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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우리집 두 공주는 스티커 모으기에 푹 빠져 있다. 문방구나 마트에 가면 "아빠 스티커 하나 사주면 안돼?" 하고 간절하고 애절한 눈빛을 담은 질문을 던진다. "꼭 하나씩만 골라~"라고 하면 기뻐서 이런 저런 스티커를 만져보고는 맘에 드는게 너무 많아 고민에 빠지는 모습을 보게된다. 그리고 견물생심이라고 고민끝에 내린 결론은 "아빠 2개 사주면 안돼? "이다. 아빠 표정을 살피다가 내가 "OK" 하면 환한 얼굴이 된다. 집에와서는 그날 산 스티커를 스티커 북에 떼었다 붙었다를 거의 무한 반복한다. 가만히 보고 있자니 저렇게 반복하면서 무슨 상상의 나래를 펼칠지 사뭇 궁금하다. 그리고 서로 스티커 교환을 하기도 하는데 자기가 아끼는 소중한 것은 절대 교환을 하지 않는것 같았다. 하루는 이 책 《지옥은 없다?》를 읽고 있는데 작은 딸이 뭔가를 내미는 것이 아닌가? 조막만한 손에는 자기가 애지중지 아끼는 대형(?) 앵그리버드 스티커가 쥐어져 있었다. 첨엔 아빠에게 자랑삼아 보여주려나 싶었는데 "이거 아빠 가져?"하는 것이었다. "이거 지우가 아끼는 거 아니야?" 하니 "그냥 아빠 해. 내가 주는 거야"한다. 아빠가 좋아서 주는 건지 싫증이 나서 아빠한테 처분한건지 알수는 없지만 전자쪽이라 믿고 있다. 근데 스티커를 받는 그 순간 곧바로 이 책의 표지에 가져다 붙이고 싶은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새들의 표정이 이 책의 제목과 너무나 잘 어울릴것 같다는 순간적인 판단력이 작용한 것이다. 나의 생각은 맞았다. 스티커를 붙여놓고 보니 원래의 책 표지 도안인 것처럼 너무 잘 어울리는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농담이지만 저작권 문제만 아니면 다음 개정판에는 이렇게 나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에게 엄청 베스트 셀러가 될거란 예감이 ...)
위 사진의 세마리 앵그리 버드의 표정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좌측에 있는 까만 앵그리 버드는 "지옥은 정말 있어!!"라고 믿는 신실한 신앙인의 모습같고, 가운데 노란 앵그리 버드는 "쳇,지옥이 어딨어.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살면 되는거야! "라고 외치는 불신자 같고 제일 우측에 있는 빨간 앵그리 버드는 "어쩌면 지옥이 있을지도 몰라"하고 생각하는 미지근한 종교인 같다.
이처럼 지옥에 대한 생각이 제각각이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니까 절대 자신의 피조물인 인간을 지옥에 보내는 일이 없이 모두 천국에 갈 수있다고 믿는 사람들과, 사후에 회개하고 믿으면 하나님께서 한번 더 기회를 주실거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성경에 그 어디에도 그와 같은 일은 없으며 심판날 악인은 영원한 불에 던져지게 될 것이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다.
이 책의 저자는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어찌보면 논리와 객관적인 방법으로 풀어 나가고 있는듯 보이나, 하나님의 말씀이 논리나 인간의 잣대로 논할수 없는 부분이기에 성경 말씀과 방대한 자료을 인용하여 말하고 있다. 책의 후반부에 첨부된 주석의 참고자료를 보아도 저자의 노력을 엿볼수 있다. 다른 부분도 유익한 내용이지만 특히 주목할만한 내용을 소개하자면 하나님 주권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나님이신 것을 인정해야 한다. 자신의 머리로 무엇이 정의인지 결정하려는 권리를 포기하고 겸손하게 하나님이 사람들을 어떻게 다루실지 결정하실 수 있는 부분을 인정해야 한다 』 -p.140
『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 자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롬9:20~21] 』
그렇다. 하나님은 토기장이고 우리는 진흙이라는 사실을 너무 쉽게 망각하기 때문이다.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책의 후미에 우리가 지옥에 대해 궁금해 하던 부분을 문답형식으로 풀이해준다. 다만 그 답이 명쾌하게 마음에 와 닿지만은 않아 약간의 아쉬움이 남았다. 그리고 부록으로 프랜시스 챈 목사님의 세속화되어가는 교회를 향해 회개하라고 부르짖는 명설교가 은혜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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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두살배기 아들이 갑자기 길거리로 뛰쳐나간다면 사륜 구동 쉐비에 치여서 죽을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것이 사랑 아닌가? 소방관이 불타는 집에서 일가족을 구해 내기 위해 자고 있는 가족들을 깨운다고 그 소방관을 비난할 사람이 있겠는가? 의사가 암에 걸린사람에게 살고 싶다면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말해 준다고 그 의사를 잘못되었다고 말할 사람이 있겠는가? p112
그런데 그 두살배기 아들의 아빠가 사람들을 시켜 사륜 구동 쉐비를 몰고 아이들을 진짜로 치여 죽이게 하는 사람이라면? 그 소방관이 직접 불을 지른 사람이라면? 그 의사가 사람들에게 암을 걸리게 만든 사람이라면? 그리고 그들이 경고해 구해낸 사람보다 구해내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더 많다면? 그래도 그들이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없는가?
