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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을 이고 살던 난설헌 스물일곱 생에 촛농이 되어 흐르다.
"촛불을 이고 살던 난설헌 스물일곱 생에 촛농이 되어 흐르다." 내용보기
온종일 지짐거리던 비는 그칠 새 없더니 어느 새 굵은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한다.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부는 바람은 지난한 삶을 살았던 여인의 짧은 생애를 훑고 지나가며 가슴에 멍울을 더 짙게 드리운다. 태어나서부터 영민하여 시 창작에 특별한 재능을 보인 초희는 8세의 나이에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라는 한시를 지어 주변의 어른들의 주목을 받으며 찬탄 속에 성장했다.
"촛불을 이고 살던 난설헌 스물일곱 생에 촛농이 되어 흐르다." 내용보기

  온종일 지짐거리던 비는 그칠 새 없더니 어느 새 굵은 빗방울을 뿌리기 시작한다. 창문을 세차게 두드리며 부는 바람은 지난한 삶을 살았던 여인의 짧은 생애를 훑고 지나가며 가슴에 멍울을 더 짙게 드리운다. 태어나서부터 영민하여 시 창작에 특별한 재능을 보인 초희는 8세의 나이에 '광한전 백옥루 상량문'이라는 한시를 지어 주변의 어른들의 주목을 받으며 찬탄 속에 성장했다. 유동적인 일상을 놓치지 않고 남다른 감성으로 포착하여 세인들의 가슴에 녹아드는 시를 지어 재능을 인정받았던 그녀는 어려서부터 많은 이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반듯하게 자랐다. 예리한 칼로 난도질한 새색시의 녹의홍상이 갈기갈기 찢어져 무참히 짓이겨진 것을 보고 불길함은 극에 달했다. 혼례를 앞두고 일어나는 돌연한 일들은 불길함을 떨쳐 버리기 힘들 정도로 간단없이 일어나 대사를 앞둔 집안의 공기는 무겁기만 하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우리의 인생과업 중에 가장 어려운 마지막 시험이다. 다른 모든 일은 그 준비 작업에 불과하다.’ 던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금언은 어떤 대상을 만나 사랑하며 행복하게 잘사는 일이 쉽지 않음을 드러낸다. 기품 있는 부모님의 잔잔한 사랑으로 금지옥엽처럼 자란 초희는 조선 시대의 여느 여성과는 달리 문장을 공부하며 자유로운 영혼으로 사유하는 시인으로 서 자리할 수 있었다. 오라버니 허봉의 문우들과 교류하며 시세계를 확장해 갈 무렵 만난 솟대 같은 남자 최순치는 서로에게 특별한 파문을 일으키는 상대였다. 엄동설한에 동백꽃으로 만든 화관을 초희에게 건네며 그녀를 연모하는 마음을 전한 그였지만 결혼은 지체 높은 안동 김 씨 가문의 김성립과 해야 하는 가혹한 운명에 놓이고 말았다.


  각기 다른 환경에서 나고 자란 남남이 한 이불 아래 보금자리를 틀고 생활하는 동안 숱한 갈등 속에서도 가정을 오롯이 지켜낼 수 있었던 것은 상대를 배려하고 존중하는 가운데 가능했을 것이다. 서로 눈을 맞추고 보살피며 배려하는 부부라면 어떤 어려움도 헤쳐 나갈 수 있으리라 여겼던 초희에게 결혼 생활은 그녀를 옭아매는 하나의 족쇄로 자리하였다. 남존여비 사상이 뿌리 깊게 박혀 있고 칠거지악의 인습이 철저히 지켜지던 유교적 이념은 조선시대에 글공부를 한 난설헌의 지적 갈망에 재갈을 물리는 것으로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는 화근(禍根)이 되었다. 남편은 과거시험을 앞두고 글공부보다는 기방 출입을 일삼아 번번이  낙방하자 그 탓을 팔자가 드센 며느리 때문이라며 시어머니 송 씨의 며느리 학대는 날로 더해 갔다. 색시의 빼어난 글재주에 비래 보잘것없는 자신의 처지에 열등의식이 강했던 남편은 아내를 대할 때마다 성정이 더욱 거칠어져 무례할 때가 많았다.


  가부장 중심의 가족관계를 중시하는 성리학적 이념체계 안에서 여성들 대부분은 집안을 지키고 후세를 양육하는 역할만을 강요받으며 집안의 지엄한 법도에 순종하며 살아야 했다. 서안 앞에 앉아 결혼 생활의 애달픔을 삭이고 시를 짓는 며느리를 달가워하지 않던 시어머니와 남편의 태도는 강경 일변도로 치달아 외로움과 곤고함으로 난설헌의 심신은 피폐해져갔다. 첫딸 소헌을 낳고 아버지 상을 치른 뒤 점점 야위어만 가는 딸의 모습에 마음이 쓰인 친정어머니는 사돈어른에게 딸이 둘째를 출산할 때까지 그녀의 외가에 머무르며 지낼 수 있게 해달라고 간청하였다. 몸종 덕실이 차린 기방에 들락거리며 과거 공부를 게을리 하던 남편 성립은 아내 눈치 볼 필요도 없이 욕망에 탐닉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던지 훗날 그녀는 성립의 아들을 낳고 금실로 개명한 것처럼 야욕을 실현해 갔다. 


  진흙에서 자라도 깨끗한 자태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연꽃 같은 도도함은 난설헌의 오라버니 허봉의 삶에서도 가늠할 수가 있다. 한 번 가면 쉽사리 나올 수 없다던 갑산으로 유배를 떠난 오라버니의 안부를 물어 임영에 머물고 있는 난설헌을 찾아 온 최순치는 각기 다른 삶을 잇고 있지만 그녀를 향한 연모의 정은 쉽사리 지울 수 없는 멍에로 남아 있었다. 불한당에 맞서 난설헌을 구하려던 일이 오해를 불러 또 다른 화를 초래했지만 의연히 대응하기로 마음먹은 그녀는 둘째 제헌을 낳은 뒤 얼마간의 조리를 끝낸 뒤 시가로 향하였다. 냉랭한 시어머니의 불호령은 담장 안으로 발을 들여놓을 수 없는 형벌로 이어졌고, 손자들과 며느리를 격리하여 그녀 스스로 자멸의 길을 걷도록 방조했다.  


