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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한 리뷰를 쓸까 말까 많이 망설였다. 망설인 이유는 책 전체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어떤 한 대목이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문제의 대목은 위화의 소설집 <4월 3일 사건>에 나오는 한 장면에 대한 저자의 평가다. "아가씨, 한가하게 노느니 이거라도 버는 게 안 낫겠소?" "흥! 그걸 썩히는 한이 있어도 한 푼도 적게는 안 돼요." 여인이 말했다. 쑨시는 발을 동동 굴렀다. "좋소. 나도 값을 깎아달라고는 않겠소. 반만 넣지. 반값이니 반만 넣으면 공정하지 않겠소." 여인은 생각해보더니 옳게 여겼는지 돌아서서 집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고는 바지를 벗고 침대에 누워 두 다리를 벌렸다. (중략) "이봐요, 이봐, 반만 넣기로 했잖아." 쑨시가 낄낄거리며 대꾸했다. "내가 말한 반은 뒷부분 반이요." (173~4쪽) 저자는 이 장면을 소개하면서 이런 문장을 썼다. "위화의 소설을 읽는 것은 뭐니 뭐니 해도 그의 중국식 위트 때문인데, 마지막으로 한 단락 인용해본다." 저자는 이 장면을 읽고 독자가 웃기를 기대했을 텐데, 결론부터 말하면 나는 이 장면이 조금도 웃기지 않았다. 몇 푼 안 되는 돈이라도 벌기 위해 다리를 벌려야 하는 여자. 그 돈마저도 절반밖에 못 준다고 떼쓰는 남자를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여야 하는 여자. 못된 남자한테 사기를 당하고 비웃음까지 당한 여자. 이런 여자를 보고 어떻게 웃을 수 있지?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한테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이, 이런 장면을 '중국식 위트'로 받아들일 수 있는 마음이 나에게는 참 멀게 느껴졌다. 이런 경우는 사실 이 책 말고도 다른 여러 책, 만화, 영화, 드라마 등등을 볼 때 자주 마주친다. 그때마다 매번 문제를 제기하는 건 아니고 보고도 못 본 척 넘어가는 경우도 많은데, 이 책은 저자가 일반 작가가 아니라 의사라는 점 때문에 마음에 더 걸렸다(일반인보다 더 예민하고 약자의 입장에 공감해야 하는 게 의사 아닌가). 이 부분을 제외하고 다른 부분이 전부 좋았으면 넘어갈 수도 있었겠지만 그것도 아니다. 요조의 책이나 한 번 더 읽을 걸 그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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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에서 읽어본다 시리즈 다섯 권이 한꺼번에 출간되었다. 무모해 보이지만 자신만만해 보이기도 하다. 다섯 권을 함께 구매했는데, 시리즈에 순서를 의미하는 숫자가 달려 있지 않다. 그러니까 어디서부터 읽어야 할지 일단 난감하다. 다섯 권의 책을 하나씩 들었다 놓았다 하며 망설였다. 그리고 장석주와 박연준, 부부가 함께 쓴 책을 읽기로 하였다. 아내와 나도 함께 책을 읽는다, 나는 종이책으로 아내는 전자책으로.
장석주 박연준 /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 난다 / 403쪽 / 2017 (2017)
ps1. 책일 읽는동안 간혹 이 부부가 서로에게 건네는 멘트에 괜스레 민망해지고는 하였다. 책의 제목인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는 장석주가 박연준에게 보낸, 결혼하기 이전의 편지글에서 따온 것이다. “...나는 새벽에 시를 모아놓은 파일을 열어 조금씩 고치고, 개수대에 있는 그릇들 몇 개를 씻어놓고, 호박죽 남은 것 하나를 먹었어요. 조금 있다 북티크에 교정지를 들고 나가서 볼 작정이오. 여기, 새벽에 고친 시 한 편을 보내니,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 (p.363, 박연준, <아모스 오즈, 첫사랑의 여름> 중 장석주가 보낸 편지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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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함께 서점에 가서, 함께 책을 고르고, 며칠 간격으로 나란히 책을 읽고, 두 사람이 모두 읽고 나면 이야기를 나눈다. 물론 자주 그러는 것은 아니다. 취향이 다르고, 읽는 속도가 다르며, 내가 자주 게으름을 피우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런 말을 나눌 때는 정말 행복하다.
"이 책은 어때?" "아, 그거 나도 보고 싶었어."
