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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중속의 고독'이라는 말이 전혀 낯설지 않은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늘 여러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으면서도 무언가 겉으로만 맴돌고 있다는 느낌을 우리 모두는 한번쯤 받아보았을 것이다. 진실로 상대방의 마음을 읽어주고 내 속내를 내보이면서 감정의 교류를 나누었던 때가 언제인지 까마득해 보일 수도 있다. 특히 스마트폰이나 비슷한 전자기기의 발달은 겉으로는 소통과 연결을 촉진시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것들이야말로 오히려 새로운 인간관계를 왜곡시키고 단절시키는 주범이다. 실제가 아닌 가상 세계에서의 소통은 가식으로 포장되고 내가 원하면 언제든지 그만둘 수 있는 한시적 인간관계를 만들어 낼 뿐이다.
우리가 어렸을 때는 오히려 '혼자'라는 것이 절대적인 고독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혼자 무언가를 하고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은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는 능력을 키우는데 도움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아이들은 뭐든 부모가 해주는데로 따라가기만 할 뿐 혼자서 무언가를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능력에 필수적인 고독에 대한 학습을 제대로 받지 않는다. 그러다 보니 고독에 대해 약자의 입장에 설 수 밖에 없으며 고독을 다스릴 힘이 없게 되어 결국 고독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불행해지는 삶을 선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물론 현대 사회는 아직까지 '혼자 사는 삶'보다는 '함께 하는 삶'을 더 가치있게 여기고 있지만 함께 하는 삶이 혼자 사는 삶보다 덜 고독하다는 것은 더 이상 '참'인 명제가 아니다.
저자는 이렇게 고독에 서툰 이들이 어떻게 고독을 현명하게 받아들이며 남은 생을 영위할 수 있는지에 대한 조언을 제시하고 있지만 대부분의 실례로 든 이야기들이 저자의 나라인 프랑스이다 보니 아직까지는 우리나라 실정에 와닿지 않은 부분이 있기도 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저자가 지적한 부분들은 머지않은 우리 미래에 이슈가 될만한 일들이니 지금 중년의 나이라면 나를 위해서도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도 한번쯤 진지하게 고려할만한 문제인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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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수명이 점점 더 길어지고, 이혼과 결별이 늘어나며, 살아가는 방식도 점점 더 개성을 실현해나가는 쪽으로 바뀌어감에 따라 모든 사람은 현재 외롭거나, 과거에 외로웠거나 또는 앞으로 외로워질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주로 성적인 욕구 충족 위주로 만남이 이루어지는 시기와 커플을 이루어 살아가는 시기, 그리고 그 사이 사이에 고독한 시기를 번갈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또 서로 떨어져 있지만 사랑에 빠져 있는 관계도 경험하게 될 텐데, 물론 이때도 고독할 것이다. 고독감은 주관적인 개념으로 하나의 느낌이며 대개는 거부당하거나 소외된 경험을 통해 겪은 상황에 대한 주관적인 해석이다. 우리는 많은 무리 속에 있거나 가족이나 연인과 함께 있을 때도 혼자라고 느낄 수 있다. 고독감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없거나,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지 못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을 때, 또는 세상에 혼자 있다고 느껴질 때 경험하게 된다. 이러한 경험은 자신 곁에 아무도 없으며, 아무도 자신과 함께하지 않는다는 좌절감을 더 강하게 피부로 느끼게 한다. 고독은 내면이 비어 있는 느낌이며, 다른 사람들과 떨어져 있을 때 경험하는 감정이다. 따라서 누구와 함께할 필요성이나 특별한 누군가가 옆에 없다는 느낌이 꼭 들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과 거리를 두고 따로 있다는 느낌, 세상과 단절되어 있다는 느낌, 세상으로부터 이해받지 못하는 느낌에 더 적합하다. 본질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죽음에 대해 혼자 직면하고, 또 앞으로도 직면할 인간으로서의 존재 자체를 생생하게 의식하고 있는 상태다. 혼자일 줄 안다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게 하며 더 이상 타인과 타인의 판단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는 뜻이다. 또한 혼자일 줄 안다는 것은 타인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근심하지 않게 되는 것이며, 타인을 경쟁자로서가 아니라 여행을 함께 떠나는 동반자로 여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상대와 더욱 풍요롭고 성숙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충분한 거리를 유지해야 하며 타인과 자신을 일치해 생각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아무도 우리 자신을 대신해서 살 수 없고, 우리를 대신해서 사랑할 수도 없으며 고통을 느낄 수도 없다. 인간이 자신이 아닌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고작해야 그를 응원하거나 그의 고통을 동정하는 것뿐이다. 또한 다른 사람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의 정체성과 그의 정신적 영역을 존중한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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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북카페를 통해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된 서평입니다. 본 서평은 작성자 본인의 주관적인 견해에 의하여 작성되었습니다.]
