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는 시를 읽는 것을 좋아한다. 도서관에서도 한국시 코너 앞에서 한창을 서성이고,
돌이킬 수 없었다(전문)
시는, 별 것 아닌 일상적인 용어들을 속에서, 소설처럼 장황히 늘어놓지 않아도 오히려 내마음을 더 콕콕 쑤시는 표현들로 나를 찔러대는 것에 더 공감하게 만든다.
책 전체가 영어로 해석이 되어 있다.
|
|
우리나라 말이 아름답다는 것은 이번 <허수경 시선>을 읽고 보니 확실하게 느낄 수 있었다. 물론 다른 언어들도 또다른 언어로 번역을 하면 다른 언어가 갖지 못하는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겠지만 <허수경 시선>의 한국시와 영어시를 동시에 읽어볼 수 있다. 그렇다보니 한글시를 읽고 옆페이지의 영어까지 읽게 되고 시어의 번역이 어떻게 되는지도 알게 된다. 한글에서는 상대방을 가리키는 단어가 여럿있다. 상대와의 관계에 따라, 나이에 따라 부르는 호칭이 다른데 그에비해 영어는 조금 단순한다. '당신'이라는 시어가 영어에서는 'you'라는 단어로 대체되었는데 그 느낌이 살지 않는다는 것이 안타까웠다. 시집의 첫번째 시인 '혼자 가는 먼 집'에서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라는 구절이 있다. 이 구절에 아쉽지만 'you'라는 단어로는 부족함을 떨칠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쩌면 그래서 더욱 시에 집중할 수 있게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허수경 시선>의 시들은 총 20편으로 시가 노래하는 주제가 다양하다. 사랑과 인생, 삶 들을 주로 노래하고 있어 시를 읽으면서도 잔잔한 그 느낌이 좋았다. 시를 읽고 시인의 노트를 읽고 <허수경 시선>에 대한 해설까지 읽다보면 시인의 시들이 얼마나 평범하고 우리 일상의 이야기들인지 알 수 있다. '허수경은 한국인의 가슴에 전해 내려오는 오래된 정서와 가락을 현대의 일상 속에 되살렸다.'라고 해설은 설명한다. 사실 <허수경 시선>을 읽기 전에 시인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다. 하지만 시를 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시가 다양한 삶의 감정을 주제로 해 한 시를 여러번 읽기도 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 |
|
당신의 눈 속에 가끔 달이 뜰 때도 있었다 여름은 연인의 집에 들르느라 서두르던 태양처럼 짧았다 당신이 있던 그 봄 가을 겨울, 당신과 나는 한 번도 노래를 한 적이 없다 우리의 계절은 여름이었다 (레몬 中에서, 허수경) 시를 읽는 밤은 어두웠다. 바람을 막느라 헌 이불을 창문 위에 걸어 놓고 난로 불을 들키지 않으려고 붉은 전등을 켜두었다. 바깥에서 보면 방 안의 붉음은 희미했다. 눈이 침침해져 눈물을 흘렸다. 슬프지 않은데도 눈물은 자주 터져 나왔다. 슬프지 않아서 눈물은 더욱 억울했다. 저녁의 허기를 달래려고 시장에 갔다가 서점에 들어가 몇 만 원어치의 시집을 사서 돌아오던 밤이었다. 시인이 되지 못했기에 시를 읽었다. 시인이 되는 것의 의미를 지워갔다. 내가 쓴 시들이 아니어도 시집은 내 것이었다. 한 끼 식사와 맞바꾼 시집들에 이름을 적고 날짜를 적었다. 책꽂이에 꽂힌 시집을 꺼내 들면 겨울의 기억이 와락 몰려왔다. 하루가 지났을 뿐인데 나이를 먹고 내야 할 세금의 액수가 불어났다. 건강보험료가 오르자 공단에 전화를 걸었다. 