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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키우고 함께 살면서 참아버지가 되는 게 참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어려서 한창 자랄 때는 무럭무럭 자라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쁘고 즐거웠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기대감도 함께 커 가는지 이런 저런 기대를 하게 된다. 그러나 아이들이 아비가 바라는 대로 살아갈까. 천만의 말씀이다. 아비가 바라는 대로 살아가는 것은 고사하고 도대체 왜 저런 행동을 할까 이해할 수 없는 짓을 한다. 제 인생이니 제가 알아서 하겠지 생각하다가도 사람 노릇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아득해진다. 잔소리를 하고 싶어진다. 아이들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출가보다 더 큰 수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그만큼 아비 노릇하기, 참아버지로 살아가기 힘들다.
해룡이의 삶을 따라가면 가슴 묵직한 감동이 밀려온다. 참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준다. 해룡이는 머슴살이를 하며 살아간다. 스무 살이 넘으면서부터 장가가 가고 싶어졌다. 하지만 부모 형제 없고 친척도 집도 아무것도 없는 해룡이가 장가를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다만 부지런하고 건강하고 그리고 얼굴 생김새가 아름다워 사람들이 모두 그를 좋아한다. 소를 몰고 돌아오다 만나 사모하게 된 소근네 아가씨도 해룡이를 좋아한다. 해룡이와 소근네 아가씨의 혼인은 온 마을이 축복한다. 참으로 정다운 부부가 된 이들은 아이들을 낳고 머슴살이를 그만둔다. 따로 집을 마련해 농사를 지으며 삼 남매랑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
해룡이는 돈 많은 부자도 아니고 벼슬을 가진 양반도 아닌 가난한 농사꾼이지만 부러울 것 아무것도 없다. 집 뒤꼍에 심은 감나무, 살구나무가 자라 여름내 가으내 과일이 열렸다. 앞산 밭에는 조도 심고 고추도 갈았다. 가재개울 건너 논에서 벼를 거둬들여, 가을 앞마당은 따사로웠다. 눈 내리는 겨울밤은 콩을 볶아 먹으며 오순도순 식구들이 재미있게 옛 얘기도 하고 윷놀이도 벌였다. 행복한 해룡이에게 갑자기 불행이 닥쳐온다. 문둥병에 걸린다. 해룡이는 아름답던 자신의 얼굴이 변해 가고 살갑던 이웃들이 자기를 피하는 것을 보면서 고통스러워한다. 문둥이 아버지는 참아버지 자격이 있을까 싶어 가족을 떠나기로 결심한다.
그날 밤, 해룡이는 잠든 아이들의 얼굴을 몇 번이고 쓰다듬어 보고, 손목도 꼭꼭 쥐어봤습니다. 행여 아내에게 들킬까 봐 조심조심 종이에다 짤막한 편지를 썼습니다.
옥이 어머니, 아이들을 잘 부탁하오. 병이 나으면 돌아오리다. 그러니 걱정 말고 나를 찾지 말기 바라오.
십 년 세월이 흘러 옥이는 열일곱의 처녀가 된다. 만석이도 천석이도 건강하게 자란다. 대신 소근네는 얼굴에 주름살이 빠르게 늘어난다. 가엾은 남편에 대한 아픔이 한결 그를 늙게 했다. 아이들이 어서 자라 남편을 찾아가는 것이 소근네의 마지막 소원이다. 해룡이가 집을 떠난 지 꼭 열 돌이 되는 겨울날 밤이다. 소리 없이 눈이 내리는데 거지 한 명이 소근네 집을 찾는다. 소근네의 신발을 쓰다듬어 보고 옥이의 신발을 만져본다. 만석이와 천석이의 고무신에 손을 집어넣었다가 일어선다. 조용조용 걸어서 사립문께로 가서 골목길로 사라진다. 이튿날 문 앞 디딤돌에는 빨간 주머니 하나가 놓여 있다. 차곡차곡 정성껏 묶은 돈다발이 들어 있는 주머니다. 소근네는 버선발로 동구 밖 한길까지 나가보지만 함박분이 펑펑 쏟아질 뿐 아무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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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룡이의 삶을 담담하게 서사적으로 적어놓은 책이다.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들과는 동떨어진 과거의 얘기지만 적절하고 간략하게 묘사된 그림과 군더더기 없이 서술된 문장들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눈물을 주르륵 흘리게 된다. 누군가를 만나 사랑을 하고 가정을 일구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내가 주인공이라면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지 곰곰이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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