챈의 비유는 틀렸다. 그 지옥을 존재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라면.
지옥은 있다. 랍 벨 조차도 지옥이 없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챈은 마치 랍 벨이 지옥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양 이야기하고 있지만 랍 벨은 지옥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는다. 단지 그 지옥을 향한 관심이 서로 다를 뿐이다. 만약 챈이 랍 벨의 책 '사랑이 이긴다'가 맘에 들지 않았다면 그리고 유독 지옥에 관한 랍 벨의 주장에 맘이 상했다면 챈은 지옥의 존재 유무가 아니라 성경이 이야기하는 진정한 지옥에 대해 이야기 했어야 한다. 하지만 너무 지옥이 있다고만 소리치는 바람에 자신이 주장하고 싶어하는 지옥이 정작 어떠한 모습인지에 대해선 속시원히 밝히지 못했다. 아니..난 비겁하게 감추어 놓았다고 생각한다.
아래 책들을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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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들은 지옥에 다녀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쓴 책들이다. 안타깝게도 지옥 시스템이 너무 현대적이라 사람이 한번 다녀 올 때마다 새롭게 리모델링을 하는 모양인지 책마다 지옥의 구조며 모양이 완전히 다르다. 만일 어느 하나가 사실일 경우 나머지 두 간증은 거짓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책들이 하는 이야기를 믿어야 하나? 하지만 어째든 공통점은 있다. 지옥은 끔찍하다는 것. 온통 뜨거운 불로 가득차 있고 사단들이 여러가지 도구들을 사용해 지옥에 있는 사람들을 끔찍하게 고문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기간은 영원하다는 점. 이는 성경이 이야기하는 '문자' 그대로의 해석을 차용하고 있는듯 하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지옥의 모습을 이모양 이대로 믿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구더기, 고통... 그런데 정말 지옥은 이런 곳일까?
지옥이 실재하는 장소라고 믿으며 그 기간이 영원하다고 믿는 복음주의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대다수는 이 불의 이미지를 문자적으로 이해하지 않는다. 존 칼뱅, 마르틴 루터, C.S 루이스, 빌리 그래함, D.A 카슨, J.I 패커, 그리고 싱클레어 퍼거슨과 같이 잘 알려진 인물들 모두 불의 이미지를 문자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p168.
그렇다면 챈은?
나 역시도 불이 지옥을 묘사하기 위해서 쓰일 때 문자적으로 사용된 것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 동의한다. p168
그럼 지옥에선 사탄들이 인간을 고문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이 책에서 숙고한 본문들은 지옥을 악인이 고통 받을 실제 장소로 분명히 소개하고 있지만, 성경은 그 고통이 정확하게 어떤 현상들인지는 말해 주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p170
그럼 지옥은 땅속에 있나?
지옥의 위치와 지리에 대해서 아는 바가 없다. p172
그럼 지옥은 영원한가?
바울은 형벌과 복수, 보응과 진노에 대해서는 분명히 지적하면서도 이 진노의 기간에 대해서는 분명하게 말하지 않았다. p196
베드로와 유다도 지옥의 기간에 대해 그리 분명하게 밝하지 않았지만 두책 모두 멸망의 언어들로 채색되어 있어서 그 자체로는 멸절을 암시한다. 반면 "영원한 불의 형벌"이라는 표현은(유7,23) 지속적인 고통을의미할 수 있다. 물론 전에 본 것처럼 꼭 그런 의미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p196
챈은 지옥의 존재 이외에 무엇하나 확실히 우리에게 밝혀주지 않는다. 그것도 교묘하게 책 말미의 QnA와 각주에 숨겨서 이야기 한다. 최소한 내겐 지옥이 없다고 믿는 사람만큼 지옥이 끔찍한 육체적 고통과 불로 가득차 있다고 믿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이렇게 믿고 있다. 그러나 챈은 그것을 경고하지 않는다. 한 사람(랍 벨)이 잘못 믿고 있는 것을 수정하는 것이 다수가 잘못믿고 있는 것을 수정하는 것보다 중요한가?
