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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은 밀려오고 밀려가는 자잘한 파도를 바라본다. 완전한 성에 나를 가두고 오래된 성벽처럼 이끼 끼고 담쟁이 무성하게 오래오래 버티다가 그 안에서 홀로 고요하고 싶다는 바람......을 생각하려다가 정인은 문득 생각을 멈추었다. 누구든 그럴 수 없다고, 산다는 것은, 밀려오고 밀려가는 파도 같은 것, 성처럼 멈추어 우뚝한 게 아니라, 흔들거리면서 가는 거라고, 다만 그 이름이 파도인 것을 잊지 않듯이, 날마다 새로 해안선을 그리며, 덜컹거리면서 가는 것은 아닐까...... 그녀의 마음에 파도가 다시 밀려왔고 그러자 그 생각의 모래성마저 우두두 무너져버렸다." (346-347p)
엄마는 "내가 죄가 많아서 널 낳았구나......"라고 말하며 어린 정인의 짧은 단발을 귀 뒤로 넘겨주며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엄마는 너를 낳을 때 아주 좋은 꿈을 꾸었단다...... 힘든 날이 가면 좋은 날들이 올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니 자신을 믿어야 한다....... 넌 참 착한 아이였단다...... 엄만 착하게 살지 못했다......" (77-78p) 그 말이 마지막 유언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그날밤 저수지에 빠졌습니다. 겨우 열 살짜리 계집아이를 세상에 남겨두고 떠났습니다. 아빠는 왜 그토록 엄마를 미워했을까요? 피가 날 정도로 때린 건 아빠인데, 참을 수 없다며 울음을 터뜨리는 사람도 아빠였습니다. 말없이 주먹질을 견디고, 울음마저 참아낸 엄마는 결국 저세상으로 갔습니다. 아빠는 미련없이 새 여자와 살림을 차렸습니다. 정인의 오빠 정관은 집을 나갔고, 언니 정희마저 서울로 떠났습니다. 아픈 할머니를 모시면서 살게 된 정인이는 엄마 말대로 착한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아무도 착한 아이를 봐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착한 아이의 여린 어깨 위에 짐을 지웠습니다. 어쩌다보니 '착하다'는 말은 어리숙하고 만만하다는 의미로 변질된 것 같습니다. 세상은 착한 사람에게 더 가혹한 것 같습니다. 부당하다면 발악이라도 해야 하는데 묵묵히 참는 건 그럴만한 이유가 있는 거라고. 정인에게는 더 이상 따스하게 품어줄 엄마가 없습니다. 그녀에게 필요한 건 사랑이었습니다. 그래서 현준의 음흉한 호의에 넘어갔고, 정씨댁의 저주 때문에 명수에게 다가가지 못했고, 기생충 같은 호영에게 매달렸던 거라고... 상처를 받아 본 사람은 상처입은 사람을 한 눈에 알아보는 법. 정인은 파도를 보면서 그제서야 깨닫습니다. 산다는 건 파도 같은 거라고. 아마도 이걸 공감할 수 있는 사람은 이미 험난한 파도를 겪어봤을 겁니다. 파란만장 정인 씨는 잘 버텨냈습니다. 착한 여자라서 억울해도 어쩔 수 없습니다. 오정인이라는 사람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상처투성이 인생이라서 남의 아픔까지 품어줄 수 있는 사람이니까. 부디 정인 씨가 평화롭기를 바랍니다. 휘발성 행복이 아니라 흡수성 평화가 함께 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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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하다. 누구나 착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착한 아이부터 시작해 착한 아들, 착한 딸, 착한 아내, 착한 남편. 하지만 이 '착하다'는 말은 많은 이들의 행동을 옭아맨다. 이른바 착한 사람 콤플렉스라고 해야 할까. 원하지 않음에도 착하지 않다는 말을 들을까 봐 마음에도 없는 행동 들을 하곤 하다. 오죽하면 그에 반하는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이 베스트셀러에 올랐을까.그렇다면 왜 우리는 착함에 반기를 들게 된 것일까? 이유는 간단하다. "착함=순종"이라는 인식이 깔려있기 때문이다. 특히나 여자에게는 착함은 일종의 미덕이라는 꼬리표처럼 따라붙곤 했다.소설 속 정인도 마찬가지다. 소설은 실연을 당한 정연이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첫 시작부터 답답하다. 여자는 용기를 내 남자를 찾아가지만 바보처럼 남자에게 한마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자신의 엄마가 그랬던 것처럼 스스로 생을 마감하려 한다. 솔직히 그 모습이 너무나 답답하고 바보같아 나라도 싫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도대체 왜 그녀는 말한다디 못하는 여자가 되었을까? 