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를 읽는다는 것, 시를 읽고 시인의 감정과 동화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나 또한 시인이 느꼈을 법한 감동을 느낀다는 것, 그것은 나에게 역시 어려운 것임을 다시 한번 느낀다. 시를 보면 낱낱이 분해하고, 거기서 무언가 주제를 찾아내려 하는 습성 때문에 그런 것 만은 아니다. 물론 시 자체를 이해하는 것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어차피 내가 쓰는 언어로 되어있는 글들이 어려워 봐야 얼마나 어렵겠는가? 다만 감정의 몰입이 되질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지만, 나도 좋아하는 시가 있고, 그러한 시를 읽으면서는 벅찬 감동을, 쓸쓸함을, 그리고 회한을 느끼기도 한다. 다만 그러한 시가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문제지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읽어본 시집이나 가지고 있는 시집이 손에 꼽을 수 있는 정도에 불과하다. 얼마 전 곽재구 시인이 쓴 산문집 [우리가 사랑한 1초들]이란 책을 읽었다. 그리고 문득 시인이 쓴 시집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렸을 때, 물가에 누워서 밤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던 기억이, 그리고 조금 더 커서는 강둑에 서서 말없이 흘러가는 강물을 바라보며 미래를 이야기했던 기억들, 아마 이제는 무딜 대로 무뎌진 감성을 자극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시집은 곽재구 시인의 쓴 시집이 아니다. 자신이 시를 읽다가 감동을 받은 시들을 모아서, 그리고 자신이 느낀 감정의 일단을 적어서 펴낸 것이다. 시집에 수록되어 있는 50여 편의 시를 한편 한편 읽어가면서 시인들이 느꼈을 법한 그리움이나 쓸쓸함, 그리고 절규를 따라가 보지만, 시 보다는 사진에서 더 진한 감동을 받는다. 물론 시가 있고, 그 시에 맞는 사진들이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곽재구 시인이 시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전해주려 한 것, 우리가 잊고 살아온 삶이나 꿈들을 이제는 어렵사리 볼 수밖에 없는 흑백사진들 속에서 발견하고 불에 데인 듯, 깜짝 놀라는 자신을 발견한다. 그러면서 한없이 과거의 시간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언젠가 바다와 인접한 강둑에서 지나온 날들을 서로 맞춰가다가, 생각이 어긋났던 곳들을 발견하고, 그 지점을 서로 헤집는 것이 불편하여 차라리 나는 듣지 않고, 말하지 않고 나중에 혼자서 듣고 말하리라 생각했었다. 그러니 당신도 그리 했다면, 마음만은 조금이나마 편했을 텐데.. 차라리 강에 가서 말하라 당신이 직접 강에 가서 말하란 말이다 강가에서는 우리 눈도 마주치지 말자. - 강(일부)/황인숙 - 그러나 이내 후회한다. 도대체 무슨 이유였기에 그러했는지 들어나 볼걸.. 되돌릴 수 없는 과거의 시간이지만, 혹시라도 강에 다시 가면, 우리 서로 마주보고 웃을 수 있을까? 이렇게 연민들이 사무치게 번쩍이는 날은 우리 강으로 가, 강 볼까, 강 보며 웃을까 - 그리운 날(전문)/최하림 - 잎을 모두 떨구고 서있는 주위의 나무들이 스산하다. 그들 역시 내 마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나 보다. 모든 나무들이 초록빛으로 옷을 갈아입는 시절에 그곳에 갔어야만 했다. 그랬다면 강을 보며 웃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황량하고 덧없이 쓸쓸해 보이는 흑백사진에 두 시인의 시가 묘하게 중첩되면서, 기억 속에 숨어있던 감정을 끌어내고 있다. 시집 속에 들어있는 몇 장의 흑백사진에서, 시를 어떻게 읽는 것인지, 시가 나에게 주는 감동이 어떤 것 인지를 제대로 느끼고 있다. 그리고 그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란 것도.. |
