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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투쟁의 역사를 만화로 만나다. 35년 3
"일제강점기 투쟁의 역사를 만화로 만나다. 35년 3" 내용보기
작년 일제에 강제 병합된 1910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일제 강점기 우리의 역사를 다룬 박시백 화백의 35년 시리즈 중 2권, 4권이 운좋게 서평단에 당첨된 계기로 나머지 시리즈를 구입하게 됐다. 구입 후 바로 읽었으면 좋으려만 역시 미루고 미루다가 1년이 다 되어 <35년 3>을 책장에서 꺼내 읽었다.  <35년 3>은 1921년부터 1925년까지 무단통치가 끝나고 문화통치가 시작되는 5
"일제강점기 투쟁의 역사를 만화로 만나다. 35년 3" 내용보기


 작년 일제에 강제 병합된 1910년부터 1945년 해방까지 일제 강점기 우리의 역사를 다룬 박시백 화백의 35년 시리즈 중 2권, 4권이 운좋게 서평단에 당첨된 계기로 나머지 시리즈를 구입하게 됐다. 구입 후 바로 읽었으면 좋으려만 역시 미루고 미루다가 1년이 다 되어 <35년 3>을 책장에서 꺼내 읽었다.


  <35년 3>은 1921년부터 1925년까지 무단통치가 끝나고 문화통치가 시작되는 5년간의 시기를 다루고 있다. 박시백 화백의 대표작 <조선왕조실록>은 이야기 중간 중간 재미있는 삽화들로 흥미를 이끄는데 반해 <35년>은 우리에게 가슴 아픈 일제 강점기를 다루고 있는 관계로 다소 딱딱하게 설명하고 있어서 초등학생보다는 중학생 이상이 읽기에 적합한 책으로 보인다.(물론 초등학생은 읽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본격적인 이야기에 앞서 프롤로그에서 1920년 전반 당시 세계의 주요 역사를 설명해 주고 있어 전체적인 세계 흐름과 우리나라 상황을 연계해서 이해할 수 있게 해 주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파리강화회의에서 패전국 독일에 대한 가혹한 배상금 부과와 승전국이었던 이탈리아가 별다른 대접을 받지 못함으로써 불만이 커져가고 있었고, 러일전쟁 승리 이후 중국을 독점하려는 등 야욕이 커지고 있는 일본에 대해 미국 등 열강들이 경계심을 가지면서 워싱턴회의를 통한 군축 협의에 따라 주력함 보유 비율이 정해졌다. 한편 러시아의 볼셰비키 정부는 1922년 12월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소련)을 출범시켰고, 중국에서는 군벌 할거 체제를 국공합작으로 북벌을 하면서 군벌이 수습되는 분위기였다.

 


 일제강점기 우리나라는 1918년 쌀 폭등에 대한 일제의 무력 진압에 대한 비난과 1919년 3.1혁명으로 더 이상 무단통치는 안 된다는 일본 정가의 인식으로 조선 총독으로 사이토 마코토가 부임하면서 무단통치가 막을 내리고 문화통치가 시작된다. 문화통치가 시작되면서 무단통치의 상징이었던 관리, 교원의 제복 폐지와 유명무실했던 중추원 소집, 특히 총독부가 신문 발행 허가 신청 접수를 받으면서 동아일보, 조선일보 등이 창간하게 된다. 지금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보수의 대표 신문이 되었지만 1920년대만 하더라도 민족지로써 비타협적 논조와 친사회주의 논조(동아일보)를 펴기도 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신문사인 동아, 조선일보가 중앙일보와 더불어 조중동이라는 비아냥을 받는 것이 몹시 안타깝게 생각이 든다. 오랜 역사를 가진 신문으로써 이념 대립과 왜곡 보도가 아닌 사명감을 갖고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정확한 정보 제공을 할 수 있는 신문사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다.