지옥이 있다는 걸 알았다. 자 그럼 어떤 지옥인가? 그리고 그 지옥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책을 덮었지만 난 아무것도 해결된것이 없다.
ps. 이 책만 가지고 랍 벨의 "사랑이 이긴다"를 판단하지 마시길...읽어보길 추천 ps 2.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의 일부 p178 라는 챈의 주장에 반대한다.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의 전부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1서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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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은 없다를 읽고_회복되는 영혼의 떨림. 주님, 주님의 율례들이 제시하는 길을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내가 언제까지든지 그것을 지키겠습니다. 나를 깨우쳐 주십시오. 내가 주님의 법을 살펴보면서, 온 마음을 기울여서 지키겠습니다. 내가 주님의 계명들이 가리키는 길을 걷게 하여주십시오. 내가 기쁨을 누릴 길은 이 길 뿐입니다. ...... 시편119편의 일부이다. 시편기자의 영혼의 떨림이 느껴진다. 주님의 하신 말씀에 귀 기울이고 온전히 순복하기를 원하는 그의 중심이 전해져온다.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가득담긴 이 고백이 참 부럽고, 내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런 영혼의 떨림...주님 말씀 앞에 민감하게 반응하기를 원하는 중심을 나는 언제부터 놓쳐버렸던가 하고 생각하게 한다. “지옥은 없다”라는 책을 읽으면서 더욱 그런 생각을 했다. 무엇 때문에 나는 그 중요한 것을 놓치고 말았나? 그것을 제대로 느껴보고 실제로 살아갔던 때가 있었던가? 그래 그때가 있기는 했었지. 조금이라도 그분의 뜻에 벗어나게 되었을 때 죄에 대해 아파하고 자복하고 회개하며 주께로 돌아오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그때. 그 민감한 영성을 다시 꿈꾸게 한다. 단지, 그런 영성 자체를 욕심내서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것은 스스로에게 경고해야 할 일이다. 오직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 어떤 불순물도 들어오지 못하도록 은혜를 구하며, 거룩함을 위해 발버둥 치던 그 모습을 되찾아야할 필요를 이 책을 읽으면서 더욱 알게 된다. 이 책은 지옥의 실재에 대해 학문적인 연구와 말씀 자체를 제시하며 사고해보고 있다. 그러면서도 끊임없이 저자는 학문적인 연구로 인해 논쟁과 어휘공부 신학적 관점들 사이에서 길을 잃지 말고 실제 하는 말씀 앞에 무릎 꿇을 것을 말하고 있다. 지옥은 분명히 실재하며, 교정을 위함이 아닌 영원한 형벌의 장소이고, 두 번째 기회를 얻을 수 없는 최후 심판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그곳에 가면 다시는 돌아올 수 없고, 하나님의 은혜를 구할 수도 없다. 그러니 성경에 나오는 생생한 경고들을 무시하지 말고, 단지 성경말씀에 지적으로 동의하는 것에 끝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영혼의 떨림으로 반응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가라고 촉구하는 것이 이 책의 전반적인 흐름이고 핵심이다. 이 책을 통해 지옥에 대한 개념을 정리해보면서 영혼의 떨림 주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회복되는 것에 감사를 표한다. 얼마 전 수요예배 시간에 목사님께서 맡은 교구에 있는 남자다락방 이야기를 해주셨다. 그곳에 초신자 한 분이 오셨는데, 마침 그 시기가 에스겔서를 묵상하던 시기였다. 에스겔서가 초신자가 묵상하기에는 버거울 수도 있어서 목사님 생각에는 좀 염려를 하셨는데, 오히려 그 분이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생겨나서 더 신실하게 살아갈 수 있어 감사하다고 고백하셨다고 했다. 사업상 접대를 많이 해야 하는 입장이신데, 말씀을 보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에 두려운 마음이 들어 수입이 줄어들 각오를 하고 접대를 끊어내는 삶을 결단하신 그 초신자 남자성도의 중심이 바로 주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말씀에 대한 민감하고 즉각적인 반응이 삶에서 사라져있다면 정말 이 책을 읽어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저자의 관점은 지옥이 그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잠시 잠깐의 고난이 아니라고 한다. 예수님이 성경의 수많은 곳에서 영원한 불, 어둠, 통곡과 같은 이미지를 사용해서 지옥을 설명하셨고, 지옥에서는 그 다음 기회가 전혀 없음을 언급하셨음을 책을 통해 확인 할 수 있을 것이다. 지옥이 교정이 아닌 영원한 형벌의 장소임도 성경의 원어를 살펴보면서 그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지옥의 실재성에 대해 예수님이 동시대 유대인들과 같은 관점이었음을 설명해주고 있는데 동시대 유대인들이 지옥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 읽어보면서 지옥의 실재성이 설득력 있게 다가오게 될 것이다. 지옥의 실재를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고 실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과 같음을 상기시켜주었고, 한마디로 똑바로 살아야겠다는 마음을 불러일으켜주어 좋았다. 