|
별과 달을 사랑한 시인, 사람과 자연을 벗삼아 그리움을 노래한 시인, 어디에서나 자신의 언어로 가슴을 따스하게 품어주는 시인, 그 시인이 다른 사람의 언어 '별빛'들을 자신의 언어 '달빛'으로 품는다. 시인 곽재구의 달빛으로 읽은 시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이다. 詩들과 함께 게재된 흑백 사진들은 우리를 아련한 곳으로 인도한다. 여전히 이해되어지지 않는 詩들은 곽재구 시인의 달빛 번역기로 통역 되어진다. 곽재구 시인의 詩도 좋지만 그의 눈과 마음에 들어 온 詩들도 좋았다. 일부러 가식적이지 않은 언어들이 솔직하고 담백했다. 그의 언어들을 어찌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달빛과 만나는 바다는 튀어오르는 빗살들로 꽃밭이다. 참 장한 꽃밭이다. 스무살 무렵 섬진강을 도보 여행할 때 만났던 달 생각이 난다. 강물소리 곁에 천막을 치고 달빛 속에서 달빛으로 편지를 쓰고 시를 읽었다. 그때 이후 나는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시는 '달빛으로 읽은 시'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나는 시가 만 건너편 마을의 불빛만큼 따스하고 마을 주위에 머문 어둠만큼 푸르스름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쇠리, 거차, 창산, 봉전, 선학, 궁항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주름살만큼이나 깊고 고요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삶의 그리움과 애잔함, 힘겨움이 묻어나는 시 속에서 살아숨쉬는 언어들을 발견한다. 그 언어들은 아무에게서나 나오는 것은 아니다. 시에서 언어를 설명하기에는 많은 한계점이 있다. 설명하는 언어는 시가 아니다. 시는 삶 그 자체이기에 생명력을 가진다. 삶을 돌아보되 그렇다고 그 삶에 애써 함몰되지 말기를.....
밤에 배를 저어 바다로 나갔다가 노랗게 빛나는 큰 별 곁에 분홍색의 작은 별이 깜박깜박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아, 엄마별이 아가별에게 봉숭아물을 들여주고 있었구나. 냉이꽃밭에서는 하루 종일 바람들이 '당신은 참 좋은 사람이에요' 라고 말하는 소리가 들린다.
달 시가 나올 때 시인의 그리움이 묻어나서 애잔함으로 다가왔다. 그 그리움은 시인의 마음 속에 영원히 빚진 곳, 인도 샨티니케탄의 풍경들이었음에........ 시를 쓰는 것도 좋지만, 시를 음미하는 것도 특별함으로 다가온다. 음미하는 시어들도 詩다.
시를 쓰다가/ 연필을 놓으면/ 물소리가 찾아오고 불을 끄면/ 새벽 달빛이 찾아온다 내가 떠나면/ 꽃잎을 입에 문 새가/ 저 산을 넘어와/ 울 것이다 시를 쓰다가 -김용택-
그리고, 곽재구 시인의 언어.... 첫 햇살이 창에 쏟아지고, 나는 연필을 깎기 시작한다. 이런 딱딱 맞아떨어지는 시어의 경계선을 허물다. 주고받는 말들 속에서 위로가 된다. 읽지 않으면서 받아들이는 언어들이 이런것이었던가? 곽재구 시인님의 달빛으로 읽은 시, 그럼 나도 별빛으로 응답한다^^
달이 뜨지 않았다. 뜨지 않은게 아니라 구름에 가려 보이지 않을 뿐이다. 어제보다 더 밝게 빛나는 보름달일텐데.... 아쉬움에 아이는 달 대신 나름의 변명을 했다. 달이 옆 동네에 마실 갔나봐. 하늘 여기저기 달의 흔적을 찾는 아이의 눈빛이 사뭇 진지하다. 깊은 어둠과 구름 속에서 희미해진 달빛, 보이지 않지만 구름 속에서도 호올로 빛나기를 멈추지 않는 달빛의 마법에 별빛도 덩달아 보석처럼 빛 난다. 캄캄한 어둠속에서 찾은 반짝거림이 두드러지는 한 별, 달 대신 별이 아이의 속상한 마음을 위로한다. 아이는 오늘 어둠 속에서 만난 반짝반짝 그 별을 노래한다. 달을 향한 그리움 대신 아이는 또 다른 친구를 사귀었다. 달이 뜨지 않았다 -정연희-
