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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이 집현전 학자들과 심혈을 기울여 만든 우리 민족 고유의 문자인 '한글', 우리말 한글을 떠올릴 때면 왠지 모르게 가슴 한 켠이 뭉클해지는 기분이 되곤 하는데 그런 한글을 보다 더 가까이에서, 자세히 알아가고 느낄 수 있는 책을 만났다. 현대 미술가였다가 언어학자가 된 '노마 히데키'의 저서, 제22회 아시아태평양상 대상 수상작인...
문자라는 기적, <한글의 탄생>
아무렇지 않게 쓰고 있는 이 글, 한글이 어떤 언어이며 어떠한 원리로 이루어졌고 만들어졌는지 언어논리학적인 측면에서 접근, 총7장으로 아주 세세하면서도 심도 깊게 다루고 있다. 매일같이 말하고 쓰고 들으면서도 문법적인 측면에서 그 원리를 설명하라면 말문이 막히고 마는데 이 책이라면 한글의 모든 걸 비교적 쉽게 하나하나 파헤치며 조목조목 설명해줄 수 있을 것같다. 먼저 책 내용을 간략히 살펴보면...
한국어학자 주시경에 의해 명명되었다고 전해지는 '한글(위대한 문자라는 뜻)'은 훈민정음 창제 당시 '정음'이라 불려졌는데 이는 언어의 명칭이 아니라 문자체계의 명칭이며 언어명으론 '한국어'라는 것.(p31~33) 한국어를 사용하는 화자와 사용되고 있는 나라, 한국어의 구성, 다른 나라의 언어(인도네시아 소수 민족, 찌아찌아어)를 표기하는 데에도 사용되는 한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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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문자는 곧 한자이며 오로지 한문만 쓰여지던 시대에 훈민정음, 즉 '한글'이란 문자체계를 만들어낸 과정을 '한자'의 구성 원리를 먼저 파헤치며 일본의 문자, 히라가나와 카타카나 그리고 한글과의 비교, 분석하고 자음, 모음, 음소, 음절 등등의 세부적인 언어학으로까지 확대함은 물론, 한글의 탄생과 관련해 당시 사회 기득권 세력의 반발과 한글과 연관된 역사까지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또한 한글의 인쇄와 서체가 어떠했는지 등 한글이라는 문자가 지닌 예술적인 부분까지 언급한다. 그야말로 책 한 권에 '한글'의 모든 걸 총망라하고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봐 온 다큐멘터리나 책의 경우, 대체로 '한글의 우수성'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다루는 편인데 이 책은 일본인 독자를 대상으로 쓰여진 걸 한국어판으로 다시 수정, 보완하여 출판된 걸 감안한대도 최대한 객관적, 논리적인 사실을 바탕으로 쓰여진 점이 내용을 보다 더 신뢰할 수 있고 단순 읽기에 그치는 것이 아닌 배움의 길로 이끈다. 특히 언어학에 대한 부분은 쉽게 설명해도 좀처럼 이해하기가 어려워 거듭 읽고 알아가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암튼 한 나라의 언어를, 문자를 이토록 깊이 연구하고 알리고자 한 저자는 물론 역자들의 노고를 짐작할 수 있는 문장을 읽으면서는 왠지 감동을 받았고 무척 감사한 마음이 든다. 단어 선택 하나에도 갈등이 있었으며, 인내도 있었다. 그러나 마지막까지 우리 번역자들이 공통적으로 가슴 깊이 간직하고 있던 것은 '한글의 탄생은 반드시 한국에서 출판되어야 하고 그것도 멋진 한국어로 출판되어야 한다'는 희망과 기대였다. p395~396 한글에 대해 쓰여진 이 멋진 책을 반짝반짝 빛나는 한글로, 한국어로 만나지 못했다면 얼마나 안타까웠을까...? 지(知)의 혁명, 문자의 혁명, 배척당하고 꺼려지는 가운데 어렵게 탄생해 여러 시대를 지나는 동안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우리 곁에 살아 숨쉬게 된 문자, 한글. 그 탄생을 함께할 수 있어 참으로 다행이고 감사한 일이다. 한글의 흥미로운 탄생의 순간이 보다 더 널리 알려질 수 있길 간절히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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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생각해보니, 한글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깨달았다. 한글날을 의식하고 읽은 게 아니라는 얘기다. 한글날을 앞두고 읽어 더욱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 놀라운 책은 한글날에서 벗어나 읽어도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책이다.