흔히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 한다. 사람은 사람과 부대끼며 어울리며 살아야 진정한 삶을 느끼고 즐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혼자 심각한 표정으로 식사를 하거나 커피를 마시는 사람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 사람 외톨이 인가봐’ 또는 ‘인간관계에 문제가 있나봐’등 부정적 인식을 하기도 한다. 이렇듯 고독은 우리사회에서 그리 반가운 존재로 보이지 않는다.하지만 이 책의 저자 마리프랑스 이라구아앵은 고독은 숨겨야 하거나 부정적 개념인 아닌 고독에서도 얼마든지 유익한 것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지금 마음만 먹으면 하루에 수백, 수천의 사람들과도 관계를 맺을 수 있다.새로운 네트워크 소통방식인 sns나 인터넷 커뮤니티로 거의 모든 종류의 사람과 소통을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온라인으로 이루어지는 소통이나 인간관계는 자칫 인맥늘리기,즐거움을 위한 하위도구로 전락할 우려가 있다. 인간이 다른 사람과의 관계나 소통에 목말라하는 이유는 외로움이나 고독을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고독을 수치스럽게나 부정적으로 보는 인식을 지양하고 고독의 새로운 면을 발견할 수 있다면 고독을 통해 인간은 인격적으로 감정적으로 한단계 발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일단 사람이 고독의 상황에 빠지게 되면 사물을 제 3자의 입장에서 멀리 떨어져서 보게 된다. 그리하면 그 동안 몰랐던 사물이나 현상의 다른 면을 발견할 수도 있고, 하찮게 보았던 것에서도 뭔가 중요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다른 사람과의 소통이나 관계속에서는 무의식적으로 인간관게를 원만히 해야한다는 관념 때문에 사회적으로 용인되고 허락된 말과 행동을 할 필요가 있다.그런 생활에 익숙해 지면 자신이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주장해왔던 것을 포기하고 대세에 따르려는 경향이 강해진다. 물론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다른 사람의 말과 행동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지만.깊이 있고 나만의 독창성 있는 생각을 찾아야 할 때는 인간은 고독이 필요하다. 그리고 고독은 보편적으로 역경에 해당된다. 인생에서 성공을 한 사람중에 역경을 격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는 것 같다. 역경에 빠지게 되면 물론 그 역경에 빠진 사람을 도와줄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그를 외면하기가 일쑤다. 성공한 사람들은 홀로 그런 고독의 역경속에서 자신이 실패한 이유를 찬찬히 살펴보게 되고, 그러는 도중 새로운 아이디어를 떠올려 세상을 깜짝 놀래키도 한다. 그리고 고독에 관한 문제를 애기하다 보면 홀로사는 1인가구나 독신자를 생각하게도 된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에 대해 우리와 생활양식이 다르다는 이유로 색안경을 끼고 보기도 하고, 그들의 생활방식이 ‘좋니 나쁘니 하며’참견하기도 한다. 하지만 1인가구나 독신자는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방식 중의 하나이다. 그리고 현대사회로 오면서 자연스럽게 생긴 사회적 문화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찬반을 표시하는 것은 개인의 사생활과 인권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어차피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존재이다.자신이 선택하고 판단하고 행동하고 책임지는 존재이다. 타인의 생각과 맟출려거나 보조를 같이 하려한다면 그는 대중 중의 한 인간에 불과할 뿐이다. 하지만 잠시 고독에 빠져 ‘이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고 있나’ 아니면 ‘내가 살아온 방식에 문제점은 없는가’등 의문을 던지면서 지낸다면 사회와 인간에 대한 진지한 자세를 지닐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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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고독(마리프랑스 이리구아앵)
사람을 만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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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통을 강조하는 시대에 우리는 관계과잉의 시대를 살아간다. 그럼에도 더 고독해지는 현대인들이라니 역설적으로 들릴 수도 있지만 이는 고독과 외로움을 같은 의미로 해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요즘 뮤지컬 ‘나 홀로 관람족’ 최대 31%까지 급증' 이라는 기사를 보고 자신만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고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고 봄이 어떨까.... 프랑스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인 저자 마리프랑스 이리구아얭은 자신의 환자들을 관찰하고 느낀 결과를 통해 이 시대의 새로운 고독에 대해 진단한다. 책은 현대인이 고독해지는 것은 현대의 빠른 속도감에 적응하지 못하고 관계의 진정성을 잃어버린 사람들이 각자만의 이유로 소통의 길을 잃어버리고 정체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얼핏 보면 수동적인 모습이 많이 보여 앞서 말한 능동적인 의미의 고독과는 다르다는 생각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모든 고독이 단 한가지 원인에서 기인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다양한 사례연구를 통해 나의 고독이 어디에서 유래하는 지 알아가는 과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내용 중 특이한 것은 우리가 살아가면서 고독을 겪을 때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는 어린 시절에 이루어진 학습과 깊은 관계가 있다고 언급한 부분이다. 저자는 어릴 때부터 고독에 대한 학습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데, 어릴적 부모와 밀착성이 강한 아이일 수록 고독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도 말한다. 고독의 이면에 '믿음'이 숨겨져 있다는 것은 매우 의외다. 믿음이 주는 긍정적 동기부여를 알기에 고독에 대한 이해의 폭이 훨씬 넓어진다.