 일제는 문화통치를 통해 온건독립파 회유에 힘을 써 3.1혁명 후 상하이에서 임시정부 기관지 <독립신문>을 책임졌고 2.8 독립선언서를 기초에 적극 참여했던 이광수, 3.1혁명을 사실상 기획하고 준비 과정을 총괄한 최린, 조선을 대표하는 문필가이자 학자였던 최남선 등이 일제의 회유에 친일의 길을 걷게 된다.

 근대문학사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광수와 최남선의 작품들을 친일의 과오와 별개로 문학적으로만 평가를 해야 할지 그들의 작품을 학창시절 좋아했던 한 사람으로 여러 생각을 하게 된다.  


 한편 1920년대는 러시아와 만주에서 무장 투쟁이 조직적으로 활발하게 이루어져 홍범도 장군과 김좌진 장군이 이끄는 독립군 진영은 봉호동 전투, 청산리 전투에서 일본군에 막대한 피해를 주기도 하지만 무고한 주민들이 일제의 총칼에 살상 당하는 경신참변을 겪게 된다. 일본의 무고한 살상은 1923년 9월 일본 도쿄 대지진 때 조선인이 폭동을 일으킨다는 유언비어를 퍼트려 일본인들은 자경단을 조직해 조선인에 대한 무차별 살상으로 수천명의 학살로 이어진다. 아직도 전쟁의 과오를 뉘우치지 않고 사과도 하지 않는 일본을 보며 악화일로 상태의 한일 관계가 앞으로 차차 나아진다하더라도 일본의 속내를 계속 주시하며 포기하지 말고 올바른 한일 관계 정립을 위해 노력해야겠다.

 

 

 독립군 무장 투쟁과 더불어 본격적인 의열 투쟁이 벌어지는데 약산 김원봉의 의열단이 핵심 역할을 하게 된다. 박재혁의 부산경찰서장 암살사건, 최수봉의 밀양경찰서 폭탄 미수사건, 김익상의 총독부 폭탄 테러사건, 육군대장 다나카 암살 미수 사건 등을 거듭되는 실패와 성공 속에 의열단원의 용감한 투쟁은 계속 되고 1922년 신채호의 사상이 집약된 조선혁명선언은 의열단의 정신이 된다. 7년여의 의열단 폭력 투쟁은 민중을 깨우치는데 한계에 부딪히자 그동안의 암살파괴운동에서 대중적 무장투쟁으로 노선을 변경하게 된다.


  

  <35년 3>은 이외 러시아로 이동했던 한인무장부대의 내부 분열에 따른 자유시 참변, 임시정부 내 개조파, 창조파, 임정고수파의 내분, 밀정과 친일 경찰들의 행적, 우리에겐 영화로도 기억되는 박열과 부인 후미코의 무정부주의 투쟁 등 1921년부터 1925년까지의 5년간 일제강점기 투쟁의 역사를 다루고 있다.

 

 

  <35년 3>은 박시백 화백이 오랜기간 자료 조사와 정리를 통해 그린 완성도 높은 대하역사만화로써 일제강점기를 소재로 한 여타 역사책에 결코 뒤지지 않는 가치있는 책이라 생각된다. 특히 부록의 연도표와 함께 인명사전은 만화에서 본 인물들을 다시 확인할 수 있고 그동안 잊혀졌던 독립운동가뿐만 아니라 친일반민족행위자의 생애가 잘 정리되어 있어서 역사 바로 잡기에도 도움이 된다. 만화로도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될 아픈 역사를 이렇게 무게감 있게 다룰 수 있는 책을 만난 건 내겐 큰 행운이라 생각된다. 이 책을 중고생 뿐 아니라 많은 독자들이 읽어봤으면 좋겠다.