‘한글’이라는 문자의 위대함은 귀가 따갑도록 들어 왔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한국어’라는 언어의 위대함이 아니라 그 한국어를 기록하는 문자로서의 ‘한글’이 위대하다는 것이다. 한글날을 즈음해서 뉴스 등에서 지적하는 것들 중에는 이 한국어와 한글을 혼동하는 경우가 흔하다. 물론 한국어 사용의 문제점도 중요한 것이지만, 한국어라는 언어와 한글이라는 문자를 혼동한다는 얘기다. 이 책은 한국어에 대해서도 얘기하지만, 주로는 한글이라는 문자, 그 문자의 발명에 관해 쓰고 있다.
우선 가장 먼저 감안하게 되는 것은 일본인 학자가 쓴 한글에 대한 책이라는 점이다. 우선은 일본어로 일본에서 발간한 책이다. 일본인을 대상으로 쓴 책이라는 얘기다. 그래서 일본어를 빗대서 설명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야만 했을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런 이유로 이 책이 상당히 넓고, 깊은 부분을 포함하고 있다. 그냥 한글이 우수하다는 선언을 하는 게 아니라, 한자나 일본어로 표현했을 때 이러저러했을 것을 한글을 표현했을 때 이렇게 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걸 훌륭하다느니, 우수하다느니 하는 식으로 표현하지도 않는다. 무엇이 다른지를 보여준다(옮긴이는 ‘언어학적 궤도 안에서 일본어와 대조하며 한글과 한국어를 제시’한다고 쓰고 있다). 다만 내가 일본어에 까막눈이라 이 책의 진가를 최대한 누리지 못하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저자는 한글이라는 문자의 발명은 동아시아사에서 우뚝 솟은 ‘지(知)’의 혁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자라고 하는 분명한 문자가 존재하는 조건에서, 그 한자와는 완전히 다른 체계의 문자를 만들어내고자 한 의도부터, 그 문자를 발음 기관을 표현하는 것으로 만들어낸 독창성과 기발함, 문자의 조형성을 감안하고, 한자와의 어울림을 위해 초성, 중성, 종성을 하나의 글자로 모은 발상, 그러한 문자를 이용하여 각종 한자 서적을 번역하거나, 완전히 새로운 창작을 하거나 하여 문자를 실제적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한 실행력 등등을 언급하고 있다. 바로 이러한 것이 바로 위대한 ‘지(知)’의 혁명이라는 것이다.
우리가 말하는 언어이고, 쓰는 문자라 언어와 문자의 특징과 조성의 특별함에 대해서 별로 의식하지 못한다. 이 책을 읽으면서야 비로소 좀더 깊게 생각하게 되는데, 읽으면 과연 그렇구나 하는 것을 알게 되는 것은 그래도 내가 의심 없는 한국어화자이며, 게다가 한글을 불편 없이 쓰고 있는 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이 책의 가장 큰 장점을 얘기하자면, 민족주의의 자장(磁場)에서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누가 읽더라도 내용을 이해하는 속도와 폭, 깊이가 다를 수는 있지만 충분히 이해하고 긍정할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생각해도
‘한글’이라는 문자는 기적이었다. 그 기적은 투쟁 끝에 우리에게 일상과 같은 것, 전혀 특별하지 않은
것으로 남게 되었다.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깨달을 필요도 없이 우리는 지금도 그 글자를 쓰고 읽는다. 얼마나 대단한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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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 일반에 대한 지식을 바탕으로 한자, 가나, 알파벳 등과 비교하면서 한글의 특성을 설명한 점에서 새롭게 얻는 지식이 많아서 좋았다. 새로운 개념을 필요이상 임의로 창설해서 쉬운 것을 어렵게 쓴 의도가 있는 것은 원래 일본인의 책들은 그런 경향이 있기에 넘어간다. 게쉬탈트, 에끄리뛰르, 형-음변, 음-의변 등등 상당수가 불필요한 새 개념들이다.