  아무것도 삼키지 못하고 고열에 시달리다 세상을 떠난 딸에 이어 아들까지 이승을 떠나자 더 이상 삶의 존재 이유를 찾지 못한 채 허망함에 젖어 곡기를 끊고 죽음을 자초하는 생활을 이어갔다. 지금껏 조선 땅에 여자로 태어난 것과 허랑한 남편 성립을 만난 것을 원망하며 살아 온 적도 있지만 스스로 죽음을 결정지었을 때는 이 모든 것들을 자신의 운명으로 돌리고 애착과 미련에서 벗어나려 했다. 사유의 증표로 고이 간직하고 지냈던 거울을 지인들에게 나누며 고단한 삶으로 이어진 결혼 생활을 청산하기에 이른다. 시적 감성으로 여섯 살이 많은 누이와 소통하며 교분을 쌓아왔던 허균은 누이의 마지막 가는 길에 함께 하며 그녀의 삶을 애도했다.

  

  적절한 때에 누구를 만나 지금껏 살던 집을 떠나 낯선 공간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여 가정을 이루는 일은 집안의 중요한 일 중 하나다. 가부장적인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난설헌의 천재적인 재능은 혼례를 치름으로써 철저히 버림받고 짓밟혀 그녀의 삶에 걸림돌로 자리했다. 시어머니 송 씨는 고졸한 여성의 단아한 음전함을 근접하기 힘든 냉정한 이로 몰아서는 부부의 의를 회복하기 힘든 요인으로 꼽고는 며느리를 학대해 왔다. 송 씨같은 시어머니는 유교적 이념을 따르던 봉건적인 사회에 기생해 살며 또 다른 가해자로 여성 위에 군림하는 이로 비춰진다. 이승에서 못다 한 것들을 향한 아쉬움을 거두고 객사한 아버지와 오라버니, 어린 자식을 가슴에 묻고 살다 한두 장 떨어지는 목련 잎처럼 생을 마감한 그녀의 스물일곱 해를 생각하니 처연함에 붉은 눈물이 흐른다. 


* 나는 리뷰어다 이벤트에 참여합니다.




n*****9 2011.11.09. 신고 공감 13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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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슬픔속에 피어나고.....'난설헌'
"아름다움은 슬픔속에 피어나고.....'난설헌'" 내용보기
아름다움은 근원적 슬픔을 안고 있다. 고고하고도 높아 쉽사리 곁을 주지 않으며 眞의 병칭이기에 설 곳을 찾기조차 힘들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을 타고난 사람은 숙명적인 고독을 겪어야 한다. 그 아픔이 어떠하든 아름다움을 소유한 대가는 치러야만 했다.   허난설헌이 그러했다. 그녀의 기상은 드높았고 감정은 섬세했으며 기량은 출중했다. 글을 지으면 시가 되었고 시 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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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움은 근원적 슬픔을 안고 있다. 고고하고도 높아 쉽사리 곁을 주지 않으며 眞의 병칭이기에 설 곳을 찾기조차 힘들다. 그러므로 아름다움을 타고난 사람은 숙명적인 고독을 겪어야 한다. 그 아픔이 어떠하든 아름다움을 소유한 대가는 치러야만 했다.

 

허난설헌이 그러했다. 그녀의 기상은 드높았고 감정은 섬세했으며 기량은 출중했다. 글을 지으면 시가 되었고 시 안에는 세상에 없는 것들이 들어 있었다. 그녀는 그 속에서 뛰놀았고 세상 모든 시름을 잊었다. 그러니 인고의 세월은 어찌보면 당연했다. 아름다움에 예술적 능력까지 겸했으니 그녀의 아픔은 천형에 가까워야 했다. 

 

당해야 했다. 피할 수는 없었다. 내 아픔이 있어야 타인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기에 그 시간들은 통과의례에 가까왔다. 그러나 아무리 지상계에 내려온 신선을 자처한들 목숨이 붙어있는 한 그녀는 지상의 여인이었다. 지상의 법칙을 어길 수 없었으며 지상의 규례를 벗어날 수 없었다. 족쇄일망정 져야 했고 멍에일망정 매야 했다. 

 

그런 삶이 기다리고 있다고는 차마 믿을 수도, 예측할 수도 없었다. 초희. 어여쁜 아이였다. 아버지 허엽과 오라비 허봉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고, 남녀의 유별함을 알게 됐을 때는 최순치라는 남자의 애끊는 사랑도 받았다. 부족함이 없었다. 차라리 부족함이 있었으면 좋았을 것을. 넘치면 부족함만 못하다는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과한 사랑은 결국 그녀에게 치명적인 독이 되고 말았다.

 

그녀의 재능만큼 그녀의 의식도 시대를 뛰어넘었으면 좋았으련만 그러질 못했다. 그녀의 지식만큼 삶의 지혜가 뛰따랐으면 좋았으련만 그녀의 처세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섬세하지 말고 예리했어야 했다. 감지력이 뛰어나지 말고 조종력이 뛰어났어야 했다. 울타리를 넘어서야 했다. 몸은 갇혀있어도 의식은 그래야했다. 그러나 무리였다. 그런 의식을 감당하기엔 너무 고왔고 여렸다. 타고나길 그랬다. 어쩔수 없었다. 피끓는 모정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자식인 소헌과 제헌을 시어미 송씨의 횡포로부터 보호해주지 못해 가슴에 묻어야 했다. 뻔히 알고도 남편 김성립의 사랑을 쟁취하지 못했다.

 

그녀는 세상살이에 젬병이었다. 똑똑한 바보였다.  현실을 지워내는 방법은 하나 밖에 없었다. 가장 낮은 자리의 인간이 되어 그 시간들을 감내하는 것이었다. 그외에는 다른 도리가 없었다. 그녀의 슬픔은 오직 글로만 표현돼야 했다. 그녀의 시엔 아버지와 오라비를 떠나보낸 아픔과 자식 잃은 어미의 애끓음이 가득했다. 세월이 흘러도 녹아지지 않는 마음 속의 얼음은 이제 서늘한 덩어리로 그녀의 가슴을 하염없이 찌르고 있었다.

 

이제는 되었다. 그 이상의 아픔은 필요치 않았다. 모든 것을 놓아도 되는 시간이 되었다. 이제 그녀는 날라가면 되었다. 그녀가 지상의 삶을 마무리해야만 그녀의 시가 새 생명을 얻을 수 있었다. 그녀의 시는 그녀 대신 사람들을 만날 준비를 하고 있었고, 그녀가 세상을 떠났을 때 그녀의 시는 피어나기 시작했다. 

