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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주의(결말까지 모두 노출)------------------------
『히키코모리 남동생이었다』는 제목 그대로 초등학생 시절부터 집 안에 틀어박혀 어머니의 보호하에 살아온 형을 둔 남동생인 주인공 [게이타]의 이야기로, 집에서 독립해 회사원이 된 어느 눈 내리는 날 전철역에서 우연히 만난 여자 [치구사]와 그 자리에서 결혼을 약속하며 시작된다. 이야기는 어린 시절부터 집에 틀어박혀버린 히키코모리인 형 [히로키]와 한시라도 빨리 히로키를 사회로 내보내야 한다고 생각한 게이타와 달리 그저 맹목적으로 형을 비호할 뿐인 엄마와 셋이서 지내며 홀로 발버둥쳐야했던 게이타의 10대시절, 그리고 게이타가 치구사와 만나 결혼하면서부터의 일상이 교차되며 전개되는데, 여기서 내가 초점을 맞춘 포인트는 두 지점이다. 누구 하나 안타깝지 않은 사람 없는 게이타 집안과 두 번째로는 사랑도 아이도 없지만 단순한 부부생활로 족했던 치구사의 변화이다. 히키코모리의 남동생인 게이타는 점점 나이를 먹어감에 따라 자신의 믿음직한 형 히로키가 사실은 현실에서 도망친 사회부적응자라는 사태에 대해 점차 파악한다. 그것은 게이타에게 있어 세상이 부숴지는 듯한 충격이었다. 게이타는 그 충격과 분노를 그대로 히로키에 대한 혐오로 쏟았다. 그런 게이타에게 히로키는 사회로 나가려는 의지를 보이기는커녕 엄마와 연합해 게이타를 못 살게 굴며 약을 올린다. 가족과 그 집이 전부였던 어린 게이타로써는 반항하는 것도, 어딘가로 도망치는 것도 불가능했다. 나는 이 책을 세 번을 읽었는데 첫 번째로 이 책을 읽었을 때는 나는 게이타의 형을 혐오했다. 살아있을 가치도 없는 인간이라고, 죽었으면 좋겠다며 형을 저주하는 게이타와 함께 분노했다. 하지만 나는 점차 내 안의 히로키의 존재에 깨달았다. 내 안에는 항상 터트릴 곳 없는 분노에 찬 게이타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히로키와 같은 비굴하고 혐오스러운 인간의 종자가 함께 섞여 있었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함께할 수밖에 없는 종류의 것인지도 몰랐다. 그것을 깨닫고 나자 나는 30년간 히키코모리로써의 삶을 산 히로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다 히로키가 주도한 가정내 따돌림과 멸시로 하루하루 절망적인 나날을 보내던 게이타는 대학생이 되어 집을 떠난다. 엄마와 둘이서 집에 남게 된 히로키는 순식간에 망가져가기 시작하는데, 나는 그 원인을 게이타가 사라졌기 때문이라고 본다. 시시 때때로 자신을 멸시하고 질책하기만 했던 동생이 이제야 사라진 건데 후련해지기는커녕 어째서, 라고 누군가는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히로키의 입장에서, 게이타는 자신에게 현실을 들이미는 나쁜 악역임과 동시에 자신이 아직 현실에 존재한다는 것을 자각시켜주는 이 세상의 기둥이라고도 볼 수 있었다. 어느날 돌연 집 안에서 게이타라는 악역은 사라졌다. 그리고 형에게 남은 것은 평생을 지내왔던 쓰레기장 같은 자신의 방. 자신의 눈치를 보며 늙어가는 엄마와, 그리고 능력도, 뭣도 없는 20대 중반의 히키코모리인 자신뿐이다. 그래서 히로키는 순식간에 망가져간 게 아닐까? 전처럼 게이타에게 매도를 당하고, 그것을 궤변으로 받아치며 자신의 비참한 삶을 얼버무리며 살아갈 수는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게이타라는 악역이 사라져 누구도 자신을 매도해주지 않는다면, 이젠 자신이 악역이 되는 것밖에는 남지 않게 된다. 그렇게 자기혐오의 늪에서 발버둥치던 형은 30 초반의 나이에 자신이 평생 동안 지냈던 방 안에서 돌연 심장이 멈춘다. 그런 히로키의 사정에 대해 생각해보니 가슴이 울렁일 정도로 너무도 슬펐다. 도대체, 누가 이 사태를 만든 걸까. 왜 이렇게 되어야했지? 누가 뭘, 어디서부터 잘못한 걸까. 슬픔에 빠져 사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나쁜 사람은 누구일까 현실에서 도망쳐 집 안에 틀어박힌 히로키 히로키는 히로키의 속도가 있다며 히로키를 무작정 감싸기만 한 엄마 혐오와 멸시로 히로키를 더더욱 궁지로 몰아간 동생 게이타 히로키는 집 안에 틀어박혔다. 