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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지신 십자가 [ 철저한 십자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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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기독교를 강력하게 훈계하고 있는 A.W. 토저의 강렬한 메시지가 담긴 책이다. 예전 같았다면 너무나 강한 어조의 그의 어투가 강요하는듯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겠다 싶기도하다. 하지만 성경을 조금씩 알게되고 이런 저런 책들을 읽고나니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조금은 실감나는 순간이 많다. 내가 지금껏 알아왔던건 정말이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구나. 무엇보다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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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기독교를 강력하게 훈계하고 있는 A.W. 토저의 강렬한 메시지가 담긴 책이다.

예전 같았다면 너무나 강한 어조의 그의 어투가 강요하는듯 부담스러울 수도 있었겠다 싶기도하다. 하지만 성경을 조금씩 알게되고 이런 저런 책들을 읽고나니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조금은 실감나는 순간이 많다. 내가 지금껏 알아왔던건 정말이지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았구나. 무엇보다 내 편한대로 생각해 왔던게 많았던거같다. 저자의 말처럼 교회는 점점 고난이나 십자가의 고통보다는 나긋한 방향이 많음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될것같다. 특히나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 교회가 주는 환상이 분명 존재한다. 언 발에 오줌누기' 식의 언행도 많고,... 물론 기독교가 영향을 미치는 희망과 사랑, 평화 이런것들도 하나님의 본질이지만 사람들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분명 많다는걸 느낀다.믿음으로 구원받지 행위로 구원받는다고 하면 이단이다.라고 무섭게 말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것이 잘못된 말은 아니나 믿음의 테두리를 어디에다 두느냐'가 문제인듯하다. 그리고 신앙서적을 읽다보니 해석의 차이를 자주 느낀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씌여진 성경의 한 구절을 해석하는데에도 저자마다 어디에 핵심을 두느냐'에 따라 메시지가 각양각색이다. 같은 곳을 짚어주고 있으면서도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한다. 큰 테두리의 성경은 있지만 그 말씀을 다루는 사람들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다못해 성경읽기를 같이 하다가도 사람들의 의견이 같은 곳에서도 다르게 나올때가 많다. 큐티를 매일하는것이 중요한 것이 그 날 그날의 성경의 말씀은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기 때문인거같다. 매일의 영의 양식을 쌓지 않으면 -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개인의 의견에 휘둘릴 수도 있겠다 싶다.

 

토저의 글은 현세의 기독교를 개탄하는 듯 읽힌다. 제대로 알지 못해 저마다의 논리로 하나님을 따르고 믿는다고 말하지 말라고 외치는듯 엄중하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있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 십자가의 과거 현재 미래를 모두 꿰뚫고 전개되는 그의 논리는 엄격한 잣대를 스스로에게 지워야 함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 영광스런 보좌의 미래상까지 전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더 깊은 삶, 경건한 삶으로의 인내와 고난, 십자가가 내포하고 제시하는 모든 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제대로된 십자가를 알고 예수님의 삶을 따르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으이라 말하는 듯하다. 세상에선 세상적인 것들에 흔들리고 주일에 반짝 교회에 가서 목사님 설교 듣는 동안이나 교제를 나누는 찰나의 순간에만 하나님을 믿는다 말하는 것은 진정한 그리스도인도 성경에서 말하는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도 아니라고 강조한다.

기독교인이라고 해도 십자가에 대해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십자가는 고통의 상징이기도 하고, 고난의 정점이라 여기기도 한다.여기에서도 언급되었듯이 예쁜 십자가를 먼저 떠올리는 사람도 있을지 모른다. 나에게 십자가란 무얼까? 생각해보니 교회의 상징, 골고다 언덕, 예수님의 수난, 마귀를 쫓는 강력한 무기(?) 정도.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죽음과 고통의 상징이다. 하지만 그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으로 인해 인류는 죄에서 구원을 받았고 부활이 이루어진다. 십자가의 죽음은 곧 새로운 탄생을 의미한다. 죽음으로 끝나는 십자가라면 아무 의미 없었을 테지만,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부활을 잉태한 죽음이었다.