 

내가 만난 그녀는 이러했다. 시대의 그물에 갇힌 탁월한 여인이었고, 시 하나를 붙잡고 주어진 생을 마감한 여인이었다. 좋은 남편만 만났어도 그런 삶을 살지 않았을텐데...... 그러나 그 또한 그녀의 인생이었다. 불행한 인생이 시의 질료가 되어야 했다. 시인의 숙명을 타고났기에 어쩔 수 없었다. 생과의 불화, 그리고 시대와의 불화는 피할 수 없는 길이었다. 

 

허난설헌의 시는 이같은 가시밭길 속에서 탄생했다. 이제 그녀의 시는 시간을 뛰어넘어 불행한 여인이자 어미였던 그녀의 스물 일곱 해를 자유로이 노래하고 있다. 오늘 그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미 영롱한 노래가 되어 이곳을 비추고 있다.  

 

 

 

d*********2 2012.03.07. 신고 공감 9 댓글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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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만 더 용기를 가졌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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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대부분 남성 중심적이다. 또한 역사는 권력을 쥔, 힘을 가진 사람들이 의해 포장되어진 선물 포장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국사라는 과목을 배울 때 만해도 나는 오로지 한 가지 시선으로 세상을 평가했고, 한 가지 정답만이 옳다고 배웠다. 역사적 사건이나 사실을 다른 방법으로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하지만 역사를 배우면서 느끼는 것은 이렇게 다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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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대부분 남성 중심적이다. 또한 역사는 권력을 쥔, 힘을 가진 사람들이 의해 포장되어진 선물 포장과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국사라는 과목을 배울 때 만해도 나는 오로지 한 가지 시선으로 세상을 평가했고, 한 가지 정답만이 옳다고 배웠다. 역사적 사건이나 사실을 다른 방법으로 다양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 없었다. 하지만 역사를 배우면서 느끼는 것은 이렇게 다양한 시선과 다양한 입장이 있다는 것에 놀라게 된다. 한 사건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입장은 때론 협동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치열하게 논쟁을 벌일 꺼리를 만들기도 한다. 최근 들어 읽게 되는 역사 소설은 딱딱하고 무딘 나의 머리를 신선하게 자극받게 하고, 다시금 그 시대를 돌아보게 한다.

 

내가 기억하는 우리 역사의 여성은 많지 않다. 기껏해야 고종의 아내이면서 비극의 주인공이 된 명성황후, 이이의 어머니였던 신사임당, 기생 황진이, 어린 아들을 대신해 수렴 청정했던 문정황후, 선화공주, 논개 그리고 여시인 허난설헌 정도? 이후 드라마나 책을 통해 알게 된 미실이나 정의 공주, 사택비등을 제외하면 많지 않은 숫자임에는 틀림없다. 추측컨대 조선이라는 나라를 거치면서 여성들의 지위나 일이 축소되고, 그 앞 시대 기록들을 유교 사상에 맞게 재편성 했을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 조선이란 나라에 태어나 자신의 “끼”를 제대로 펼치지 못한 그녀를 만난다는 것은 아픔이자 국가적 손실이란 생각이 들었다.

 

비교적 자유로운 가풍을 자랑하는 허엽의 셋째 딸로 태어난 초희(허난설헌)는 당대 뛰어난 문인으로 평가 받던 허성, 허봉을 오빠로 두었고 밑으로는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을 동생으로 두었다. 딸에게도 똑같은 교육 기회를 주었던 집안에서 자란 초희에게 사상적으로 보수적인 가풍을 지닌 안동 김씨 김성립의 집안은 힘겨움 그 자체였는지 모르겠다. 여자가 글을 읽고 쓴다는 것에 심한 거부감을 느꼈던 시어머니와 겉으로만 도는 남편 사이에서 초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역시 글을 쓰는 일이었을까?

 

어떤 책은 읽는 내내 기분이 좋아지고 어떤 책은 읽는 내내 마음이 따스하고 어떤 책은 읽는 내내 행복해 진다. 하지만 이 책은 읽는 내내 마음이 답답했다. 천재성을 가지고도 발휘할 수 없고, 능력이 있음에도 표현 할 수 없는 시대에 산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우울해진다. 그녀가 조금만 더 융통성 있고 조금만 더 나긋나긋 했다면 조금 이라도 덜 힘든 삶을 살았을까?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라는 말처럼 조금만 덜 고고했다면 그 인생이 편안해 졌을까? 예전에 그런 말이 있었다. 며느리 될 사람은 남자보다 한 단계 떨어지는 집안에서 데려와야 한다고 했다. 잘난 여자는 남편의 앞길을 막는 수가 있다고.. 물론 지금은 더 좋은 집안과 더 많은 돈을 위해 서로 눈치를 보는 세상이지만 그때만 해도 잘난 여자는 남편의 앞길을 막는 결코 환영 받지 못한 존재였던 것이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하고, 여자의 목소리가 담을 넘어가면 안 된다는 남존여비의 금기와 제재가 여자들의 입에 재갈을 물렸다. 여자가 글을 밝히면 팔자가 드세다는 속설 또한 여자들의 지적인 갈망에 족쇄를 채웠다. (p 58)

어머니 김씨가 딸의 어깨를 얼싸 안았다. ‘초희야. 너의 영민함도, 너무 다정함도, 지나친 나약함도 이 세상에 배겨나지 못하는 것을 어쩌자고 머릿속에 촛불을 켜고 산다더냐.’

(p 341)

 

시댁 집안 그 지붕 아래 어디에도 초희를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자유롭게 글을 쓰고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행복한 공간이 없다. 가시방석과 같은 눈치와 눈초리를 피해 그녀가 제대로 숨을 쉴 수는 있었을까? 시쳇말로 그녀는 우울증으로 세상을 등진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본다. 사랑하는 두 아이를 먼저 보내고, 시도 쓸 수 없는 그녀를, 이 세상에 남아 있으라고, 제발 살아 있으라고 손짓한 사람이 있었을까? 아마 없었을 것이다. 적어도 세상을 등질 수 있다면 영혼만큼은 자유로워질 것이라 믿었을 것이다. 그렇게 새처럼 훨훨 날고 싶었을 것이다. 시대를 잘못 만났다라고 이야기하기에 그녀의 삶은 안타깝고 슬프고 애련하고 아름답다.