엄마는 이혼가정이라는 불안정한 가정을 조성함으로써 히로키를 집 안에 틀어박히는 아이로 키워내고 말았다. 동생인 게이타는 형을 감싸줌으로써 히로키 스스로 죄책감을 느끼게 하게는 못할망정 자신의 열불을 쏟아내느라 히로키의 반발심을 키우기만했다. 그런만큼 누가누가 잘못인가를 따지기 시작하면 끝이 없다. 단순한 궤변으로 들릴지 몰라도 나는 여기서 하나의 진리를 확실시 할 수 있었다. 작중에서도 나타나듯 하나하나 따지고 보면 결국엔 모두가 나쁘다고밖에는 볼 수 없을 것이다. 모두가 나쁘다. 하지만 모두가 나쁘다는 것은 즉 모두가 나쁘지 않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닐까? 히로키도, 엄마도, 게이타도, 사실은 누구도 나쁘지 않은 것이다. 왜냐하면 모두가 나쁘기에. 어느 쪽이든, 운은 확실히 나빴겠지만. 여기서 처음 만난 그날 그 자리에서 게이타와 결혼을 약속한 치구사의 이야기로 넘어가자면 치구사는 어린시절 부모에게 버림 받고, 학창시절 겪은 성폭행으로인해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며 아리를 갖길 원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이었다. 그것은 불행한 유년기를 보냈던 게이타도 마찬가지였고, 둘은 서로에게 편리한 상대로써 결혼한다. 아이가 생길 지도 모른다는 공포에 발기조차 되지 않는 게이타를 보며, 나도 덩달아 가슴이 술렁였다. 과연 아직 태어나지 않은 누군가를 이 세상에 불러들이는 것이 맞는 일일까? 그건 사실 다시는 있어선 안 되는 일이 아닐까? 하고.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그 두려움과 염려는 다른 누구도 아닌 나를 향해있었다는 것을. 아직 잉태되지도 않은 자기 아이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을까 여기서 내가 생각하기에 치구사의 아이를 갖길 두려워하는 성향은 비대해진 자기보호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치구사 자신이 너무 약했고, 고통스러운 일을 잔뜩 겪으며, 그래서 자신을 너무너무 소중히 여길 수밖에 없었기에 더 이상 같은 피해자를 만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와 자신을 겹쳐보면서까지 말이다. 그것은 치구사의 일기에서도 잘 드러난다. ‘너에게’라는 말로 시작하는 일기는 사실 편지에 가까운데, 아직 태어나지 않은(심지어는 잉태되지도 않은) 자신의 아이에게 쓴 편지이다. ‘너에게’라는 말로 시작하는 이 편지는 단순한 외로움을 이유로 너를 임신하려는 건 참고 있으며, 너를 정말 사랑하고, 너는 내 인생의 축복이라는 등 여러 따스한 말들이 적혀있지만 사실 그 편지는 제대로 사랑받지 못한, 존재를 허용받지 못한 치구사 자신을 향한 편지인 것이다. 그럼에도 치구사가 아이를 갖기로한 원인을 나는 ‘작은 구원’ 때문이라고 본다. 작은 구원. 말 그대로 완전한 구원이 되진 못하겠지만 적어도 자신이 피해자라는 감각이 흐려지고, 가해자에 대한 증오의 불꽃이 사그라들었을 때, 그럭저럭 살아있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하고 말 때, 치구사는 그때가 되어 비로소 아이를 가질 마음을 먹은 게 아닐까 아이가 자신과 같은 수준의 고통을 겪는다 하더라도 작은 구원의 때는 반드시 온다는 막연한 믿음을 무의식 중에 품은 채, 좀 더 밝게 보자면 마음의 여유를 찾은 덕에 조금은 희망적인 사고를 갖는다거나. 희망적인 사고를 예로 들자면 이렇다. (내 아이가 절망의 늪에 빠졌을 때 난 내 아이를 구할 수 있어. 구할 거고. 난 그때 같은 무기력한 어린애가 아니야. 난 부모니까) 그런 식으로 자신을 믿는 것이다. 그렇게 자신에 대한 신뢰를 바탕으로 아이가 태어난다. 그것이 같은 실수를 반복하게될 뿐일지, 아니면 다른 결과를 향할 지는 알 수 없다. 『히키코모리의 남동생이었다』는 언제까지고 가족이라는 족쇄에서 해방되지 못한채, 그럼에도 발버둥치는 게이타의 이야기다. 지금 이 독후감을 듣고 있는 여러분도 그럴 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이 소설을 읽는 내내 기분이 가라앉아갔다. 