 

여기에서 엄격하게 경고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생명은 ' 죽음에서 나온 생명'이다. 그것은 언제나 십자가 너머에 있다. 그 생명을 소유하려는 자는 십자가를 통과해야 한다. 그는 자신을 부인해야 하고, 자기에게 떨어지는 하나님의 판결에 동의해야 한다. - 세상과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동행할 수 없다. 세상도 놓칠 수 없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이런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단언하고 있다. 세상적으로 비난을 받더라도 예수님의 길에 서 있는 자로 그런 삶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는것이다. 사람들은 흔히 말한다. 뭘 그렇게 빡빡하게 구느냐고 , 혹은 너무 빠져 있는거 아냐?  - 세상에 편승하기는 너무나 쉽다.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시류에 편승하여 편하게 살면서 < 믿습니다> 한마디에 천국에 동승하는 얄팍한 어떤 것이 아니다. 모든것 중에 최우선이 스스로의 인생에서 무엇인지 되묻고 있는듯하다.

 

주님이 지신 십자가를 따르는 삶이란,겉의 죽음과 고난, 고통을 넘어 구원의 은혜, 완전한 사랑이 약속된 미래를 선물받은 자가 나아가야 할 길인지도 모르겠다.어렵다 힘들다 꼭 이렇게 살아야하나를 말하기 전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십자가 뒤의 영광과 환희를 바라볼 줄 아는 자가 되어야할 것같다. 영광의 빛을 선택한 자가 어둠의 굴레에서 헤매는 것은 어리석지 아니한가.

m******3 2011.10.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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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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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새벽기도회에서 말씀을 전하셨던 분이 “내 삶 속에 좀 더 십자가가 있어야겠다는 결단을 내렸다.”는 얘기를 듣고, 나 또한 내가 과연 십자가를 닮아가고 있나, 내 삶 속에도 십자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처음 하나님과 예수님, 십자가의 의미를 알았을 때, 죄에서의 해방, 천국에의 소망으로 인해 한 동안 구름 속을 떠다니는 기쁨을 맛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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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새벽기도회에서 말씀을 전하셨던 분이 “내 삶 속에 좀 더 십자가가 있어야겠다는 결단을 내렸다.”는 얘기를 듣고, 나 또한 내가 과연 십자가를 닮아가고 있나, 내 삶 속에도 십자가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처음 하나님과 예수님, 십자가의 의미를 알았을 때, 죄에서의 해방, 천국에의 소망으로 인해 한 동안 구름 속을 떠다니는 기쁨을 맛보았던 시절이 있었다. 그 때 분명 외부의 압력이 없었는데도 예수님에 대해 들떠 있었고, 예수님에 대해 말하고자 했었다. 죄에 대해 예민하여 내 마음 속에 죄가 들어오면 하나님께 가져가기를, 죄가 주는 장애물 때문에 하나님과 소통되지 못하는 괴로움을 너무 잘 알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그 때는 아무런 훈련이 없었던 시절이라 그랬을까. 어쨌든 너무 짧은 순간의 감격과 기쁨이었다.

그 후 2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내가 과연 십자가를 알고 있을까 의문을 하게 되었다. 기독교가 내 삶을 얼마나 변화시켰는가에 대해 진지하고 솔직한 대답을 한다면, 변화시킨게 별로 없었다는거다. 과거보다는 약간 덜하지만 나는 여전히 이기적이고, 여전히 자기중심적이다. 왜 그럴까, 만약 20년 후에도 여전히 지금의 내 모습이 그대로 있다면, 정말 괴로울 것 같다. 그 때는 하나님 앞에 삶을 마감할 준비를 해야 할텐데 그때도 지금과 같다면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모습이지 않을까.....

나는 다시 십자가를 알고자 해서 ‘철저한 십자가’를 만났을 때 기뻤다. 이제야 말로 십자가를 바로 알고, 나도 주님이 말씀하신 자기 십자가를 제대로 알고 제대로 질 수 있지 않을까 했기 때문이다.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는 십자가의 의미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삶을 살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도대체 어디서 뭐가 잘못된 것인지, 어떻게 해야 성경이 말하는 제 십자가를 지고, 성령의 열매를 맺고,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가 되는 삶을 살 수 있는 것인지 묻고 싶었다.