그녀의 삶을 따라가보기로 한다. 오정인, 그녀는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는 삶을 살았다. 유년시절부터 그랬다. 아버지는 폭력과 외도를 일삼았고, 엄마는 정인이 열 살이 되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오빠와 언니는 집안일에는 관심이 없었다. 정인에게는 병든 할머니만이 남는다.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지만 대학에 진학할 여력도 관심도 없었다. 그녀에게는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런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고 곁은 지켜준 이들이 있었다. 친구 미송과 이웃인 명수 오빠다. 두 사람은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도 꾸준히 그녀에게 관심을 가져주었고, 정인을 지켜줬다. 특히 명수는 어릴 적부터 정인을 마음에 담고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 된 사랑을 받지 못한 정인은 명수가 아닌 다른 남자를 선택한다. 가정과 사랑에는 별 관심이 없는 명수의 사촌 현준, 연애대상으로는 좋을지 모르나 배우자로는 기준 미달인 그에게 인생을 건다. 정인의 엄마가 했던 것처럼 말이다. 답답하다. 소설이 진행되는 내내 제대로 된 목소리로, 제대로 된 선택도 하지 못하는 그녀가 답답하고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까. 걱정이 들 정도다. 그리고 그 답답함은 정인 한 사람에게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여자는 어려서는 아버지의 말을 따르고, 결혼해서는 남편에게 순종하고 아이를 키워야 한다는 것이 당연하던 시절, 정인은 그 시대의 여성을 대변하는 여성상이다. 그녀가 특별히 답답하거나 수동적이어서 그런 삶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시대가 그런 여성을 원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모든 삶의 역경을 오롯이 여자인 정인의 몫으로만 남겨진다. 고구마 100개를 먹은 것처럼 답답한 것은 그 모든 것이 다 '그녀의 탓'으로만 그려지기 때문이다. 어디서부터 그 답답함의 실타래를 풀 수 있을까. 아무리 그런시대라지만, 속상하고 답답한 마음을 해소할 길이 없는 1권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되돌리고 다시 한번 일어설까. 아니면 소설의 첫 장면처럼 무기력하게 자포자기한 삶을 이어갈까. 2권이 내용이 기다려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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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공지영 소설을 만났다. <착한 여자>는 일간지에 1년 동안 연재한 글을 단행본으로 출간한 것이다. 한동안 소설로 만나지 못했던 작가였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마주한다. 2018년 4판으로 출간하며 우리들과 만났다. 공지영 작가의 작품들은 어렵다는 생각보다는 우리의 삶과 동떨어지지 않은 이야기로 편안하게 다가온다. 우리들이 마주하는 문제들이 많기에 가볍게 지나칠 수 없다. 이번에 만나는 이야기는 한 여자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루고 있다고 단정 짓기 어렵다. 그 안에는 다양한 사회문제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여자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정인에게 공감하는 반면 같은 여자이기에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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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착한 여자>에서 정인이라는 인물을 만난다. 너를 낳아 다행이라는 말은 엄마의 유언이 되었다. 그 말을 남기고 엄마는 세상을 떠났다.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엄마를 보내고 그 마지막을 지켜본 10살 아이의 마음을 우리들은 이해한다고 쉽게 말할 수 없다. 자신의 전부였던 엄마가 세상을 떠났다. 엄마가 남긴 한 마디는 정인이 살아가는데 힘이 되는 것일까, 아니면 그녀 삶에 족쇄 같은 말일까.
