나는 일말의 자기의심도 없는 이론과 운동을 믿지 않는다. 나는 나 자신과 내 준거집단의 비윤리와 오류적 행태에 대해 늘 고민한다. 우리의 주장은 치명적인 무엇을 감추고 있는 게 아닐까, 내 윤리는 타인의 무엇과 교환된 게 아닐까, 하며. 설득하려고 쓰는 건 아니다. 그냥 내 믿음 같은 것이니 무시해도 상관 없다. 각설하고, 왜 우리가 극단에 끌리는가 하면 애초에 같은 사람들끼리 모였으니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비슷한 인종적, 사회적 조건을 가진 사람끼리 모여 집단청체성을 갖고, '그들만의 세상속'에서 살게 된다. 이 집단은 구성원 간 애착 과정을 거쳐 내부 구성원들끼리만 상호작용이 활발히 이루어지는 '반향실' 역할을 한다. 새로운 정보의 소스도 내부에서 비롯됐고, 그것의 진위를 확인하는 작업도 구성원끼리만 의존하니 그들 믿음에 반하는 정보는 모조리 반대편의 선전으로 간주돼 폐기된다는 것이다. 구성원들 가운데 일부는 이런 극단화 과정을 거부할 수도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보통 떠난다고. 그 과정이 '자발적인 분류 voluntary sorting'와 '자기선택 self-selectioin'이고 집단엔 열렬한 신봉자만 남는다는 것. 또한 극단적 주장은 그것이 논리적으로 유리하게 들리는 '수사적 이점rhetorical advantage'을 가지기에 반대편과의 싸움에 유리하다. 한편으론 반대편 주장을 접해도 사람들은 '편향동화 biased assimilation' 때문에 자신의 생각과 같은 주장은 현명하고 논리적인 것으로, 반대편 주장은 어리석고 터무니없는 것으로 치부한다. 이런 이론도 있다. '사회비교론 social comparison'인데 사람들은 집단 내 다른 구성원들에게 자신의 이미지를 호의적으로 보이고 싶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따라 자기 입장을 주류적인 입장으로 수정해나간다는 것이다. 자신이 실제로 아는 정보를 근거로 판단을 내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생각에 근거해 판단하는 '사회적 폭포현상 social cascade'이란 이론도 있다. 극단화의 긍정적 영향도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보통 사회적 약자들은 목소리를 빼앗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들끼리 모이면 '동질적 집단토의enclave deliveration'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는 일반적인 토의에서는 드러나지 않는 입장, 침묵하거나 억압당하는 의견이 겉으로 드러나도록 촉진한다는 특별한 장점을 가지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이러한 약자들의 동질적 집단일지라도 심각한 위험성을 내포한다는 것 또한 저자는 지적한다. 집단극단화처럼 폐쇄적인 토의로 인한 부작용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사회에서 보이는 사고의 극단화란 기실 집단이 만들어내는 극단화이니 극단화의 해결 방법은 그 반대가 될 것이다. 애이브러햄 링컨 대통령과 프랭클린 델라노 루스벨트 대통령은 '정보의 반향실'에 갇혀 지내지 않으려고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고, 타고난 겸손과 호기심으로 '정보의 풀'을 넓혔다고 한다. 연방제, 상원-하원 분리 등의 미국 정치 제도는 이런 기조를 잘 수용해 극단화를 막는 예라고. 저자는 이렇게 주장한다. 인터넷을 새로운 견해를 탐색하는 방법으로 사용한다면 극단화를 방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 여러 분야에서 우리는 자신이 내린 판단을 다른 사람들의 판단과 비교하고 담금질하려는 욕구를 통해 집단극단화를 견제할 수 있다고. 응... 인터넷? 인터넷의 극단적 사고를 이런 다짐으로 극복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봤지만... 별로 답은 없어보인다. 그게 말처럼 쉬우면 이렇게 될 일도 없었을 것이다. 인터넷은 어쩔 수 없이 유유상종의 바다요, 네티즌은 정보의 누에고치일지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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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우 극좌 같은 극단적 단어들이 휭행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나의 의견은 항상 중용이라는 오만속에서 나와 의견이 조금이라도 다르면 극단으로 몰아가는 시대이다. 그러나 분명히 극단은 현실에서 실제로 존재한다. 주체적인 개인성은 매몰되고 집단속에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경향은 이곳저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이 책은 왜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는지에 대한 논리적이고 실증적인 논리를 보여준다. 미디어의 대중선동에 쉽게 이끌리고 휩쓸리는 현대인들이 반드시 한번 읽어봐야될 서적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