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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政治에 대해 精通하지 못하다. 하지만 사람들이 지나치게 물질적 이해관계에 민감하다는 점은 알고 있다. 이해영 교수는 자기 이익의 극대화만 생각하는 ‘합리적 원숭이들’이라는 말을 했다.(2007년 12월 13일 한겨레 21 참조) 또한 정치권은 정치권 나름으로 갈등과 이해관계를 조율하지 못하고 오히려 갈등을 조장하고 문제를 일으켜왔다는 사실 정도도 알고 있다. 우리 국민이 그간 만들어온 민주주의는 말이 좋아 정치 참여이지 실상은 등 따뜻하고 배부른 것에만 신경 쓰고 인간다운 세상을 실현하는 것은 외면한 것에 불과하다.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이라 말하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도가 지나치면 오히려 惡手를 초래한다는 말을 들려주고 싶다. -ml:namespace prefix = o ns = "urn:schemas-microsoft-com:office:office" /> 내 눈에 정치에 대한 책을 쓰는 사람들은 대단하게 보인다. 그들은 기본적으로 어디로 향할지 알 수 없는 유권자들의 성향에서 유의미한 변화를 읽어내야 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대한민국의 주류가 보수에서 진보로, 50,60대에서 20 ~ 40대로, 지역 구도에서 세대 구도로 바뀌고 있다는 말을 했다. 진보에 대한 定議 역시 여타의 개념어들이 그렇듯 論者마다 조금씩 상이하다. 나는 좌파에 대한 개념 규정 부분에서 나온 말이지만 진보를 기본적으로 ‘현존 불평등에 대립적이며 ‘최대평등주의’적 지향을 핵심으로 하고 있는 세력‘(조희연 교수의 定議)으로 보는 것이 무난하다고 본다. 저자는 진보를 독재와 권위주의를 반대하고 민주주의를 지향하며, 전쟁과 핵무장을 반대하고 평화를 지향하며, 성장우선주의를 반대하고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을 지향하는 세 가지 사항을 공유하는 넓은 의미의 진보가 한국 정치사에서 다수를 형성한 적이 한 번도 없었지만 상황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고 정의했다. 나는 지난 10월 26일 재보궐 선거가 현정부의 실정을 심판하는 성격을 지녔다고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서울 이외의 지역에서는 여당이 승리했기 때문이다. 지역 구도 중심의 정치판은 바뀌어야 한다. 그런데 저자의 예견과 전망대로 지역 구도에서 세대 구도로 바뀌는 정치 지형이 의미가 있으려면 진보 세대가 주역이 되어야 한다. 저자는 2011년 4월 27일 실시된 경기도 성남 분당을 보궐 선거에서 손학규 후보가 승리한 것을 분당 주민으로 대표되는 중산층조차 삶이 불안하고 민생 문제로 고통 받고 있어 손 후보를 선택한 것으로 해석했다. 중요한 것은 30, 40대에서 손 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2011년 4월 분당 선거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는 세 가지 중요한 변화를 보여주었다. 세대 균열 구도의 심화, 지역주의의 쇠퇴, 성장주의와의 결별 등이다. ‘진보세대가 지배한다’에는 “요즘 젊은 것들은 버릇이 없다..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이 나라의 장래가 걱정된다.”는 고대 이집트의 피라미드 벽에 새겨진 글을 비롯해 처칠 등의 정치인이 한 말 등이 인용되어 있다. 처칠은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20대 때 진보가 아니면 심장이 없는 것이요 40대 때 보수가 아니면 뇌가 없는 것”이라는. 처칠의 말은 불편하게 들린다. 철학자 김영민 교수는 “보수가 이론의 부재를 채우는 정서적, 기득권적 고집에 머물 경우 그 태도는 보수해야 할 주어적 가치를 혼동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말을 들려준다.(‘산책과 자본주의’ 136 페이지) 인상(印象) 차원일 수 있겠지만 보수(保守)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도 모르는 채 맹목적으로 무언가를 지키려 하는 게 아닌가 싶다. 문제는 정치 성향을 세대로 나누어 젊은 세대는 진보적이고 나이 든 세대는 보수적이라는 구분이 얼마나 유효한가, 하는 점이다. 