 

YES마니아 : 로얄 s****6 2020.03.23. 신고 공감 12 댓글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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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ink 3. 독립의 길, 친일의 길, 두 갈림길에 선 당신의 선택은?
"Think 3. 독립의 길, 친일의 길, 두 갈림길에 선 당신의 선택은?" 내용보기
일제강점기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눈다. '무단통치-문화통치-민족말살기'로 말이다. 하지만 이는 그저 '표면상'의 구분일 뿐, 일제의 목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세계속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아예 없애는 것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아니, 지금까지도 일본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아예 없는 것처럼 여길 뿐이다. 그저 '필요'에 따라 '이용'해먹을 가치쯤으로 여길지는 몰라도 여
"Think 3. 독립의 길, 친일의 길, 두 갈림길에 선 당신의 선택은?" 내용보기

  일제강점기는 크게 세 단계로 나눈다. '무단통치-문화통치-민족말살기'로 말이다. 하지만 이는 그저 '표면상'의 구분일 뿐, 일제의 목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 세계속에 '조선'이라는 나라를 아예 없애는 것 말이다. 처음부터 끝까지...아니, 지금까지도 일본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아예 없는 것처럼 여길 뿐이다. 그저 '필요'에 따라 '이용'해먹을 가치쯤으로 여길지는 몰라도 여전히 '무시 일변도'라는 점은 달라진 것이 없다. 이는 1920년대 이후에 일제가 '식민지 조선'에 저지른 만행을 보면 알 수 있는 내용이다.

 

  일제는 '3·1혁명'을 겪으면서 조선을 철저히 '식민지화'하기로 본색을 드러낸다. 허나 '무단통치기'에 저지른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 '부드러운 정책'을 앞세웠다. 그것이 바로 '친일파 키우기'였다. 이 당시의 친일파들은 '3·1혁명'을 지켜보면서 간담이 서늘해졌다. 그들이 보기에도 '조선인'들은 저항을 상실하고 일본제국의 충실한 신민으로 거듭나기만을 바라고 있었다고 보였기 때문이다. 그들이 매국을 하고 변절을 한 까닭도 '조선의 무능'을 분명히 보았기 때문이고, 청일전쟁, 러일전쟁, 그리고 세계대전에서도 승리를 거두는 일제의 우월함을 목도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독립'을 바라는 조선인들이 이토록 많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탓이다.

 

  그럼에도 일제는 튼튼했다. 서구열강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제국주의'로 팽창해나가는 일제의 강력함을 여실히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그에 따라 '조선인'은 두 갈래 길목에 서게 되었다. 임시정부와 독립군으로 험난한 길을 걸을지, 아니면 변절과 앞잡이 따위의 친일파로 달콤한 길을 걸을지 말이다. 물론 일제의 교활한 수법은 '인간이길 포기한 것'처럼 악랄해진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 그래서 '친일파의 길'을 걷게 된 이들이 씁쓸하게도 많아졌다.

 

  친일파들의 변명은 한결 같다. 강력해진 일본을 상대로 조선은 절대 이길 수 없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래서 '차선책'으로 내세운 것이 '참정권'을 얻어내서 조선인에 대한 차별을 없애자는 것이었고, '자치'를 허락받아 조선인을 위한 나라를 만들자는 것이었으며, '민족실력(문화운동)'을 키워서 추후에 독립을 이루자는 '그럴 듯하고 미적지근한 주장'만 늘어놓기 일쑤였다. 하긴 독립운동 진영에서도 이승만 등의 '외교론'과 안창호 등의 '실력론'이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 점이 없지 않아 있다. 심지어 '반봉건', '반외세'를 외치던 동학의 후예인 '천도교' 가운데 변절자가 많이 생긴 것도 일제의 혹독한 탄압과 회유에 따라 '동조'한 이들이 많은 것을 보면 '독립의 꿈'이 얼마나 멀고도 험한 시절이었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런데도 험난한 독립의 길을 꿋꿋하게 걸어간 이들이 있었단 사실을 우리는 명심해야 한다. "그 시절엔 다들 어쩔 수 없이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는 친일파들의 뻔한 변명이 무색할 정도로 당당히, 그리고 기꺼이 고통스런 가시밭길을 걸어간 '독립운동가'들이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그리고 이들이 '무장투쟁'만이 독립을 위한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외세의 도움을 받지 않고 우리 민족 스스로의 힘을 보여주어야 온전한 독립을 이룰 수 있다는 사실도 함께 말이다. 그 결과, '봉오동'과 '청산리'에서 빛나는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청나라, 러시아, 그리고 서구열강과 싸워서 승리를 거둔 일제가 부끄러워서 '패배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고 일부 폭도들의 만행이었고 일제의 피해는 미미했다고 '사실 왜곡'마저 할 정도로 말이다.