다만, 25페이지 첫 문장 '훈민정음이 (세종이 훈민정음을 직접 창제한 것이 아니라)세종의 명에 의해서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창제되었다'는 부분은 분명한 오류라서 고쳐야 한다고 본다. 틀린 것이 너무 명백하니 책 말미에 첨가된 참고문헌의 양에 기가 죽을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렇게 많은 서적과 이론을 섭렵하고서도 “훈민정음 세종 친제설”을 부정한다는 것은 일본인으로서의 민족주의가 작용한듯하다. 조센징이라는 말이 욕으로 사용되는 일본의 국민이다보니, 물론 식민지시대의 세뇌교육을 받았겠지만, 한 명의 학자로서도 과거 식민지로서 다스렸던 ‘열등한 민족’의 나라의 왕이 세계 으뜸의 문자를 만들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일 것이다. 신의 아들이라는 천황조차도 못한 일을 그들 생각에 “열등한 민족의 나라인 조선”의 왕이 만들었으니 어찌 받아들이겠는가?
요즘 출간되는 세종관련 책들과 방송에서도 많이 소개되었듯이 세종이 직접 훈민정음을 만들었다는 것은 근거가 있다. 먼저 세종어제서문에 “내가 이를 어여삐 여겨 새로 28자를 만든다”고 했고, 뒤이어 정인지서문에서 “임금이 창제했다”고 하였을 뿐만 아니라, 세종실록에도 정인지나 신숙주, 최항 등 신하들 이름을 들먹이며 “아무개가 조사한 바로는 이렇다 한다”, 또는 “아무개가 잘 아니 그에게 물어보아라”라든가, “아무개는 이 신하들에게 설명하라” 등등 신하에게 미룬 적이 없다. 항상 “너희가 사성 칠음을 아느냐?”하는 등 직접 신하들의 무지를 공박했던 세종이었으니 세종이 아니고 누가 만들었겠는가?
저자가 세종을 격하하려는 모습은 책 속의 사진에서도 읽을 수 있다. 세종의 사진은 한글학자들의 사진보다 크기도 작은 것을 순서도 한참이나 뒤편에 실어놓았다. 뿐만 아니라, 훈민정음해례본의 처음 두 장이 찢겨져 보충한 것이니 훈민정음을 소개하면서 세종어제서문을 찍은 사진을 쓰면 안된다고까지 말한다.
세종을 격하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일제 강점기에 일본식 신식교육을 받은 한글학자는 지나치리만치 치켜세운다. 이로써 은근히 한글의 탄생에 일제의 교육제도가 한 몫했다는 것을 비치고 있다.
학이시습지불역열호의 해석을 하는 데에도 일본 한문학자들의 눈치를 보면서 두루뭉수리 대략 해석하는 치밀한 저자가, 아주 자잘한 것들은 지나치게 친절하게 각주를 달아서 부연설명하는 저자가, 훈민정음의 세종 친제설에 대해서는 각주를 달지도 않고 잘라서 부정하는 것은 한마디로 우리 민족에 대한 모욕이며, 이를 막아내지 못한 출판사 등등 관련자들도 책임이 없다 못할 것이다.
저자 노마히데끼는 한국인의 민족주의에서 탈피한다고 했으나, 일본인으로서의 민족주의는 벗어나지 못한 점이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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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어의 글자인 한글이 우리에겐 너무나도 익숙한 나머지 외국글자들에 비해 천시받는 현재 일본인이 '훈민정음'에 대해 이렇게도 자세하고 수준있으며, 무엇보다도 애정어린 시각으로 책을 썼다는 것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미국인과 중국인, 일본인과 언어교환을 하면서 한글을 가르쳐본 경험이 있는 저로서는, 하루만에 외국인에게 한국어를 읽게 할 수 있는 (독해는 안되지만) 한글의 우수성을 객관적으로 느껴 볼 수 있었는지라, 한국인으로서 자부심 중에 가장 큰 부분이 바로 한글이었습니다.