내 주변에서 만나게 되는 기독교인에게 가끔씩 ‘당신이 지고 가는 십자가는 무엇인가요?’ ‘ 당신은 주님이 말씀하시는 열매를 맺는 그리스도인인가요?’라고 진지하게 물어보고 싶은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대학생때 선배 멘토가 있어서 후배를 이끌어주었던 것처럼 십자가를 지고 사는 사람,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의미를 자신의 삶 속에서 살아가고 실천하고 있는 사람을 만나 그 사람을 본받고 싶은 갈망이 있다.

토저가 말하는 “우리의 삶의 방식 전부가 끝없는 생명의 능력 안에서 깨어지고 다시 세워지도록 우리의 삶을 그분께 넘겨드려야 한다.”는 것을 내 삶속에서 실천한다는 것은 어떤 방식일까, 그것의 실제는 무엇인지 궁금하다. 나도 나의 이기적인, 극히 자기중심적인 삶을 끝장내고 싶지만, 사실 잘 되지 않는다.

‘십자가를 진 사람은 더 이상 자기의 삶을 통제하지 않는다.... 자기 삶에 대한 통제권을 포기했다.‘는 의미는 삶을 계획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고, 그렇다면, 하나님의 계획 아래로 나의 삶을 가져간다는 의미일까.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십자가를 체험하게 되고, 자주 영적으로 훈련을 받게 된다면서, 토저가 예를 들었던 신구약의 인물들이 십자가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야곱의 십자가는 육신적 자아에서, 다니엘의 십자가는 세상에서, 욥의 십자가는 마귀에게서, 루터의 십자가는 로마카톨릭에서 왔다면, 나의 십자가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리스도인이 사망과 지옥에 대한 심판은 뒤에 있지만,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심판, 성실성, 자기훈련, 용기, 겸손, 세상과의 분리, 무수한 작은 사랑의 행위 등의 기록에서는,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있다. 나는 어떻게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대비할 수 있을까. 만약 아무런 대비도 하고 있지 못하다면 왜 그런 것일까.

어쩌면 십자가 후의 영광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렇기 위해서 나의 과제는 먼저, 하나님이 내게 지라고 한 나의 십자가가 무엇인지 알아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 후는 순종이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i****m 2011.10.25.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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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십자가로 무장을 한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삽시다
"철저한 십자가로 무장을 한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삽시다" 내용보기
2010년과 2011년은 모름지기 그동안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를 해 온 나의 인생 중 후반전을 앞두고 하프타임을 갖는 중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걸어 온 길을 되짚어 보게 되었고, 역시 본질이 중요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보혈, 십자가에 대한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나의 독서습관을 바꾸어 놓았다. 그중에서도 C.H. 스펄젼이나A.
"철저한 십자가로 무장을 한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 삽시다" 내용보기

2010년과 2011년은 모름지기 그동안 신학을 공부하고 목회를 해 온 나의 인생 중 후반전을 앞두고 하프타임을 갖는 중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동안 걸어 온 길을 되짚어 보게 되었고, 역시 본질이 중요하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보혈, 십자가에 대한 지식에 대한 목마름이 나의 독서습관을 바꾸어 놓았다. 그중에서도 C.H. 스펄젼이나A.W.토저의 책들은 내 스타일과도 맞았다. 덕분에 여러권의 책들을 탐독하게 되었다.

 

특히나 본서 <철저한 십자가>는 책이 나오면서부터 더 흥미를 느끼게 하였는데 그것은 원색적인 복음인 십자가를 말하는 것이기도 했고, 편집자의 글에서 말하듯 "그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 외쳤던 메시지에 초점을 맞춘 최초의 편집물"이기 때문이기도 했다. 저자가 지속적으로 열정을 갖고 외쳤던 한 가지 메시지가 있다면, 그것은 '십자가에 못 박한 삶'이라는 것이다. 이 한권의 책을 통해서 목회에 대한 확고한 전환점을 다시 갖게 되었다.

 

책의 서두에서 '문제의 핵심', '상황의 핵심'이라는 말 중 '핵심'이라는 말의 라틴어에서 유래된 '크럭스'인데 그 뜻이 '십자가'란다. 이 말이 '중대한 시점'이라는 말과 연관성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진정으로 역사의 핵심이기 때문이며, 만일 십자가가 없다면 역사의 의미를 밝히는 것이나 역사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것이 불가능해진다고 한다. 또 사람들이 말로 다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낄 때 사용하는 '익스크루시에이팅'('몹시 고통스러운'이라는 뜻)이라는 단어 역시 라틴어에서 유래한 단어로 '십자가로부터'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깜짝 놀랐다.

