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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적, 아버지께서 제 앞으로 온 편지를 저보다 먼저 확인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굉장히 기분이 불쾌하여 정중하게 이런 일이 두 번 다신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고 그 이후론 그와 비슷한 일은 일절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저 불쾌하기만 하였늗네 '아들의 방'을 읽으면서 부모님의 입장에선 딸내미 앞으로 날아온 편지가 무척이나 신경쓰였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아이니까, 내 아이의 일이니까 알고 싶었을 테고 궁금하였던 거겠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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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이들의 마음을 알고 싶다. 그냥 알고 싶은게 아니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속속들이 알고 싶은게 부모의 마음이라고 우길 것이다. 아이들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아이들은 자신들의 생각과는 다른 부모들에게 자신들의 마음을 내보이는 것을 싫어하고 부모는 자신의 아이가 왜 그러는지 이해를 못한다. 아이들은 그냥 얘기해도 될것을 숨기려들고, 친구들과만 얘기하려는 것이다. 부모들도 아이들처럼 그런 적이 있으면서도 자신들도 한때는 반항아 였다는 걸 새까맣게 잊고 아이들만 나무라는 것이다. 왜 제멋대로 행동하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곧 어른이 될 준비를 하는 아이들을 자신만의 아이려니 생각하고 보호하려고만 애를 쓴다. 아이들도 하나의 인격이 있는데도 우리는 그 염려때문이라며 아이들을 엿보고자 한다. 실제로 내 친구중 하나는 아들녀석이 하도 문제를 일으켜 아들 몰래 녀석의 문자를 그대로 볼 수 있는 장치를 해 놓았다고 한다. 그 친구의 아들녀석이 현재 중학교 3학년인데 한때 가출의 경험도 있었기 때문에 도대체 무슨 문자를 주고 받았는지 궁금하기도 했을 것이다. 실제로 내 아들녀석도 아예 휴대폰을 들고 살고 문자며 메신저를 이용해 친구들과 이야기하길 좋아하는데 휴대폰을 보면 아예 처음부터 다 비밀번호 설정이 되어 있다. 때로는 아이들의 어떤 친구랑 무슨 문자를 주고 받는지 혹은 주로 누구랑 통화하는지 궁금해 보려고 해도 아예 차단이 되어 있는 것이다. 아이한테 왜 비밀번호를 설정해 놓았느냐니까 '제 프라이버시 잖아요.' 이런 말을 했다. 그걸 알면서도 부모인 나는 궁금하긴 했다. 세상이 하도 무서우니까라는 변명으로. 나도 아이들의 부모라서 그런지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도 공감하는 부분이 많았다. 아들의 친한 친구가 자살한 뒤로 좀처럼 마음을 잡지 못하는 아들 녀석을 보는 마음이 나도 내 아이를 보는 것처럼 그렇게 느껴졌던것이다. 아이를 믿고 싶지만 혹시라도 나쁜일이 생길까봐 종종거리는 부모의 마음이 이해되었던터다. 책을 읽기 전 나는 이 책을 접하면서 자주 보고는 하는 피가 튀기고 범인을 잡기 위한 일반 스릴러물인줄 알았다. 하지만 그런 예상을 뒤집은 책이랄까. 제목처럼 문제가 있어 보이는 아들의 방에 염려하는 마음으로 무언가를 설치하고 아들을 찾아 헤매는 부모와 한 여자가 살해되고 또 다른 여자가 실종되어 그 사건을 해결하는 이들이 나온다. 그리고 그 살인사건이 생긴 어처구니없는 이유까지.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일이 이 책에서는 주축이 되어 있지 않고 상처를 받은 아들과 다른 집의 자살한 아이의 부모, 또한 누군가의 한 마디의 말로 상처를 받아 아이들한테 따돌림을 받은 아이와 그 부모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러면서 작가는 우리에게 묻는다. 가족이란 대체 무엇인지, 가족을 믿어야 하는 것도 중요하고, 혼자서 해결하는게 그게 진짜 정답은 아니라는 것을 우리에게 조심스럽게 알려준다.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다였다. 최선의 마음가짐으로 대하고, 자신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면 된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너무도 무작위적이어서 그보다 더한 것은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인생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는 없다. (513페이지 중에서) 우리가 무심코 내뱉는 한마디 말이 상대방에게는 제대로 살아가기가 힘들 정도로 커다란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것. 