어느 시대나 이런 점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혼란과 모순, 부조리가 만연한 사회에서는 나이 든 세대라고 무조건적으로 보수를 고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세대도 중요하지만 사회적 여건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를 안정적이라 볼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필요한 것은 보수가 아니라 진보이고 개혁적 성향이다. 저자는 여러 근거를 제시하며 우리 사회의 변화를 말하지만 변화가 계속 되어야 한다는 당위 차원의 바람도 개재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정치 관련 서적이지만 우리의 논의에 시사점을 줄 수 있는 경제학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나는 경제학이 인간은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라는 전제하에 이론을 개진(開陳)하는 학문이라면 행동경제학은 인간은 비합리적이고 충동적이라는 전제하에 이론을 전개하는 학문이라는 말을 통해 정치 지형도를 보아야 할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여건이 주어지면 보수화할 수 있는 것이 대중이다. 저자의 핵심 주장은 세대는 계급이라는 말이다. 이는 진보세대가 지배한다는 말을 뒷받침하는 주장이다. 20 ~40 세대의 한국 사회 주류 선언이라는 부제를 말해주듯 우리 사회의 2040세대는 모두 힘겹다. 50, 60대 세대라고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2040 세대는 88만원 세대(20대), 삼포(三抛: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30대), 70 퍼센트 이상이 빚에 허덕이는 세대(40대: 2011년 9월 21일 동아일보)로 구성되어 있다. 경제가 나아지고 개인 여건이 개선되어 보수가 정녕 가치 있는 것들을 지키려 하면 좋겠지만 그런 상황은 쉽게 오지 않을 것이다. 100 퍼센트는 아니고 큰 부분을 차지하는 신자유주의의 맹목적 질주가 쉽게 사그러들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나라가 독재 시대 즉 성장 위주의 경제정책을 펼 때보다 1987년 민주화와 노동자 대투쟁 이후 1980년대 후반에서 1990년대 중반에 분배가 더 좋았다는 저자의 지적(73 ~ 74 페이지)은 주목할 만하다. 나는 현재의 신자유주의 정권을 보며 신자유주의 체제의 본산지인 미국을 가끔 생각하곤 했다. 데이비드 오렐의 ‘경제학 혁명’에 의하면 신고전주의 경제학파는 뉴턴 역학(力學)의 모범을 따르는 학파로 경제 법칙을 우주를 지배하는 물리법칙처럼 보편적인 것으로 보았지만 그 창시자들은 물리학자도 아니고 물리학에 뛰어난 이해력도 없으면서 막연한 이해에 바탕한 아이디어를 경제학에 이식(利殖)함으로써 오늘날의 카지노 자본주의를 만든 사람들이다. 신자유주의란 신고전주의 경제학에 입각하여 국가의 역할을 축소시키고 시장경제를 확산시키려는 정책을 견지한다. 저자는 시대 변화의 동력(動力)은 젊은 세대라고 말한다.(135 페이지) 문제는 젊은 세대들을 한데 결집시키고 변화의 주체가 되게 할 구심점 또는 기폭제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 이다. 반가운 것은 저자의 책과 김영민 교수의 책에 칼 만하임의 말이 인용되었다는 사실이다. “보수주의는 이론 자체가 없는 것”(‘산책과 자본주의’ 134 페이지)이라는 말과 “이제 우리 세대는 모두 이 전쟁(2차 세계 대전) 이후에 다시 자유방임주의로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진보세대가 지배한다’ 138 페이지)는 말이 그것이다. 저자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이 대한민국 역사에서 세 번째 정초선거(定礎選擧)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정초선거란 새로운 정치 체제로의 이행을 알려주는 선거로 이때 나타난 정당 간 경쟁과 연합의 패턴이 이후 선거에서도 반복되는 지속성의 효과를 지니며 높은 투표율과 강한 경쟁성을 특징으로 한다.(161 페이지) 저자는 지역 구도가 와해될 수 밖에 없음을 영남의 20 ~ 40대의 경우 경제성장의 혜택을 고스란히 누렸던 과거의 같은 지역의 젊은 세대와는 다르다는 말로 설명해낸다.