 

  또, 의열단의 투쟁도 불을 뿜었다. 이들은 정의로운 일을 불꽃처럼 행하겠다고 선언한 이들로서 매국노와 친일파, 그리고 누구를 막론하고 일제협력자 등을 '칠가살'로 정하고 폭탄투척, 사살 등을 거리낌없이 행동으로 옮겼다. 가장 유명한 사건을 꼽으라면 일본경찰 40명의 추격을 쌍권총을 들고서 홀로 대적했던 김상옥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의열단의 투쟁은 변화를 주어야만 했다. 마땅히 죽어야 할 이들뿐 아니라 '무고한 희생자'도 속출했기 때문이다. 던져진 폭탄과 총구를 벗어난 총알은 '나쁜놈'만 골라 죽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들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이 있었기에 조선은 독립의 꿈을 계속 꿀 수 있었다. 비록 당장은 일제의 압제에 눌려 기를 쓰지 못하는 한이 있더라도, '먼저' 쓰러져간 독립운동가의 뒤를 쫓아 독립운동의 길을 걸어간 이들이 '끊이지' 않은 것이다. 그런 까닭에 '대한민국의 독립'은 누가 뭐래도 독립운동가들에게 공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한편, '3·1혁명'의 결과로 탄생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활약도 잊어선 안 된다. 물론, 초기부터 임시정부 운영에 삐걱거리는 면이 없지 않으나, 다양한 '독립운동노선'의 변화속에서도 끝까지 남아 독립운동을 이끌었기 때문이다. 이승만 탄핵, 이념에 따른 파벌다툼 등등의 혼란은 오히려 임시정부가 제대로 활동하였기 때문이라고 보아야 온당할 것이다. 나라를 빼앗긴 마당에 파벌싸움이나 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비난도 들어 마땅하지만, 그런 혼돈도 없이 일사분란하게 독립운동을 했다면 오히려 일제의 철통같은 압제와 악랄한 탄압에 의해 쉽게 발각이 되어 일망타진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열된 만큼 큰 힘을 발휘하기는 힘들었지만 분열되었기에 '다양한 독립운동의 방향'을 탐색할 수 있었고 혹독한 시련을 겪으면서도 꺾이지 않고 지속적으로 독립운동을 해나갈 수 있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혼란속에서 꽃피운 것이 바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들이었고, 이들의 도움으로 깨어난 노동자, 농민, 여성 들이 노동·농민·여성운동으로 활발하게 성장할 수 있었으며, 일제의 '제국주의'에 대항해서 국가와 국경을 초월한 '무정부주의(아나키즘)'가 독립운동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성과를 보여주기도 했다. 우리 나라의 대표적인 무정부주의자는 단재 신채호와 우당 이회영 등이다. 암튼, 이들의 활약은 다음 권에서 더욱 자세히 알 수 있다.

YES마니아 : 로얄 z******8 2022.01.30. 신고 공감 6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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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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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박시백의 35년 3권입니다. 이시기에 일본에서 데라우치에 이어 하라 총리가 권력을 잡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 총독으로 사이토 마코토가 부임하면서 무단통치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문화통치가 시작된다고 하는군요. 이떄 총독부의 신문 발행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창간되었고 잡지와 문학의 시대가 열렸다고 합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일제시대에 창간했던 신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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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보는 박시백의 35년 3권입니다. 이시기에 일본에서 데라우치에 이어 하라 총리가 권력을 잡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조선 총독으로 사이토 마코토가 부임하면서 무단통치의 시대는 막을 내리고 문화통치가 시작된다고 하는군요. 이떄 총독부의 신문 발행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창간되었고 잡지와 문학의 시대가 열렸다고 합니다. 동아일보와 조선일보가 일제시대에 창간했던 신문이란걸 알게 되었네요 그래서 지금도 걸르는 신문사입니다.