재산 없음, 직업 없음, 자동차 없음을 증명하고 나니 하루가 지나있었다. 얼굴을 알지 못해도 이야기는 술술 나왔다. 없음이라는 항목에 체크를 하기 위해 나의 가난과 나의 어리석음을 증명했다. 시집을 꺼내 밑줄을 쳤다. 난해한 시는 읽지 못했다. 읽어도 알 수 없는 시들은 관공서에 내야 할 서류의 문장들 같았기 때문이다. 열심히 들여다보아도 서류 속 문장들을 독해할 수 없었다. 마음에 드는 문장을 고르는 것으로 시를 읽었다. 시어에 동그라미를 치고 시인의 말을 여러 번 읽어나갔다. 시집 뒤에 실린 해설을 읽다가 잠드는 것으로 겨울을 보내고 봄을 맞이하였다. 전화를 기다렸다. 간단한 안부 문자라도 좋았다. 광고 문자도 오지 않아 종일 전화기는 잠잠했다. 침묵을 강요당한 사물들을 바라보며 서쪽으로 지는 해를 아쉬워했다. 서쪽을 보고 있는 집에서 겨울 해는 짧았고 여름 해는 길었다. 춥고 더웠다. 지구의 자전 방향을 바꿀 수 있다면. 따뜻하고 시원할 것이었다. 책들이 사방의 벽을 에워쌌다. 여름이 되자 낡은 책들을 꺼냈다. 마당 위의 평상에 놓아두고 읽었다. 지붕 위에 물을 뿌리면 비가 내리는 것 같았다. 연습장 한 권을 꺼내 오늘의 시를 쓰기 시작했다. 내가 한 편을 쓰면 너도 한 편을 쓴다. 두 편의 시를 나눠가지는 오늘.
서는 것과 앉는 것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까 삶과 죽음의 사이는 어떻습니까 어느 해 포도나무는 숨을 멈추었습니다 사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살았습니다 우리는 건강보험도 없이 늙었습니다 너덜너덜 목 없는 빨래처럼 말라갔습니다 (포도나무를 태우며 中에서, 허수경) 내륙의 여름은 전쟁이었다. 개미에 물려 허벅지가 부풀어 오르고 냉장고 안의 음식이 상했다. 땀을 흘리며 밥을 먹는 대신 시집을 냉장고 안에 넣었다. 차가운 시집을 꺼내 말랑해진 종이를 넘기며 시베리아를 상상했다. 비에 젖은 책들을 들여놓고 토란 잎들에 떨어지는 빗방울을 가지고 싶었다. 실체가 있어도 만져지지 않는 비애였다. 그리움은 숨길 수 없었다. 그때까지 아무도 연락해오지 않았다. 뚱뚱한 사람은 슬픈 사람이다. 고독과 외로움이 쌓인 사람이다. 당신이 혼자라는 것을 잊기 위해 맹렬히 음식을 사랑한 사람이다. 사랑은 그늘로 당신을 데리고 간다. 처진 뱃살을 주무르며 태양을 바라본다. 우주 안의 먼지, 출발선에 서서 뛰어가는 아이들을 바라보는 나중에 도착한 별빛. 숨어서 단팥빵을 먹으며 문학을 시작한 뚱뚱한 어린 소녀, 허수경 시인의 산문집에 그려진 그 소녀의 저녁. 시인의 어린 시절 속 모습에서 출발한 문학이라는 실존. 숲속 나뭇잎에 적혀 있을 것 같은 시들. 허수경의 시는 참혹한 아름다움을 시를 쓰지 않고는 보낼 수 없는 한 시절을 그리고 있다. 붉은 불빛 아래에서 읽었고 벌레들과 싸우며 시집 여백에 경상도 사투리로 적힌 시를 옮겨 적었다. 진주 남강의 저녁은 더위를 피해 나온 사람들로 가득했다. 한국어로 쓴 시들은 영어로 옮겨졌다. 어떤 이에게 한국어는 그림으로 보일 것이었다. 독일에 사는 시인이 모국어와 고향의 말을 잊지 않기 위해 가끔 우리에게 '술 냄새가 나는 오래된 날씨를'(돌이킬 수 없었다 中에서, 허수경) 보내온다. 술 냄새 나는 날씨를 받아들고 고개를 숙이고 가로등이 없는 길로만 걷는다. 기차역에 앉아 도착하지 않은 소식을 기다린다. 퇴근이 늦은 누군가의 집에 불이 켜지자 안심한다. 불이 켜지고 어두워지는 순간을 목격하는 일들이 허수경의 시를 읽는 이유가 된다. 켜졌다가 꺼진다. 세계의 뉴스는 전쟁과 소요의 일들을 기록하느라 시 한 편 실을 수 없었다. 어린 소녀와 죽어가는 인간의 말을 해독하려는 안간힘이 시인의 기록으로 남았다.
