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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시에는 세상살이가 생으로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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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사내가 돈 벌어다 주고 밤일 잘하는 것 말고아내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밥 짓고 국 끓이고 반찬 만들고청소하고 빨래 널고 음식물 쓰레기도 버렸지만이놈의 설거지는 참 못 할 일이다물기가 덜 말랐네 세제가 남아 있네 밥알이 살아 있네할 때마다 한 방씩 얻어맞으니다른 일은 다 해도 이놈의 설거지는 정말 못 할 일이다얼마 안 되는 내 생도 지금까지 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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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

사내가 돈 벌어다 주고 밤일 잘하는 것 말고

아내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일이 뭘까 생각하다

밥 짓고 국 끓이고 반찬 만들고

청소하고 빨래 널고 음식물 쓰레기도 버렸지만

이놈의 설거지는 참 못 할 일이다

물기가 덜 말랐네 세제가 남아 있네 밥알이 살아 있네

할 때마다 한 방씩 얻어맞으니

다른 일은 다 해도 이놈의 설거지는 정말 못 할 일이다

얼마 안 되는 내 생도 지금까지

옳게 설거지를 해본 일이 없는데

내가 무슨 그릇을 무슨 접시를

투덜거리는 사이 아뿔싸!

설거지통으로 미끄러진 접시가 쨍그랑 한다

 

술이나 처먹지 마, 이 인간아!


나는 이 화자만큼은 못 한다. 보충수업이다, 야자 감독이 해서 한주에 보통 두세 번은 늦게 들어가고, 집에 일찍 들어가도 다섯시에서 여섯시. 밥 차려주는 거 먹고 애들이랑 아홉시까지 놀아주다가 아내가 애들 재우러 들어가면 나는 다음날 수업준비를 하든가 책도 좀 뒤적이고 한다. 거실이 너무 난장판이다 싶으면 내가 가끔 치우기도 한다. 주말엔 아이들 데리고 놀러다니느라 집안일은 할 틈이 별로 없다. 집에 들어와서 아이들 씻긴 뒤엔 평일 저녁과 일과가 비슷하다.  애들한테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하면 몇 주에 한번 주말에 설거지를 일부러 한다. 지금이야 물기가 덜 말랐네 세제가 남아 있네 잔소리를 별로 안 듣지만 그래도 내 마음의 출발은 주말이나마 아내를 돕고 싶은 동기에서다. 전날 뭔가를 잘못했거나 저녁에 술 먹고 늦게 들어왔거나 할 때도 있다. 그럴 때 눈치를 보면서 설거지를 하다가 접시라도 깨트리면 잘해보고자 한 의도도 함께 박살이 난다. 허허허. 쨍그랑하면서 깨지는 그 마음과 그 사이로 순식간에 스며드는 아내의 날선 눈초리. 듣고 싶었던 말은 술이나 처먹지 마가 아니라 괜찮아? 다친데 없어?였겠지만... 평소에 어쩄으면 오죽하면 설거지를 하겠다고 나선 그 행동조차 곱게 보이지 않았을까.

 

<변압기>

비를 맞으며 붕어처럼 입 벌리고 변압기를 바라본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전기를 낮추는 일은 거룩하다

