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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마 멸망후 유럽 중세를 암흑의 1000년이라고 표현하지만 내막은 그렇지 않음을 경제사가 대신 말을 해주고 있읍니다 1000년 사이에 유럽은 굴기를 위한 많은 변화와 경쟁속에서 새로운 시기를 위한 준비를 했다고 단언한다면 지나침이 있을까?
1.로마제국의 멸망에 대한 저자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요인들입니다 많은 요인들이 로마제국의 멸망을 초래했다고 하지만 일반적인 내용과 상이한 측면이 있기 때문에 숙독을 해도 괜찮을 내용입니다 ![]()
2.중세 천년의 이런저런 사건들의 모음을 한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이미지화한 것인데 변화의 중심은 10~13세기 사이의 인구의 정점을 기준으로 전쟁과 전염병 확산이 목격되고 경제분야에서는 기존의 상권(한자,상파뉴)이 변함을 알수 있읍니다 ![]()
3.중세유럽은 자체가 허약하기 때문에 외부침략에 매우 취약하였읍니다 특히 바이킹,이슬람,동유럽의 마자르족 및 몽골족의 침입은 유럽의 인적자원에 많은 영향을 끼칩니다 ○정사에서는 몽골이 오스트리아 빈의 외곽까지 침략한 것으로 나오지만 야사에서는 애태리의 "로마"까지 유린한 것으로 나옵니다. ![]()
4.중세의 봉건주의에 대한 일말의 단서를 포착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자연농의 몰락과 소작농의 토지에 예속화가 봉건주의의 전형입니다 ![]() 5.경제사 측면에서 인구의 증가가 가져오는 사회경제적 측면에서의 영향에 대한 요약입니다 현재나 지금이나 인구의 성장은 많은 문제점과 또 다른 기회창출의 원인을 제공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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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소 서양 중세에 관심이 있어 구입한 책이다. 간략하게 핵심적으로 기술한듯하다. 책을 살때 생각보다 너무 얇은거 아닌가 내용이 괜찬을까 하며 샀는데 볼만하다. 더 깊이 알려면 다른 채고 보면 될것이다. 사실상 오늘날 서양의 시작은 중세로부터이다. 그러기에 중세를 알아야 서양을 온전하게 알수 있다. 서양 중세 경제를 알아야 오늘날의 서양과 세계를 경제를 제대로 알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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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의 중세. 좀 더 정확히 짚어 말하자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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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독일에서 나온 <중세 경제사, 한스외르크 길로멘>을 번역한 책이라고 합니다. 5세기부터 15세기까지 중세 1천년 동안의 경제사를 설명해주는 책입니다. 구입하기 전에 목차부분을 보고 농업만이 아닌 광업, 목축 등과 수공업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고 있는 걸 보고 중세 시대의 서민들의 생활상을 엿보고 싶은 마음에 구매해보았습니다. 책이 어려우면 어쩌나 우려했는데 아주 이해하기 쉽고 편집도 눈이 편하고 보기 편하게 되어 있어서 읽기 편했어요. 중세 당시 산업의 흐름을 대강이나마 엿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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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놀라울정도로 가벼워서 처음엔 책이 잘못온줄 알았다. 실물을 보지 않고 주문했기때문에 생각했던것보다 얇아서 놀랐지만... 전문적으로 경제사를 파고드는게 아니라면 딱 알맞은 책이라고 생각한다. 