이런 것들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한 마디의 말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도 있잖은가. 사람들은 나와는 다른 인격체로 나와는 틀린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 남에게 상처주는 말을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를 위한 다짐이기도 하다. 내 아이이되 내 개인 소유물이 아니므로 아이들을 대할 때도 최선의 마음가짐으로 대하고 존중해줄 것. 아이들을 사랑할 것. 아이들을 학부모의 시선으로 보지 말고 아이들의 시선으로 볼 것. 이런 것들을 생각해본다. 할런 코벤의 책은 두 번째인데 이 책은 가족에 대한 화두를 던져 준다. 상을 많이 받은게 책 읽는 사람한테 다 좋은 건 아니지만, 미스테리 부분 문학상을 3개나 석권했다는 이런 홍보글에 동조를 할 수 있는 책이라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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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작품은 심리묘사나 복잡한 인물묘사가 없이 간단히 남자는 잘생기고 여자는 섹시하며, 모든 이야기는 액션으로 설명된다. 그래서일까 전개가 빠르다. 작가가 후기에서도 밝혔듯 부부모임에서 나눈 이야기를 모티브로 해서 이 작품이 탄생했다. 안그래도 할런 코벤은 딸내미의 트위터나 핸드폰 문자대화를 듣고 가끔가다 트위터에서 뒤집어지던데? 여하간, 아마도 이들이 나눈 이야기는,' 말도 안하고 방도 잠그고 맨날 친구랑 PC나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는 십대자식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 것일까'임이 틀림없다. 음, 십대 자식은 커녕 붕어빵같은 아이도 없지만, 고민은 될 것 같다. 잠깐 동안 조카보기를 해도 금방 마음으로도 몸으로도 지쳐버리니까 (아유, 이 녀석. 어찌나 얄미운지...). 과연 어느정도까지 아이들에게 자유를 허용해도 될것인지, 어디까지 부모는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 머리는 아이에게 판단할 수 있는 자유와 공간을 주자겠지만, 어째~ 할런 코벤, 이야기를 통해서 일정량의 (모르게) 감시하고 파악하는 것은 중요하다는 것을 내포하는 것인지. 아직 아이는 불법적인 일을 할때 경찰과 자신의 앞날보다는, 친구들에게 밀고자로 찍히던가 스스로 비밀을 지켰다는 것에 더 의미를 둘 수 있으니까. 여하간, 나도 참 모르겠다. 다만, 울엄마아빠는 말많고 표정에 다 드러나는 나때문에는 참~ 힘들지않으셨겠다는 생각에 담에 한번 생색을 좀 내야겠단 마음이..(쿨럭)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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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라는 건 그런 것이다. 좋은 의도로 깬 거라도, 한번 깨지면 영원히 되돌릴 수 없는 법이다. <아들의 방 (모중석스릴러클럽 029)>은 그 동안 별로 읽지 못했던 스릴러물이다. 그런데도 이 작품을 읽게 된 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하나는 지은이 할런 코벤이 미국 3대 미스테리 문학상을 모두 수상하였고,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이 그의 작품의 열성 팬이었다니 과연 어떤 작가인지 궁금해서였다. 또 다른 하나는 아들이 친구의 죽음으로 자폐적인 성향을 보이며 부모에게도 자신의 생활을 전혀 내보이지 않자 아들을 엿보기 시작한다는 설정 때문이다. 초등학생이 중학생이 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부모와의 벽은 점점 높아만 가는데, 과연 그 높은 벽 너머 아이의 내면이 어떨지 궁금한 것은 모든 부모의 한결같은 마음이 아닐까? 아이들의 생각과 생활이 궁금하면서도 과연 부모가 관여할 수 있는 한계가 어디까지인지가 늘 궁금했던 나에게는 무척이나 관심이 가는 주제였다. 마이크와 티아 부부는 아들 애덤이 친구 스펜서의 죽음 이후에 자신들에게 문을 닫아버리자 컴퓨터에 스파이 프로그램을 설치해 아들의 컴퓨터를 엿보기 시작한다. 그리고 애덤이 술이나 마약을 한다는 느낌이 드는 가운데 집을 나가 행방을 알 수 없자, 마이크는 애덤을 찾기 위해 이곳저곳을 헤매다 폭행을 당하기도 한다. 한편 한 여성이 납치되어 살해되는데 이어 또 다른 여성이 행방불명되자, 경찰은 두 사건이 관련되었다는 것을 알아내고 범인의 뒤를 좇는다. 