저 거룩한 기계를 슬픈 눈으로 바라본다

특고압 전류를 세상 살기 적당한 전류로 낮춰주는

저 거룩한 기계를 심장 한쪽에 꽁꽁 묶어 준 채 살고 싶다

세상에서 뒤처지거나 밀려날 때마다

고압의 욕심을 덜어 내주거나

무능력의 전압을 깨닫게 해준다면

이 거룩한 세상에서 비를 맞으며

더는 비처럼 울 일이 없을 것이니


우리가 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전압을 적절히 낮춰주는 변압기의 일은 참 거룩하다. 전기 없이 살 수 없으니 당연하다. 화자는 자기도 그렇게 적당히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살아가길 바라나보다. 사람들에게 비난받고 내가 하고 일에 대한 확신이 옅어질 때, 그것이 나의 욕심 때문인지 아니면 내가 무능력하기 때문인지를 변압기가 깨닫게 해준다면 비 맞는 것처럼 우는 일이 없을 테니까 말이다. 거꾸로 하면, 이 시의 화자는 세상에서 뒤쳐지거나 밀려나서 비 맞는 것처럼 아니 실제로 비를 맞으면서 울고 있을 지도 모른다. 오늘 내 마음이 그렇다. 선의로 한 일의 진의가 왜곡되고, 내가 한 생각과 상대가 한 생각이 다른 건데 내 생각이 틀렸다고 다수로부터 비난받고 뒷말을 듣는 상황. 이런 일이 지속되면 상당한 의심이 생긴다. 원래 내 판단이 옳다고 생각해 시작한 일이 사실은 스스로의 오류를 보지 못하고 편협한 시각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었는가, 세상 사람들이 다 그렇다고 하는데 왜 나는 다르게 생각하는가. 내가 틀렸던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심들.

 

<마흔 넷>

영혼은 퇴행하고

아픔은 진화했다


안도현의 <남방큰돌고래>라는 우화집에 "너와 나의 차이를 인정하고 섬세하게 알아주는 것, 그게 사랑이 아닐까?"라는 질문이 등장한다. 이 질문에 대한 물음이 "예"라면, 오늘 내가 있는 곳에는 사랑이 없었다. 다름에 대한 날선 공격들이 날아들었을 뿐이다. 학생부에 오래 있으면서 느낀 문제들을 나름의 방식으로 해결해가는 과정에서 느껴지는 아픔들은 방법과 경로가 다양해졌다. 진화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나이가 적거나, 나이가 많거나 그 아픔에 공감해주고자 하는 동료는 적어졌다. 퇴행은, 내 것일까, 아니면 그들의 것일까.

s*************k 2019.06.25.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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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소리로 말소리를 가리고 싶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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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코끼리가 풀을 먹는 방법> 스리랑카 코끼리가 풀을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스리랑카 코끼리는 먼저 혀를 돌돌 말아 입에 가득 풀을 물고한 발을 들어 툴툴 턴다그리고 개울에 씻은 다음 꿀꺽 삼킨다봐라코끼리도 더러운 것 털고 제 입에 넣는데,그보다 못한 인간 세상,식기 세척기처럼 더러움만 먹어 삼키는 입이 참 많다세제가 넘치게 씻어 담아 놓을 말語이 소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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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코끼리가 풀을 먹는 방법>

 

스리랑카 코끼리가 풀을 먹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가

스리랑카 코끼리는 먼저 혀를 돌돌 말아 입에 가득 풀을 물고

한 발을 들어 툴툴 턴다

그리고 개울에 씻은 다음 꿀꺽 삼킨다

봐라

코끼리도 더러운 것 털고 제 입에 넣는데,

그보다 못한 인간 세상,

식기 세척기처럼 더러움만 먹어 삼키는 입이 참 많다

세제가 넘치게 씻어 담아 놓을 말語이 소란하다


오래간만에 비가 온다. 스멀스멀 안개처럼 뿌연 비가 아니라 천둥을 동반한 굵은 비가 제법 시원스럽게 온다. 덕분에 바람도 시원하여 창문과 마주보는 교무실 문도 서로 활짝 열어두고 시원한 바람을 맞고 있다. 식도염 약을 먹느라 한동안 먹지 않았던 커피도 한 잔 끓이고 피아노곡도 유튜브로 틀어놓았다. 다른 선생님들은 다 수업에 들어갔고 나만 교무실에 남아있다. 어제는 3교시부터 7교시까지 연달아서 수업을 했다. 우연히 진도가 비슷해서 같은 내용을 다섯 번 수업했다. 아니, 내가 떠들면서 칠판에 쓰는 것을 아이들은 충실히 받아적고 옮겨적었다. 역시, 수업을 통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지 않거나 삶을 공유하지 않으면 수업은 서서히 말라간다. 지금 당장은 편할지 몰라도 결국은 그리 된다. 수업에서 선생은 혼자 떠드는 말을 줄여야 한다.