 

목회의 현장에서 느끼는 것 중 하나는 강단에서 '십자가'의 복음이 점차 사라지고, 적당히 타협짓는 듯한 설교가 난무한다는 것이다. 목회자도, 성도도, 십자가 없이 면류관만 받고자 한다. 십자가 없이는 면류관도 없다는 진리가 확실한데도 말이다. 책에서도 말하듯 십자가는 연약한 상징이 되거나 명백한 미신의 상징으로 전락된지 이미 오래다. 우리는 십자가에 대해 결단해야 한다.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을 때 비로소 우리의 생활과 사역을 위해 필요한 능력을 얻게 된다. 십자가를 회피하지 말고 십자가 위에서 죽어야 한다.

 

십자가의 능력, 십자가를 위한 댓가, 십자가의 목적, 십자가의 고통, 십자가가 예비한 것, 십자가의 역설, 십자가의 약속 이상 7개의 챕터에서 우러나오는 깊이를 느껴보라 그 어느 것 하나 빼놓아서는 안될 것들이다. 지금은 호세아선지자가 말했던 오라 우리가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호6:1-3)고 했던그 외침대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될 때 가짜가 아닌 진짜 십자가를 붙들게 되는 것이다.

 

이 책에서 제시하는 7개의 챕터를 삶으로 살아낸다면 예수님의 참된 제자가 되지 않을까. 철저한 십자가로 무장을 한.


"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j******1 2011.10.22.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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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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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에서 사라져 가는 십자가... 강단에서도 세상을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가 포인트가 되어버린 교회의 현실... 정말 마음이 아프고 속상합니다. 저의 마음도 그런데... 이것을 바라보시는 아버지는 어떠하실까요? 지속적으로 주시는 이 마음을 갖고 있던 차에 토저의 철저한 십자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그 십자가... 예수그리스도의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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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에서 사라져 가는 십자가...

강단에서도 세상을 어떻게 하면 잘 살 수 있을까가 포인트가 되어버린 교회의 현실...

정말 마음이 아프고 속상합니다.

저의 마음도 그런데...

이것을 바라보시는 아버지는 어떠하실까요?

지속적으로 주시는 이 마음을 갖고 있던 차에

토저의 철저한 십자가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그 십자가...

예수그리스도의 그 십자가는 죄로인하여 끊어진 우리와 아버지 사이에 길을 내어주신 은혜의 길입니다.

그 복음을 우리는 왜 말하고 있지 않을가요?

너무나 많이 들었던 고리타분한 소리여서?

하지만 이것이 진리이고 사실인데... 아마도 현대인들이 진리를 들을 귀가 준비되어 있지 않음은 아닌가 생각해봅니다.

그로 인해 교회는 새신자의 비위에 맞는 것을 말하는 크나큰 잘못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자는 세상에서 성공하는 이야기하여 사람들을 끌어드리면

주님께도 이득아니냐고 물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교회가 구유의 언약함과 십자가의 죽임에서 강조점을 옮겨 보자에 않으신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을 드러낸다면, 교회의 잃어버린 영광이 회복될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분명 그럴 것입니다.

단지 시도하지 않음은 편안하려는 우리의 안일한 마음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 마음에는 분명 원수의 소리가 작용합니다.

십자가로 인해 철저히 부서저 버린 원수...

 

책을 통해서 새롭게 보게 된 것은 저자가 제시하는 새로운 관점입니다

예수님이 타락한 천사를 찾아가지 않고 인간을 찾아오신 이유는 우리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이라는 말...에수님께서 타락한 천사들을 찾아가지 않고 타락한 아4담의 후손을 찾아오신 이 유는 타락한 아담의 후손이 한 때 하나님의 형상을 지녔다는 이야기가

좀 새로웠습니다.

 

또한 나는 책을 통해 예수그리스도의

순종을 봅니다.

분명히 피하실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순종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사의 계획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분은 하나님과의 단절을 힘들어하시면서도 철저히 순종하셨습니다.

 

지금 현재 나의 십자가는 어떤 것일까요?

순종하며 예수님의 뒤를 따라가야하는 것이 내가 해야할 일인데...