|
|
공터의 사랑 |
|
업데이트 알림을 해 둔 반가운 시리즈에서 새로운 책이 나왔다. '한국 시의 정수를 뽑아 영어로 번역해 한영 병기한 후 국내외 시장에 보급하고자 하는 ‘K-포엣’ 시리즈' 그자체만 읽어도 어려운 함축과 사상의 정수인 '시' 라는 장르. 거기에 언어의 장벽을 넘다보면 어느새 감성이 후두둑 떨어져 실종되는 한국어-영어의 번역을 훌륭하게 해 낸 'K-포엣' 시리즈의 4번째 시인은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이했다는 허수경 시인이다. 사실 '시'를 읽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 무식자에 ^^; 작품의 제목이나 간신히 외우는 나에겐 낯선 이름이었다. 하지만 허수경 시인이 직접 전작을 아울러 자식같은 시 중에서도 대표시 20편을 선정했다는 출판사의 소개글에 그 '기준'에 대한 궁금증을 품고 페이지를 넘겨갔다. 버석거리도록 메마른 사랑의 흔적. 한 때 강렬하고 아름다워 눈부시기까지 했던 사랑의 순간이 너무나 짧아 지나온 이 때 오히려 더 쓸쓸하고 깊숙하게 남아있는 그때의 나와 그 마음. 연인과 함께 했던 곳에서 맡았던 냄새, 들었던 멜로디, 반짝반짝했던 햇살, 즐겁기까지 했던 달빛 지켜주고 싶은 여린 연둣빛에 살랑대던 가벼움을 상실한 상처를 단순히 개인의 사랑으로만 남기지 않는 묵직한 시선 또한 있다. 사랑도 상처도, 상실도 연민과 애도도 고스란히 현재의 '나'를 만들고 모두의 '역사'가 되어가는 이야기들이 일상적으로 쓰지만 어딘가 묘하게 섬세하고 예민한 언어로 거친 바위 표면에 새겨진 얇은 선처럼 표현되었다. 왼쪽은 한글, 오른쪽은 영어의 번역 한글로 읽을 때의 느낌과 영어로 읽을 때의 느낌은 참 다르다. 내가 한국인이어서 그럴까?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은 이 시가 어떻게 느껴질까? K-포엣 시리즈가 세계 사람들에게 많이 많이 읽혀서 서로의 감상을 나누고프다.
빼어난 작가들은 어떤 시들을 뽑아서 한/영 버전으로 세상에 새로 선보였을까? 한 권씩 찾아가며 읽는 즐거움이 쏠쏠하겠다. ^^
|
|
<허수경 시선>(허수경 시, 지영실/다니엘 토드 파커 옮김, 아시아, 2017)은
'언제나 머리맡에 두고 읽고 싶은 한국 시의 정수를 뽑아
작가의 노트에 시인의 생각이 잘 녹여 있다.
오늘따라 궂은 날씨. 어두운 그대로 놔둔 채 따라 써보았다. |
|
<허수경 시선>은 한국대표 시인의 한영대역 시선인 ‘K-포엣’ 시리즈 네 번째로, 올해 데뷔 30주년을 맞이했던 허수경 시인 시선집이다. 이 책은 허수경 시인의 시와 함께 영어로 번역되어 있어 한국 독자 뿐만 아니라 세계 독자들도 허수경 시인의 아름다운 시를 읽어볼 수 있도록 만든 시선집으로 인상적이다. <허수경 시선>에는 '혼자 가는 먼 집, 불취불귀, 공터의 사랑, 흰 꿈 한 꿈, 너의 눈 속에 나는 있다, 글로벌 블루스 2009, 비행장을 떠나면서, 차가운 해가 뜨거운 발을 굴릴 때, 아름다운 나날, 그때 낙타가 들어왔다,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레몬, 수박, 딸기, 오래된 일, 포도나무를 태우며, 이 가을의 무늬, 연필 한 자루, 돌이킬 수 없었다, 우산을 만지작거리며'라는 허수경 시인의 시와 함께 시인노트, 해설, 허수경에 대해라는 목차로 구성되어 있다.