로마의 몰락에서부터 중세의 몰락까지 큼직한 시기를 나누고, 그 안에서 일어난 정치적사건은 아주 짧게 언급한 다음 그 뒤로 어떤 경제활동이 오고 갔는지를 서술하는데 정말 담백하다. 어느정도로 담백하냐면 큼직하게 나눈 시대 안에서도 특정경제활동에 대한 이야기가 한장도 되지 않을때도 있다... 물론 길어졌다면 읽기도 전에 지쳤을지 모를 일이다. 그러니까 서양의 경제가 어떻게 흘러갔는지, 중세시대의 경제가 어떻게 흘렀는지 상식을 얻기에 딱 알맞은 책이 아닐까 싶다. 지역 이름이 많이 나오는것에 비해 지도 하나없이 줄글로만 이루어져있지만, 지루하지 않고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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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바탕이 하얀색인데 큰 흠 없이 잘 왔다. 여기서 일단 첫인상이 좋았다. 책 판형이 크지도 않고 너무 작지도 않으며 무게도 가벼워서 들고 보기에 적당하다. 내용도 중요하지만, 실물책은 이런 외적인 요소도 꽤 중요하게 작용한다. 내용은 서양 중세의 전반적인 경제 흐름을 개괄적으로 기술한 것이다. 농업과 목축, 어업, 광업, 수공업, 상업 등 다양한 경제 활동을 망라하고 있다. 한 가지 키워드를 다각도로 깊게 고찰하는 글을 원한다면 다른 책을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하지만 곁가지 없이 압축적으로 정리된 글을 보고 싶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빙빙 돌려 설명하지 않고 핵심만 담겨 있어 참고 및 응용하기에 매우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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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시대를 탐구하기 위해 필수적으로 알아야 할 것들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그 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 경제, 종교 등등 이라 답할 수 있겠다. 이런 것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어 마땅히 예상한 결과를 도출할 것 같으면서도 막상 현실은 전혀 다른 경우도 많기에 겸손하고 꼼꼼한 연구가 필요하다. 중요성은 알겠지만 왜인지 나는 늘 경제사가 어렵다. 기피하다보니 소홀히 다뤄질 때가 많다. 간단한 제목으로 된 이 얇은 책을 읽는 동안에도 복잡하고 무거울 때가 많았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 읽기 전보다 조금 더 나아진 것에 감사한다. 중세, 성격 나오네! -5~7세기 로마제국이 분할됐다. 경제적 원인으로 자주 제시되는 것은 노예제다. 이것은 노동윤리파괴, 기술발전정체, 나쁜 생산성으로 인한 노동력 부족으로 예속농제로 바뀌었다. 자유농민들은 빈부격차 심화와 조세 제도의 문란으로 세금압박을 피하고자 대지주에게 자신의 재산을 넘기고 소작농이 되는 것을 선택했다. 지주의 권력이 커짐에 따라 소작농들의 토지 예속화가 진행되며 봉건화 되었다. 또 로마시대에 거대한 국유지로 이용하던 토지들이 3세기부터는 황폐해지고 다시 숲이 되었다. 게르만족과의 만남은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게르만족 경제의 특징은 방목과 토지 경작이 연계된 축산업이다. 도구는 단순했고 수공업은 발전하지 않았다. 로마와는 달리 수공업과 농업 생산은 실제로 자체 수용에 따른 것이다. 게르만 내의 상품 순환은 판매를 통해서가 아니라 물물교환이나 약탈을 바탕으로 한 경제로 이루어졌다. 해양의 중심지는 동지중해로 이동했다. 7세기 중엽 카르타고의 세력권이 아랍인의 손에 들어갔다. 원거리 교역은 의미를 잃었고 좁은 공간에서 지엽적이 항해가 행해졌다. 그러나 향료 무역은 당시의 개념으로 세계적이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본다면 이 시기 로마 제국은 경제적으로 퇴행했다. 