하나님의 생생한 경고의 목적을 기억하고 말씀의 빛가운데 살아가게 도전해 줌에, 지옥이라는 소재를 통해 하나님의 자비의 문이 영원히 열려있지는 않을 것임을 분명히 알려주면서 영혼의 떨림을 소망하게 함에 감사의 마음을 저자에게 전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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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랜시스 챈 목사의 ‘지옥은 없다?’는 하나님의 긴박한 사랑을 절절하게 설명해 준다. 덕분에 오늘도 만사 제쳐놓고 단숨에 일독을 했다. 중간 중간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왜 하나님께서 ‘지옥’을 준비(?)해 놓으셨는지 성경적으로, 그리고 저자의 목회 현장의 임상 경험으로 간결하게 설명해 주기 때문에 개념을 나름대로 잡을 수 있었다. 과거나 현재에도 지옥은 없다고 주장이 끊이지 않는다. 솔직히 나도 지옥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복음을 받아 들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지만 복음을 거부하는 자는 ‘멸망’으로 향한다고 선언한다. 즉, 이 땅에서 하나님을 거부한 모든 이들은 멸망한다.(고전16:22). 성경의 어떤 구절도 사후에 예수님께 돌아갈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62쪽). 예수님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금발의 긴 머리를 가진 멋진 백인 남성이 아니다. 그분은 1세기의 유대인 육체 노동자로 이 땅을 사셨다. 예수님이 지옥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는가는 당시 유대인들이 지옥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들은 지옥이 하나님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형벌의 장소로 인식했다(71쪽). 지옥은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그들의 죄에 따라 벌하실 두려운 심판의 장소다(74쪽). 전율을 느낀 구절이 있다. ‘이 책을 읽는 지금도 당신 지척에 있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분명히 지옥에 가게 될 것이다. 어떻게 하겠는가(87쪽)’. ‘하나님이 유일하게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그분의 말씀을 듣고 우리의 무릎을 꿇고 그분의 음성에 떨라는 것이다(104쪽)’. 그러면 어떤 사람이 지옥에 간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는가? 예수님은 자기 형제를 저주한 자에게 지옥에 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셨다(마5:22). 예수님이 이 말씀은 주신 것은 거룩한 삶을 살라고 하신 것이다(127쪽). 지옥의 존재를 믿는다고 말하면서도 인종차별과 자민족 우월주의의 장벽을 허물 생각을 하지 않느다(130쪽). 또 가난한 자들을 돕지 않는다면 나는 지옥에 간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입으로만 고백하고 행위로는 부인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은 지옥 불과 유황 불이라는 두려운 말씀을 준비하신 것(134쪽)이기 때문이다. 오늘날 신자들은 물질에 푹 빠져 있고 안락과 안전에 중독되어서 복음이 갖는 급진적인 긴박성에는 감각이 마비되어 있다(135쪽)고 저자는 설파한다. 또한 인종차별, 탐욕, 잘못된 확신, 거짓 가르침, 재물의 오용, 그리고 동료인 형제들에게 던지는 더러운 말들, 이 모든 것이 사람들을 지옥에 가게 만드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 가운데 내게 해당되지 않는 것이 하나라도 있을까? 주님의 자비와 긍휼을 구할 뿐이다. 인간의 관점으로 성경을 보면 논리와 도덕성의 기준에 맞지 않는 하나님의 행동들이 가득하다. 그러나 우리는 진흙이고 하나님은 토기장이시다. 우리는 하나님을 길들이거나 가두어서 하나님의 불가해한 방법들을 내려놓고 인간의 정서를 반영하는 깔끔한 범주와 틀에 맞추려는 시도를 중단해야 한다고 프랜시스 챈 목사는 힘주어 강조한다(145쪽). 잘 믿는 사람에 닥치는 불행에 대해 하나님이 이해 될 때 뿐 아니라 이해되지 않을 때도 여전히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152쪽). 챈 목사는 지옥에 대해 믿고 싶진 않지만 그러나 믿는다고 했다. 성경 말씀의 권위에 순종했다. 저자는 마지막 장에서 지옥을 인정한다면 거룩한 삶을 살라고 권면한다.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받은 성도와 교회 공동체는 죄의 속박에서 벗어나 이타적인 사랑을 가지고 절망 가운데 있는 이웃들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을 대해야 한다(157쪽). 정말 그렇게 하라. 지식에 그치는 신앙이 아니라 온 몸을 드려 실천해야 한다. ‘지옥은 심오하고 한량없는 십자가의 은혜를 돋보이게 하는 배경이다. 지옥 때문에 우리는 죄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과분한 것인지 확연히 알게 된다(160쪽)’. 지옥은 없다 는 지옥이 실재하며, 지금 이 순간에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부인한 영혼들이 구원의 소망 없이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됨을 알려 준다. 챈 목사는 지옥이 있다, 없다의 논쟁에 대해 연구를 시작했고 그 결과를 한 권의 책으로 내 놓았다. 