 

<스리랑카 코끼리가 풀을 먹는 방법>이라는 시를 읽으며 떠오르는 얼굴이 몇 있다. 뉴스를 장식하는 막말의 잔치. 굳이 대통령 아니더라도 공식적인 자리에서라면 평범한 성인이나 심지어 어린아이들에게도 쓰기 힘든 말들을 버젓이 국회에서 일한... 아니 국회에 적을 두고 있다는 사람들이 언론을 통해 내 보내는 것은 보는 사람의 기분 뿐만 아니라 아이들의 교육에도 참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기분 내키는 대로 말 했다가 나중에 상대가 뭐라고 하면 그제서야 슬그머니 '그런 의도가 아니었다. 본의 아니게 사과한다.'는 식으로 어물쩍 넘어간다. 상대에 대한 사과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내 말이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먼저 생각하는 마음 따위는 어디로 보내버린 걸까.

 

채만식의 소설 <소망(少妄)>(젊어서 미쳤다는 뜻임)에는 식민 치하의 현실을 눈뜨고 보기 힘들어 신문사를 때려치고 나서 기행을 되풀이하는 주인공의 남편이 등장한다. 그는 요양을 위해 시골 처가로 내려가자는 아내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시방, 세상이 통쨰루 사개가 벙그러지는 판인데, 부부구 자식이구 가정이구 그런 건 다 고담(古談)같아."

하도 막말과 공격과 비리, 부정이 만연하니 그들에게 배려, 공감, 점잔같은 가치를 갖다대는 건 정말 고담(古談)같아 허무해지기도 한다. 그렇다고 그들의 행위가 우리 삶을 규정하는 부분이 많으니 그저 다 무시할 순 없지만 오늘 같은 날은 시원한 비소리로 내 귀를 둘러 그들의 말소리가 들어오는 것을 막고 싶다.

s*************k 2019.06.18.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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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고플 때 먹을 것을 앞에 대한 듯 솔직한 시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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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짬뽕 집> - 박수서 혼밥이 편한 까닭은 밥상의 세상을 혼자 벌컥 벌컥 말아 먹을 수 잇어서다눈치 보지 않고 밥상의 질서를 좌지우지할 수 있어서다눈칫밥이 지겨운 날은 훌훌 털고 혼자 식당을 찾는다 부안군 문정로를 걷다가, 행정구역 명칭인 문정 앞에서 가슴이 아리다한때 도반이었고 한때 스승이었던 시인 문정그가 매몰차게 던져버린 세상을, 이 길을강아지풀 꼬리가 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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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물짬뽕 집>

 

- 박수서

 

혼밥이 편한 까닭은 밥상의 세상을 혼자 벌컥 벌컥 말아 먹을 수 잇어서다

눈치 보지 않고 밥상의 질서를 좌지우지할 수 있어서다

눈칫밥이 지겨운 날은 훌훌 털고 혼자 식당을 찾는다

 

부안군 문정로를 걷다가, 행정구역 명칭인 문정 앞에서 가슴이 아리다

한때 도반이었고 한때 스승이었던 시인 문정

그가 매몰차게 던져버린 세상을, 이 길을

강아지풀 꼬리가 흔들리도록 쿵쿵 지난다

당신 이름 너무 벅차 생각하지 않겠다며

굴삭기처럼 보도블록을 찍으며 앞만 바라보며 걷는다

 

삼선해물짬뽕밥에 소주 한 병을 비운 사이

말도 안 돼, 그가 하모니카를 불고 있다

당신 언제 내 앞에 앉아 있었던 거야?

 

방긋 웃으며 홍주 병을 건네주는 그가

오늘도 혼자 산에 올랐는지

붉은산꽃하늘소 한 마리를 머리에 이고 있다

s*************k 2019.06.1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