지나치게 소통을 강조하는 시대. 타인과의 관계도 중요하지만 온전히 나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고 싶다면 고독에 대해 생각해 볼수 기회가 된다. 확실히 외로움=고독이 아님을 알게될 것이다. 또한 책에 실린 많은 사례들이 우리나라보다는 자유로운 문화권인 프랑스의 예라 모든 예들이 적절하다고는 보기 어렵기 때문에 사례들이 좀 부담스럽다면 자신에게 맞는 장을 먼저 찾아 읽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하다. (해당 서평은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도서를 읽고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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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소통의 시대다. 다각도로 열려있는 채널을 통해 현대인은 수시로 소통한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 보면 소통이라고 믿고 있는 다각도의 채널들은 내가 얻고 싶은 정보를 얻고 싶은 만큼만 전해 듣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채널을 선택하고 정보를 주고받을 발신자를 선택한다. 발신자가 혹은 발신처가 마음에 들지 않을때 채널을 돌리면 그뿐이다. 소통이 아니라 일방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겠다. 과거 채널이 다양하지 않던 시대의 정보는 들려주는 것, 보여주는 것만을 취할 수 있는 것이었으나 현재의 정보는 인터넷을 통해 위성방송을 통해 SNS를 통해 수신자가 선택해서 취할 수 있다. 그것은 수신자의 일방적인 선택으로 결코 소통이라고 말 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이라는 이름으로 그토록 많은 채널이 등장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만큼 인간은 소외와 고독을 두려워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혼을 하고 혼자 지내는 선배언니는 귀가 후에는 반드시 TV를 켠다고 한다. 보지도 않을 TV를 켜놓는 이유는 자신이 혼자라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녀는 성격이 맞지 않는 남편과, 수시로 자신을 필요로하는 아이들로 부터 독립을 하고도 혼자만의 여유를 불안해 했다.
우리 사회가 물질적인 행복과 소유에 집중하고있는 이유로 인간의 끊임없는 욕망을 들고 있으나, 나는 가끔 의심한다. 사람들의 욕망이 먼저였을까, 자본의 끊임없는 부추김이 먼저 였을까. 사람의 근본적인 욕망이라고는 비교에서 오는 욕구 외에는 없는 것이 아닐까. 누군가 헤르메스 가방을 들고 있다면 내가 들고 있는 남대문표 가방이 부끄러울 수 있다. 이런 비교불안은 사람 사이의 끊임없는 상호작용에 의해 생겨나며, 그 상호작용은 개인을 침해하기까지 한다. 이에 사람들은 점점 방안으로 숨어들어가 보이지 않는 상대와의 소통을 꿈꾸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억측을 해본다. 혹은, 그와는 반대로 자신의 존재를 물질로 증거하기 위해 밖으로 뛰쳐나오고 있는 것인지도... 이 책에서는 욕망과 소비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은 제대로 된 소통을 거부하고 있으며, 일방적으로 선택된 소통 또한 오래 지속되지 않는 옅고 겉치레적인 관계에 치중하고 있다고 적고 있다. 이에 많은 사람들은 진정한 관계의 부재 속에서 고독에 시달리고 있으며, 혼자 사는 삶을 선택하는 사람이 늘어 났으며, 점차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전망한다. 그러나 인간은 많은 군중 속에 있을지라도 원래 고독한 족속이며, 고독을 두려워 해서는 안되고 오히려 고독 속에 홀로 굳건히 설 때 제대로 된 내가 된다. 대체로 이 책의 주장에 찬성하는 편이지만, 여성과 남성을 불리해 구별하고, 남녀 커플 패턴의 변화에 치중한 1장은 지루하고, 한마디로 재미없다. 어쩌면 연애에 관한한 산전수전을 다 겪고 난 후라서 인지도 모르겠다고 혼자 피식 웃고 만다. 그러나 일과 성공, 인간관계의 대안으로 떠오른지 오래인 가상세계에서의 소통을 주로 다루고 있는 2장은 무척이나 흥미 진진했다.
내 생각에 고독과 외로움은 다르다. 고독은 선택하지만 외로움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수동의 결과이다. 고독은 풍부하지만 외로움은 단촐하다. 고독은 여유롭지만 외로움은 초조하다. 고독한 사람은 타인의 시선이 필요치 않지만, 외로운 사람은 끊임없이 타인의 인정이 필요하다. 고독한 사람은 자유롭지만, 외로운 사람은 더더욱 구속되길 갈망해 스스로 타자의 노예가 된다. 따라서 고독은 나를 나로서 인정할 줄 아는 사람만 누릴 수 있는 사치이다. 혼자일 줄 아는 고독한 자는 자신의 존재를 뚜렷하게 인식하며, 타인의 판단에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인정하듯이 타인을 인정할 줄 안다. 고독과 외로움을 정확히 구분하지 못하는 현대인들은 약과 알코올에 중독되고, 인터넷과 도박에 중독되고, 소비와 섹스에 중독되며, 타자의 시선에 중독된다. 그러나 이러한 각종 중독은 순간적으로 갈등을 피하게만 하고 충동적 행동으로 더더욱 개인을 외롭게 하고, 고독하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