|
|
열 두번 째 영업공방전 도서 모임원의 선물 받은 도서를 이번에 해치우겠다라는 다짐으로 추천받아서 읽게 되었다 곽재구라니 약간 추억의 이름같기도 하다 귀여운 아이들 사진과 매우 감성적인 제목으로 동시 혹은 감성에세이인 줄 알고 읽기 시작했다면 실례일까. 열어보니 시 모음집이었다. 시는 학부시절에나 겨우 읽었었는데, 닳고닳은 어른의 눈으로 심금을 울리는 게 있을까 싶었는데 썩 나쁘지 않은 시들도 있었지만 역시나 시도 사실 한 시절의 글인걸까 꽤나 감성적인 시들이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현실에 기반한 현실적인 목소리를 많이 내는 시들이었다. 특히나 생활사 근데 이게 당시에는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요즘 눈으로 읽자니 답답해지는 구석이 있는 시들도 있어 감상에 차질이 있었다 특히나 가정꾸린 인간들이 가정을 뒤로 하고 자기 하고싶은대로 하는 걸 왜 그렇게들 뿌듯해하는지... 정말이지 요즘말로 킹받는다고라고 할 밖에... 그리고 차라리 시만 있었으면 싶은데 뭔가 본인 흥에 취한 감상이라 정작 내 흥은 나지 않은 안타까운 점이.... 부제 아래 묶은 이유를 설명해주만 했어도 충분했을 거 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간만에-정말 오랜만에 시를 읽어볼 수 있어서 좋았다 특히 첫사랑 이라는 시가 제일 좋았다. |
|
이 책은 '우리가 별과 별 사이를 여행할 때'가 아니라 '곽재구의 달빛으로 읽은 시'에 더 가까운 것 같다. 모든 시에 시평을 달아 두었는데, 엮은이 곽재구님과 나의 생각, 감성이 맞지 않아 방해되는 느낌이 많았다. 정말 다양한 방법으로 음미할 수 있는 시를 자신의 시평 하나로 모든 것을 끝낸느낌. 차라리 시평을 뒤쪽에 모아서 달아주는 게 좋지 않았을까... 몇 몇의 시들은 정말 이걸로 시를 냈다고? 할 정도로 눈살이 구겨졌다. 특히나 가난을 노래하며, 그 속에서 스스로 가난을 불리고, 사연있는 척은 다하는 시들... 어려운 살림에 갚을 돈으로 술을 마셨다거나, 아내의 결혼 반지로 술을 사먹었거나.. 그런 시들을 볼 때면 시인들을 다시 보게 된다. 정말 시인이 되고 싶어 된거라면, 조금 더 고민해 가며 시를 섰으면 좋겠다. 그래도 좋았던 부분을 꼽자면, 자유시, 정형시 산문시 등 다양한 시들이 있었다는거. 마지막으로 마음에 들었던 시를 꼽자면, '오래된 여행 가방' 과 '쇠똥구리' 였다. '오래된 여행 가방' 에서 가방을 하나의 인생으로 다룬것이 좋았다. '쇠똥구리'는 처음으로 곽재구님의 시평이 마음에 들었던 시. 시 자체도 귀엽고, 귀여워서 읽다보면 그 속 뜻이 더 이해가 되서 좋았던 거 같다. 오랜만에 시집을 읽으니 시만큼이나 시대반영이 잘 일어나는 문학은 또 없는 것 같다. 10년 전에 이 책을 읽었다면, 좀 더 마음에 와 닿았을까? 앞으로는 현대의 정서에 맞는 시집을 읽어야겠다. |
|
불호가 가득한 후기입니다. 달밤에 나가 술 한잔 걸치고 주머니 안에 불타는 작은 네모 상자 멀리서 우는 작은 아가 소리는 사회 구성원이라며 들락날락 하던 좆이 몸에 들어왔는지도 모르겠다며 웃어제끼는 잠지친구의 웃음소리로 갇혀버렸다 한 달에 한 번 아가의 이름으로 나오는 돈은 담배와 술값으로 버렸다 우리는 그렇게 어린 시절에 만나서 생명을 축복했다 아가는 아가를 낳고 그 속에 작은 돈이 우리의 희망임에 행복했다 우리 아기 지린내가 벤 손으로 어찌 좆을 만지리오 차라리 시를 쓰지. 시 참 쓰기 쉽다. 대충 살림살이 보여주고 가족 구성원 알려주고 생계는 어떻게 이어가는지. 그리고 마지막으로 대충 시에 목숨 걸었다는 구절 한마디면 나도 출판 가능? 아무리 10년전 이야기라고 하지만 그 시대적 남자의 머릿속은 이해하려고 해도 이해할 수가 없다. 문명 혜택을 못 받은 어떤 부족들이 말도 안 돼는 전통으로 악순환하는 것과 같이 그 남자들은 원시인 같은 존재들이다. 