 

 

x****r 2018.08.0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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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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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3.박시백 작가님의 35년이 3권으로 끝나는 책인줄 알았는데, 7권까지 나오는 듯.3권은 우리의 투쟁이 본격화 되어가는 일제치하 중반쯤의 이야기이다. 1921년부터 1925년.3.1운동으로 시작된 우리의 독립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이 2권까지 내용이면, 3권은 각 분야에서 일어나는 각기 다른 운동의 시작이다. 일본의 통치가 점점 집요하고, 세밀해지는 것을 통해 우리의 독립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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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3.

박시백 작가님의 35년이 3권으로 끝나는 책인줄 알았는데, 7권까지 나오는 듯.

3권은 우리의 투쟁이 본격화 되어가는 일제치하 중반쯤의 이야기이다. 1921년부터 1925년.

3.1운동으로 시작된 우리의 독립운동,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이 2권까지 내용이면, 3권은 각 분야에서 일어나는 각기 다른 운동의 시작이다. 일본의 통치가 점점 집요하고, 세밀해지는 것을 통해 우리의 독립운동 또한 조직화 되어가고, 전국적으로 퍼짐은 물론,세계열강과의 접촉을 통해, 우리의 처치를 알리고 독립운동의 도움을 받도록 노력하는 등 우리의 독립운동이 널리 퍼지는 시기가 아닌가싶다.


다만 참 신기한것이, 지금은 우리와 미국이 돈독한 한미동맹을통해 친선국인반면, 그 당시에 미국은 그저 일본의 편만들어주고 우리의 사정을 모르척했고, 오히려 지금은 가까운듯 머나먼 당신인 중.러가 우리 독립운동의 뒤를 받쳐주는 나라였으니(일본 눈치를 엄청 보긴 했지만), 참 역사는 모를일이다.


이번 편을 읽으며 갈수록 독해지고, 치밀해지는 일제강점기에서 우리의 독립을 위해 더욱더 투지를 불사른 우리의 독립운동가들이 더 대단해 보였다. 그 내부에서의 갈등을 통해 좀더 치밀해지지지 못한 점은 아쉬웠지만, 그들의 노력자체는 정말 말로 어찌할 수 없을정도로 대단해 보인다. 다들 10대후반부터 30대초반 정도의 나이였는데,,


그러기에 더욱더 화나고 짜증나는 것은 그때 친일행동을 했던 이들은 광복 이후에도 어찌그리 잘 사는것인지. 우리가 어쩜 이리 과거 청산을 제대로 못한것인지. 책의 뒤쪽에 있는 인명사전을 보면서 정말 입에서 욕이...  아오.


정말정말 많은 사람들이 읽었으면 좋겠다.


강력 추천. 진짜!


맨뒤에 사료에 나오는 신채호 선생님이 쓰신 "조선혁명선언"을 읽으면, 일제가 우리에게 어떤 짓을 했는지가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읽다보면 욕이 마구 나올정도..)


"이상의 이유에 따라 우리는 우리의 생존 적인 강도 일본과 타협하려는 자나 강도 정치하에 기생하려는 주의를 가진자나 다 우리의 적임을 선언하노라." p. 323

YES마니아 : 플래티넘 t****s 2018.06.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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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3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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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치하에서 강점기를 보낸 35년에 대한 역사기록, 그 세번째다. 일제시대를 세 시기로 나누었을 때, 마지막은 태평양전쟁과 더불어 총동원령을 내린 일제로 인해, 미곡송출은 물론 인력징집까지 가장 큰 아픔을 겪은 시기라 할 수 있다. 문화통치는 허울뿐이고,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한 이유는 수탈에 있음을 명백히 한 시기라 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독립에 대한 열망과 그 움직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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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치하에서 강점기를 보낸 35년에 대한 역사기록, 그 세번째다.