한 번도 행복한 적이 없는 삶이다. 가정폭력과 아버지의 외도, 가족의 무관심 등으로 가족에게 사랑의 감정을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럴 때마다 힘이 되어 준 사람은 명수이다. 동네 오빠 명수는 언제나 우는 정인의 곁에서 말없이 눈물을 닦아주고 웃음을 준다. 항상 옆에 있었기에 소중함을 몰랐던 것일까. 그녀에게 있어 정인은 어떤 존재였던 것일까.
때로 말이라는 것은 진실을 은폐하기 위해 더 많이 필요한 법이였고, 진실 앞에서 사실은 아무 말도 필요 없을 때가 많은 법이다. - 1권 본문 274쪽
행복은 말해질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행복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사람들이 행복이라는 실체가 어딘가에서 살고 있고 자신만이 거기서 제외되었다고 생각할 뿐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제 나름대로 불행한 것이다. - 2권 본문 207쪽
불행하게 태어난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간혹 태어남과 동시에 불행과 마주하는 일이 있다. 정인을 보고 있으면 행복이 사치라는 말에 실감한다. 정인에게 행복한 순간이 있었을까라는 의문이 든다. 가난이라는 이름 때문에 자신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가족들과 맛있는 저녁식사를 함께 하는 소박한 꿈을 가진 그녀에게 그런 행복을 주지 않는다. 여자이기에 감당해야 하는 일이 많다. 한 사람으로서의 삶이 이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책을 단숨에 읽게 된다. 어린 시절의 고통은 정인이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데 족쇄이고 걸림돌이 된다. 어린 시절의 일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안다. 벗어나려 하면 더 깊이 빠져들게 하는 늪이 되는 경우도 있다. 정인이 바라는 소박한 행복조차 용납하지 않는 것에 우리들은 가슴 아파 한다. 누군가에 의해서만 웃을 수 밖에 없었던 정인이 이제는 스스로에게서 웃음을 찾아가는 것을 보며 조금이나 힘을 내며 책을 덮는다.
책을 보며 여자 앞에 '착한'이라는 단어에 신경이 쓰일 수밖에 없다. 정인의 삶도 착한이라는 단어에 얽매였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아버지에게 매를 맞는 어머니를 보며 착한 딸이 되려 했고 결혼을 해서는 착한 아내가 되고 싶었다. 자신보다는 다른 사람에게 맞혀 살아가려는 수종적인 시간들을 보낸 것이다. 그러다 보니 불행과 마주하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여자이기에 공감하면서도 이런 부분들 때문에 답답한 마음으로 읽었는지 모르겠다.
리뷰어스 클럽의 소개로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주관적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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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한 해 독서계에 엄청난 페미니즘을 불러온 <82년생 김지영>. 이 책 공지영의 <착한여자>는 그 책보다 무려 20여년 전인 97년에 발표된 작품이다. 두 작품은 모두 여성들의 삶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그렇다면 그 20여년의 세월은 여성들의 삶을 얼마나 변화시켰을까. 그 오래전 발표된 이 책이 구 시대의 소설로 여겨지지 못하고 여전히 현재 여성들이 안고 있는 근본적인 아픔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면 이를 어떻게 받아들여야만 할까. 오정인. 그녀는 딴살림을 보란듯이 차리고 어쩌다 한번 집에 올때마다 엄마를 아무런 이유없이 때리는 아버지, 그럼에도 그저 맞고 사는 엄마, 그런 매 맞는 엄마를 온전히 엄마탓으로 돌리는 할머니를 보며 성장한다. 오빠도, 언니도 그런 집이 싫어 떠나버려도 착한 그녀는 엄마곁을 떠나지 못한다. 결국 엄마는 아빠에게 매를 맞은 날 물에 뛰어들어 죽고 그녀 홀로 남아 늙은 할머니를 봉양하며 집을 떠나지 못한다. 그런 그녀를 유일하게 안타깝게 바라보는 옆집 오빠 명수는 정인이 울고 힘들 때마다 그녀에게 울타리가 되어준다. 하지만 자신이 불행만 몰고 다닌다는 생각에 그녀는 명수의 마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엉뚱한 남자에게 자신을 삶을 떠맡기듯 결혼을 하게 되고 자신의 엄마처럼 매맞는 여자가 되어 살아가고 이를 지켜보는 명수는 그저 안타깝기만 하다. 오랜 고통 끝에 그녀는 결국 이혼을 결심하고 새로운 삶을 꿈꾸지만, 그녀에게 삶은 그저 가혹하기만 하고 그녀는 결국 자살을 시도하는데...