* 나도 함께 책을 읽는 사람이 있고 그래서 때마다 즐겁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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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책을 읽는 사람에 관한 이야기를 좋아한다. 책을 쓰는 사람,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의 이야기도 좋아한다. 북 카페&서점 '카페꼼마' 대표인 남편 장으뜸과 문학동네 편집자인 아내 강윤정의 6개월치 독서 일기를 엮은 책 <우리는 나란히 앉아서 각자의 책을 읽는다>에는 책을 읽는 사람, 쓰는 사람, 만드는 사람, 파는 사람의 이야기가 모두 담겨 있다. 반색하며 읽지 않을 수 없었다. 부부가 나란히 앉아서 각자 읽은 책 이야기도 흥미로웠지만, 남편이 책을 팔다 겪은 일, 아내가 책을 만들다 맞닥뜨린 난관 등이 더욱 기억에 남는다. 손님을 가장한 도둑이 두 차례나 책을 훔치고 걸렸을 때, 만화책을 읽고 중요한 페이지를 찢어갈 때, 원서 제목이 한국 독자들에게 오해를 일으킬 것 같아서 한국어판 제목을 했더니 외국 에이전시에서 문제를 제기할 때 나라면 어떻게 할까(참고로 이 책은 가쿠타 미쓰요와 오카자키 다케시가 함께 쓴 <아주 오래된 서점>이다. 작년에 잘 읽었습니다). 책을 팔지도 않고 만들지도 않으면서 마치 내 일인 양 고민하는 오지랖. 가장 기억에 남는 일화는 어떤 작가를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채만식을 좋아한다고 대답한 신입 직원에 관한 일화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아니고 김영하도 아니고 채만식이라니! 어떤 작가를 좋아하든 개인의 자유지만 흔히 들을 수 없는 대답인 건 분명하다. 이 직원은 나중에 오토바이 동호회 회원들이 모인 자리에서 기형도의 시를 낭독해 좌중을 울린 일화로 저자를 놀라게 하기도 한다. 이 직원의 독서 일기가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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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인 작가의 책을 두 권 읽고, 그의 팬이 되었나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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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에 나온 <읽어본다> 시리즈 중에서 이 책의 제목이 가장 끌렸다. 단지 읽은 척이 하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읽은 척은 어떻게 하는 건지 알고 싶어서였는지, 나도 모르겠다. 서점 직원 김유리와 매일경제 문화부 김슬기 기자 부부의 책 읽기에 대한 책 일기. 업무상 늘 책을 가까이함에도, 집에서도 책 읽기를 게을리하지 않는 이 부부가 2017년 1월부터 6월까지 6개월간 매일매일의 책 읽기에 대한 기록이다. 이미 다른 매체들을 통해서 읽고 싶은 책들은 늘 쌓여있는데다, 이런 기록을 보면 읽고 싶은 목록이 더 쌓일 것을 알고 있었기에 딱히 보고 싶지는 않았지만, 궁금했다. 어떻게 늘 책과 함께 생활하는지. 그리고 조금은 부러웠다. 다르다면 다른 분야에 종사하고 있지만 책으로 묶여지는 부부의 이야기가. 결과적으로, 제목이 왜 <읽은 척하면 됩니다>였는지는 모르겠고, 어떻게 하는 건지도 알아내지 못했다. ㅋㅋ 그리고 개인적으로, 일기라는 형식을 취했지만, 철저히 개인적일 수 없는 성격의 일기여서 어중간한 느낌이 들었다. 리뷰나 평론을 기대한 건 아니었지만 매일의 기록이라 그냥 남이 뭐 읽고 있는지 훔쳐보는 정도의 느낌이랄까.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폭넓은 독서는 훔쳐보면서 많이 배웠다. 경제나 기술 관련 서적은 따로 떼어놓고 늘 생각했지만, 그들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나온 대중서임에는 틀림없으니. 책을 읽으면서 읽고 싶은 책들을 메모해두려고 했는데, 이 책은 정말 읽고 싶다 하는 건 (역시나) 죄다 소설류였고, 정말 정말 읽고 싶은 아이들은 이미 봤거나 구매한 도서들. '의외로' 궁금한 비소설류는 이미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다. ㅋ + 김유리/김슬기 두 작가의 글의 매일의 기록이기에 하루에 두 편 교차하며 그려지는데, 종이책에서는 색으로 구분이 된 모양이던데,, 전자책에는 이 글이 누구의 기록인지 바로 알 수 없어 번거로웠다. *밑줄(나와 그들의 밑줄) 자신의 감을 믿을 것. 늘 자유로울 것. 한때라도 좋으니 자기가 가진 논리를 믿고 '올바름'과 '아름다움'을 향해 전진할 것. 그리고, 좌우지간 자신에게 '근면함'을 강제할 것 이렇게 간혹 삶에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책이 찾아온다. 전혀 동의할 수 없는 말씀이옵니다만.....다른 생각을 만날 수 있는 것 또한 독서가 주는 즐거움이겠거니 생각했다. 읽을 때마다 놓쳤던 부분을 발견하게 되는 소설이기도 하다. 해석이 무의미한 이 이야기는 내 등 뒤를 자꾸만 돌아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림책이 많다는 건 그만큼 다양한 시선을 존중한다는 것. 유명 작가만 선물해줄 게 아니라 그때그때 아이에게 주고 싶은 책을 선물해주어야겠다. 머릿속에 바벨의 도서관을 들여놓은 이에게도 마지막 관심사는 결국 삶과 죽음으로 가닿을 수밖에 없나 보다. "서가를 보면 자신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가 보인다"는 고백을 하기에 이 남자보다 적합한 이로 누가 있으랴. 그의 책을 아직은 더 만나고 싶다. 모든 것들이 빛나는 건 아니라네. 하지만 더없이 빛나는 것들은 존재하는 것이지.