YES마니아 : 로얄 이달의 사락 k*****3 2012.02.21. 신고 공감 9 댓글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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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작으로 고와 서러웠던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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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의 삶은 무엇일까? 어린 시절에는 신사임당의 동상이 학교에 있었다. 율곡 이이를 훌륭하게 길러내고 남편을 잘 다독여 벼슬길로 이끈 우리나라 현모양처의 귀감이 되는 여인. 그 여인의 동상에서, 학교에서 집에서 어른들의 말씀 속에서 어린 계집 아이는 현모양처의 삶이 본받아야 하는 삶이라고 배웠었다. 자의식이 강해지며 자아가 형성되고, 책을 통해 세상에 대한 비판력이 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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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인의 삶은 무엇일까? 어린 시절에는 신사임당의 동상이 학교에 있었다. 율곡 이이를 훌륭하게 길러내고 남편을 잘 다독여 벼슬길로 이끈 우리나라 현모양처의 귀감이 되는 여인. 그 여인의 동상에서, 학교에서 집에서 어른들의 말씀 속에서 어린 계집 아이는 현모양처의 삶이 본받아야 하는 삶이라고 배웠었다. 자의식이 강해지며 자아가 형성되고, 책을 통해 세상에 대한 비판력이 형성되면서 현모양처를 강요하는 사회에 의문과 반감을 형성하기 전에는 잠시나마 그게 여성의 삶인 줄 알았다.

 

 아직 많이 부족한 독서량이지만 책을 통해 동서양의 다양한 시대를 간접적으로나마 접해왔고, 다양한 시대에 대해 접하면서 그 곳에 담긴 인물들의 삶도 접하게 되었다. 사료가 많은 편이라 가장 많이 부각되는 조선의 이야기를 접할 때 고려 시대까지와는 달리 집안에 갇혀 버린 여성의 삶이 안쓰러웠고, 조선 중기 이후 유교 사회가 확고하게 정착될 수록 권리를 빼앗기고 집안에서 이름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여인들의 삶이 안쓰러웠다. 황진이와 같은 화려한 기생들의 삶은 그 답답한 틀을 벗었다 하나 해어화로 살아가는 또 하나의 서글픈 삶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들의 삶의 서글픔도 허난설헌이라는 인물의 삶을 단편적으로 접했을 때 느껴졌던 애처로움과 알 수 없는 분노를 이끌어내지는 못했다. 시라는 문학 장르에 관심을 가지지 않던 소녀 시절에 그녀를 처음 접한 것은 고등학교 문학 교과서였다. 익숙하지 않은 중세 국어로 쓰여진 가사의 내용보다 그녀의 서러운 삶에 대한 짧은 설명이 더 기억에 남았다. 손곡 이달에게 배운 학식, 허균이 칭찬하고 아낀 누이의 글 솜씨, 서러운 시집살이와 이른 죽음. 그 애처로운 이야기들이 소설 <난설헌>에 담겨 있었다.

 

 안쓰럽고 아까운 여인이었지만 허균의 누이라는 인식이 더 강했던 난설헌, 허초희가 삶이 녹아 있었다. 동인의 수장인 허엽의 막내딸인 그녀가 꽃다운 열 다섯이라는 나이에 혼인을 하게 되었을 때 그녀는 고아한 아름다움과 품위를 지닌 학식과 기품을 지닌 여염집 규수였다. 안채의 담벼락 안에서 조용히 자라왔을 사대부의 딸이지만 당시 시대에 드물게 개방적인 부모님 덕에 스승을 두고 학문과 시를 논할 수 있었기에 성숙했던 처녀는 자신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는 사람이 있음에도 곧 부부의 연을 맺게 될 사람이 자신을 아껴주었으면 하는 것만 바라는 여인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혼사는 자꾸만 범상치 않은 일이 생기고 남편은 그녀의 고아함을 어려워 한다. 더불어 시댁에서의 삶은 자신을 미워하는 시모로 인해 가시방석에 앉은 듯 불편하고, 살갑게 챙겨주는 사람 하나 없는 낯선 곳에서의 삶은 그녀는 힘들게 한다. 시문과 책으로 위안을 삼고 싶지만 그런 그녀의 모습은 남편에게는 자격지심을, 시모에게는 미움을 이끌어내니 그녀의 삶은 <규원가> 속에 드러나듯 바깥으로 계집질하는 남편을 두고 속 끓이며 인내해야 하는 서러운 삶이 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서러운 삶 속에서 친정 아비의 죽음, 친 동기인 오라비의 유배와 죽음, 그녀 속으로 낳은 아이들의 죽음은 그녀에게 삶에 대한 기력마저 점차 앗아가니 서러운 이승과의 인연을 미련없이 털어내게 한다.

 

 이 소설 속 난설헌이라는 인물을 만나며 떠오른 시구가 있다. <승무>의 '정작으로 고와 서러워라'라는 구절이 머릿 속에 계속 맴돌았다. 그녀의 모습을 이보다 더 잘 표현하고 있는 구절이 어디 있으랴. 음전하다는 말이 더 어울릴 규방 아씨 시절에 보였던 차분한 밝음과 은은한 생명력이 혼사 이후 점차 사그러들어 처연한 아름다움으로 바뀌는 모습에서, 자신에게 일어나는 모든 부당함에 혼자 속울음 삼기는 모습에서 곱기에 서러운 여인의 모습이 담겨 있었다. 차라리 학식이 없었으며, 아름다움이 없었으며 덜 서러울 수 있었으련만, 여염집 아낙처럼 바가지라도 긁거나 힘들다 투정할 주변머리라도 있었으면 덜 아팠으련만 그녀의 고고함은 그조차 허용하지 못했으니 속이 문드러지는 여인의 삶이 어찌 이보다 더 잘 표현될 수 있을까.

 

 소설 속 그녀는 혼사 전에는 '초희'라는 이름이 있으나, 혼사 후에는 '난설헌'이라는 당호도 없이 '그미'일 뿐이다. 조선 시대 담 안에 갇혀 있던 수없이 서러웠던 여인들이 그러했듯이....