어릴적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그녀에게 세상은 마냥 두려웠다. 사랑받지 못하고 자란 탓에 사랑을 할줄도 모른채, 그녀는 그저 버림받지 않는 삶을 원했고 그 바람은 부족한 이들에게 자기삶을 희생함으로써 얻어지리라 생각했다. 행복이 뭔지도 몰랐고, 감히 행복 따윈 바라지도 않았던 그녀의 삶의 자세는 딱 그만큼 그녀를 불행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누군가를 당당히 사랑하기보다 사랑을 구걸했고, 노력해서 찾기보다는 저절로 굴러오길 바라는 늘 수동적인 삶이었으니까 말이다.
단지 여자라는 이유 만으로 교육에서도 배제되고, 늘 수동적인 삶속에서 단 한번도 오정인 자신의 얼굴로 당당하게 살아내지 못하는 그녀의 삶은 읽는 이를 답답하게 하지만, 불과 20여년전 나 또한 여자는 수동적이어야 한다고 배운 세뇌의 결과물이다. 어디 기지배가 얌전하지 못하게, 어디 여자얘가 먼저. 나또한 그런 얘기를 끓임없이 들으며 착한 여자로 자랄것을 강요 당했었다. 분명 내가 자라던 세대보다는 좋아지긴 했다지만, 아직도 세상은 '착한 여자'를 여성의 미덕으로 내세우며 순종을 강요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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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다는 것, 사랑한다는 것] 어렸을 때 접한 공지영 작가의 [착한 여자]는 저에게 할리퀸 로맨스와 비슷한 취급을 받았었습니다. 사촌언니의 책장에 할리퀸 로맨스와 함께 꽂혀 있던 그 가운데서 찾아낸 책이거든요. ‘여성은 무엇인가’ 나 ‘여성의 인생은 무엇인가’와 같은 개념이 정립되지 않았던 그 때, [착한 여자]는 저에게 바보 같은 여자였죠. 남자와의 관계 속에서 끌려다니기만 하고 자신이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던 여자 오정인. 오랫동안 자신의 옆에서 자신을 지탱해준 사람이 누구인지 깨닫지도 못하고 자꾸 이상한 길로 향하는 여자. 그 때는 뭐 이런 소설이 있나, 이런 여자가 되지 말라는 건가, 이런 우중충한 소설을 내가 왜 읽었을까, 그런 생각만 했던 것 같아요. 시간이 흐르고 지금 다시 읽어보니 그 때는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보이기도 합니다. 순간순간 힘들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도 아닌데, 오정인의 삶을 들여다보니 나의 시간들은 평탄했구나, 저런 선택의 기로에 서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이 축복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정인의 삶이 힘겹게 된 것은 대체 언제부터였던 걸까요. 마을에 무당이 왔던 날 우물가에서 현준과 마주쳤던 날이었을까요. 아버지에게 심하게 맞은 어느 날, 저수지에 몸을 던진 엄마가 죽은 날이었을까요. 오빠와 언니가 하나 둘 떠나버리고 혼자만 병든 할머니를 수발하며 생활했던 그 날들이었을까요. 우체국에 앉아 무료한 생활을 보내던 정인 앞에 다시 현준이 나타난 날이었는지, 그와 밤을 보낸 날이었는지, 명수의 난데없는 청혼을 거절한 날이었는지, 현준과 결혼한 날이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안타까운 선택이 있었다는 것만 겨우 느낄 뿐이에요. 독자는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보는 경우가 훨씬 더 많기 때문에 정인의 삶을 이렇다 저렇다, 그런 선택은 하면 안됐다 같은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거라 생각합니다. 내가 정인이었다면, 그런 환경의 정인이었다면 나는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까, 도저히 알 수 없는 시간들입니다.