로마제국을 지탱하던 경제는 7세기 말엽까지 장기적인 경제적 몰락과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역전을 지속해서 당하면서 붕괴했다. 미래가 기대되는 군요! -7~9세기 고전 지주제의 형성을 위한 내적 질서가 만들어졌다. 이 제도는 지주 직영지와 예속농의 수 사이에 균형이 맞아야 작동할 수 있었다. 프랑크족의 지배적인 지위는 지도층이 그들의 신봉자들에게 땅을 넘겨주면서 형성되었다. 비교적 제한된 지역에 집중되었던 거주지에서 활발한 개간이 필요했다. 특히 주요했던 것은 고위층들이 토지뿐 아니라 왕권을 위임받아 행사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예속농민에게 부역을 강요할 수 있었다. 11세기 호황을 이끌 기술적 성취는 이미 카롤링거 시대부터 있었다. 이랑쟁기, 삼포제 농법(땅을 삼등분하여 일 년에 두 부분은 여름과 겨울로 나누어 재배하고 나머지 3분의 1의 땅은 휴경지로 두며 경작하는 시스템), 굴레와 편자등 마구와 물레방아를 개발했다. 7세기에 급격한 개간을 통해 경작지가 넓어진 것도 한몫했다. 조세의 금납화가 널리 확장되면서 시장이 발전했다. 북부와 북서쪽으로 원격지 무역 중심이 옮아갔다. 노예는 중요한 상품으로 거래되었다. 7세기에서 9세기까지 노예제도의 의미는 농업을 위해 여전히 근본적이었다. 노예수송을 위해 동유럽에서 비잔틴을 거쳐 오리엔트로 직접 가는 무역로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도시가 생겼어요! -9~11세기 10세기 중엽 이후 유럽의 모든 지역에서 인구 증가와 경제성장이 가속화되어 13세기 말까지 지속됐다. 지주들이 직영하지 않고 그들의 땅을 농민에게 소작을 주었다. 삼포제의 확산과 신기술, 철의보급 등으로 인한 농업경제 호황은 상업호황으로 이어졌다. 12세기에 경제의 상업화 현상이 본격화 되었다. 1000년경부터 농촌인구가 과밀해지기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도시가 형성됐다. 정치적 목적과 행정과 통치의 중심지로서 도시는 지역마다 나름의 산업적 특성을 가졌다. 주변지역에는 시장기능을 통해 거래와 수공업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이 후 선대제 방식의 건설, 제철, 직조, 염색, 견직물 수공업이 성장했다. 수공업자들은 아주 천천히 지주제적, 농장제적 예속에서 벗어났다. 수공업자 조합이 영업과 시장 통제를 위한 지주나 도시주의 강제조합, 영업이익을 얻기 위해 일정 규정에 따라 형성된 여러 직업의 자율적 동맹 형태로 탄생했다. 화폐 사용에 이은 상업은행과, 신용 중요성을 바탕으로 새로운 원격지 무역방식이 등장했다. 부분 소유권의 등장으로 상업 활동과 운송의 분리되었고 많은 상업 중심지에 본점과 지점을 둔 새로운 무역 형태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원격지 무역과정에서 같은 목적지로 향하는 원격지 상인들의 단체인 한자동맹이 시작되었다. 나침반과 정교한 항해 지도까지 더해져 대양 무역에서 안정성과 활동성이 증대됐다. 위기가 아닌 대단한 적응력! -11~13세기 10분의 1로 줄어든 인구가 짐을 감당해야 했다. 왜냐하면 1347~1353년의 페스트 창궐이 이미 기후악화와 토지의 과도한 사용으로 가난한 농민들을 덮쳤기 때문이다. 곡물의 초과 공급으로 가격이 내려갔고, 노동력 부족으로 임금과 공산품 가격이 올라갔다. 그러나 인구학적 위기는 생산에 맞지 않은 땅은 놀리고 지역특색에 맞게 특화 생산을 하고 농업에서 수공업으로 바꾸는 가능성을 열어주었다. 전쟁의 지속, 정치적 불안정, 지중해 해적의 잦은 출몰은 원격지 무역의 거래 비용을 배로 올렸다. 중국, 페르시아, 이집트, 인도의 봉쇄로 교류의 길이 막혔다. 원격지 무역이 어려워지자 다른 상업들도 어려움을 겪었다. 한자동맹은 14세기에 상인들 간의 느슨한 연대에서 엄청난 정치적 무게를 가진 조직된 도시 조합 형태로 발전했다. 이후 한자는 15세기 말엽에 여러 어려움이 늘어나자 한자는 몰락의 길로 들어섰다. 15세기가 되면서 다시 지리적 팽창이 시작되었다. 1497년 바스쿠 다 가마가 희망봉을 돌아 인도에 도착했다. 콜롬버스는 1492년 카리브 해의 산토도밍고에 도착했다. 인도항로와 함께 아메리카의 ‘발견’은 경제사에서 새로운 시대를 열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