밤은 그에게 무언가를 상실하고, 그리고 벗어나야 할 시기였을 것이다. 창조력을 주면서도 외부와 차단되어 자신만의 세계에 갇히게 하는 밤. 많은 SF가 대중적이긴 하지만, 대중성이 SF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아니다. 대중적인 소설은 쉽게 읽히지만 독자에게 도전하지는 않는다. 난 내 독자가 지적으로 자극받기를 원한다. 루이즈의 "나는 처음부터 나의 목적지가 어디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것에 상응하는 경로를 골랐어"라는 말은 "너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안다고 해도, 나는 너를 만나러 갈게"라는 말과 동일하다. 아름다운 문장을 통해서도, 이 시대의 폭력을 고발할 수 있음을 나는 존 버거를 통해 배웠다. 시집에서 시인의 언어를 보면 황홀하다. 한 언어가 이렇게 적재적소에 놓이면 아름다울 수 있구나. 감탄하면서 시집을 본다. 시인들이 쓰는 에세이는 더욱 매력적이다. 명예, 돈, 권력, 천재성 표현 등 여러 욕망이 위작을 만들어내지만 가장 큰 동기는 복수심이라고 노아 차니는 지목한다. 자기 작품을 알아주지 않는 미술계를 향한 복수다. 부쩍 자기 자신이 늙었음을 깨닫게 하는 건 어떤 것의 부재이다. 이미경의 <동전 하나로도 행복했던 구멍가게의 날들>은 그 부재를 말한다. "책을 좋아하면 서점을 하지 말고 그냥 독자로 남을 것"이라는 격언은 그에게도 적용될 수밖에 없었다. 결국 좋은 글이란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법이더라. 질투와 시샘을 느끼면서도, 몇 번이고 다시금 꺼내 읽게 되는 책이다. 독일 하면 떠오르는 건 성장소설이다. 그런데 <벤야멘타 하인학교>의 야곱은 위대한 사람이 되길 원하지 않는다. 그는 하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위대함이란 어느 것을 짓밟고 일어설 수 있는 덕목이니. 쉽게 읽히는 시가 좋은 시라는 주장이 많지만, 그 의견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아주 가끔씩 이 말에 동의하게 되는 시인이 있다. 슌타로가 바로 그런 시인이다. 잊고 있었다. 버지니아 울프는 이런 일기를 쓴 작가였다는 것을. 어제는 아주 보람 있는 하루였다. 글 쓰고 산책하고 책을 읽었다. -1934년 8월 30일 일기에서 아무렴, 이보다 보람 있는 하루가 어디 있을까. 우리는 그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임을 이미 알고 있다. 같은 배를 타지 않았다고 해도 사연을 듣고 눈물을 흘릴 수 있다면, 그리고 이 꽃잎처럼 떨어진 소년들을 오래 기억할 수 있다면, 세상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내가 얼마나 좋아했든 책의 유산은 나의 의지와 다른 방식으로 남겨지곤 한다. 언젠가 다시 읽게 된다면 이 책의 어떤 지점을 새롭게 좋아하게 될까 무척 궁금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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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에 한 번은 책을 만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난다 출판사의 <읽어본다> 시리즈를 애정한다. 출간될 때마다 구입해 생각날 때마다 들춰보는데, 요즘 가장 자주 들춰보는 책은 단연 이 책이다. 이 책의 공저자인 강윤정 편집자 님에 대한 관심과 애정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는 공저자 두 분에 대한 정보 없이 그저 <읽어본다> 시리즈의 한 권이라서 읽었는데, 그동안 강윤정 편집자 님은 <편집자k>라는 북튜브를 시작해 멋지게 운영하고 계시고 <문학책 만드는 법>이라는 책도 내셨다. 남편인 장으뜸 대표님도 유튜브에 종종 출연하셔서 괜히 친숙한 느낌 ㅎㅎ <읽어본다> 시리즈의 다른 책들과 마찬가지로 독서일기를 엿보는 느낌이라 설레기도 하고, 이 시기에는 이런 책들을 읽으셨구나, 나도 이 책 읽었는데 하면서 혼자서 내적 친밀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읽었다. 이 시리즈 더 나왔으면 좋겠는데 신간 소식이 좀처럼 안 들려서 아쉽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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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전에 장정일의 독서일기를 재미있게 읽었던 기억이 있다.
