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숙종은 조선시대 제 19대 왕으로 46년간 재위했다. 숙종이
재위한 기간은 병자호란은 물론 임진왜란의 피해도 복구하지 못한 시기였다. 인조반정 이후 신권은 강대했고
왕권은 약했다. 또한 반정의 여파로 왕권은 항상 정통성논쟁에 휩싸였으며, 4색당파가 이념논쟁을 벌이면서 붕당정치가 극성을 부렸다. 그런 가운데
열네 살 어린 나이로 즉위한 숙종이지만, 부왕인 현종이 재위기간 내내 신하들에게 왕으로 대접받지 못하고
휘둘렸던 것과는 달리, 격화되는 당쟁을 이용하여 왕권을 강화시킬 줄 아는 군왕이었다. 그는 환국정치로 왕권과 대립하는 신권을 견제하여 왕권강화의 계기로 삼곤 했다.
이것이 숙종이 정치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하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숙종은 서화와 문예에 타고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 이어지는 영,정조대 문예부흥의 기반을 마련한 문예군주로 불리기도 한다. 저자는 이 책에서 정치중심의 숙종연구에서 벗어나 숙종이 남긴 다량의 어제, 어필을
통해 숙종을 알아보고자 했다고 말한다. 어제란 국왕의 시문집이고, 어필은
국왕의 글씨를 말한다.
숙종의 학문하는 태도는 왕이기에 앞서
유가지식인임을 자처했다고 한다. 이런 마음이 아들 영조에게 전해져 영조가 평생 호학하는 태도를 잃지
않았을 것이라고 저자는 조심스레 추측한다. 숙종은 조선시대 국왕의 시문집인 [열성어제]를 본격적으로 출간한 왕이기도 하다. [열성어제]는 태조부터 철종까지 조선 역대 왕들의 시문을 모은 104권의 책으로 이루어졌다. 인조대에 처음 간행되었지만, 숙종 때 이르러 민간에 흩어져 전하는 어제를 모으고 사관으로 하여금 실록 등 사서에 나와 있는 것을 정리하게
하여 태조부터 현종에 이르기 까지를 8권4책 목판본으로 간행했다고
한다. 이후 숙종사후 경종이 숙종어제를 포함하여 17권8책의 [열성어제]를 간행했는데, 이중 권9에서 권17까지
9권이 숙종어제였다고 하니, 그가 얼마나 시문을 좋아했는지를
알 수 있다.
숙종은 왜란과 호란으로 상실된 서화와
문예를 모사하고, 새로 모으고, 중국에서 수입한 서화와 도서를
보관, 정리하기 위하여 궁중에 도서실인 문헌각과 수장고를 건립하기도 했다. 더불어 그때까지 전해지던 태조의 어진을 새로 모사하고 스스로 자신의 어진을 그리게 하여 조선후기 어진 제작의
전통을 세우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자신과 인현왕후와의 국혼 전 과정을 의궤로 편찬케 하여 남긴 것이나, 최근 현판글씨로 문제가 된 이순신장군의 사당 현충사의 현판이 원래 숙종의 글씨였다고 하는 것만 보아도 그의
시문에 대한 사랑과 그것들의 간행에 얼마나 열성적이었는지, 그 일면을 보여주는 것 같다.
그렇지만 숙종에 대한 평가는 그가 호학군주이고, 서화와 문예를 좋아했다는 것보다는 그 시절 정국운영에 의해 결정되지 않았나 싶다. 환국정치를 이끌면서 은연중 그것들을 부추겼다는 것, 그리고 인현왕후와
희빈 장씨 사이에서 갈팡질팡하는 모습이 보여주듯 애증의 편차가 크고 그것이 정치에 투영되었다는 것은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군주에게 있어 제일 덕목은 호학보다도 정국안정 그리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 애민, 위민이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통해 숙종의 문예관을 알아가고, 또 그가 남긴 어제와 어필들을 감상하면서도 다소 씁쓸한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 이 때문이지 싶다.
어찌되었든 숙종을 비롯한 역대 왕들의 수많은 어제와 어필을 사진으로나마 볼 수 있다는 것은 이 책이 가진 장점중의 하나라는 생각이 든다. [조선의 사대부] 시리즈는 지금까지 19권이 간행되었다. 그런데 최근에 간행된 4권은 전부 숙종과 관련된 것이다. 시리즈를 쭉 읽어오면서 간혹 이런 주제가 꼭 필요할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최근에 와서는 그런 생각이 더욱 깊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