처연하고 불쌍하기만 한 인생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소설을 통해, 정인을 통해 또 하나 배웁니다. 가능하다면 겪고 싶지 않은 시간들이지만 그 많은 시간들을 통해 성장할 수 있는 것이라고. 이 소설은 일견 연애소설, 혹은 한 여자의 성장소설, 혹은 페미니즘적 소설처럼 보이지만 이것은 모든 사람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한 인간의 자존감, 사랑하고 사랑받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요. -내가 모든 것을 감수할 테니 제발 날 좀 사랑해줘, 날 버리지 말아줘, 내가..내가..! -가 아니라, 여성이든 남성이든 자기 자신으로서, 스스로 자신을 존중하고 위할 때에야 비로소 진정으로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오래 전에 출간된 작품의 제2판이라 문장이나 설정이 세련되었다기보다 투박하기도 하고 상투적이게도 다가옵니다. 하지만 줄거리나 대화보다 문장 자체가 이런 저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는 작품이었어요. 공지영 작가의 작품은 대체로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착한 여자]에는 다시 손이 가지 않았었는데, 이렇게 좋은 작품이었구나 새삼 깨달았네요. 결말에 목말라 차분히 읽지 못한 문장들도 있었는데 다시 한 번 문장들을, 그 의미들을 되새기며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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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재미를 알게 계기가 된 작가가 있다면 공지영 작가이다. 대중적이면서 베스트셀러이기도 했던 작가이기에.. 작가라는 걸 왠만하면 사람들이 다 알고 있기도 했다. 라는 책은 10년이 넘게 이미 나온 책임에도 불구하고.. 간격이 너무나서 조금은 그 재미와 공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그만큼 이 책이 시대의 흐름을 떠나서 많은 사람들에게
책은 1,2권으로 구성된 장편 소설로 정말 착한 여자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소설이다. 정관 오빠, 그런 집이 싫다고 서울로 가버린 언니 정인의 언니.. 그들의 가족을 마음속으로는 가까워 하지 않는다. 그렇게 만든다는 말도 안되는 논리로 이야기 하고 있다.
시골에 사는 순진무구한 여자 정인. 간호하고 우체국에서 일을 하는 정인에게 갑자기 나타난 현준. 자신을 챙기는 이가 없었기에 그런 작은 일에도 감동을 받은 정인은.. 어찌 하나 따지지 못하고 그저 도망나오기에 급급했는데.. 자신보다 현준의 눈치만 보는 정인의 모습이 답답하기만 느껴지는 소설이였다. 이런 것이라는 걸 소설속에서 그대로 정인을 통해 알게 된다.
