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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으로 '세계'를 보다 비록 나는 ‘해부학’이라는 단어에 이끌려 첫 장을 펴게 되었지만, 이 책에서 해부학은 렌즈 역할을 할 뿐이다. <'몸'으로 '세계'를 보다>. 봐야 할 것은 몸이 아니라 세계이다. 이 책에서 ‘세계’는 동아시아를 뜻한다. 구체적으로는 중국, 일본, 한국 세 국가이다. 의학사를 전공한 두 저자는 해부학이 위 세 국가에서 각각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날 하나의 학문으로 자리 잡게 되었는지 살펴본다. 해부학이라는 흥미로운 주제에 빠져 큰 흐름을 잊으면 곤란하다. 예비 독자는 이 책이 해부학책이 아니라 역사책임을 기억하며 읽기 바란다. 같은 시작, 같은 끝, 다른 과정 사소한 차이는 있겠지만 오늘날 세 국가에서 해부학의 위치는 비슷하다. 의술의 가장 기초가 되는 학문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합법적인 의학 교육과정의 일부로 자리 잡았다. 흥미롭게도 이 책에 따르면 세 국가에서 해부학의 시작 또한 비슷했다. 저자는 한국과 일본의 해부학 역사 논의를 모두 중국 의학의 전래와 도입으로 시작하고 있다. 이는 시기의 차이는 있겠지만 비슷한 출발점에서부터 세 국가의 해부학이 성립되고 발전했음을 시사한다. 결국, 세 국가에서 해부학은 같은 출발점에서 시작하여 같은 도착점을 향해 발전해왔는데 놀랍게도 이 책에서 보여주는 그 과정은 서로 달라도 이렇게 다를 수 없다. 우연과 필연이 뒤엉켜 나라마다 다른 시기에 다른 인물과 다른 철학이 다른 경로로 해부학의 발전을 이끌었다. 각 국가의 해부학이 어떻게 그리고 왜 다르게 발전하게 되었는지를 생각하며 읽어야 이 책을 진정 누릴 수 있다. 동아시아 삼국에서 해부학 발전과정의 차이를 만들어 낸 여러 이유 중 하나만 간단히 소개하겠다. 인체를 객관적 탐구의 대상으로 보고자 하는 노력은 서양에서 일찍이 시작되었고, 이는 해부학이 과학의 영역으로 자리 잡는데 핵심적인 요소였다. 반면 동아시아에서는 음양오행과 오장육부로 대표되는 전통적인 중의학적 세계관으로 인해 인체를 과학적 탐구대상이 아닌 신비로운 해석의 대상으로 여기고 있었다. 따라서 인체를 과학적으로 접근하는 서양의 태도를 얼마나 빨리 그리고 적극적으로 수용하는지가 동아시아 삼국의 해부학 발전에 있어서 가장 큰 관건이었다. 흥미롭게도 중국, 일본, 한국은 서양의 해부학 지식에 대해 극명한 태도 차이를 보였다. 그래서 왜 달랐을까? 중국은 『전체신론』(1851)으로 대표되는 서양의 해부학 지식을 1800년대 후반부터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전체신론』을 기점으로 중국 정부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아 수많은 서양 해부서가 번역되었고 의학교육에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는 갑작스러운 변화라기보다 1590년대부터 시작해 수백 년에 걸쳐 맞이하게 된 진화였다. 이에 반해 일본은 한층 더 적극적인 태도로 서양문물을 받아들였다. 1600년대 초에 시작된 네덜란드와의 긴밀한 교류가 핵심이었다. 네덜란드를 통해 『해체신서』가 들어옴에 따라 서양 해부학은 일본에서 일찍부터 널리 받아들여지게 됐다. 재밌게도 일본에서는 그 정도가 너무 과해서 문제였다. 오히려 서양의 지식을 의심 없이 신봉하는 경향 때문에 과학적 태도와 멀어진 것이다. 마지막으로 한국은 세 국가 중 가장 폐쇄적인 태도로 서양의 지식을 바라보았다. 서양 의학이 도입된 시기도 가장 늦었다. 여기에는 청나라에 대한 조선의 인식이 크게 작용했다. 중국과 일본에서 서양 해부학이 받아들여지기 시작하던 당시, 조선으로 서양의 지식이 전달될 수 있는 통로는 중국이 거의 유일했다. 하지만 조선은 명나라를 정복한 왕조라는 이유로 당시 중국인 청나라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지식의 전달이 더딜 수밖에 없었다. 동아시아 삼국에서 서양문물에 대한 태도 차이는 인체를 과학적 탐구의 대상으로 인식하고 접근하는 시점의 차이로 이어졌다. 이는 세 국가의 해부학 발전사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차이점이다. 이 외에도 책 곳곳에서 세 국가 간의 다양한 차이점을 찾을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는 더 이야기하지 않겠다. 예비 독자의 즐거움을 뺏어버리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끝맺으며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학문적으로 엄밀하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자 하는 저자의 마음이 너무 컸던 나머지 본문이 읽기 어려운 텍스트가 되어버린 점이다. 예를 들면, 모든 주요 외국인의 이름을 처음 언급할 때에는 한글로 표기된 이름과 함께 괄호를 사용하여 그 사람의 영어 이름과 중국명은 물론 출생 및 사망 연도까지 함께 표기하고 있다. 인물뿐 아니라 각종 문헌을 언급할 때에도 한글명칭과 함께 괄호를 사용하여 한자명 또는 영문명을 표기한다. 수많은 인물과 문헌이 등장하는 가운데 괄호 안과 밖을 구분하며 문장의 흐름을 따라가기가 쉽지 않았다. 글의 내용도 사실 나열 위주로 전개되어 다소 건조한 감이 있다.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매력이 있는 책이다. 정성이 들어간 일에는 감동이 있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이 책에는 오랜 시간 의학사를 연구한 두 저자가 어떻게 하면 저들이 공부한 것을 독자들에게 잘 설명해 줄 수 있을지 고민하며 많은 양의 자료를 조사하고 정리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