일제시대를 세 시기로 나누었을 때, 마지막은 태평양전쟁과 더불어 총동원령을 내린 일제로 인해, 미곡송출은 물론 인력징집까지 가장 큰 아픔을 겪은 시기라 할 수 있다.

문화통치는 허울뿐이고, 일제가 한반도를 강점한 이유는 수탈에 있음을 명백히 한 시기라 할 수 있으며, 그에 따라 독립에 대한 열망과 그 움직임까지도 더 크게 나타나고, 결과적으로 광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YES마니아 : 로얄 c*******1 2018.04.3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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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적인 항일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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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이후 독립운동노선의 변화가 뚜렷하게 보이죠.특히 의열단의 등장  약산 김원봉.. 백범 김구선생보다 현상금이 많았던 독립투사김익상, 박재혁, 김상옥, 나석주등  일본 침략자들의 간담을 써늘하게 했던 이 분들의 활약그래도 한민족의 저력을 어느정도는 보여준 의거가 아니였나 싶습니다.일본 관동정규군을 상대로 봉오동 청산리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대한독립군(홍범도)  북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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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이후 독립운동노선의 변화가 뚜렷하게 보이죠.


특히 의열단의 등장  약산 김원봉.. 백범 김구선생보다 현상금이 많았던 독립투사


김익상, 박재혁, 김상옥, 나석주등  일본 침략자들의 간담을 써늘하게 했던 이 분들의 활약


그래도 한민족의 저력을 어느정도는 보여준 의거가 아니였나 싶습니다.


일본 관동정규군을 상대로 봉오동 청산리전투에서 대승을 거둔 대한독립군(홍범도)  북로군정서(김좌진)

독립군사에 길이남을 대승리로 기억되죠.


반면 보복으로 희생된 경신대참변....  1909년대 남한대토벌로 전라도일대 의병들을 무참하게 학살했던


일제의 만행이 재현된듯..


거기다 자유시참변까지 1920년대초반은 굴곡이 심한듯합니다.


없는 나라를 팔아먹었다고 이승만을 질책한 안창호선생과 임시정부의 분열또한 아쉬운 장면이였고


1926~1930년 과연 어떤 스토리가 기다릴까요  나석주의 동척폭탄투척 6,10만세운동 신간회..


4편도 기다려지네요. 상반기에는 출시되겠지요?








j*****s 2018.04.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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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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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통치 내용1.헌병경찰제가 보통경찰제로 바뀌었다. 8,000명의 헌병은 그대로 경찰에 흡수되고 총 경찰 수가 크게 늘었다. 그리고 고등경찰제를 마련해 독립운동 탄압에 활용했다. 2.무단 통치의 상징이던 관리, 교원의 제복을 폐지했다. 칼을 찬 교사는 더이상 볼 수 없게되었다. 그리고 태형의 폐지이다.3.부협의회, 도평의회 등 지방 자문기관이 생겼다.지방자치까지는 아니고 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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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통치 내용
1.헌병경찰제가 보통경찰제로 바뀌었다. 8,000명의 헌병은 그대로 경찰에 흡수되고 총 경찰 수가 크게 늘었다. 그리고 고등경찰제를 마련해 독립운동 탄압에 활용했다.
2.무단 통치의 상징이던 관리, 교원의 제복을 폐지했다. 칼을 찬 교사는 더이상 볼 수 없게되었다. 그리고 태형의 폐지이다.
3.부협의회, 도평의회 등 지방 자문기관이 생겼다.지방자치까지는 아니고 친일파 유지들의 기살려주기 장치 정도의 의미가 있다.
4.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신문 발행을 허가했다.
d*****5 2018.02.0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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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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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 워싱턴 회의 :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러일전쟁과 1차 대전 이후 급성장한 일본 세력을 억제하기 위한 국제 회의. 총 9개국이 참가하여 군비 경쟁이 지속되면 파멸을 부를 것이라며, 각 국의 해군력 축소에 합의 (영국 5, 미국 5, 일본3, 프랑스 1.75, 이탈리아 1.75)하고, 또한 미국을 비롯한 열강들의 일치된 요구 앞에 일본은 산둥반도를 중국에 돌려주기로 약속한다.  - 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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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1년