정인이 이제는 현준과 이혼을 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 가겠니 생각했는데.. 사랑해주려는 그런 마음은 그대로 라는 걸..정인은 후에 알게 된다. 어디가 내 살이구 어디가 그 사람 살인지 둘 다 잊어버린 거야. 말 뿐. 모든 게 정인 주변에 죽었던 사람들의 탓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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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는 공지영 작가의 책이었다. 읽기 전만 해도 신간인 줄 알았던 <착한 여자>는 어느덧 4판이었다. 벌써 20년 전에 나온 책을 나는 이제야 알게 된 것이다. 이 책은 불행했던 어린 시절을 거쳐, 청춘기마저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삶을 산 여자 ‘오정인’의 이야기였다. 그런 ‘정인’과 나는 전혀 다른 삶을 살아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삶의 질곡을 겪으며 깨닫게 되는 것들에는 어떤 삶을 살아왔건 공감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인 진리와 같이 다가왔다. 가정폭력을 일삼는 아버지에 견디다 못한 어머니의 자살은 ‘정인’에게 아마도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았을 것이다. 그리고 가정은 돌보지 않는 아버지, 일찌감치 집을 떠난 언니와 오빠, 그나마 곁에 있던 할머니마저 세상을 뜨자 ‘정인’은 그녀를 필요로 하는 다른 누군가에게 소속되고, 사랑 받기를 원한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자신의 감정을 솔직히 들여다보기 보다는, 부족한 점이 많은 자신을 떠나지 않을 것 같은 결핍된 남성들에게 그녀의 모든 것을 내어주었다. 이런 그녀의 잘못된 선택과 또 그런 그녀를 오랜 세월 묵묵히 지켜보며 마음 아파하는 남자 ‘명수’의 엇갈림이 두 권의 책을 읽는 내내 계속 되어 안타까웠다. 지나고 보면 그 모든 것이 사랑이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또한 순간순간에 느꼈을 행복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각자가 마음 한 구석을 접어둔 채 하는 사랑은 오래갈 수 없는 것이었다. ‘정인’이 왜 그토록 오래 ‘명수’의 마음을 외면하려했고, 또 제 자신의 마음조차 깨닫지 못할까 의문이었다. 그러다 마음을 추스른 정인이 ‘호영’이나 ‘인혜’와 나누는 대화를 통해서 그녀의 속내를 조금 더 명확히 알 수 있었다. 아버지의 폭력과 어머니의 죽음, 그리고 ‘명수’의 어머니가 퍼부은 저주의 말들로 상처를 품고 살았을 ‘정인’이기에 그녀의 그 모든 선택은 어쩌면 스스로를 지키기 위함이었을 지도 모르겠다. 누구보다 혼자 남겨질 것이 두려웠던 여자, 그런 그녀가 사람을 붙잡아 둘 방법은 어릴 때부터 그래왔듯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착한’ 딸로, ‘착한’ 여자로 그렇게 묵묵히 살다보면 자신의 인생도 그저 남들처럼 평온하리라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작은 행운조차 사치였던지 ‘정인’에게 찾아오는 거듭된 시련의 파도는 결국 그녀를 삶의 벼랑 끝까지 떠밀어 버린 후에야 겨우 잠잠해 지는 것 같았다. 마치 새가 알을 깨고 나온 듯 ‘정인’의 변화가 안심이 되고 한편으로는 너무 이른 나이에 인생을 다 살아버린 사람처럼 구는 그녀가 다시 뜨거운 생의 한복판으로 뛰어들기를 바라며 응원하기도 했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결말이 썩 마음에 든다. 책의 2권 348쪽에 그런 구절이 있었다. “나이를 먹는다고 전부 성숙하지 않는다는 거... 나이는 고통으로 먹는 거야.” 세월이 지나도 삶의 고난이라고는 일생 겪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 사람의 해맑음을 대할 때면 난 나도 모르게 위축되었다. 적어도 그 사람에게는 세상의 때가 묻은 것 같은 나의 내면을 감추고 싶기도 했다. 어른의 얼굴이 저렇게 천진난만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도 있었을 것이다. 내가 지나온 고통의 시간도 지울 수만 있다면 흔적조차 남지 않게 지워버렸을 텐데, 그 고통으로 인해 적어도 난 삶의 무게를 자주 느끼며 살아간다. 오늘이 주는 소중함도 내 또래의 다른 사람들보다는 자주 떠올리게 되었고, 그래서인지 다람쥐 쳇바퀴 도는 삶에서 느끼는 자괴감도 크다. 