최근에는 뜸하지만 한때는 소설을 많이 내는 작가였던 장정일. 동사무소에서 일하며 저녁엔 원없이 소설을 읽는 소박한 꿈을 가졌던 그의 독서, 그리고 독후감. 책을 읽고 나서는 자신만의 감상평을 써 두는 것이 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나도 한때 책을 읽고 줄거리를 쓰고 느낀점을 써 가면서 그 재미에 빠진 적이 있으까.
이 책은 의사인 저자가 남기는 독후감형식의 일기이다. 책을 만난다는 것도 하나의 에피소드고 일기를 쓸 수 있는 좋은 소재가 된다고 생각한다. 의사 선생님의 독후감. 이제 일독해 볼 것이다.
아래는 이 책에 대한 리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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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슬기 기자의 책소개를 신뢰하는 자로 읽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 내가 좋아하는 책에 관한 일기들은 따로 체크를 해두었는데 다른 사람은 이렇게 읽었구나 이런 부분들이 좋았구나 싶어서 재미있다
* 존 버거의 부고가 날아든 날 부부가 각자 존 버거의 책을 읽고 그에 관한 일기를 남긴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 아침부터 허망한 부고가 날아왔다. 오늘 존 버거가 햐년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화가이며 미술평론가이자 소설가이고 시인이었던 존 버거를 좋아하는 이들 모두가 슬퍼했다. 나 역시 하루종일 그의 부고 기사를 읽으며 보낸 하루였다. : 김유리
* 눈을 뜨자마자 접한 소식이 존 버거가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였다. 비현실적이었다. 불멸의 존재일 것처럼 강인하게 보였던 작가가 거짓말처럼 90세에 세상을 떠났다. : 김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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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석주 박연준 부부 귀엽다 압도적으로 박연준 시인의 챕터가 좋았다
* 작가나 유명인들이 죽으면 간혹 일기가 발간되는데, 읽으면서도 죄책감이 든다. 본인 허락 없이, 검열 없이 공개되는 글들. 실비아 플라스의 일기를 읽을 때도 괴로웠다. 보고 싶은 마음과 보고 싶지 않은 마음이 공존. 나는 몇 년 전에 상당히 많은 분량의 일기장을 종량제 봉투에 넣어 버렸다(시의 초고들이 있었기 때문에 아까웠다). 유명한 사람이 아니니 일기장이 세상에 공개될 일은 없겠지만, 유비무환! 작가는 작품으로만 평가받고 싶을 것이다. 이렇게 책 발간을 목적으로 쓰는 일기를 제외하곤, 누군들 일기장을 내보이고 싶겠는가? 그건 입던 팬티를 내보이는 일, 혹은 섹스 비디오가 공개되는 일과도 같을 텐데(그보다 더할지도 모른다). 비슷한 얘기로, 나는 샐린저를 사랑하는 독자로서 작가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그의 동거녀가 쓴 [호밀밭의 파수꾼을 떠나며]를 읽지 않았다. 사생활 노출을 극도로 꺼리는 샐린저에게 이 책은 재앙과 같았을 터. 혼자만의 의리로 죽을 때까지 그 책은 읽지 않겠노라 다짐했다. 말하길 원하지 않는 자의 다문 입술이 열리길 바라지 않는 것, 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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