나는 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일까요?

 

오늘도 나의 삶을 돌아보며

그분의 뒤를 따르려합니다. 

 

s******3 2011.10.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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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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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다보니 아주 중요하고 기본적인 사실을 잊고 살아갈 때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당연시 여기면서 그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런 나의 현재의 삶에 십자가가 그리스도인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삶속에 어떻게 적용되어져야 하는지 깨닫게 해 준다. 십자가의 보혈이 없이는 지금 내가 존재할 수 없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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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다보니 아주 중요하고 기본적인 사실을 잊고 살아갈 때가 너무 많다는 생각이 든다. 주님의 십자가의 사랑을 당연시 여기면서 그 은혜와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런 나의 현재의 삶에 십자가가 그리스도인에게 무엇을 의미하고 삶속에 어떻게 적용되어져야 하는지 깨닫게 해 준다.

십자가의 보혈이 없이는 지금 내가 존재할 수 없음을 믿고 있지만 하루를 살면서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하는 순간이 많지는 않다는 사실이 참으로 나 스스로를 아프게 한다.

주님의 십자가는 죽은 것으로 끝나지 않으셨다. 십자가 이후에 부활이 있으셨고 그 능력으로 우리가 새 사람이 되어 살아가게 하시고 천국을 소망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셨다.

주님의 십자가를 알고 능력을 의지한다면 지금보다 더 깊은 삶으로 들어갈 수 있다.

그러나 십가가에는 고통이 따른다. 그렇기에 주님처럼 십자가를 지려고 하는 그리스도인은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른다. 나 역시 내 앞에 놓여진 십자가를 모두 다 순종함으로 지지 못한다. 하지만 부분적으로 십자가를 지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십가가가 우리 삶 속에 분명히 자리잡고 있어야만 우리의 삶이 조금이라도 더 하나님의 뜻 가운데 가까워질 것이다.

십자가...

늘 잊지 않아야 할 사실은 예수님이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이다. 그렇기에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조금 타협적인 십자가를 지려한다. 예수님은 두려움과 아픔 속에서도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위해 완전한 십자가를 지셨는데 말이다.

십자가의 고통은 당연한 것이기에 고난을 피할 수 없음을 인정해야 한다. 하지만 세상의 길이 아닌 십자가의 길을 따라갈 때 우리는 분명 우리의 삶을 십자가의 보혈이 보호해 주심을 매 순간 알 수 있을 것이다. 십자가의 사랑은 우리를 구원해 주셨다. 그리고 지금도 우리를 지켜 주시고 계신다는 사실은 너무나도 큰 감격으로 다가온다.

세상을 살면서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사실이 너무나도 감사하다.

기쁨없는 십자가 사건이었지만 그 이후에 기쁨으로 충만한 부활이 뒤따랐음을 기억해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세상이 원하는 새 십자가가 아닌 주님이 지신 옛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분명 부활의 기쁨을 삶 속에서 맛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에게 죽음 이후에 마련된 완전히 행복한 미래가 있음을 소망하며 세상 가운데 십자가를 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해 본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

p*******a 2011.10.21.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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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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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쉬운 길은 아닌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을 때부터 예수님을 따르는 여정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십자가 없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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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쫓으라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이 쉬운 길은 아닌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가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믿을 때부터 예수님을 따르는 여정에서 그리스도인에게 십자가는 빼놓을 수 없는 것이다. 십자가 없이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이야기 할 수 없고, 신앙을 논할 수 없다.

 

토저의 책인 철저한 십자가는 십자가의 모든 것이고, 신앙의 모든 것이고,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것이다. 책 제목이 철저한 십자가인데, 십자가면 십자가이지 왜 철저한 십자가라고 했을까? 생각해 보았다. 사실 십자가 앞에 철저한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도 십자가의 의미와 십자가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모두가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나 아는 것과 십자가의 삶, 십자가를 붙드는 것은 다르다. 십자가의 의미와 중요성을 아는 것과 십자가의 능력을 경험하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는 것은 다르다. 십자가는 죽음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생명을 누리는 것이다. 이런 괴리감 속에서 철저하게 십자가속에서의 삶을 살기를 바라는 저자의 의도가 숨겨져 있지 않은가? 라고 생각하며, 과연 나는 철저한 십자가의 사람인가?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졌다.