그와 동료 프레스턴 스프링클 박사의 수고 덕분에 나는 지옥에 대해 분명한 인식을 하게 되었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누구나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음을 고백한다. ‘예수님은 우리가 받아 마땅한 형벌을 대신 지셨고 오직 은혜로만 얻을 수 있는 생명과 치유와 구원을 허락해 주셨다(162쪽).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시면 모두가 하나님을 알기를 원하신다. 그리고 지금 우리 모두에게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하라고 권면하신다. 바로 지금 문이 활짝 열려 있다. 하지만 영원히 열려 있지는 않을 것이다(163쪽)’. 부록으로 실린 프랜시스 챈 목사의 설교 ‘잊혀진 지옥, 잊혀진 하나님’의 일독을 꼭 권한다. 마음에 강한 찔림이 있다. 직접 읽어볼 것을 진심으로 권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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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당과 지옥, 사실 어릴적부터 많이 듣던 단어들이다. 어릴적에는 지옥에 대한 무서운 꿈도 꾸었던것 같다.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로 표현되는 이미지였던것 같다. 꿈속에서도 나타나 괴롭히는 것이 지옥에 대한 기억이었을 정도로 어릴때는 지옥을 자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러나 점점 자라면서 지옥에 대한 생각은 점점 멀어졌다. 사실, 교회예배에서 지옥에 대해 설교말씀을 듣는것도 주일학교외에는 거의 없었던것 같다. 그렇다고 지옥을 믿지 않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지옥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본적도 없었다.
이 책의 처음은 주로 지옥은 없다고 믿는 사람들을 향한 깨우침으로 되어 있다. 왜 사람들은 지옥이 없다고 믿고 싶어할까? 아니, 없다기 보다는 누구나 다 지옥에 가지 않고 천국에 갈수 있다고 믿고 있는 사람이 많은가 보다. 어릴적 궁금했던 것들이 그런류의 질문 아니었던가, 이순신장군은 지옥에 갔을까? 예수님에 대해 전해들을 수 없었던 사람들을 이야기하다보면 뭔가 대안이 있었을거 같기때문이다. 책 내용을 보면, 최근 미국에서 모든 사람이 다 구원을 받게끔 되어 있다는 이상한 만인구원설이 퍼지고 있는 것같다. 그에 대한 반론을 조목 조목 성경구절을 찾아가며 모든 사람의 정의를 다시 내려주고 있다. 더 나아가, 1세기 유대인들이 믿었던 지옥에 대해서, 그리고 예수님과 또한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지옥에 대해 설명해주고 있다. 한마디로 지옥은 실재하며 누군가는 거기에 가게되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속성을 이야기할때,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지옥을 만드신것은 하나님이시지만, 사람들이 지옥에 가게되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다. 지옥을 제대로 안다면, 결단코 지옥을 가고픈 마음이 없을것이며, 그만큼 하나님은 사람들이 구원의 세계로 돌아오기를 원하시는 분이라는 것도 보게된다. 성경에 보면 토기장이 이야기가 나온다. 피조물인 우리가 조물주를 향해 왜 이렇게 만들었냐고 물을 수 없다. 그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큰 진리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얼마전까지 에스겔에 대해 큐티를 했다 읽어도 읽어도 어렵고 도데체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 많이 나타난다. 에스겔에서 시키는 일도 그렇고, 내용 내용들이 성경과는 어울리지 않는 죄악들이 드러나고 있다. 하나님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지라도 믿고 나아가서 그분을 닮아가기를 원한다. 나는 사망이 아니라 생명을 선택했다는 안도감으로 무던하게 살아오지 않았나 되돌아보게된다. 에레미야처럼, 욥처럼, 바울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며 성령의 능력을 믿고 세상에 도전하는 삶으로까지 나아가기를 도전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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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도서관에서 빌려서 본 책이다. ERASING HELL. 우리나라 말로 번역하면서 ?을 더한 것이다. 진행형을 더해서 지옥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인데 그것은 우리들이 지옥이라는 것에 대해 무관심하고 있는 상태를 말하고 있는 것 같다. 지옥이라는 것이 과연 있는 것일까? 아니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일까? 성경은 그러나 분명하게 지옥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도 그렇고 제자들도 바울도 아니 구약성경도 분명히 지옥이라는 것이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우리가 지옥이라는 것에 대해 말하지 않은 이유는 그것이 우리에게 현실로 다가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생각하는 지옥에 대한 생각이나 성경이 말하는 지옥에 대한 생각들이 그리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것은 상징적이기도 하지만 현실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을 구체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이유는 잘못 다루었다가는 무책임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 아닐까! 