소설을 읽으며 먼저 인물과 사건이 교묘하게 얽혀 있다는 것에 감탄하게 된다. 실종된 아들을 찾으려는 마이크 부부의 노력과 내시가 저지르는 잔혹한 납치 살인이 작품의 큰 뼈대를 이루는 외에도 아들의 죽음에 숨겨진 진실을 알고자 하는 벳시, 신장 이식을 받아야 하는 루커스, 루이스턴 선생의 농담 한 마디로 인해 큰 상처를 입은 야스민의 이야기가 서로 별개의 이야기인 양 전개되고 있다. 등장인물도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마이크 가족(마이크, 티아, 애덤, 질)을 둘러싸고 론, 벳시, 스펜서, 단테, 수전, 루커스, 가이, 야스민, 조, 돌리 등의 이웃들과 모와 아일린, 로렌 뮤즈, 앤서니 등의 인물들은 단순한 조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각 뚜렷한 개성을 지닌 채 살아 숨쉬고 있다. 또 그들이 지닌 저마다의 갈등은 그 자체로 하나의 단편을 이룰 수 있을 정도로 강한 흡인력으로 독자를 끌어들이고 있다. 결국 이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각각의 사건들이 맺는 연관성을 찾아내 하나의 퍼즐을 완성하는 과정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사건은 별개로 진행되고, 등장인물간의 관계는 분명하지 않아 도대체 어떻게 전개가 될지 책을 손에서 놓기가 힘들었다. 중간이 넘어가도록 연관을 찾기 어려웠던 사건들은,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면서 서로의 관계가 분명해지고 사건의 연결점들이 조금씩 드러난다. 스펜서의 자살과 애덤의 관계, 야스민과 매리엔, 루이스턴 선생과 내시 그리고 수전이 복잡하게 얽힌 과거가 드러나면서 미스테리는 거의 해결된다. 모두들 자신의 가족을 지키기 위해 자신이 최선이라 믿는 행동을 했지만, 그 작은 행동의 결과는 실로 엄청나게 달라진 것이다. 마치 ‘인간은 열심히 계획하지만, 신은 비웃는다.’는 유대인의 표현처럼…. 가족이란 가장 소중한 존재이면서도 그렇기에 때로는 서로에게 가장 큰 상처를 줄 수 있는 존재이기도 하지요. 또한 가장 비밀이 없어야 하는 관계이면서도 서로의 사생활을 존중해 주어야 하기도 하고, 무관심뿐 아니라 지나친 관심은 오히려 다른 구성원과의 사이에 돌이킬 수 없는 벽을 쌓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신을 엿보는 부모의 시도를 알고 애덤은 더욱 마음을 닫아 버리고, 그 결과 사태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꼬여 버리니 말이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들이 기울여야 하는 관심은 어느 만큼일까? 나에게 가장 고민되는 문제이기도 하고 이 책을 읽게 된 계기이기도 한데, 바로 그 부분이 이 책의 미덕이 드러나는 부분이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 즉 마이크와 티아 그리고 또 다른 부모들은 자식에 대한 사랑과 관심이 어디까지여야 하는지 정답을 알지 못하고 끊임없이 묻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들 역시 우리와 마찬가지로 고민하며 살고 있을 뿐으로, 그런 시행착오 끝에 얻은 작음 깨달음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그럼 어머니인 티아는 이 모든 일에서 무엇을 배웠을까? 최선을 다하는 것! 그게 다였다. 최선의 마음가짐으로 대하고, 자신들이 사랑받고 있다는 걸 알게 해주면 된다. 하지만 인생이라는 게 너무나 무작위적이어서 그보다 더한 것은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인생을 마음대로 조종할 수는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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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아이들은 나이를 먹으면서 부모의 간섭과 통제로부터 벗어나려고 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면 부모가 대처하는 방법도 여러가지다. 아이의 행동과 판단을 믿고 단지 지켜보기만 하는 부모도 있을테고, 여전히 아이의 사생활에 개입하고 잔소리를 늘어놓아야 직성이 풀리는 부모도 있을 것이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아이의 개인적인 사소한 일까지 모두 알려고 하는 부모도 있을 수 있다. 인터넷과 휴대폰이 필수가 되어버린 요즘이라면 그것도 불가능 하지는 않다. 자식이 인터넷으로 무엇을 보는 지, 이메일이나 인스턴트 메신저로 누구와 어떤 대화를 주고 받는지도 마음만 먹으면 알아낼 수 있다. 휴대폰을 추적하면 언제 어느 곳에 있는지도 파악할 수 있다.