가정을 파괴하고 지배하는 자들이 쓰는 인간만큼은 손을 잘라버려야 한다. 이런 내용을 문학이라며 소비하고 배워야 했던 나, 그리고 학생들이 불쌍하다. 본인은 시인이라며 떵떵거릴게 너무나도 배아프고 분노가 끓는다. 문학은 감성을 넘어 사회 고발, 민족의 한, 작은 글자로 끌어올 수 있는 잠재력을 일깨워줄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을 각오하고 시를 썼던 독립운동가들, 그 시대를 경험하진 않았지만 공산주의의 현실을 알리려 했던 학생의 시, 이제 한글을 터득한 할머니의 시. 이처럼 선순환의 시를 욕보이고 짓밟는 것이 바로 이기적으로 시를 쓰는 작가라고 생각한다. 뭘 잘했다고 씨발 어휴. |
|
나는 시를 싫어하는 사람이다. 참고로 이 글은 처음부터 끝까지 시를 싫어하는 내용으로, 이 책으로 인해 시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었다거나 하는 그런 긍정적인 내용은 전혀 나오지 않는다. 시는 날로 먹는다는 인상이 있다. 뭣보다 그리 짧은 글에서 많은 의미를 찾아내 길게 풀어 써야 한다는 부담감이 수지에 맞지 않는다. 그럼 좀 길게 쓰란 말이다,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꾹꾹 담아서.. 책의 리뷰를 한다면, 단 하나의 시를 빼고는 다 거기서 거기. 과학적 사실을 틀린 방향으로 괜스레 건드려 신경 쓰이는 시도 있었고, 뭣보다 "법적으로" 남자 문학가들 어머니 소재를 금지시켜야 한다. 어머니 이야기를 하지 않으면 글을 못 쓰는 무능력자들이 건방지게 문학계에 몸을 담가서는 안 된다. 자신의 이혼사유를 당당히 전시한 남성 작가들도 보이고.. 진짠지 가짠지는 모르겠지만, 세상에 많고 많은, 그 자의식 비대하고 스스로를 가여워하는 남성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있을 법 한 일이다. 아내분들 봐주지 말고 이혼하세요, 제발.. 대체 왜 남성이 먹는 모습을 보면서 울컥하는거임? 식탐 부리는 모습 보면 눈꼴시렵고 추잡시렵지 않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혁명은 아이가 태어나는 것이라는 소리를 당당하게 하는 소설가와, 그걸 또 감명 깊게 들은 시평. 인성파탄자들은 왜 이렇게 스스로를 불쌍해하는 것일까? 당신의 주변 사람들이 더 불쌍한걸. 당신은 쓰레기입니다. 감나무를 보고 어머니 젖꼭지를 떠올리는 사람은 쓰레기랍니다. 본인 어머니 젖꼭지 검은 색인걸 온 세상에 자랑을 하시는군요. 어머니께서 참 기특하시겠습니다. 대부분의 시인들은 글을 난해하게 써서 누구도 이해시키지 못하는 것이 멋지다고 생각 하는 듯 하다. 내가 보기에는 스스로의 연민에 빠져 세상에 벽을 치는 사회부적응자 같은데, 그들은 그 '사회부적응자인 나'에 빠져있기 때문에 이런 말로는 타격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이 통탄스러울 뿐이다. 아는 척, 있어보이는 척을 매우 좋아하지만 수박 겉핥기 식의 얕은 지식이며, 조금만 찾아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을 찾아보지 않고 제 감성대로 써내려가는 그 게으름! 시평도 엉망진창이었다. 본인의 경험담을 들고 괜스레 끼어들어 작품 감상을 망쳐버린다. 스스로 생각할 기회조차 앗아가버리고, 생각을 편협하게 만들어버린다. 대체 뭘 위한 시평이었는지 알 수 없었다. 가장 마음에 들었던 시는 김귀례 시인의 촛불이었다. 세상에 그 어떤 작가도 촛불이 타오르며 사라지는 것을 이토록 장엄하게 표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압도 당하는 느낌이 들었는데, 이 시 하나를 위해 나머지들을 견뎌내야 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매우 비추. 딴거 보세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