YES마니아 : 플래티넘 w******6 2012.02.10. 신고 공감 4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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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꽃잎처럼 스러져간 한 많은 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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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TV에서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았다.한 여류 시인에 대한 이야기였고, 금방 빠져 들게 되었다.우리에게 홍길동의 저자로 알려진 허 균의 누이 난설헌 허초희의 이야기 였다.문인으로서의 깊이나 능력으로 결코 동생 균에게 처지지 않았던 난설헌, 일찍이 그녀의 삶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이 책 '난설헌'에 드러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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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래 전 TV에서 다큐멘터리 한 편을 보았다.
한 여류 시인에 대한 이야기였고, 금방 빠져 들게 되었다.
우리에게 홍길동의 저자로 알려진 허 균의 누이 난설헌 허초희의 이야기 였다.
문인으로서의 깊이나 능력으로 결코 동생 균에게 처지지 않았던 난설헌, 일찍이 그녀의 삶이 순탄치 않았다는 것은 익히 알고 있었다. 아니 알고 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책 '난설헌'에 드러난 초희의 삶은 비참함을 뛰어 넘는 암흑 그 자체였다.
조선이라는 나라에서 여인으로 산다는 것의 아픔, 남자보다 더 뛰어난 능력을 가졌지만 드러내지 못하고 감추고 살아야만 하는 여인네의 지난한 삶이 펼쳐진다.

소설은 난설헌의 이야기를 주축으로 비운의 운명을 맞이한 허균과 그 일가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또한 서얼 출신인 난설헌의 첫사랑을 통해 신분제의 폐해를 고발하기도 한다.

이야기 속에서 작가는 조선시대 신분제의 폐해와 그로 인해 고통 받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멀리서 바라만 봐야 하는 아픔은 또 어떤가?
그 때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축복받은 시대에 살고 있는가.
우리에게 주어진 자유와 권리를 더 아름답게 더욱 민주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k*****m 2012.02.16. 신고 공감 4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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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세한 묘사력이 일품이었지만, 난설헌에 대한 뻔한 묘사-난설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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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인 예술가 중에는 삶이 불행하고, 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인물이 적지 않다. 하늘로 부터 받은 재능으로 인해 범인들과 함께 살아가기엔 부대꼈던 것일까.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의 삶과 작품은 더  특별해 비장감이 감도는 것 같다.   조선시대 여류시인으로 꼽히는 허난설헌의 경우야 말로 이런 경우가 아닐까. 섬세한 감성과 문재를 타고난  그녀는 그 재능을 오래오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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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적인 예술가 중에는 삶이 불행하고, 또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인물이 적지 않다. 하늘로 부터 받은 재능으로 인해 범인들과 함께 살아가기엔 부대꼈던 것일까.  하지만 그렇기에 그들의 삶과 작품은 더  특별해 비장감이 감도는 것 같다.

 

조선시대 여류시인으로 꼽히는 허난설헌의 경우야 말로 이런 경우가 아닐까. 섬세한 감성과 문재를 타고난  그녀는 그 재능을 오래오래 꽃 피우고 빛을 발하기 보다는 오히려 뛰어난 여성이었기에 그녀는 조선의 남성중심 사회에 숨통이 조여오는 답답함을 느꼈을 것이다.

 

'난설헌'은 그렇게 조선의 가부장제에 시들어갔던 난설헌의 모습을 담고 있다. 함이 들어오는 날에서 시작하는 것에서도 서른 해도 안되는 그 짧은 그녀의 생애 중 절반을 떼어내고 혼인 이후 난설헌의 삶에 집중하고 있다. 그녀가 어떻게 시심을 북돋우고, 작품을 남겼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메말라가는지를 그려낸 셈이라고 할까.

 

허초희, 난설헌에 관한 소설이나 책들이 요즘 제법 나오고 있는데, 나는 요즘 좀 불만인 것이 난설헌을 다루는 시각이 너무 천편일률적이라고 할까. 조선의 가부장제의 희생자 그 정도 선에서 머무르는 작품이 대다수인 것 같아서.

 

'난설헌'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녀는 명문가 딸에 혼인 전에는 여식에게도, 여동생에게도 학문을 막지 않고 지원해주는 당시로선 개방적인 집안에서 여덟살 때 이미 문재를 떨쳤다. 김시습에 버금가는 천재성을 드러냈고, 그렇기에 그녀의 이름은 장안에서 제법 문명이 자자했던 모양이다.

그러다 안동 김씨 김첨의 아들 김성립과 혼인한 이후에 그녀의 운명을 급변하게 된다. 시어머니 용심이 뻗친  송씨에게 제제 당하고 압박받으면서 그녀는 시름시름 사위어 갔던 것이다.

남편은 자신보다 뛰어난 아내를 멀리하고 밖으로 돌았고, 그러는 사이 그녀는 어렵게 얻은 아이를 앞세우는 가슴찢어지는 슬픔에 몸부림쳐야 했다. 그러면서 내면이 허물어져갔고, 몸이 무너졌던 것이다.

 

그런데 그 내용이 전부다. 내면으로는 공감되지 않았지만, 그녀는 반발하지 않았고, 체념에 가까운 모습을 보였다. 밖으로 나도는 남편과 극성맞을 정도로 자신에게 질투와 경계를 보이는 시어머니 송씨.

 

솔직히 고백하자면  '난설헌'을 어렵게 어렵게 읽었다. 작품 스타일이 워낙 내 취향하고는 거리가 멀었던 탓이다. 이 작품의 가장 큰 미덕으로 꼽히는 것이 섬세한 묘사력인데, 심리묘사와 외면 묘사는 단어 하나하나에 문장 한줄 한줄 모두 심혈을 기울여 언어를 조탁하고 가다듬은 정성이 돋보였다.

하지만 이야기가 선명하고 힘있게 진전되는 걸 선호하는 나로서는 행동은 없고 묘사만 보여서, 힘없어 보이는 전개에 그다지 끌리지 않았다.

 

거기에 난설헌은 집안에 미모에 문재에 모든 것을 갖춘, 요즘말로 엄친딸로 그려놨지만, 그러느라 그녀는 평면적인 캐릭터로 죽어버렸다. 움직임은 있는데 활동이나 행동이 없고, 오로지 시어머니만 심술 고약한 노인네였다.