현실적으로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하지 못한다. 그것을 공상이나 판타지 정도로 이해하는 우리의 모습이 지배적이다. 하지만 이것은 현실이고 우리들이 지옥과 천국에 대한 생각이 없다면 우리의 삶이 자신앞에 정직하지 못한 삶을 살 것이다. 지옥이라는 것이 우리의 삶 가운데 사라지고 있다. 내가 그렇게 만들어 가고 사회가 그렇게 만들어 가고 있다. 그러나 진실은 지옥이라는 것이 우리에게 점점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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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주일 예배 목사님의 설교 메시지가 바로 이 '심판'에 대한 내용이었다. 가끔 이런 설교를 들을 때마다 너무 주제가 무겁게 느껴지는게 솔직한 내 심정이다. 어떤때는 세상에서 시달리고 지친 성도들이 교회 와서도 이런 경각심을 가지라고, 하나님 보시기에 그릇된 길을 버리라고 직시해주는 설교를 들을 때 성도들이 피할곳은 어디란 말인가? 라는 생각이 고개를 들기도 한다. 공동저자이긴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프랜시스 챈 목사님 역시도 자신의 할머니의 임종을 떠올리고 고통스러운 심정을 고백한다. 솔직히 말해 지옥에 대해서 회피해 왔다는 것. 목회자로써. 20년전의 할머니의 임종을 생각할때마다 이 메시지가 얼마나 고통스러웠는지 말이다. 그 솔직함이 무척이나 크게 다가왔다. 감사하기까지 했다고 해야 할까. 자신을 거짓되게 포장하지 않으신 것이 말이다. 그리고 그 문제에 대해 씨름하신 결과물을 내셨다.
이 책을 '학문적인' 책으로 만들 의도는 없었다고 에필로그에 밝히시는데, 제목으로만 접했을 때는 신앙인의 천국과 지옥 간증집 중의 하나가 아닐까 정도로만 생각했다. 올해까지 접한 책들 중에 천국과 지옥의 묘사 부분이 아주 똑깥지는 않지만 공통점을 갖고 있었기에 어떤 때는 참고로만 해야할 부분들이 있음에도 꼭 만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신중을 기하기 위해 1세기 유대주의에 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고 이 분야에 대한 많은 책을 저술하신 스프링클과 협력관계를 맺고 책을 연구하셨다. 또, 성경을 번역한 부분이 바르게 되었는지 확인하기 위하여 많은 학자들에게 도움을 요청해 책 전체를 훓어보기도 하고 일부분을 점검받기도 하셨다고 한다. 그렇다고 내용이 어렵지 않고, 차분히 이해되고 어렵지 않게 읽혀진다.
'예수 천당 불신 지옥' 이라고 전철에서 목소리를 높여 외치시는 전도자들의 목소리가 문득 생각이 난다. 더도 덜도 아닌 이 한마디 말에 담긴 의미를 저자는 성경을 통해 하나하나 보여 주신다. 사람들이 지옥에 대해, 천국에 대해 하는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이 어떤 영향을 미친다는 말인가? 하지만 사람들은 그것에 대해 생각하기 좋아하고, 논하기 좋아한다. 그렇게 진실은 왜곡되면서 거짓에 속고 진실은 외면되어 버린다. 성경에서는 명확히 이 세상에서 자신의 선택에 따라 죽음 후에는 심판이 있으며 그 심판의 결과는 천국과 지옥으로 갈릴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물론 죽은 후에는 두번다시 수정할 기회란? 없다. 그것은 성경에 명확히 기록되어있다.
지옥에 대한 1세기 유대인들의 관념은 어떠했는가? 또, 예수님이 지옥에 대해 실제로 하신 말씀은 무엇이었는가? 제자들은? 또한 이러한 질문들이나 주장 자체는 우리가 하나님을 잘 알지 못해서인 것과 하나님을 사실은 믿고 있지 않다는 내용을 주장한다. 그 주장이 참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우리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만분지 일도 알지 못하는 그의 피조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다 이해하는 것처럼 착각한다.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하나님보다 타인을 사랑하는 마음이 더 강한 것을 드러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과연 하나님보다 사람을 더 사랑하시고 안타까이 여기시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하나님의 긴박한 사랑' 왜? 왜 그러한가? 하나님은 지옥에는 가서는 안되는 곳이기 때문에 인간이라면 결코 선택하지 않을 자신의 하나 뿐인 아들을 인간의 몸으로 보내신다. 이제 그를 믿기만 하면, 믿기만 하면 그 고통, 처절한 울음, 아픔, 뜨거운 불이 있는 무시무시한 곳에 가지 않아도 된다. 믿기만 하면 말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의 판단에 의해 그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간다. 또 믿노라 하지만 위선적인 삶을 사는 신앙인으로 전락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돌이키라고 하신다. 우리들이 일상에서 말씀에 위배되게 행하는 것들 즉 인종차별, 탐욕, 잘못된 확신, 거짓 가르침, 재물의 오용, 그리고 동료인 형제들에게 던지는 더려운 말들, 이 모든 것들로 부터 말이다.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5;20~21)."
