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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학적이기까지 한 이 소설을 읽고 나는 한동안 먹고 마시고 싸는 것에 대해 회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엔 도스도예프스키의'죄와 벌'이나 고골리의 '외투' 주인공과 그 가난의 처절함에서 너무 비슷하게 나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건 기우였다. 그냥 철저히 배고픈 것, 죽을 만큼 배고픈 것 이라는 점에서 인간의 본질을 파고드는 심오함이 있었다.
한 마디로 굶주림은 멋졌다. 작가는 어쩌면 굶주림이라는 소재 하나로 이처럼 깊고 아프고 집요하게 쓸 수 있을까.
하루만 굶어도 아니 한 끼만 굶어도 온갖 엄살을 떠는 우리들에게 함순의 굶주림은 경외의 대상으로 까지 다가올 정도다. 굶주리는 가운데도 자존심을 잃지 않으려 애쓰며 때묻은 손으로 글을 써나가던 주인공의 모습은 너무도 처절해서 눈물이 났다.
이 소설을 읽지 않은 사람은 꼭 읽어보길 바란다. 배가 부른 포만감보다 당신을 더 깊이 채우는 영혼의 맑은 울림이 있을 것이다. [인상깊은구절] 조용했다. 주위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안 보였고, 불빛 하나도, 소리 하나도 없었다. 나는 신경이 극도로 흥분됐다. 무겁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배고픔을 좀 가라앉혀 줄 수도 있을 이 고기 살점을 게워 내야만 할 때마다, 눈물을 흘리고 이를 갈았다. 온갖 노력을 다해 보았지만 아무 성과도 없었으므로, 문에다 뼈를 집어던졌다. |
| 계속되는 굶주림으로도 자신과의 싸움에서 지지않기 위한 몸부림, 즉 자존심, 그것은 스스로를 더욱 고통스럽게 몰아만간다. 얼마동안 살아갈 삶의 방편을 구했을 때, 그때의 굶주림에서의 해방감, 이때의 기분을 표현하자면 말그대로 서광이 비추는 듯한 느낌이었다. 이렇게까지 그는 그것이 절실했다. 절실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머리카락까지 빠질정도의 배고픔을 겪고서도, 막상 돈이 생겼을때 즉흥적으로 써버리는 그의 무모함을 보고있으면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와버린다. 자신의 생각에 옳다고 믿어지는 그 순간은 앞으로의 자신의 모습을 잊어버리는 듯 하다. 평범한 사상을 가진 나는 생각한다. 또 불필요한 짓을 저지르는구나... 그러나 그 자존심을 무너뜨리고, 그가 생각하는 불합리에 맞춰 살고있는 자신을 보는것이 그에게는 더욱 괴로운 일일것이다. 아주 고통스러운 소설이다. 장본인도 괴롭고, 읽고있는 사람까지도 괴롭다. 시종일간... 마지막으로 책상태에 관해. 오타와 자연스럽지 않은 문장이 꽤 많다.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대충 알아먹겠는데 도대체 이건 뭐냐..하는 문장이 더러나온다. 책내는데 급급해서 문장을 다듬을 시간이 없었나? 2002년에 개정을 했다고 하는데 개정한 부분은 가격 뿐인거같다. 내가 까탈을 피우는건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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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그 기나긴 허기짐의 기록 오뉴월의 장의 행렬, 가난한 노파의 눈물, 거만한 인간, 바이올렛 색과 회색의 빛깔들, 둔하게 울려오는 종소리, 바이올린의 G현, 가을 밭에서 보이는 연기, 산길에 흩어져있는 비둘기의 깃, 자동차에 앉아있는 출세한 부녀자의 좁은 어깨, 유랑가극단의 여배우들, 세 번째 줄에서 떨어진 어릿광대,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휴가의 마지막 날, 사무실에서 때묻은 서류를 뒤적이는 처녀의 가느다란 손, 만월의 밤 개 짖는 소리, 크누트 함순의 두세 구절, 굶주린 어린이의 모습, 철창 안으로 보이는 죄수의 얼굴, 무성한 나뭇가지 위로 내려앉는 하얀 눈송이. 