 

오늘날 신앙생활은 쉬운 길을 택하는 현상이 두드러진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도 힘든 것보다는 쉬운 것을 선호한다. 개척교회보다는 대형교회를 선호한다. 세상에서 힘들게 신앙생활하기 보다는 모든 것을 누리며 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신자의 삶은 십자가에서 시작되었고, 십자가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이다. 십자가 위에서 죽었고,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로부터 다시 살리신 그 하나님께서 신자를 살리셔서 새 생명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우리는 십자가를 떠나서는 안되는 삶이다. 항상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십자가가 있다. 내 삶에 예수님이 지신 그 십자가가 있는가?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삶에 십자가가 없다면 우리는 세상과 타협하게 될 것이다. 십자가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고, 십자가 너머의 부활의 능력을 경험하지 못할 것이다. 십자가가 이끄는 더 깊은 삶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던 것처럼 이제는 내가 예수님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아야 하고, 세상의 길이 아닌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야 한다. 책 앞 표지에 나오는 짝퉁 십자가를 들고 예수님을 뵐 수는 없다는 말을 기억하기를 바란다.

f*****a 2011.10.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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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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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영광은 십자가의 고통에서 시작되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 십자가 없이는 영광의 면류관도 없다. 나는 멜 깁슨 감독이 제작한 “그리스도의 고난”이라는 영화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영화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부터 십자가에 달리셔서 숨을 거두시기까지,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열두 시간을 상세하게 다룬 것이다. 예수님은 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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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영광은 십자가의 고통에서 시작되었다.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 십자가 없이는 영광의 면류관도 없다. 나는 멜 깁슨 감독이 제작한 “그리스도의 고난”이라는 영화를 보고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이 영화는 예수님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부터 십자가에 달리셔서 숨을 거두시기까지, 예수님의 생애 마지막 열두 시간을 상세하게 다룬 것이다.


예수님은 로마 군인들에게 매를 맞았다. 로마 군인들은 채찍 끝에 쇠갈고리를 달았다. 이 채찍으로 때리면 채찍이 몸에 감기고 쇠고랑이 몸을 파고들어가 당기면 몸이 쫙쫙 찢어졌다. 이렇게 엄청난 고통을 당하신 후에 십자가를 지시고 갈보리로 오르셔서 손과 발에 대못을 박고 십자가에 달려 온갖 조롱을 받으셨다. 그리고 6시간 동안 매달려 있다가 최후로 그들이 와서 옆구리에 창을 찔러서 물과 피를 다 쏟으셨다. 예수님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고통을 당했다.


이런 고통스런 십자가가 오늘날 많은 시인들과 화가들에 의해 십자가가 미화되었다. 그래서 예배당을 십자가로 장식한다. 십자가는 장식용이 아니다. 사실 하나님을 간절히 찾는 사람에게 있어 십자가는 옛날과 마찬가지로 아주 잔인한 사형 도구일 뿐이다. 지금도 십자가의 길은 영적 능력과 결실로 가는 매우 고통스런 길이다.


이 책의 저자 A. W. 토저는 교인들을 그저 편히 잠들게만 하는 교회가 넘쳐나는 지금, 십자가의 본질을 깨닫고, 십자가를 십자가로 받아들일 것을 권한다. 우리에게는 예배당을 장식하는 장식용 십자가가 아닌 진짜 십자가가 필요하다. 넓은 길로 가지 말고 좁은 길로 가야한다. 죽음과 생명에 이르는 그 힘든 길에서 십자가가 나를 완전히 죽일 때, 비로소 하나님을 찾을 수 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마 16:24)고 하셨다.


저자는 교인수의 성장을 위해서 대중의 인기에 야합하고, 거대 기업의 경영방식을 무차별 차용하고, 할리우드 엔터테인먼트 방식을 예배에 도입하는 것을 강하게 비판한다. 또한 현대 교회가 물량적 성장을 위해서 교회의 순결성을 포기하는 듯한 자세를 보일 때는 그것을 좌시하지 않고 하나님교회의 순정성을 파수하기 위해 ‘강력한’ 말씀을 선포하여 ‘이 시대의 선지자’라는 평판을 들었다.