그럴만한 의도만 있다면 그리고 비용을 지불할 능력만 있다면 얼마든지 가능하다. 정말 편리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겁나는 세상 아닌가?
어느날 대화를 거부해버린 16세 아들
할런 코벤의 2008년 작품 <아들의 방>에는 이런 식으로 아들을 감시하는 부모가 등장한다. 마이크와 티아 부부가 그들이다. 그들 사이에는 열여섯 살 된 아들 애덤이 있다. 애덤은 어린 시절에 아빠 마이크와 함께 아이스하키 경기장에 가서 자신이 좋아하는 팀을 열렬하게 응원하곤 했다.
대학시절 뛰어난 선수였던 아빠의 피를 물려받았는지 애덤도 주니어 아이스하키팀의 주전선수로 활약했다. 마이크와 애덤은 함께 연습을 하며 즐거운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러던 애덤이 여섯 달 전에 아무 설명도 없이 이제 운동을 그만두겠다고 말한 것이다.
애덤은 그 후로 사람들을 기피하며 자신의 방에 틀어박히게 되었다. 부모가 대화를 시도해도 소용없다. 당시 애덤은 친한 친구인 스펜서가 자살하는 충격적인 사건을 겪었다. 부모도 그 사건이 애덤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 생각하고 애덤을 심리치료사에게 데려가지만 애덤은 그것도 거부하고 만다.
그래서 마이크와 티아는 애덤의 컴퓨터에 스파이 프로그램을 몰래 설치한다. 이 프로그램이 설치되면 애덤이 자신의 컴퓨터로 하는 모든 행동을 마이크와 티아가 볼 수 있다. 어느 사이트에 접속해서 무엇을 내려받는지, 워드나 엑셀 프로그램으로 무슨 문서를 작성하는지, 타인과 무슨 메시지를 주고 받는지 등을 빠짐없이 알 수 있다.
프로그램을 설치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티아는 뭔가를 찾아낸다. 애덤이 누군가와 인스턴트 메신저로 나누는 대화내용이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것이다. 애덤과 그 친구는 자신들이 어떤 범죄에 연관된 듯한 느낌을 주는 대화를 주고 받는다. 이 대화를 보고나서 마이크와 티아는 어떻게 애덤을 지킬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일탈을 꿈꾸는 10대 청소년들
대부분의 범죄소설이 그렇듯이, <아들의 방>에도 잔인한 살인사건이 연달아서 발생한다. 그에 못지않게 가족과 핏줄에 관한 이야기도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마이크와 티아는 처음부터 논쟁을 벌인다. 아무리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라지만 스파이 프로그램으로 자식의 사생활을 침해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행동일까.
만일 애덤이 그 사실을 알게되면 부모에게 완전히 마음을 닫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티아는 물러서지 않는다. 아들을 보호할 것이냐, 아니면 그 아이의 사생활을 보장할 것이냐를 놓고 선택하라고 한다면 당연히 보호하는 쪽을 택한다는 것이다.