저자는 이책에서 왜 '정음'이 지적 혁명인지를 설명합니다. 당시 식자층에게 수백년간 쓰여온 문자인 한자와 한글을 언어학(문자학, 음성학)적 관점에서 비교 대조 설명하면서 형음의가 일치된 표의문자 한자에서 용음합자하는 정음을 발명한 것이 얼마나 미증유의 혁명적인 사건인지를 소개합니다. 그리고 역사적인 측면에서 한자문화권인 우리에게 정음의 출현은 마치 우리에게 내일부터 아랍어로 글을 쓰라는 것 이상의 충격임을 실감케 해줍니다. 마지막으로 형태적인 측면에서 붓으로 그 미가 완성되는 한자에 비해 고딕체인 정음을 발명한 것은 게슈탈트 면에서도 혁명이었음을 알려줍니다. 게다가 개인적으로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었음도 이 책은 지적해주었습니다. 그것은 한글이 본격적인 에크리튀르를 형성한 것이 근대 이후라는 생각인데. 노마 히데키 교수는 근대 이전에 식자층이란 어차피 제한적이었으며 조선 시대 식자층이 정치적 글쓰기는 한자한문으로 하였지만 한글로도 저술하고 에크리튀르를 형성하고 있었다고 알려줍니다. 책을 덮으면서 한글의 우수성과 이를 만들어준 조상께도 감사하게 되고 이를 알려준 노마 교수에게도 정말 사의를 표합니다. 더불어 왠지 모를 눈물도 났습니다. 당연히 이 책에 수많은 리뷰에 달렸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의외로 1개의 리뷰밖에 등재되어 있지 않아 리뷰를 쓰게 되었으며 한국인이라면 필독서 중에 필독서가 아닌가 합니다. 활자크기와 여백을 줄이면 책장수가 더 줄 수 있었을 텐데라는 아쉬움이 남긴 합니다만 그래도 책의 내용은 정말 뛰어나다고 할 수밖에 없습니다. 노마 히데키 교수는 한글의 야나기 무네요시인 듯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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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의 근원이 확실한 글자를 가지고 있다는 것, 그걸 기리는 공휴일이 있다는 것, 성군 세종대왕이 만들었다는 것, 그래서 매우 뿌듯했다는 것이 한글에 대한 지금까지의 내 소감의 다였을 테다. 하지만 이 책을 비롯한 또 한 권의 책을 통해 한글에 대해 좀 더 알고 나니 한글을 학문으로 다루는 학자 등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훌쩍 한글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
책은 한글의 형성 과정과 형성 원리에 대해 대체로 쉽게 설명하고 있지만 언어학적인 낱말과 표현이 나올 때에는 되새겨가며 읽게 되고 잘 이해하기 어렵기도 했다. 책이 잘못 되었다는 게 아니라 한 번 더 곱씹어 이해해볼 내용들이 있다는 뜻이다. 음운형태론적으로도 현존하는 가장 완벽한 문자라는 주장에 다다르기까지 저자가 제시하는 설명과 그 근거를 따라가다 보면 무슨 문자 미학을 보는 듯한 느낌도 든다. 그냥 우리만의 글이 아니라 한 글자, 한 글자 모양과 발음, 의미가 주는 입체성을 잘 정리해서 내어놓는다. (역시 내게는 어려운 부분들이 있다.) 말로만 들었던 최만리의 상소문의 상세한 내용을 볼 수 있었던 것뿐만이 아니라 정음 창제를 두고 벌어진 치열한 사상 논쟁을 접할 수 있는 것도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거대한 혁신을 이루려는 자와 현재를 붙들려는 보수주의자 간의 세계관의 거대한 충돌... 그 과정을 통해 발휘되는 세종의 리더십까지. 다만 조선 말기부터 일제시대에 이르기까지 한글의 대중화 과정에 대한 설명이 적은 것은 아쉬운 점이다. 일본인으로서 이 시기의 상황을 묘사하기가 쉽지 않은 때문이었을까
이 책을 읽는 동안 내 앎이 얼마나 짧고 저열한지, 내 생각은 또 얼마나 비루한지 다시 한 번 돌아볼 수도 있었다. 일종의 성찰이었다고 할까? ‘한글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같은 책을 먼저 읽고 이 책을 접하면 한글에 대한 이해가 급상승함을 느끼게 될 것으로 보고 같이 추천한다.
세종은 다다르고자 했던 세상을 열어 보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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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랏:말․미中國․귁․에달․아文문字․․와․로서르․디아․니․․이런젼․․로어․린百․姓․․이니르․고․져․배이․셔․도․:내제․․들시․러펴․디:몯․노․미하․니․라․내․이․爲․윙․․야:어엿․비너․겨․새․로․스․믈여․듧字․․․노․니:사:마․다:․:수․니․겨․날․로․․메便뼌安․킈․고․져․미니․라
고등학교 국어시간에 '세종어제 훈민정음(世․솅宗 御․엉製․졩 訓․훈民민正․音)' 이 부분을 열심히 외웠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선생님도 이 부분 수업할 때에는 칠판에 별표 몇개 매기면서 저 내용이 아주 중요하다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강조하셨다. 이 내용을 배우던 그 때에는 어느 부분은 세종의 애민 정신을 나타내고, 또 어떤 단어는 뜻이 어떻게 변했고 등등의 내용을 시험에 많이 나온다고 해서 달달 외웠는데, 덕분에 지금까지도 저 내용을 외울 수 있고, 또 지금에서야 아..훈민정음이 얼마나 중요하고 또 대단한 발명품이고 뛰어난 문자였는지 새삼 느끼고 있다. 나아가 문자로서 뿐이 아니라 우리 문자를 가질 수 있다는 것과 문자의 탄생이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광범위하고, 의미있고 가치있는 일이었는지 역시나 이제서야 자각하게 된다.