이 모든 것이 또한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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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종잡을수 없이 변하는 생각. 나도 나 나름대로 혼자 판단하기 잘한다고 생각했는데 도저히 이 주인공처럼 할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주인공이 굶주리은 단순히 못 먹어서 나오는 굶주림이 아니다. 허기져서 나타나는 굶주림이 하기엔 '굶주림'을 다 나타내지 못한다. 나는 감히 세상에 대한 '굶주림', 자신에 대한'굶주림'이라고 말하겠다. 몇일을 굶고 돈이 생기는 그 돈으로 몇일을 살고,다시 굶고 그런생활이 반복. 가진것이 없으면서도 다른이에 시선을 의식해 가진것 처럼 행동을 하고 극한이 굶주림에 의해 다른이에 시선에 상관없이 구걸을 하고, 결국엔 자신이 살던 도시를 떠나가 된다. 어느것이 주인공이 본 모습일까 굶주림 속에서도 타인이 시선을 의식하는게, 아니면 타인이 시선을 의식하지 않은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원하는 모습이. |
| 책을 사기위해 이 책 저책 이 소갤 읽다가 굶주림을 알게 되었다. 독자평과 책 소개만으로도 또 보증수표인 저자를 보더라도 괜찮겠다 싶어 클릭하여 산 책.. 몇번을 읽었는지 모른다.그러나 지금 집에는 굶주림이 있지 않다. 왜냐면 가까운 사람들에게 내가 먼저 읽으라고 권해주기 때문에 늘 다른 사람의 손에 가 있는 책이되어버렸기 때문이다. 나 역시 생소한 책을 고를경우 독자리뷰에 거의 90%이상 의존하여 사기 땜에 굶주림에 관하여 꼭 리뷰를 달고 싶었다. 후회하지 않는 책이니까 한번 읽어 보시라고요... 세상에 굶주림에 지쳤다는 표현을 이 책에서 만큼 확실하게 표현할 수 있는 책이 또있을까? 그런데도 그 굶주림 속에서 저자는 또 얼마나 자존심이 강한 사람인지... 이 사람을 이 지독한 허기속에서 가난함속에서 지탱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이 사람의 자존심과 자신에 대한 긍지로구나 하고 생각해본다. 굶주림을 알게 된것만으로도 난 너무나 행운아였다 |
| 소개의 글에 보면 이 책은 저자의 실화를 담았다고 한다. 과연 직접 페이지를 넘기면서 확인해보니 실화가 아니고서는 이렇게 쓸 수 없다는 생각이든다. 가장 기본적인 욕구를 제대로 충족시키지 못하면서 겪는 그의 모든 정신적인 혼란과 무기력, 광기 등에 관한 묘사는 너무 탁월하다. 마치 나 자신의 간헐적 끼니 거름이 숙성되면 분명히 도달할 그런 경지(?)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굶주린 배로 그는 그의 일상을 그리고 있다. 잔잔하게 그리려는 일상이 그의 생리적인 고통으로 여기저기 화산처럼 터지는 모습이 보인다. 나는 작은 신음을 토해낸다. 음식을 장기간 섭취하지 못해 이제는 이에 대한 일방적인 거부를 보이는 장기에 오열하면서도 그는 양심과 도덕적인 가치를 버리지 않는다. 나는 존경심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는 너무도 예민한 감성을 가지고 있다. 그 상황에서도 그는 어머니에게서 꾸중받는 아이가 머리 속으로 텔레토비 노래를 부르듯 절대적 외부상황 너머의 배경에 시선을 보내며 이에 의미를 부여한다. 그누트 함순의 이 소설이 감동적인 이유는 진정한 굶주림을 겪은 그 자신의 이야기를 썼다는 점과 욕망의 위계 구조 이론으로는 해명되지 않는 인간 본연의 도덕적 가치의 고귀함을 논하고 또한 작가의 꿈을 가지기에 합당한 감성으로 썼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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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사람을 만들어 낸다는 말을 나는 참 좋아한다.