작품 속의 다른 등장인물도 아이들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좋은 가정과 자신을 사랑하는 부모가 있는 아이들이 도대체 무엇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를 쓰냐고 묻는다. 마이크도 스스로에게 질문한다. 자신은 어렸을 때 주말이면 종일 시내에서 놀다가 밤 늦게 들어왔다. 하지만 애덤이 그런 행동을 하면 걱정부터 앞선다. 부모들은 정확하게 자식의 무엇을 걱정하는 걸까.
작품의 시작부터 펼쳐지는 살인사건의 진상도 궁금하지만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 온갖 노력을 기울이는 등장인물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자식을 감시하며 갈등하는 사람들의 내면도 흥미롭다. 이유가 무엇이건 간에 감시하는 일과 감시당하는 일, 이 두 가지는 모두 못할 짓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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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자신의 내적 욕망에서부터 외부환경과의 갈등으로 수시로 그 균형을 잃어버리고 고통과 고뇌로 슬퍼하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한다. 그래서 이 기울어진 균형을 되찾기 위해 용기를 내어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잃어버린 길은 무엇인지 찾아 나선다. 그러나 그 여정이 그리 쉬운 것은 아니어서 좌절하기도 하지만 희망을 저버리지 않기도 한다. 이처럼 삶이란 그것이 사랑이건, 재물이건, 어떤 지적 탐구를 수반하는 정신작용이건 성취하고자 하는 대상에 이르려는 장애물과의 욕망의 투쟁이고 이의 균형이다.
미스터리, 서스펜스, 극적 아이러니까지 총동원되어 호기심과 감정의 자극을 첫 장부터 마지막장에 이르기까지 쉴 새 없이 흐르는 이야기에 탈진할 정도의 재미로 독자를 몰아 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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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런 코벤 소설은 이번이 두번째다. 처음 읽은 것은 2010년으로, 그때 읽은 책은 《결백》이다. 다른 책도 읽어볼까 하는 마음이 조금 들기는 했는데 그러지 못했다. 《결백》이 나한테 좀 맞지 않는 듯해서. 한권만 읽고 그런 생각을 하다니. 《아들의 방》은 예전과 다른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같은 작가가 맞나 했다. 어쩌면 예전에 내가 잘 못 읽어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백》을 읽고 쓴 게 있어서 찾아보고는 조금 놀랐다. 《아들의 방》에 나온 사람이 거기에도 나왔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는 수사과장으로 로렌 뮤즈다. 어쩐지 로렌 뮤즈는 다른 데도 나올 것 같다. 그렇다 해도 로렌 뮤즈가 앞에 나오는 것은 아닌 듯하다. 로렌 뮤즈가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생각하는 것 같기는 했다. 보이는대로 본 적도 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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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사람은 가정이라는 테두리 안에 살면서 그 구성원으로서 사랑과 신뢰가 바탕이 된 행복한 삶을 살아가기를 원할 것이다. 하지만 살아가다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그것이 생각만큼 쉽지 않으며, 그것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적잖은 인내와 노력이 뒤따라야 함을 알게 될 때가 있다. 사실 가족이라는 구성체 외의 여타 다른 집단의 경우에는, 자신의 생각과 뜻에 부합되지 않아 만족감이 들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언제든 돌아서면 되지만, 혈연으로 이루어진 가족의 경우에는 그런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가능하지도 않다. 또한, 가족이라는 존재는 어떻게 보면 쉽게 부서지지 않는 단단한 결합체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한순간에 허망하게 부서질 수도 있는 마치 유리잔과 같을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가족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하는 이 작품은, 가족을 이루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한두 번쯤 고민하고 경험해봤을 만한, 부모와 자식 간의 세대 차이에서 흔히 생기게 되는 소통의 문제를 집중적으로 조명함과 동시에, 가족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방적인 구속과 희생을 강요당해야 하는 다소 불합리한 부분들을 심층적으로 다루고 있어, 독자들에게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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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소설에 맛을 들이게 되면서 점차 추리작가의 이름도 눈에 익는 요즘, 할렌 코벤이라는 작가도 심심치 않게 눈에 들어온다. 