![]() '한글의 탄생'은 특이하게도 일본 언어학자가 쓴 책이다. '말해진 언어'와 '쓰여진 언어'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보편적인 언어학, 문자학 이론에 입각해서 '정음'의 어떤 면에서 중요하고 뛰어난 문자인지를 차분차분 설명하고 평가하고 있다. 책을 읽다보니, 언어학자로서 용어나 개념을 사용하는 것도 그렇고 언어학에 입각해서 정음을 설명하다보니, 고등학교 때 고문(古文)이라고 해서 정음'과 그 훈민정음으로 된 작품을 배우던 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도 들었다. 공부하는 듯한 기분으로 읽다보니, 진도가 더딜 수 밖에 없었는데, 그런 가운데에서도 문자로서 한글이 지닌 우수성에 흐뭇한 마음이 들었다. 필자는 언어와 문자에 대해 민족적인 시각을 버리고 언어학의 보편적인 개념을 들면서, 또 객관적인 자세로 문자로서의 훈민정음을 높게 평가하고 있음에도 나는 민족적인 자부심을 가득 갖고서 이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중간중간 실감할 수 있었다. 훈민정음은 용음합자(用音合子) 즉,자모를 조립해 문자를 만들어내는 시스템인데 이 시스템은 한자와는 완전히 다른 체계였다. 흔히 한자 사대주의라고 알려진 최만리가 상소를 올리면서 이 용음합자를 지적한 것을 보면 그는 엄연하게 언어학적, 문자론적 근거를 바탕으로 상소를 올렸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정음'이 가져올 지적 지평에 대한 물음인 것이지 단순히 한자 사대주의를 추종해서가 아니라는 필자의 의견은 인상적이었다. 그러니까 '정음'의 등장은 에크리튀르(ecriture, 쓰는 것, 쓰여진 것, 쓰여진 知)에 혁명을 불러왔고, 엄청난 파장을 몰고왔다는 것이다. 당시 에크리튀르의 모든 것은 한자한문이었고, '지'의 모든 것은 한자한문에서 성립됐다. 그런 에크리튀르의 세계에 정음이 우뚝 서게 됨으로써 知의 혁명이 될 수 밖에 없었다는 것, 최만리가 궁극적으로 우려했던 것도 이문제였다.정음으로 인해 그동안 철옹성같았던 한자한문의 에크리튀르가 흔들리게 되는 것을 염려했던 것이다.