주인공은 천상의 선녀로 설정해놓고, 시어머니는 화근이었다. 남편 김성립은 잘난 아내에게 열등감인지 부담감인지 아내의 콧대를 꺾으려 들었고, 그 가운데 난설헌은 오로지 가련한 희생자역할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시인으로서의 난설헌이 부각이 된 것도 아니었다.  혼인 전 그렇게  똑똑하고 문재가 있던 그녀가 혼인 후에는 그저 불행만 하다 요절한 것이다. 그러는 사이 난설헌 캐릭터는 생동감도 생명력도 다 잃어버렸던 것이다. 아니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성격이 너무 단면적으로 그려졌다. 선인 아니면 악인 선과 악으로 이분화됐다고 할까.

 

이 책 뒤편에는 난설헌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에 대한 소개가 첨부돼 있다. 그런데 그 글에서 남편 김성립의 의외의 면모를 보게 됐다. 그는 난설헌이 죽은 그 해에 과거에 급제했다.  더 놀라운 사실은 임진 왜란때 의병을 일으켜 왜군과 싸우다 전사했다는 것이다. 아내의 재주를 받아주지 못했던 못난 사내로 각인되다 시피했던 김성립이었는데, 이렇게 기개가 있는 인물이었다니, 어떻게 보면 그 역시 아내로 인해 졸장부에 매정한 남편이라는 오명을 씌게 된 것은 아니었을까. 그럴 가능성은 없었을까.

 

워낙 불행한 시인이었기에 이런 섬세한 묘사가 주인 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도 주인공의 운명에 어울려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운명이 새드 엔딩이라는 결과는 다 알고 있는 가운데 이야기가 너무 뻔하게 흘려가버렸다. 우리가 알고 있는 천재에 요절한 젊은 여성 시인 난설헌의 이미지에서 전혀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큰 작품이었다.

 

e****0 2013.09.27. 신고 공감 4 댓글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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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난설헌 - 최문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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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읽는 내내 왜 그리 살아야만 했을까를 되뇌게 만든 그녀의 일생이었다. 그 당시 여자들은 다 그렇게 살았다라는 정당성을 부여해 보지만 그래도 답답했다. 차라리 그녀가 혼인하지 않았다면 그녀가 그냥 일반적인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녀는 오히려 더 행복했을까. 높은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자유롭게 글을 배우고 글을 읽고 글을 쓰던 그녀였다. 그러다 혼인이라는 것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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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읽는 내내 왜 그리 살아야만 했을까를 되뇌게 만든 그녀의 일생이었다. 그 당시 여자들은 다 그렇게 살았다라는 정당성을 부여해 보지만 그래도 답답했다. 차라리 그녀가 혼인하지 않았다면 그녀가 그냥 일반적인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 그녀는 오히려 더 행복했을까. 높은 양반 가문에서 태어나 자유롭게 글을 배우고 글을 읽고 글을 쓰던 그녀였다. 그러다 혼인이라는 것으로 인하여서 그 모든 것에 제약이 걸렸을 때 그녀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드러내 놓고 반항을 하지는 않았다. 한다고 달라질 것도 없었지만 괴팍한 시어머니 밑에서 글을 쓰지 말라는 명령이 떨어진 그 집에서 그녀는 글을 썼다. 불을 켜고 글을 쓰다가 걸려서 혼이 난 적도 있지만 그 무엇도 그녀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렇다고 그녀가 꾸준히 자유롭게 글을 쓴 것도 아니었다. 눈치를 봐야만 했던 것이다. 남편이라도 나서서 그녀의 편을 들어주었다면 오히려 그녀는 글을 쓰지 못해도 행복했을 것이다. 그 당시에는 다들 그렇게 부모끼리 짝을 맺어주면 결혼을 했던 것이라고는 하지만 처음부터 그녀를 고깝게 생각했던 사람이 남편이었다. 자신은 계속 과거에 떨어지는데 글을 쓰는 여자가 불만스러웠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냥 그 혼약을 안하겠다고 하면 되었을 것을 무에 그리 결혼을 하려고 했을까. 그것은 그녀의 배경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자신에게 무언가 돌아올지도 모른다는 그런 높은 가문이었기에 그것을 노리고 그는 결혼을 하겠다고 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기녀들을 만나고 다니면서 그녀에게는 조금의 정도 없는 그런 사람을 남편이라고 모시고 살았어야 하니 그녀는 글의 자유도 없었지만 사랑도 받지 못하는 그런 생활을 했다.


차라리 아이라도 있었으면 더 낫지 않았을까. 유산으로 인해 잃어버러고 겨우 얻은 아이는 첫딸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제대로 키워보지도 못했고 또 나은 아들은 아들이라고 해서 시어머니가 데리고 가버렸다. 그렇게 데려갔으면 잘 키워주기나 할 것이지 하루 이틀 사이로 죽어버린 아이들. 그녀의 인생에 이렇게 태클을 심하게 거는 신도 참 무심하다라는 생각이 드는 그런 시점이다. 


그래도 그녀가 남긴 작품이 어느 정도는 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만약 그녀가 열다섯 살에 시집을 가지 않았다면 그녀는 훨씬 더 많은 작품을 훌륭한 작품을 남길 수 있지 않았을까. 한번 뿐인 그녀의 인생이 참 애닳고 쓸쓸하다.



이달의 사락 b***8 2025.08.30.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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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련하고 아름다운 난설헌 그녀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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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스물일곱 짧고 불행한 삶을 살다 간 여인 자신의 고독과 슬픔을 시로 달래며 섬세한 필치로 노래한 시인 호는 난설헌 자는 경번 이름은 초희 역사책에서 배웠듯 허균의 누이이며 신사임당과 함께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뽑히는 그녀 난설헌 그녀는 명종 18년 강릉에서 태어났다 자유로운 가풍속에서 성장하며 당대의 시인으로 손꼽혔던 손곡 이달에게 동생인 균과 함께 시를 배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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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스물일곱 짧고 불행한 삶을 살다 간 여인

자신의 고독과 슬픔을 시로 달래며 섬세한 필치로 노래한 시인 호는 난설헌 자는 경번 이름은 초희

역사책에서 배웠듯 허균의 누이이며 신사임당과 함께 최고의 여류시인으로 뽑히는 그녀

난설헌 그녀는 명종 18년 강릉에서 태어났다 자유로운 가풍속에서 성장하며 당대의 시인으로 손꼽혔던 손곡 이달에게 동생인 균과 함께 시를 배웠고 여덟 살 때 지은 빅옥루 상량문으로 천재적인 시재를 발휘했다 그러나 15세 때 안동김씨 가문의 김성립과 혼인하면서 삶이 삐걱대기 시작했다

 