허수경 시인은 시인노트에 '간절한 어느 순간이 가지는 강렬한 사랑을 향한 힘, 그것이 시를 쓰는 시간일 것'이라고 말한다. 시를 쓰는 순간 그것 자체가 가진 힘이 시인을 시인으로 살아가게 할 것이라는 허수경 시인의 말이 인상적이다.
<허수경 시선>은 허수경 시인의 대표시와 지영실·다니엘 토드 파커 부부 번역가가 영역한 영문시를 만나볼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허수경 시선>이 한국시의 아름다움을 만나볼 수 있는 시선으로 많은 세계인들에게도 사랑받기를 희망한다. |
|
고전을 시리즈로 엮는 출판사의 출판 순서는 출판사가 생각하기에 중요하고 뛰어난 작품 순이라고 한다. 그래서 고은, 안도현, 백석 시선 다음 차례로 출간된 허수경 시인의 시는 어떤 느낌일지 궁금해졌다. 바로 다음 출간예정인 책이 김소월, 이육사, 정지용, 윤동주, 이상, 김용택으로 이어지던 K-포엣 시리즈의 네번째 위치를 차지한 시인 허수경. 시인이 전 작품을 아울러 뽑은 대표시는 시인의 특색을 느낄 수 있게 했다.
시에 이어지는 '시인노트, 해설, 허수경에 대해'를 통해 알게 된 시인에 대한 정보는 독일 땅에서 한국어를 이렇게 예쁘게 만들어내며 한국의 느낌이 가득 담긴 시를 쓸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감탄을 느끼게 했다. 향토적인 소재와 한국의 자연을 바탕을 한 소재를 사용해서 쓴 시는 정감이 갔다. 특히 눈이 펄펄 내리는 겨울에 이렇게 딸기, 수박, 레몬, 포도가 들어간 시를 보고있자니 다른 세상에 있는 기분까지 들게 한다.
시집이 대체로 얇긴하지만 이 책은 특히 시인의 작품 20편만 엄선한 것이기 때문에 얇고 작아서 가지고 다니기 쉽다. 왼쪽에는 한국어로 오른쪽에는 영어로 쓰인 시를 쭉 읽어나가다보니 시를 두번씩 그리고 꼼꼼하게 읽을 수 있어 시를 읽는다는 기분이 들었다.
이 시리즈의 목표와 함께 다른 효과까지도 얻을 수 있는 것 같다. 시와 친해지고 싶어도 나도 모르게 의미를 깊게 생각하지 않고 빨리 읽게되는게 아쉬웠는데 이런 방식으로 두 번 읽게 하니 좋다.
영어로 번역할 때에 낯설어서 외국인들이 모를 것 같은 단어들을 각주로 달아놓은 부분도 있다. 첫시집인 <혼자가는 먼 집>에 수록된 시들은 1992년에 나온 시이다보니 현대에 많이 쓰지 않는 단어들을 활용한 부분이 있었는데, 이때에 이런 각주를 보고 뜻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아직 시와 친해진 것은 아니지만, 해설에 나온 말은 어느정도 이해가 될 것 같다.
시인노트와 해설에서 시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해석이 나와있고, 허수경에 대하여 부분에서는 시인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주어 앞의 내용과 마찬가지로 시를 이해하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차분하게 한편씩 다시 읽어봐야겠다. 그리고 책 소개글에서 '비평'에 대한 다음 문장이 참 좋았다. 비평의 시작도 끝도 읽을 가치가 있는 작품을 그렇지 않은 작품으로부터 가려내는 일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 이 앤솔러지는 결코 만만치 않은 고민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