이 책은 모두 7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은 ‘철저한 십자가의 능력’, 2장은 ‘철저한 십자가를 위한 대가’, 3장은 ‘철저한 십자가의 목적’, 4장은 ‘철저한 십자가의 고통’, 5장은 ‘철저한 십자가가 예비한 것’, 6장은 ‘철저한 십자가의 역설’, 7장은 ‘철저한 십자가의 약속’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것은 저자야 말로 하나님이 가장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나는 지금껏 ‘진짜 십자가’를 모르고 살았다. 진정한 십자가를 알고 있었다면 지금처럼 살 수는 없는 것이다. 짝퉁 십자가를 들고 예수님을 뵐 수는 없다, 그래서 다시 제대로 십자가를 알아야 되겠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이달의 사락 k*****6 2011.10.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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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적인 십자가의 회복 - 죽어야 사는 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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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과 십자가를 품고 산다는 것은 사실은 같은 말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십자가의 삶이라는 것에 대해서 나와는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거나 단순히 장식품으로서의 십자가로서의 위상으로밖에 생각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구원이라는 것, 그리고 천국이라는 것, 영생이라는 것 등의 단어가 너무나도 가벼워진 이 즈음... 기독교가 능력을 잃어가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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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인으로 산다는 것과 십자가를 품고 산다는 것은 사실은 같은 말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십자가의 삶이라는 것에 대해서 나와는 별개의 것으로 생각하거나 단순히 장식품으로서의 십자가로서의 위상으로밖에 생각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구원이라는 것, 그리고 천국이라는 것, 영생이라는 것 등의 단어가 너무나도 가벼워진 이 즈음... 기독교가 능력을 잃어가고 있는 그 핵심의 근저에는 십자가의 버림이 있다.

십자가는 형틀이다. 천국으로 들어가는 화려한 문이 아니라 매우 어렵고 좁은 문이다. 그곳에는 피가 있고 버려짐이 있으며 신음이 있고 아픔이 있다. 그것은 십자가를 진 예수님이 잘못된 것이 아니라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한 '세상'이라는 것이 십자가를 낳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십자가는 천지창조 때부터 정해진 신비로운 하나님만의 방법이다.

그러나 우리의 삶은 명백하게 나뉠 수 밖에 없다. "십자가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둘 중 하나인데, 하나는 십자가를 회피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십자가 위에서 죽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가 만들어낸 가벼운 십자가를 지고 마치 그것이 나에게 허락되어진 십자가인양 짊어진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가 영적인 승리를 얻는데 있어서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십자가가 멀게 느껴진다면 우리는 세상의 편인 것이다. 반대로 십자가로 깊이 나아가게 되면 반드시 세상과 그 무엇인가 부딛히게 된다. 그것이 바로 나에게 허락되어진 십자가이다.

"그리스도께서 의도하셨던 것은 우리 각 사람이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그것은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여기는 것이다. 또 그것은 날마다 순종의 좁은 길에서 발견될 수 있는 자기 부정이나 회개나 겸손이나 겸허한 희생을 자발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그것이 신자 개개인의 십자가이다."(p 100-101)

십자가를 회피하는 복음은 거짓 복음이다. 세상에 완전히 빠져있거나 세상이 위협하는 사망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영생의 삶과 죽음을 심판하실 이보다 더 두려워 해야 할 존재는 없다. 가학적 복음이 아니라 세상이 잘못된 방향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올바른 길이 십자가가 되는 것이다. 주님의 길이 그렇게 올바름에도 불구하고 십자가가 놓였듯이, 우리의 삶이 주님과 동기화가 된다면 그 앞에는 십자가가 놓여져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동기화는 천국에서의 영생까지도 동기화 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십자가를 발견하는 자는 그 어느누구보다도 낙관주의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s****1 2012.05.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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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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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십자가라는 제목에 마음이 끌렸다. 십자가 앞에는 주님의 십자가 나의 십자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왜 철저한 십자가라고 했을까 라며 읽어 내려갔다 역사상 위대한 사람들은 대부분 외로웠다. 고독은 성도가 성도로 살아가기 위해 지불해야 할 한 가지 대가인 것이다. 외롭게 살았던 사람은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 믿음의 조상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외로웠던 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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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저한 십자가라는 제목에 마음이 끌렸다. 십자가 앞에는 주님의 십자가 나의 십자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데 왜 철저한 십자가라고 했을까 라며 읽어 내려갔다