김성립과 혼인하기 전 난설헌의 집안을 맨 먼저 보여주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분주한 난설헌의 집 혼인을 바로 얼마 앞두고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천둥번개가 치고

함으로 들어온 녹의 홍상이 갑자기 없어지더니 그날 녹의 홍상이 찢겨진 채로 발견된다

방에는 아무도 들어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일이 벌어지자 손님이 최순치를 의심하나 그또한 범인이 아니었다 어쩌면 심증만 있을뿐 물증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런 일이 있은 후 혼례를 치른날 신랑을 처음 본 초희 그녀는 신랑 김성립이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했다 하지만 그는 초희의 기대만큼은 아니었다 유약하고 그저 술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한량에 불과했다 김성립은 신방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침착하지 못했다 아마도 초희 집안의 분위기 때문이었으리라 학문과 학덕 모두를 갖춘 그런 집안이니 말이 안동 김씨 집안 사람이나 김성립 그는 난설헌에게는 부족한 신랑감이었다

 

혼인 전날부터 불길한 일들이 계속 벌어지더니 초희는 그이 집으로 들어간 후 하루도 편할 날이 없었다

남편과의 불화 시어머니와의 갈등 게다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두 아이를 먼저 보내야만 했다

게다가 아버지는 객사하더니 오라비인 허봉마저 유배후 객사했다 집안에 우환이 겹치고 남편은 첩실까지 들이더니 난설헌을 게속해서 힘들게 했다 그나마 몸종 단오와 시숙모인 영암댁때문에 버티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린 딸과 아들을 먼저 떠나보내는 고통까지 껴안고 살았으나 그녀는 스물일곱 나이에 꽃잎이 지듯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가 세상을 떠난 이듬해, 동생 허균에 의해 난설헌집 이라는 시집이 출간되며 그녀의 시는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난설헌에 매료된 명나라 시인 주지번에 의해 중국에서도 허난설헌집이 출간돼 큰 인기를 끌었다 18세기에는 일본엑자ㅣ 그녀의 시가 전해져 널리 애송되었다

 

그녀에게는 세가지 한이 있었다 여자로 태어난 것, 조선에서 태어난 것, 그리고 남편의 아내가 된것

앞에 두가지는 그렇다 쳐도 그녀가 만약 그녀를 계속 맘에 두었던 최순치와 혼인을 하였다면 아마도 원하는 만큼 시도 쓰고 그러면서 행복하게 살았을 지도 모르겠다 안동김씨 집안으로 시집을 간 후 그녀는 불행이란 불행을 다 겪었던 것 같다 하지만 최순치가 서자인 까닭에 그녀와 맺어지지 못했고 난설헌이 둘째 아이 제헌을 임신할 적에 그녀의 외갓댁에 머물렀을 때 잠시나마 같이 있었을 뿐... 그녀와 함께 하지는 못했다 그 일로 시댁에서 때아닌 의심을 받아 아이한번 제대로 안지 못했고 남편에게서도 버림받아야 했던 난설헌 그녀의 삶이 이렇게 기구하기에 아마도 그녀의 시가 더 애절하고 아름다운게 아닐까 시 뿐만 아니라 그녀 자체와 그녀의 삶이 한편의 애절하고 아름다운 시였던 듯 싶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이달의 사락 s****8 2012.02.17. 신고 공감 2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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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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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나이면서 여자의 몸으로는 재능을 펼칠수 없었던 조선시대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던 여인이 시호 난설헌이자 본명은 허초희 이다. 결혼전엔 비교적 자유로웠던 집에서 글공부를 하며 자신을 표현할수 있는 시를쓰면서 자랐지만 15살이란 나이에 원하지 않던 김성립에게 시집을 가면서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그 어떤 여인들 보다도 한스럽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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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의 저자 허균의 누나이면서 여자의 몸으로는 재능을 펼칠수 없었던 조선시대에 천재적인 재능을 지녔던 여인이 시호 난설헌이자 본명은 허초희 이다. 결혼전엔 비교적 자유로웠던 집에서 글공부를 하며 자신을 표현할수 있는 시를쓰면서 자랐지만 15살이란 나이에 원하지 않던 김성립에게 시집을 가면서 남편과 시어머니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그 어떤 여인들 보다도 한스럽게 살아오다 자식들을 전부 잃고 꽃다운 27살에 요절을 한것도 그녀이다. 내가 이 책을 읽기전 알고있었던 난설헌에 대한것은 여기까지가 전부다. 학교다닐때 선생님들이 해주시던 난설헌에 대한 이야기를 생각하면서 난설헌이라는 인물의 삶을 글로써 한번쯤 읽어보고 싶다고 생각했었다. 덕분에 이 책을 읽기 전부터 내용에대한 궁금증은 날로 커져만 갔다. 그러나 이책을 읽기 시작한지 열흘이 되어간다. 수능이 코앞에 다가오자 책읽는것마저 뒷전이었다. 수능을 본 뒤에 얼른 읽어야지 하면서도, 막상 수능이 끝나고 나니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면서 이래저래 수능전보다 더 바쁜 하루하루를 지냈다. 어제는 집 옆에 보문산에서 걷기대회가 있어 거기에 참가하고, 여기저기 놀러 다닌 덕분에 밤 11시가 되서야 책을 읽어나가기 시작했다.

난설헌 자신은 세가지 한이 있다고 말한것이 기억이 난다. 여자로 태어난것, 조선시대에 태어난것, 그리고 김성립에게 시집을 간것. 여자로써 능력을 인정받고 존중받을수 있는 시대에 살고있는 나도 세상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곤 한다. 만약 내가 재능을 부여받고 태어났지만, 그 재능을 펼칠수 없었던 시대였다면 이 재능을 부정하지 않는, 자유로운 세상을 꿈꿨을 것이다. 그녀 역시 그런 세상을 꿈꿨다. 하지만 현실은 글을 쓴다는 이유로 구박받고 남편의 사랑또한 잃게됬다. 뒤이은 아버지의 죽음 소식과 형제들의 귀양소식, 너무도 사랑했던 두 자식이 죽으면서 그녀는 삶을 포기하고 다음 생을 기약해야만 했다. 