정음 에르리튀르가 가능해짐에 따라서, 한자를 쓰던 사람들도 표현하지 못했던 것까지 쓰는 것이 가능해졌고,모든 고유의 말을 '지=앎'속에 편입시킬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갖는 의미는 매우 결정적이었다고 필자는 평가하고 있다. '정음'이전에는 '지'가 될 수 없었던 우리 고유의 말이 '지'로서 살아숨쉬게 됐던 것이다. 말하는 것과 쓰는 문자가 다른 데서 오는 실질적 이중 언어로 인해 겪어야 했던 불편함과 부조화는 '정음'의 등장으로 해소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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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음'의 진가는 정보화시대에 들어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컴퓨터 자판만 보더라도 한자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쓰기 편리한 구조인데, 한자가 오랜시간 붓으로 익혀야 하는 문자라면, 자모음을 조합해서 쓰는 '정음'은 그럴 필요가 없었다. 이점은 사대부가 아닌 백성의 에크뒤튀르를 상정하게 됐고, 또한 붓으로 쓰여지지 않아도 되는 '정음'의 형태와 성격은 처음부터 활자 인쇄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었을지. 이 점은 정보화시대에 들어 '정음'의 활용성을 높이고 뛰어난 효율성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다. 이점은 왕희지 이후 동양을 지배하던 서예의 본질, 서예의 미학에 대한 근원적인 반역의 게슈탈트(형태)가 됐다고 할 수 있다. 문자의 세계에서 게슈탈트는 단순히 미적인 개념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문자로서의 기능을 지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는 점에서 '정음'의 값어치가 확실하게 입증된 셈이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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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언어학적, 문자학적, 여러 측면에서 살펴볼 때 '정음'은 객관적으로 보편적으로 뛰어난 문자라고 할 수 있다. 과학적으로 만들어졌고, 그 효율성이 뛰어났다. 또한 말과 글이 함께 한다는 것이 가질 수 있는 장점과 우리 지성사에 생활에 미친 영향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을 정도로 지대했다. '정음'은 세계 문자사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의 독특하게 탄생했고, 그 체계성이나 과학적인 시스템에서 높은 평가를 받을 만했다. 혹자는 그렇게 말한다. 우리나라 국보 1호는 마땅히 '훈민정음'이었어야 한다고.'한글의 탄생'을 읽으면서 이 말이 떠올랐고, 한글에 대한 우수성과 동아시아 수천년 문자사 속에서 피어난 불가사의한 경이라는 필자의 평가에 전적으로 동의하게 된다. 한글의 우수성을 단 한번도 의심한 적이 없지만, 그 우수성에 대해서 이렇게 객관적, 학문적으로 촘촘하게 파고들어간 책을 통해 한글이 참 좋은 문자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자랑스러운 마음을 애써 담담하게 누르고는 나랏말쌈이 듕국에 달아..했던 '세종어제 훈민정음'그 부분을 소리내 외우는 것으로 그 뿌듯함을 만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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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지知의 혁명이다
우리는 매일 글을 읽기도 하고 쓰기도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읽고, 쓰고 있는 문자 <한글> 에 대해서는 얼마나 알고 있을까? 너무나도 당연시 사용해왔던 <한글> 이기에, 우리는 <한글> 에 대해 너무 무관심 한 것은 아닐까?
여기, 한국어가 모어가 아닌 일본인 저자가 쓴 <한글>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비모어 화자의 눈으로 바라본 <한글>이기에, 더 객관적으로, 더 냉철하게 바라 볼 수 있지 않을까?
<한글>의 탄생부터 지知의 측면에서 <한글>자체가 갖는 에크리튀르(쓰는 것, 쓰여지는 것, 문자나 필적, 문체 등의 의미로 널리 사용되는 프랑스어)로서의 가치와 게슈탈트(형태)의 의미와 변혁까지 저자는 방대한 <한글>에 대한 지식을 이 책에 풀어놓고 있다.
먼저 밝혀두자면, 저자는 이 책에서 <한글> 이란 명칭 대신에 <정음> 이라는 명칭을 대부분 쓰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15세기 <한글> 이 만들어질 당시에는 <훈민정음> 또는 <정음> 이라는 명칭으로 불렸으며, 주시경에 이르러 <한글>이라는 명칭을 쓰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선 <한글> 은 다들 알다시피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알파벳과 같은 단음문자이며, 단음의 요소들을 음절 단위로 묶어서 쓰는 음절문자이기도 하며, 표음문자이기도 하다. 저자는 <한글>에 대한 객관적이며 보편적인 설명에 앞서 문자체계로서의 <한글>에 대한 간략한 설명과 함께 <한자> 에 대한 이해와 <한자 훈독> 에 대한 이야기를 먼저 해주고 있다. 그 외에도 지중해에서 중국에 이르는 <비단길>(실크로드)이 아닌 <단음문자의 길>(알파벳로드)에 관한 설명, <정음> 의 탄생에 얽힌 최만리와의 이야기나 일본어의 하이쿠(일본 특유의 짧은 시)나 용비어천가, 황진이의 시조등을 언급하며 <정음> 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는 것 역시 눈여겨 볼만했다.