 - 워싱턴 회의 : 미국과 영국이 주도한 러일전쟁과 1차 대전 이후 급성장한 일본 세력을 억제하기 위한 국제 회의. 총 9개국이 참가하여 군비 경쟁이 지속되면 파멸을 부를 것이라며, 각 국의 해군력 축소에 합의 (영국 5, 미국 5, 일본3, 프랑스 1.75, 이탈리아 1.75)하고, 또한 미국을 비롯한 열강들의 일치된 요구 앞에 일본은 산둥반도를 중국에 돌려주기로 약속한다.

 - 국내 : 국민대표회의 소집 요구.  

 

1922년

 - 모스크바 극동민족대회 : 워싱턴 회의에 대응하여 열린 회의로 동방혁명의 중요성이 강조되고, 특히 한국 관련하여 광범위한 반제 민족통일전선의 결성이 유일하고 정당한 노선임이 제시되었다.

 - 열강들의 개입과 각지의 반란으로 무너질 것처럼 보였던 러시아의 볼셰비키 정부는 12월에 민중의 지지에 기초해 백군을 제압하고 소련을 출범. 

 - 국내 : 제2차 조선교육령   

 

1923년

 - 관동대지진   

 - 국내 : 의열단 `조선혁명선언` 발표    

 

1924년

 - 제1차 국공합작 : 소련의 도움이 필요했던 쑨원은, 레닌의 권유에 국민당은 공산당을 개인 자격으로 받아들이기로 하고 공산당은 이를 수용함으로써 제1차 국공합작이 정식으로 성립. 

 - 레닌 1월에 사망하고 스탈린의 시대로 접어든다. 

 - 국내 : 조선노농총동맹 창립  

 

1925년

 - 쑨원 사망 : 북벌이 마무리되고 군벌에 의한 분열도 수습될 것처럼 보였지만 쑨원이 2월 사망. 

 -   국내: 이승만 탄핵.

k****6 2019.09.08.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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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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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 작가님의 35년 3권을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작가님의 일제 강점사 35년 시리즈의 세번째 책으로 1921-1925 대투쟁의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홍범도 장군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고, 역사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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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 작가님의 35년 3권을 읽고 작성하는 리뷰입니다. 
작가님의 일제 강점사 35년 시리즈의 세번째 책으로 1921-1925 대투쟁의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홍범도 장군을 만날 수 있어서 좋았고, 역사 공부에 많은 도움이 됩니다.   
YES마니아 : 로얄 a******n 2025.05.16.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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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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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여파로 일제는 한국을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억압의 수단과 성질을 바꾸게 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면에 있어 조선의 자치와 한글을 허용한다거나 하는 등 변화가 있긴 하였으나, 실상은 외려 비밀경찰을 늘린다거나 친일파 양성에 힘을 쏟는 등, 독립에 대한 열망을 꺾는 것에 많은 초점을 둔 통치였다. 이 시기에는 무장투쟁과 독립군의 활약이 두드러졌는데, 봉오동전투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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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여파로 일제는 한국을 무단통치에서 문화통치로 억압의 수단과 성질을 바꾸게 된다. 겉으로 드러나는 면에 있어 조선의 자치와 한글을 허용한다거나 하는 등 변화가 있긴 하였으나, 실상은 외려 비밀경찰을 늘린다거나 친일파 양성에 힘을 쏟는 등, 독립에 대한 열망을 꺾는 것에 많은 초점을 둔 통치였다. 이 시기에는 무장투쟁과 독립군의 활약이 두드러졌는데, 봉오동전투와 청산리전투가 그러하다. 의열단이 결성되어 의열투쟁이 가속화되던 시기이기도 하다.

YES마니아 : 로얄 p*****6 2021.08.26.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