올해 77세 저자의 노련함으로 마치 내 눈으로 보는듯 소홀함 없이 너무도 깔끔하고 정확한 묘사에 한없이 빨려들어 읽게 되어 말로만 전해듣던 난설헌의 삶과 이야기를 다시한번 즐겁게 정리해 볼수 있었다. 또한 이 책을 쓰는 내내 난설헌이 되어 살았다는 저자 덕분에 난설헌이 겪었을 일들을 나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때 느꼈을 난설헌의 감정들또한 내게 곧이곧대로 전해지는듯 했다. 조선시대에 살면서, 여인으로써 현대까지 이름을 남겼지만 글쎄, 그녀의 삶을 보고도 부러워 할 사람이 있을지 의문이 든다. 그 누구보다 힘들었던 삶을 살아온 여인이지만, 현대까지도 많은 사람들의 기억속에 남아 영원히 꺼지지 않을 아름다운 불꽃이 되어 활활 타오르길 바래본다.

r**********3 2011.11.14. 신고 공감 2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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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설헌, 그 이름을 다시 부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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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인을 그리고 싶었다던 작가의 말이 조금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조선의 여인이 어디 난설헌 하나뿐일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의 연보를 보니 노년의 나이다. 어쩌면 그동안 감춰두고 살았던 자신의 속내를 은근히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부모님 세대까지는 어쩔 수 없는 형식의 굴레안에서 살아야했을테니 하는 말이다. 책을 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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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인을 그리고 싶었다던 작가의 말이 조금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조선의 여인이 어디 난설헌 하나뿐일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작가의 연보를 보니 노년의 나이다. 어쩌면 그동안 감춰두고 살았던 자신의 속내를 은근히 보여주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누가 뭐라고 해도 내 부모님 세대까지는 어쩔 수 없는 형식의 굴레안에서 살아야했을테니 하는 말이다. 책을 읽다보면 그 형식의 굴레에 묶여 허덕이는 여인의 모습이 너무도 안스럽게 그려져 있다. 난설헌에 대한 작가의 연민이 조금은 지나치게 느껴져 아쉬웠다. 사실 조선은 여인에 대해 그다지 넓은 아량을 베풀어 주지 않았다. 여인을 옭아매기 위한 말도 너무나 많았다. 오죽했으면 三從之道라는 말이 생겨났을까? 가부장적이고 남성중심적이며 깊게는 남성우월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시대가 바로 조선이었다는 말이다. 그토록이나 많은 인물이 나왔다는 선조代에 난설헌의 아버지 초당허엽도 있었다. 남존여비사상이 조금씩 고개를 들던 시기였으니 허엽이 자신의 딸에게 당당하게 학문을 익힐 수 있게 해 주었던 일은 그다지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게 자기안으로만 파고들던 난설헌의 고집스러운 모습은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을 불러 일으킨다.

 

난설헌은 그의 이름보다 <홍길동전>을 지은 허균의 누나라는 것으로 더 유명한 듯 하다. 그래서그런지 허균만큼이나 글을 잘 지을 것 같다는 어설픈 생각을 하게 된다. 그런데 한 줌의 재로 남을 뻔했던 그녀의 시가 중국과 일본에까지 알려져 있다고 하니 그녀가 살았던 고집스러운 세월에 대한 어느정도의 보상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 하지만 여기서는 그녀의 학문적인 소양이나 소질을 말하기보다 일상적인 여인으로서의 삶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 같다. 16세기 조선의 풍속사 또한 세세하게 그려져 있다. 시집가는 날 비가 오면 어떻다더라 하는 식의 미신에 가까운 의식도 그렇고 함이 들어오는 날의 풍경이라거나  전통적인 혼례식 장면, 시집으로 들어가는 신행길과 같은 풍경이 마치 영화의 한장면처럼 그려진다.

 

오빠와 동생의 틈바구니에서 어깨너머로 글을 배웠다는 그녀는 이미 여덟살에 신동이라는 말을 들었다. 거기다가 백옥같은 용모까지 가졌다. 재주있는 여자가 아름다운 용모까지 가졌다는 건 행복한 일이었을까?  요즘과 같은 시대를 만났다면 그것은 더없이 좋은 조건이었을테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 그녀에게는 불행이라면 불행이었을 것이다. 후대의 실학자 박지원마저 여자가 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것을 좋게 보지 않아 재주있는 여자들은 난설헌의 삶을 경종으로 삼으라는 말을 했다는 것만 보아도 여성의 재주는 그다지 환영받을 수 없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렇다면 그녀는 그런 사실을 몰랐을까? 아니 그렇지는 않았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을 살아낸다는 게 그리 녹녹치 않은 것이다. 조금의 타협도 찾아볼 수 없었던 팍팍한 그녀의 현실이 닫힌 문처럼 막막하기만 하다. 자신의 뜻을 맘대로 펼칠 수 없다는 답답함과 너그럽지 않은 주변의 시선들은 그녀의 삶을 조여오는 올무와도 같았을테니 하는 말이다. 이 책에서 얘기하듯이 남편 김성립이 급제를 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급제한 뒤에 관직에 나갔지만 가정에서 편안함을 찾지 못하고 밖으로만 돌았다고 한다. 조금만 타협했더라면, 자신의 아픔을 바라보듯이 주변의 소리를 조금더 열린 가슴으로 들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은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이, 아버지의 객사와 오빠와 동생의 귀양과 같은 친정의 슬픔, 감싸주지 못하는 남편의 사랑, 좋지않은 고부간의 갈등등이 그녀를 외롭게 하여 끝내는 밀쳐두었던 서안을 가까이할 수 밖에는 없었겠지만, 그런 연유로 하여 멋진글이 탄생할 수있었다는 것은 정말 역설적이다.  어쩌자고 가슴에 촛불을 밝혔느냐던 친정어머니의 애타는 심정이 느껴진다. 그 촛불의 의미가 새삼스럽다. 결혼만큼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던 그녀의 절규가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가 그리워했던 최순치라는 남자의 이름앞에서도 변함이 없었을까 하는 의문이 생기는 걸 어쩔 수가 없다. 물론 시대의 흐름에 순응하며 사는 것만이 옳다는 건 아니다. 난설헌의 삶을 통해 여인들의 지독한 고통만을 그려냈기에 하는 말이다. 가슴아픈 소설이었다. 한여인의 삶을 통해 이렇게나 절절한 느낌을 전해받을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버려진 이름, 버려질 수 밖에 없었던 이름이었으나 많은 세월이 지난 지금에는 또다른 의미로 그녀의 이름이 불리워지고 있는 것이다. /아이비생각

 

i****9 2011.11.02. 신고 공감 2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