결론적으로는, 기대치를 저버리지 않은, 굉장히 재밌게 읽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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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와 티아, 애덤, 질, 이제 이들은 예전과 다른 삶을 살아가게 될 것이다. 티아는 온 정성을 기울여 아이들을 사랑하면 된다고 끊임없이 되뇌이지만 어른이 되어가는 애덤과 질이 다른 아이들과 다른 성장과정을 겪었기에 모든 것들이 쉽지 않을 것이다. 친구 스펜서의 죽음 이후 달라진 애덤, 친구의 죽음으로 슬픔에 잠겨서 달라졌다고 하기에는 비밀이 많아 보인다. 애덤이 지금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마이크와 티아가 한 행동은 이후 애덤의 삶에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을 정도로 애덤에게 신뢰를 잃는 행동이었다. 아이가 위험에 빠져서 죽기라도 한다면 어쩌냐는 반대 의견을 낼 수도 있을 것이다. 실제로 애덤을 위험에서 구해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하지만 애덤을 믿고 기다렸다면 좀 더 긍정적인 결말을 얻어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 모든 것이 가정이긴 하지만 단 두 통의 이 메일이 일으킨 폭풍은 정말 그 누구라도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일들의 연속이었다.
할런 코벤의 '아들의 방'은 매리앤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책장을 넘기는 동안 매리앤의 죽음과 애덤의 이야기의 접점이 무엇일까 궁금했다. 변호사인 티아가 매리앤의 사건을 맡는 것인지. 매리앤의 죽음으로 알게 된 모든 사실들이 독자들에게는 반전과 같았다. 내시가 저지르는 살인이 너무 끔찍해서 한 곳으로 좁혀오는 그의 행동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작가는 매리앤을 죽인 내시를 그대로 노출시킨다. 살인사건이 벌어지고 범인을 찾는 것이 주 목적이 아니란 얘기다. 내시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행동을 하고 있고 그가 가야만 하는 곳에 대체 무엇이 있을지 나는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다.
우리의 삶은 예측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타인에 의해 삶이 방향을 바꾸기도 한다. 인생을, 삶을 열심히 노력하면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나. 수전 로리먼, 조 루이스턴, 가이 노박, 매리앤, 야스민, 마이크, 티아, 애덤, 질, 스펜서 등 가까이 사는 이웃이 서로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줄 수 있는지 알게 된다면 놀라게 될 것이다. 한 마을에서 여러 사건이 그것도 아주 끔찍한 사건이 연이어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지금 당장 가족들을 집에 보낸 후 현관문을 잠그고 영원히 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게 될 것이다. 수전 로리먼이 개인적으로 겪은 사건만이 작가 할런 코벤에 의해 만들어진 결말이었다. 우연과 운명이 강하게 작용하여 수전의 아들을 살리는 긍정적인 결말을 만들어냈다.
마이크와 티아, 애덤, 질, 이 가족이 이번 사건으로 모두 죽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이들의 운명은 수많은 우연과 인연에 의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고, 예전과 같은 삶을 살아갈 수 없을지라도 가족들이 함께 있을 수 있는 결말을 맞게 했다. 우정을 지키려고 노력한 애덤과 아들을 지키려고 목숨까지 건 마이크, 질을 지켜주려 한 티아, 엄마를 위해 무슨 일이든 하려한 질, 이런 노력이 없었다면 지금 이들은 차디찬 땅속에 묻혀 있게 되었을 것이다. 가족의 사랑만이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는 것이다. 약하기만 한 가이 노박도 딸 야스민을 위해 목숨도 내어 놓을 수 있는 부모인 것이다. '아들의 방'은 자식을 지키려는 부모들의 이야기다. 그래서 '정의'에 위배되지만 자식을 위해 그 어떤 거짓말을 해도 이해할 수 있다. 모든 것이 완전하게 세상에 밝혀진다고 해도 바뀌는 것은 없을 것이다. 로렌 뮤즈가 어떤 사실을 알았다고 해도 아무말 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들도 그냥 조용히 덮어두면 된다. 이제 모든 사건은 끝을 맺었으니까.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