역사상 위대한 사람들은 대부분 외로웠다. 고독은 성도가 성도로 살아가기 위해 지불해야 할 한 가지 대가인 것이다. 외롭게 살았던 사람은 노아, 아브라함, 모세 등 믿음의 조상들을 볼 수 있다. 하지만 가장 외로웠던 분은 예수 그리스도시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향해 고독한 발걸음을 옮기실 때 주변을 따르던 무수한 군중은 그분의 고독을 조금도 덜어드리지 못했다. 그 십자가는 예수님 한분만 질 수 있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우리도 신앙생활하면서 군중속의 고독을 느낄 때가 있다. 내적고독..마음에 와 닿았다. 이 고독으로 인해 하나님을 의지 하게 되고 주변의 영적 환경이 따라주지 못하기 때문에 침묵을 지키며 하나님만 자기의 슬픔을 말씀드린다.

또 외로운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외면한 채 혼자 틀어박혀서 천국을 묵상하며 세월을 보내는 사람도 아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의지적으로 종속 되어야한다. 일시적 충동이나 갑자기 떠오르는 생각에 의해 살아가려고 애쓰는 기복이 심한 감정에 의존하는 그리스도인은 잘 사는 것이 아니며 오래 지속할 수도 없다. “감정과 신앙은 다른 것이다” 나도 때론 감정조절이 안될 때가 많이 있다. 이 감정이 주님이 주신 사랑인양 분별력을 잃어버릴 때도 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여기에서의 십자가는 그 결과까지 깊이 생각하고 분명한 결단에 의해서 십자가를 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십자가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건 순종의 길에 십자가가 서 있다. 십자가는 순종의 길, 징계는 분순종의 길.. 우리를 향한 주님의 징계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우리의 고통이 십자가 때문인지 징계 때문인지 분별하여야한다.

 

십자가는 화평이 아니라 검이다. 하나님의 충성이 때론 가족을 갈라놓는다. 오늘날 기독교의 연약한 것은 그리스도의 추종자라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 사람들과 특히 친인척들과 사이좋게 지내기 위해 신앙적인 것들을 쉽게 양보해버리기 때문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조금은 흔들렸다. 왜냐하면 요즘 교회 목사님들은 주일날 명절이 되면 가족들과 만남을 중요하게 생각해 오후 예배를 하지 않는 것은 예사인 것이다. 가족을 만나 즐거움을 나누고 거기서 전도하고 사랑을 베푸는 것이 예배인 듯 말씀하시는 분들이 있다.

예배를 드리면 구시대적 사고, 바리새인 같은 신앙등 그렇게 얘기를 하기 때문이다.

 

주님은 우리에게 최우선을 요구하신다. 편하고 솜사탕처럼 달콤한 기독교를 믿으려는 경향이 이 시대에 진리를 깨달으면서 내적 조명이 있어야하고 그 조명을 받아들일 수 있는 진정한 믿음이 있어야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억지로 고난 속으로 몰아넣으시지 않는다.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우시지도 않고 우리가 원하지 않는 보물로 우리를 인도 하시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사람들과 함께 고난을 받겠다고 선택했고, 수고와 고난의 길을 가야 할 길로 받아들였다.

십자가를 패하려 애쓰지 말고 편안한 길을 거부하고 능력도 열매도 없이 교인들의 등을 두드려주어 편히 잠들게 만드는 교회에 안주하지 말라고 한다. 만일 타협과 양보를 통해 한 영혼을 하나님 나라로 들여보낸다면 그 나라는 더 이상 안전하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은 십자가를 미하하고 상징화해왔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십자가에는 아름다운 것이 없다. 그것은 사형의 도구였다. 십자가의 기능은 오직 사람들을 죽이는 것이었다. 십자가에서 눈물과 피와 고통을 빼버린다면 더 이상의 십자가가 아니다. 예수님은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을 하신다. 그건 생명의 끝이며 또 생명의 시작이다. 이 책을 통하여 왜 철저한 십자가인지 십자가를 다시 해부하면서 읽다보니 지금껏 십자가를 지겠습니다 기도한 것이 참으로 부끄럽고 십자가를 질 용기가 더 희미해짐을 느낀다.

 

 

 

b****0 2011.10.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