나는 이렇게 나이를 먹고 있는 건가보다. ‘정인’은 20년이 지난 지금 어떤 인생을 살아가고 있을지 그녀의 안부가 궁금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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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여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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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작가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다. 제목은 착한여자(2권짜리) 신간으로 나온 건 줄 알았는데, 이미 초판은 1997년에 나왔고, 이번에 나온 것은 4판이었다. 초판과 2판의 작가 후기는 있는데, 3,4판은 없는 것을 보니 2~4판은 같은 것이라 생각하면 될 것 같다. 공지영 작가는 다수의 책을 출간했지만, 난 이번에 읽는 것이 고등어에 이어 두번째이다. 워낙 유명한 작가라 작가에 대한 말은 필요 없겠다. 공지영 작가의 그 많은 책 중 내가 고작 2권 밖에 안 읽을 것은 국내 소설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었던 까닭이다. 그렇지만 최근 책을 읽으면서 번역에 대한 심각한 문제를 느끼고 나서 우리 글 책이 훨씬 좋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있다. 공지영 작가의 글은 수식 어구도 많고, 우리 글의 멋들어짐을 잘 표현했다. 그러나 착한여자는 읽는 내내 답답했다. 1997년에 나온 소설이니, 그 이전까지 우리 사회의 여자들이 얼마나 억압을 당하며 살았는지 짐작이 간다. 주인공 오정인의 어린 시절은 한국의 여자들이 얼마나 사람대접을 못받고 살았는지를 대변해 준다. 어머니를 잃을 트라우마는 소설 내내 등장하며, 그녀의 젊은 시절은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의 노래가 딱 맞아 떨어지는 그런 삶이다. 지금은 여성의 사회진출도 많고, 학교에서 성적 선두권은 대부분 여자이고, 대통령도 여자가 했던 나라이니, 더 이상 책에서 등장하는 오정인과 같은 여자들은 많지 않을 것 같다(오정인 같은 여자가 많지 않을 것이란 뜻은 책 중반부까지 겪는 내용에 국한된 표현이다). 그래서 답답했다. 4판이 출간된 2018년 현재와는 좀 맞지 않는 현실이 아닌가 싶어서 말이다 소설의 시작은 음울하게 시작한다. 그리고 그 시작으로 인해 난 책 어느 부분에서 이어질까 라는 상상을 하며 책을 읽었다. 끝에서 연결되면 긴장한 상태에서 끝날 것 같은데, 작가는 어떤 흐름을 갖고 독자를 이끌어 나가는지 궁금했다. 2권 후반부에 가면서 다른 류의 소설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색채가 바뀌었다. 답답했던 것들을 2권 중반부에서 해소시켜 준 것은 좋았는데, 그 뒤에 이어지는 내용은 너무 다른 분위기인지라 탄탄했던 스토리를 좀 망쳐 놓은 것 같다. 그 것이 이 책을 8점밖에 줄 수 없는 이유이다. 다른 등장 인물 중 명수에 대해 한마디 한다면 그는 오정인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보여준다. 지고지순의 사랑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내 관점에서는 바보같은 사랑이라 표현하고 싶다. 한 때 이런 말이 유행했었다. 그땐 맞고, 지금은 틀리다(역도 성립되는...). 이 책 초판은 멋있는 책이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은 답답한 책이다. 사족: 남자가 읽기엔 재미 없을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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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영 저자는 한 시사 잡 시사로부터 "사람이 사는 집"에 대한 취재를 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그곳에서 착한 여자의 주인공인 오정연을 만난다. 그러던 중 그녀의 왼쪽 손목에 나 있는 깊은 상흔을 발견하고 저자는 순간 가슴이 쿵했다고 표현하고 있었다. 이유인 즉 자신도 똑같은 상흔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상처 하나로 나는 오정인이라는 나와 동갑내기인 이 여자에게 저항할 수 없는 이끌림을 느꼈다고 고백하고 있다. 책은 총 1권 2권으로 나뉘어 나온다. 공지영에 착한 여자는 이미 세상에 빛을 보았고, 나는 개정된 책을 읽었다. 공지영 저자의 작품답게 이 책에서도 사회 문제를 풀어 담고 있었다.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폭력을 당하면서도 그 가정을 벗어나지 못하는 어머니 그리고 공부를 잘하고 똑똑했지만 결국 대학을 가지 못한 정연이, 읽히기 쉬운 글이지만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어서 나는 천천히 음미하며 읽었다.