(고개가 끄덕여진다.) 또한 20 ~ 30대가 50 ~ 60대와 대립되는 이해관계를 가진다는 견해는 그 두 세대는 부모 자식 세대라는 말로 격파해낸다. “20 ~ 30대에게 사다리를 만들어주자는 것은 결코 50 ~ 60대에게 뺏어서 나눠주자는 것이 아니다. 일자리의 88 퍼센트를 만드는 중소기업을 살리자는 것이고 이를 위해 중소기업의 수익로인 內需를 살리자는 것이며 이를 위해 내수가 가능할 수 있도록 분배를 늘리자는 것이다.”(198 페이지: 이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한다.) (내가) 다소 장황할 만큼 본문 인용을 많이 해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저자가 제시한 대안들을 다 다룰 수는 없지만 저자가 제시된 의견들이 현 정부의 정책과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인상을 받았다는 점은 말하고 싶다. ‘최재천의 한미 FTA 청문회’의 저자인 최재천 변호사가 ‘민주당이 나라를 망친다, 민주당이 나라를 살린다’를 통해 민주당의 책임론을 제시했듯 저자도 민주당의 책임론 또는 역할론을 제시한다. 민주당이 제대로 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데다가 진보세력인 민주노동당이나 진보신당 중심의 체제가 구성되어야 한다고 믿는 나의 입장에서는 반갑지 않지만 저자의 논지는 민주당이 호남 지역색을 더 강화하면 모처럼 맞고 있는 변화의 호기를 물거품으로 만들 것이라는 수용 가능한 주장이다. 결국 저자의 주장은 진보 정당이 민주당을 牽引해낼 수 있다는 데로 이어진다. 저자가 그 이유로 제시한 사연 중 하나인 민주당에는 김대중이라는 거인이 없다는 설명은 김대중의 공과(功過) 또는 빛과 그림자를 짐작하게 한다. 저자의 말대로 정치학은 사회과학 중에서도 보는 각도에 따라 완전히 풍경이 달라지는 분야이다. 지역주의 프레임과 성장 위주 정책은 과연 옳은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가져야 하는 대목은 여기이다. 인간은 허구 또는 허위의식에 빠지기 쉬운 존재이다. 이런 까닭에 자기 성찰적 의식이 필요한 것이다. 저자는 분노하라,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라, 세상을 바꿔라 라는 세 가지 사항을 당부한다. ‘진보세대가 지배한다’는 신경내분비암 발병을 계기로 본질적인 것에 더욱 집중하게 된 저자의 奮鬪가 반영된 성과물이다. 2012년 두 선거에서 저자의 전망이 실현되기를 바란다. 나 역시 발전적 변화를 갈망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미래상이 그려질지 알 수 없지만 아니 그렇기에 더욱 기다려지는 2012년이다. 力作에 박수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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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에 후마니타스 서평단 처음 합격해 쓴 글. *** 어디서부터 얘기를 시작해야 할까. 지난 대선이 작년 일 같다. 그때 나는 종로에 있는 회사에 다니며 광화문 동화 면세점 앞에서 출퇴근을 했는데,
아마 대선을 한달 정도 앞둔 시점이었을 것이다. 동화 면세점 앞 큰길을 사이에 두고 청계천 쪽에서는 이명박 전 서울시장의 파란 목도리 두른
지지자들이, 동화 면세점 앞에는 민주당 지지자들이 오징어배처럼 불을 밝히고 함성을 지르고 있었다.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되고 또 몇달 지나지 않아
촛불시위라는 것도 있었다. 시위대가 도로 위에서 밤을 지새고 이튿날 직장인들의 출근시간이 되도록 점거를 풀지 않아, 어쩔 수 없이 버스에서 내려
전경들 앞을 불안한 기분으로 가로질러 출근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나는 문제가 되었던 미국 쇠고기에 대해 깊이 생각지 않아, 사람들이 저토록
반대하는 일이라면 어지간히 중요한 일이 아니고서야 정부에서 조금 양보해도 좋을걸 - 정도의 의견을 가지고 있었다. 시위 풍경은 신기한
구경거리였을 뿐 굳이 그들 무리에 끼어 도로에서 밤을 새고 금쪽같은 주말 혹은 이튿날 출근에 지장을 주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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