하나님께 돌아오라. 하나님을 받아들이라. 하나님을 신뢰하라. 하나님을 믿으라. 십자가의 믿을 수 없는 선물을 받으라.
그분의 사랑이... 왜 그렇게 외치시는지 다시 새롭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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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앞면을 장식하는 간단한 서평을 쓴 저저들이 이름이 먼저 눈길을 끌었다. 다 읽어 본것은 아니지만 유명한 저자들이 감동받고 찬사한 책이라는 점에서 기대감이 있었다. 사실 번역서는 마음에 직접 와닿기 어려운 것같다. 같은 기독교라고 하더라도 가치관과 정서가 다르고, 번역서이므로 문장이 쉽지가 않다. 집중하여 곱씹어서 생각하며 읽어야 하기에 마음이 무겁다.
마찬가지로 '지옥은 없다'도 그러했다. 머리로 읽고 정리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개념과 원리들과 비교한 후, 마음으로 느껴보려고 고민하면서 읽어내려갔다. 먼저 저자는 참 젊은 나이여서 그런지 권위감이 느껴지지 않고 솔직하고 사심이 없어 보였다. 무언가 자신을 나타내려든가 교회를 자랑하려든가 교파를 내세우려는 것이 없는 것을 느낄수 있었다. 자신의 생각을 독자들에게 설득하려고 주장하는 자세가 아니라, 지옥에 관하여 성경에서 예수님이 직접말씀하신 것과 여러가지 문헌들에 나타나 있는 그 당시 유대인들의 인식등을 제시함으로 말씀원론적이며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이야기를 이끌어가고 있다. 성경적인 내용을 강하게 강조하고 그 속에서 자신의 확신과 의견을 내세워 도전한다. 번역서 임에도 복음주의적인 내용에 마음의 경계가 풀리고 신뢰감이 갔다. 서구의 자유주의 신앙은 둘째치고 이제는 각종 이단들이 난리를 부리고 있다. 오직 복음주의적인 신앙생활과 청교도적인 삶이 필요한 때인것 같다.
1996년 일본 코스타에서 어떤 목사님께서 인간이면서도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올라간 에녹에 관한 메세지를 하셨다. 복음성가에도 나와있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을까? 그의 아들의 이름에서 추측해 볼 수있다. 그의 아들이름은 므두셀라였는데그 뜻은 그가 죽으면 심판이 온다는 뜻이고 , 그래서 인지 에녹은 앞으로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을 생각하며 두려움과 경외의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했을 것같다. 그래서인지 에녹은 하나님이 바로 데려가셨다. 또한 므두셀라는 성경에서 최고 장수를 한 사람이였다. 심판을 끝까지 늦추시며 우리를 향해 인내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알수있다' 는 내용이었다. 에녹과 므두셀라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사랑과 경외신앙을 배웠다.
우리가 지옥을 바로 알고 있어야 하는 이유가 이런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특히 일제와 동족전쟁의 참담함 가운데에서 복음을 전해주시고 영적 사모함과 간절함을 주시고 부지런히 구했던 영적선배들의 기도대로 영적인 풍요의 시대를 살고 있다. 물질적인 풍요도 주셨다. 간략한 한국의 기독교 역사만 보더라도 누구나 알것이다. 하나님의 긍휼히 여기심과 인도하심과 말씀의 약속이 이뤄진 것을... 나에게 주신 것 99마리의 양에 감사하기 보다 1마리의 양이 부족함에 정신팔려있다.