도대체 사람이라는 그 하찮은 존재가 무슨 힘이 있단 말인가.
인간의 의지력은 그가 처했던 많은 상황들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어떤 이의 의지가 유약하고 보잘것 없다는 것은 그가 극한 상황에 처해보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 반대로 어떤 이는 모든 것을 알아서 하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에 익숙해져버려서 심지어는 알래스카에 가서 냉장고를 팔아오는 놀라운 실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그런 면에서 이 책, 크누트 함순의 [굶주림]은 배고픔 이라는 상황이 만들어내는 한 무능한 지식인의 정신세계의 흔들림과 그에 영향을 받는 현실행동을 정확하게 짚어내고 있다.
어쩌면 그의 성격은 상황이 만들어 내는 것일 뿐일지도 모른다. [인상깊은구절] 나는 굶주림에 병들고 수치심으로 화끈거려 물러나왔다. 안된다. 끝장을 내야해! 난 정말이지 너무도 오래 버티었다. 오랜세월동안 자신을 지탱해 왔어. 그 오랜 잔인한 시간들을 정직하게 살아왔어. 그런데 이제 갑자기 불쑥 거지상태로 굴러떨어졌구나. 오늘 단 하루 때문에 내 모든 인격은 타락을 했고 내 영혼은 파렴치함으로 흙탕물이 끼얹어졌다. 관심을 끌기 위해서는 비천한 장사치들 앞에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어. 그랬는데 그것이 내게 무슨 소용이 있었나? 입 속에 넣을 빵 한 조각도 얻지 못하고 전과 똑같은 상태가 아닌가? 내가 얻어낸 것이라고는 내 자신에 대한 혐오감 뿐이다. 그래, 그렇다. 이제 끝장을 내야해! 그런데 잠시후면 집 문이 닫힌다. 오늘 밤도 유치장에서 자고 싶지 않다면 서둘러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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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이럴수가 있을까? 단순히 새로운 것에 대한 찬미로 놀라움을 표현하는게 아니다. 모질게 살아온 아니 죽음의 문지방에 걸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면서도 인간으로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은 절대 무너뜨리지 않으려는 집착이 지금 내 양심에,내 허리살과 배에 덕지덕지 달라붙은 기름진 비양심 고깃덩어리를 더 없이 추하게 여기게 되는 이 소설의 힘은 무엇일까? 제목에서 그러하듯이 "굶주림" 단순히 하루이틀을 굶게 되는 현상이 아닌 너무 굶어서 먹는게 오히려 위에 부담이 되고 오장육보가 뒤집어 지는 현실속에서 자신의 침까지 삼키는 일조차 위에서 거부당한 한 남자의 정신적 윤리적 도덕정 사상에 내가 살아온 그저그런 삶의 안일함이 방탕하고 음흉한 기준으로 전락하여 맥없이 무너뜨리는 이 힘!.