소설 주인공인 오정인이라 여자가 두 번째로 사랑한 남자로부터 매몰찬 취급을 당하고 자신의 집으로 돌아와 그가 교체해준 백열전구를 산산히 부서뜨린 후 휴지통을 뒤져 제법 큰 유리파편을 하나 집어 들어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부터 이 소설은 시작한다. 그리고선 1부 그 여자의 어린 시절을 다룬다. 오정인 그녀에게는 할머니가 있었고, 불량을 일삼는 오빠 오정관이 었었다. 정인의 아버지 오대엽은 수원에서 오고 가는 버스 운전사라는 직업을 가졌고 폭력을 일삼는 아빠이기도 했다. 똑부러진 성격을 지닌 언니 정희도 있었다. 정인의 어머니는 남양 바닷가의 중놈집 딸이었는데 서울에서 여학교까지 졸업했으나 전쟁 통에 마누라를 여의고 혼자 살고 있는 오대엽이라는 사람과 왜 혼인했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리고 키다리 아저씨 같은 역할을 자처하는 명수가 있었다. 지난겨울 할머니에게서 정인에게 건네준 돈을 빼앗아 가출했던 정관의 멱살을 잡고 아버지는 집으로 들어선다. "내 졸음 쫒아가면서 차 몰고 좆 빠지게 뛰어다니는데 하나뿐인 아들 간수 못하고..."말을 하며 정인의 어머니에게 상습 구타를 하였고 그 후 어머니는 흐르는 저수지에서 생을 마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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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은 졸업 후 우체국에 근무하게 되었다. 우체국에서 그녀는 주로 소포를 부치거나 등기를 접수하거나 우표를 판매하는 역할을 도맡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 제사를 맞이하여 고향으로 내려오던 강현준과 마주치게 되면서 정인에게 처음 사랑이 찾아왔다.
하지만 현준은 왜곡된 여성관을 가지고 있었고, 그로 인해 부부생활은 원만하지 못했고, 결국 민호를 남겨둔 채 이혼에 이른다. 그 후 정인이는 친구인 미송 출판사에서 일하게 되지만 그곳에서 우연히 소설가 남호영을 만나 사랑하게 되면서 삶에 대한 꿈을 꾸지만 결국 버림을 받게 되고 자살을 기도한다. 하지만 이미 뱃속에는 새 생명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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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인 정인은 불우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 때문일까? 첫 번째 남자인 현준은 한 여자를 십 년동안 사랑했지만 그녀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해 방황했던 사람이었고, 두 번째 인연이었던 남호영은 집에서 쫓겨나 작업실을 가지고 있던 한 여학생의 배려로 작업실에서 숙박을 하게 되고 그 친구와 몸을 섞게 된다. 그렇게 7년이 지난 어느 날 패배자가 되기 싫다는 생각이 들었던 그는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사육의 터를 벗어나야 한다고 생각했었지만 밖에는 자물쇠가 잠겨져 있었다. 정인이는 서로가 큰 아픔들이 있어 서로에게 위로가 될 거라고 생각했을까? 아니면 자신의 상처가 그들보다 더 크기에 보듬어 주고 싶다는 생각을 했을까? 어쨋듯 정인이는 번번이 옳지 않은 선택을 하였다. 나는 왜 제목을 착한 여자라고 지었을까? 생각을 해보았다. 정인이 남편에서 끊임없이 멸시와 구타를 당하지만 헌신하는 모습을 보여서 일까? 아니면 정인의 고운 마음씨와 행동들 때문일까? 정인이가 힘들 때마다 그를 옆에서 지켜준 명수가 있었다. 명수는 따뜻한 가족의 사랑을 받으면서 우리나라 최고의 대학인 곳에서 의학을 공부하고 의사가 된다. 한결같은 그의 사랑을 받지만 욕심조차 내지 못하는 정인이의 모습이 안타까웠다. 결말에 이르서야 비로소 둘에게 향해가는 진실한 마음과 사랑을 알게 된다. 명수가 정인에게 "영악하게 살아" 라는 말을 내뱉을 때 내 마음도 같이 저릿저릿 하였다. 정신적 육체적 폭력을 겪고난 후 자신의 삶을 찾아가며 도약하는 정인의 이야기를 닮고 있는 공지영의 착한여자 였다. < 해당도서는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무료로 제공받아 작성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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