근신하는 청교도적인 삶과 물질과 필요를 채우려는 노력보다 말씀을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고 더 지키려고 발버둥치는 피흘림이 있어야 할것 같다. 추수감사절을 맞이하며 다시 한번 생각하며 회개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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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은 없다”라는 이 책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긴박한 사랑을 다시 한 번 알게 된다. 그리고 왜 성경책을 볼 때 자의적으로 해석해서는 안 되는지 저자는 성경구절을 인용하여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을 하였는지, 올바르게 성경을 읽어야 하는지, 신약과 구약에서 의미하는 성경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어떻게 나에게 적용하여 이 시대의 세상에 적용하며 기독교인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서술하고 있다. 저자는 청소년 시기를 거치면서 기독교 신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목회의 길을 선택하여 미국에서 급성장한 코너스톤교회를 개척하여 주목받는 리더로 지옥의 문제에 대해 혼란을 겪는 평신도를 위해 성경적이면서도 목회적인 관점에서 답변을 주는 이 책을 썼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자신이 이 교회에서 사임하기를 원하신다는 것을 회중들에게 선포하고 사역을 내려놓고 또 다른 하나님의 부르심을 기다리고 있다. 이 책은 프롤로그 나도 지옥을 믿고 싶지 않다. 하지만, 1. 사람들은 누구나 다 천국에 가는가, 2. 지옥에 대한 1세기 유대인의 관념, 3. 예수님이 지옥에 대해 실제로 하신 말씀, 4. 제자들이 지옥에 대해 한 말씀, 5. 지옥에 대한 말씀이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가, 6. 만약 하나님이 지옥을 만드셨다면, 7. 지옥을 인정한다면 새로운 삶을 살라, 에필로그 같은 확신을 가지고 한 목소리로 쓰다. 로 구성하여 우리가 궁금하고 이해하기 힘들어하는 성경적인 지옥이 어떤 것이고, 지옥에 대한 막연히 가지고 있던 생각을 강하게 붙잡게 만든다. 지옥은 존재하지만 누구도 지옥에 보내기를 싫어하시는 하나님,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신실한 마음을 이 책을 통해서 많은 독자들이 성경책을 붙잡고 오직 죄인임을 고백하고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하는 계기가 되리라 생각한다. 신실하신 하나님은 아직도 우리를 찾고 계신다. 우리가 지옥에 가는 것을 싫어 하셔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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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한국에는 4계절이 있어, 봄에는 꽃이 피며, 여름에는 나무의 잎과 가지가 무성하여 푸르르며, 가을에는 낙엽이 지고, 겨울에는 모든 것이 잠든 듯 다시 봄을 준비하는 자연의 순환을 볼 수 있다. 영혼에도 마지막이 있을 텐데, 그 마지막이 다시 출생과 연결되어지는가? 철부지 어린 시절에 꼬리에 꼬리를 물며 삶과 죽음에 대한 생각을 했던 적이 있다. 그런데,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한 번 죽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음을!!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영혼이라면 구원의 확신가운데 천국을 소유할 것이지만,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영혼에게는 영벌인 지옥이 있다.
이 책 제목을 보고서, 얼마나 당황했던지..! 지옥은 없다라는 것만 보았지, 뒤에 물음표에는 시선을 못 두었기 때문이다. 뭐라고 지옥이 없다고?? 지옥이 없다고? 말도 안돼!라고 반문했는데, 막상 책표지를 보니 <지옥은 없다?>였다. 프랜시스 챈 목사님의 친 할머님 임종사건을 읽으면서 나도 오열했다. 예수님을 모르고 갔던 가족의 죽음을 보면서, 천국과 지옥에 대한 것을 확신하는 나의 답도, 그 목사님의 안타까움과 똑같았기 때문이다. 오랜 상처가 재발견되면서 기회없는 죽음에 대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오열했다. 그러기에, 기회를 아끼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더욱 전도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죄 짓기를 원치 않으시는데, 가장 큰 죄가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는 죄다. 불신의 죄는 바로 지옥행이라는 사실이다! 전해야 한다. 들을 귀 없는 것도 문제이거니와, 전하지 못하여 듣지 못함도 큰 문제라는 사실을 이 책을 통해 절박하게 깨닫는다. 또한, 가끔 상처를 입은 사람들이 내게 상담요청을 하여 듣고 있다 보면, 마음이 그렇게 아프고 저릴 수가 없다. 그런데 성경말씀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로 환난을 받게 하는 자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자기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가운데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에 복종하지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내리시리니 이런 자들은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데살로니가 후서 1장 6절~9절)
사람은 누구나 다 천국에 가는가? 절대 그렇지 않다. 천국과 지옥은 반드시 있다고 이 책은 단언한다. 사랑의 하나님이시지만, 공의의 하나님이시기에 죄는 용납할 수 없다. 지옥을 인정한다면, 이전과 같은 습관적인 죄를 반복하며 거룩치 못한 삶을 살아서는 안된다. 매일매일 조금씩 변화하여야 한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죄는 회개하며, 용서와 은혜의 복음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야 한다. Jesus is changing me!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령의 열매가 우리의 삶에 맺히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여야 한다. 실제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이런 열매가 우리의 삶에 성령의 능력으로 분명히 나타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기 시작하며 실제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시간을 보낼 때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으로 살아갈 때, 우리는 죽어서 천국에 가는 것뿐만이 아닌, 이 시대에서도 천국을 누리며 살 수 있음을 이 책을 통해서 깨달았다. 모든 사람은 예외 없이 영원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그 갈림길에서 영원한 눈물을 흘리지 않도록, 이 책을 꼭 읽고 천국행으로서의 삶을 결단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