그 어떤 사상가의 철학도 지금은 내 귀에 들려오지 않고 그져 배부른 소리에 지나지 않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왜 그렇게 뇌리에 맴도는지........눈물젖은 빵을 먹지 않았다면 인생을 논하지 말라는 그 이야기가 바로 이 글 일수도 있다는.. 양심으로 스스로를 구해낼 수 있는 그러한 힘으로 존재할수 있게 내 가슴속 가장 양지 바른 곳으로 "크누트 함순" 당신의 자리를 만들며 살아가는 것 또한 이 세상을 살아가는 하나의 방법이 되겠지요.. [인상깊은구절] "조심스럽게 과자를 꺼내 문에다 세워놓고서 세게 노크를 하고 달아났다 그 애가 과자를 발견하겠지! 밖으로 나오다가 맨 먼저 하게 될 일은 과자를 보는 일이다. 그 아이가 과자를 발견하리라는 생각에 바보처럼 내 두 눈을 기쁨으로 젖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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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누스 함순의 <땅의 혜택>에 이어 읽은 그의 초기 작품 <굶주림>을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가 미국에 다녀온 다음 발표한 작품입니다. 역시 자전적 소설이라고 하는데 그가 직접 체험한 극심한 가난과 굶주림의 상황, 그리고 심리 상태를 그려냈다고 합니다. 옮긴이는 <굶주림>에는 전혀 새로운 인간형이 등장한다고 했습니다. “19세기의 기술과 과학 발달의 희생자로서 태어난, 신경질적이고 지적이며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가 기술과 과학 발달의 희생자라는 점은 크게 부각되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또한 끼니를 거르기를 밥 먹듯 하면서도 자신보다 힘들어 보이는 사람에게는 가진 것을 전당포에 맡겨 돈을 만들어 도와주기도 합니다. 어떻든 주인공은 글을 써서 신문사에 팔아 근근이 버티고 있습니다. 논어 술이편에는 나물 먹고 물 마시고 팔을 베고 누웠으니 / 즐거움이 그 안에 있고 / 의롭지 않게 부귀를 누림은 / 나에게는 뜬 구름과 같다.(飯蔬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이라는 대목이 있습니다. 굶주려도 의를 버릴 수 없다는 것인데, <굶주림>의 주인공은 굶주림에 굴복하여 의롭지 않은 일도 저지르기도 합니다. 거짓을 말하고 금전을 훎기고 합니다. 어쩌면 극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금기라 할 일까지도 서슴치 않고 저지른 것입니다. 그래서 앙드레 지드는 서문에서 “계속되는 굶주림으로 인하여 일어나는 온갖 도덕적인 변모와 지적인 동요를 다루었다고 했나봅니다. 구직과정에서 수없이 퇴짜를 맞은 것을 보면 글쓰는 일 말고는 특별한 재능이 없었던가 봅니다. 아니면 거친 일은 할 생각이 없었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자리를 찾아낸다는 것이 내게 얼마나 절실한 일인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했습니다. 심지어는 내가 자리를 찾아낼 때마다 하느님이 간섭하고 모든 것을 망치니, 이건 절대적으로 불공평하다고 했습니다. 월세를 낼 수가 없어서 노숙을 밥먹듯하고 심지어는 경찰서의 유치장을 제발로 찾아들기도 하는데, 숙식을 해결하기 위하여 범죄를 저지르는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도 납니다. 어떻든 굶주림에 시달렸다는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반전도 없이 읽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러웠습니다. 아마도 무언가 화자가 굶주림을 해결할 무슨 일이라도 생기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읽어갔던 것 같습니다.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곳이 노르웨이의 수도 오슬로이며 시대적 배경은 저자가 미국에 다녀온 19세기 말임을 생각해보면 사회보장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았던 시절이었던가 봅니다. 