<정음>이 얼마나 과학적이냐 하면 20세기의 언어학에서나 발견할 수 있는 음소의 개념을 <정음>속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고 한다. 거기다 단음문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음의 개념을 넘어 게슈탈트(형태)의 개념으로 넘어가는데, 동방에서 아시아로 넘어온 단음문자들은 기본적으로 자음문자였고, 모음은 불분명해 <형태> 완전히 부여받지 못했지만 <정음>은 자음과 마찬가지로 모음에도 <형태>를 부여했다고 한다. 타 문자와 비교해 우월한 <정음>은 음성기관을 본떠 <상형>을 하였고 자모의 파생원리 또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과학적이었다. 음운론, 음절구조론, 형태음운론, 음절의 4분법론 등 다양한 측면에서 <정음>을 다루고 있으며,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관점에서의 <한글> 을 다루고 있는 만큼 우리의 <한글> 의 우수성에 대해 더할 나위 없는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막연히 <한글> 은 우수한 우리 글이구나 이런 게 아니라. <한글> 은 이렇게 탄생했고, <한글> 은 <한자> 나 <일본어> 와 이런 점이 비슷하고, 이런 점은 다르구나 하는 비교론적 관점에서도 그 우수성을 제대로 알수 있었다. 우리의 <한글>은 상당히 과학적인 문자이며, 지知의 혁명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구나 하는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던 책. <한글의 탄생>은 <한글>을 모어로 쓰고 있는 우리에게 <한글>에 대한 우수성을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설명해주는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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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은 우리에게 익숙한 언어다. 단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사람에게만. 사실 한글은 배우기 어렵다. 일단 받침이 있다. 영어나 일본어를 포함한 대부분의 동서양 언어는 별도의 받침이 없다. 소리와 글자가 섞여 발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글은 완벽한 소리문자다. 곧 발음이 나는대로 표기한 글자다. 독창성이라는 측면에서는 매우 뛰어나지만 의미를 담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약점이 있다. 한자는 정 반대다. 글자만 보면 무슨 뜻인지는 알지만 소리로 표기하려면 난감하다. 노마 히데키는 객관적인 시각에서 한글의 장점과 단점을 부여주고 있다. 어쩌면 외국인이기에 더욱 중립적인 한글책을 냈는지도 모르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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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는 이런 문자나 말에서도 확연히 구분이 된다 아마도 저자는 일본말의 우수성도 한글에 빗대어 이야기하고 있다 시라카와 시즈카 같은 대학자도 일절 한국어와 일본어에 대해서 친연성이 없다고 한다
학자라도 자국의 대의 앞에서 물러선다 모선생의 말씀에 따르면 일본어의 70%가 한국어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가타 부타는 앞으로 밝혀진 한일고대사나 동아시아의 고대의 역사속에서 밝혀지리라 생각이 된다
말이란 명령에 의한 것이 아니라 자생적이며 그리고 지리적인 근접성 또한 문화적인 전파성이 연관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인이 우리글의 특징을 들여다 본다 못내 일본인은 대학자이면서 대성현이었던 세종대왕에 대한 흠모도 엿볼 수 있다
1.한국어의 특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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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한국어란 어떤 언어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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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 답다. 우리는 그저 세종대왕이라는 왕이 우리 문자를 만들어 편하게 쓰고 있다는 정도로 느끼는 훈민정음에 대해 표의 문자인 한자, 같은 표음 문자인 가나, 알파벳 과 비교를 통해 소리를 가장 완벽하게 형상화 한 문자라고 주장하는 일본의 한 지식인에게 경의를 표한다. 국문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이라도 이해하기 쉽도록 한글이 소리 글자로서 완벽에 가까운 글자라는 것을 다양한 예를 동원하여 풀어 나간다. 자칫 음성학,구조학 등으로 깊이 흘러 들어가 자기의 지식 자랑에 그칠 수도 있는 문자에 대한 담론을 전문성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소설 처럼 재미있게 풀어 간 저자의 학문적, 문학적 깊이가 부러울 따름이다. 지금까지 조선시대에 훈민정음은 언문이라 해서 사대부들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고 배웠는데 오히려 일본인인 저자는 지식인들이 사용하지 않았다면 600년 이상 글자로서 살아 남지 못했을 것이라며 '한자한문이 공적으로 사용되던 조선에서도 공적인 장소를 벗어나 한문을 배우거나 읽는 자리에서는 사실 정음이 커다란 역할을 했다' 는 주장을 펼친다. 세심한 정확성을 갖추지 않으면 혼란스럽기만 한 비교 언어학 담론을 매끄럽게 번역한 번역진들의 노고도 곳곳에서 느껴진다. 사족: 우리글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 학자가 아닌 일본인 한테서 듣고 감동을 받았다. 이런 정도의 담론을 펼칠 수 있는 학자가 없는 한국. 더 분발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