하지만 그것은 뒤집었을 때 희열이라고도 볼 수 있어서, 그런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길 즐기는 사람에겐 분명 취향에 딱 맞는 소설이 될 것이다. 나는 게이타에게서 나와 같은 사상을 엿볼 때마다 작은 기쁨을 느꼈다. 그것은 내 존재를 온몸으로 긍정하는 듯한 무척 기분 좋은 충족감이었다. 게이타의 가족처럼 가족은 어떤 의미에서 저주가 될 수 있다. 끊어낼 수 없다는 점에서그렇다. 오로지 부모의 욕구에 의해 또는 욕구를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 긴 시간을 함께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 물리적으로 멀어진다 해도 그들은 여전히 이 세상에 존재한다. 가슴 속에 존재하고, 무엇보다도 게이타 자신이 그들이 만든 결과물이다. 하지만 이 저주의 가장 지독한 부분은 아마 시간이 지나면 마음 한 편에선 그들을 용서하고마는 부분이 아닐까. 게이타도 마지막에는 가족을 용서한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는 구렁텅이 속에서도 동생 게이타를 생각하던 형의 편지를 읽고, 게이타는 형의 무덤 앞에서 어린아이처럼 눈물을 흘린다. 완벽한 악역은 존재해주지 않는다. 누구나가 그저 인간일 뿐이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주인공 게이타가 새로 만난 아내와, 아들이 하나 있는 가정을 꾸림으로써 끝이 나는데, 이것을 어떤 관점으로 받아들일지는 각자의 역할이 될 것이다. 적어도 지금의 나로써는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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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회 전격소설대상 심사위원상 수상작 일본 독서미터 선정 ‘읽고 싶은 라이트 노벨’ 1위 충격적 전개, 강렬한 반전,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문제적 사랑 이야기 책 소개 문구와 강한 인상의 제목만 보고 꼭 읽고 싶다는 생각에 구매했습니다, 일단은 솔직하게 저의 감상을 적자면 굳이 이 제목이었어야 할 이유가...? 물론 이 소설에는 분명히 등장합니다. 주인공인 게이타가 히키코모리 형을 두었기에 당한 고통과 괴로움의 장면들이... 그렇지만 이야기의 중심은 게이타에게 찾아온 사랑 이야기이지 형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책 내용소개에 적혀있긴 했지만... 메인이 정말 사랑이야기였군요.) 게이타의 아내 치구사 완벽한 아니 가정적인 아내로서의 역할을 다 하고 싶어하는 그녀 책을 끝까지 읽어도 이해가 완벽히되지 않던 인물이었어요. 그리고 반전 엔딩에는 여러 장치가 존재했습니다. 분명 반전입니다. 다만 그 파문의 크기는 사람마다 다를거라 생각해요. 약간은 아쉬움이 많이 남은 라노벨이었어요. 게미님의 일러스트 분위기는 참 좋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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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한거 치고 생각보다 별로였다.히키코모리 형을 둔 동생을 주제로 한 책이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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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기대가 컸던 작품이었습니다. 작품소개가 진짜 거창하고 뭔가 대단한 소설이겠구나 연상하게 만들었으니까요. 소설 초반 설정이 좀 약하긴 했지만 그래도 앞부분은 주인공에 빠져서 읽었는데 후반으로 갈수록 음..설마..하며 읽었는데 마지막에 완전 이건 뭐지???를 연발했습니다. 아니 결말이 이건 전혀 생각할 수 없는 결말이라 뭐라 할 말이 없네요. 마지막 엔딩이 완전 실망스러운 책이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