화자는 결국 허드렛일을 할 선원으로 배를 타고 도시를 떠나는 것으로 이야기가 마무리되었습니다. 뉴펀들랜드 뱅크로 대구를 잡으러 떠났다는 것입니다. 그때의 경험은 <아이슬랜드의 어부들>에 담았다고 합니다. 소개의 글을 쓴 옥타르 미르는 이 작품이 대단하다고 했던 이유가 쉽게 와닿지 않았습니다. 사회에 대한 반항이나 열렬한 훈계라든지 격렬한 비판이나 요구가 없었다는 것, 몇날 며칠이고 굶고 지내면서도 불평도 증오감도 없다는 것이 특별하다는 것이었을까요? 미국에서 노르웨이로 돌아와서는 얼마 후에 파리로 피신해서는 가난하고 고독한 가운데 열심히 글을 써갔다고 합니다. 합리적인 프랑스 문학 경향과는 다른 그런 글은 결국 프랑스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되었던 것 같습니다. 화자를 비롯하여 <굶주림>에 등장하는 대부분의 인물들을 대체로 순박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물론 셋집 주인처럼 빡빡한 사람들도 있기는 합니다. 이런 상황에 처하기라도 하면 어떻게 활로를 찾아볼 것인가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
| 『내 앞으로 시장에서 사람들이 흥정하는 것을 바라보고, 나와는 무관한 일들로 생각을 메우려고 애썼다. 하지만 되지가 않았다. 줄곧 그 10크로네짜리 지폐가 생각났다. 결국,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분노가 나를 사로잡았다. 그것을 그녀에게 되돌려 보낸다면 그녀는 마음이 상할 것이다. 그러니 왜 그런 짓을 하겠는가? 나는 여전히 내 자신이 아무것이나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오만하게 고개를 흔들며 ‘아니, 괜찮습니다.’라고 말해야 할것인가! 이제는 그렇게 하면 어떤 결과가 생기는지 알았다. 나는 길거리에 나앉게 된 것이다. 절호의 기회가 있었을 때조차도 나는 따뜻한 거처를 잡아두지 않았다. 오만함에 사로잡혀 툭하면 펄펄 뛰고 기세등등하게 굴었다. 아무데나 10크로네를 내주고서 길바닥으로 나서버렸다...』 읽는내내 겨울이었다.그는 봄이 오길 바랬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난 너무도 바랬다.그는 정말 툭하면 펄펄 뛰었다.자신의 닳아빠진 바지의 무릎부분을 뚫어지게 바라보는 일에도 펄펄 뛰었다.돈이 생기면 돈 따위는 아주 가볍게 여기는 듯이 훌쩍 던져주고선 배가 고파지면 한끼니를 얻기위해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한다. 그가 갖고 있던 오만이란 건 무엇일까?오만하고 싶었던 것일까?그의 오만함은 전혀 그럴 듯 하지 않았다. 우아하지도 않고, 멋지지도 않았다.그는 ‘오만함’에 대해 알고는 있었을까?그저 어디서 주워들었던 것일까? 하지만 그 오만함이 그의 것이 아니고, 그저 어디서 주워들은것일뿐이었다 하더라도.이 책의 첫머리에 써놓은 앙드레 지드의 서평처럼.“ 어쨌든, 심연에 이끌리고 절망한 마음으로 파멸을 향하여 끊임없이 달려드는 어떤 사람이다. 아! 이 책에 비하면 프랑스의 모든 문학은 얼마나 합리적인가” 그렇다! 그는 오만함에 대해 주워 들은것이라도 있는 사람인 것이다.그리고 그것에 마냥 이끌리는 사람인 것이다.그는 얼간이(?)들 앞에서는 조그만 일에도 펄펄 뛰며 오만함을 내세우고제대로 된 인간(?) 앞에서는 아무리 작은 친절에도 어쩔줄을 몰라하며 그 친절한 사람에게 폐를 끼치지 않으려고 오만함을 내세운다. 정말 너무 너무 굶주려 독자까지 배가 고파 쓰러질 지경이 되면그는 오만함의 댓가가 무엇인지 그제서야 깨닫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견딜만한 배고픔 앞에서는 여전히 오만함을 내세우는 것이다. 아! 그에 비하면 우리들은 얼마나 약삭빠른가.우리는 수치심이나 오만함에 대해 주워들은것이라도 있는지. 결국 그는 우리 곁을 떠난다. 약삭빠른 우리들 곁에서. 너무도 합리적인 우리들 곁에서.우리도 그가 넌더리가 난다. 오만함 따위 집어던지고 자기하나 챙길줄 모르는 바보같으니라구... 음식이 아니라 끝끝내 오만함에 굶주려 있던 사람. 그에게 실컷 욕을 퍼부어주고, 그를 떠나보내고 나서야 슬쩍 훔쳐본다. 오만함과 수치심과 그의 한없는 선량함에 대해.그 끝자락을 슬쩍 잡아당겨 내 발끝이라도 덮어볼까 싶어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