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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이 지난 지금의 시각으로 본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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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와 이과의 만남, 문이과통합, 인문학과 과학의 만남 등의 주제는 살아오며 끊임없이 접한 주제다. 실제로 현재 고등학교에선 문이과 구분 없이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다. 하지만 실로 이상한 점은 대학에선 둘 사이의 융합적 움직임을 목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취미로 인문학을 부전공하는 공대생, 취업을 위해 공대, 경영대를 복수전공하는 인문사회대생은 많이 봤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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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와 이과의 만남, 문이과통합, 인문학과 과학의 만남 등의 주제는 살아오며 끊임없이 접한 주제다. 실제로 현재 고등학교에선 문이과 구분 없이 학생들을 교육하고 있다. 하지만 실로 이상한 점은 대학에선 둘 사이의 융합적 움직임을 목격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취미로 인문학을 부전공하는 공대생, 취업을 위해 공대, 경영대를 복수전공하는 인문사회대생은 많이 봤다. 하지만 실제로 둘을 융합해 연구하는 이는 극히 적다. 빅데이터나 통계를 사용하는 인문학자, 머신러닝의 데이터로 문학을 사용하는 공학자 정도가 내가 교내에서 들어본 사례의 전부다. 통합을 지향하기엔 아직 갈 길이 먼 듯하다. 어쩌면 이건 모두 헛된 바람 아닐까?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데 괜히 애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은 인문학, 예술, 건축, 언어, 젠더, 법, 인권, 박물관과 과학의 관계를 다루며 과학을 문화적, 역사적으로 접근한다. 소위 말하는 ‘인문학적’ 접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12년 전 나온 책이기에 훨씬 이전부터 저자가 연구하고 집필한 내용이라 예상되는데, 그 때부터 이런 다른 학문들 사이의 만남이 이야기되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게다가 그 만남이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젠더, 법, 인권과 관련된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 생경하면서도 흥미로웠다. 책을 완독한 뒤 가장 만족스러웠던 점은 이 책에 서론에서 밝힌 대로 ‘과학이 무엇과 필연적으로 만나야 한다’라고 주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저자는 여태 일어난 만남과 변화들을 정리하고 기록했고, 그 과정에서 생긴 문제에 주목해 더 나은 만남을 위한 방향을 조심스럽게 제시한다.

학문의 종류를 막론하고, 아주 다른 두 학문의 만남에는 필연적으로 문제가 따른다. 책 속 인권 문제를 떠올리면 이해하기 편하다. 과학이 발전함에 따라 인간의 범위는 늘어났고, 그 범위는 아직까지도 논란의 중심에 있다. 시험관시술, 초음파 검사, 제왕절개 수술, 인큐베이터와 각종 약물을 사용한 조산아 치료 등이 불가능했던 옛날엔 이미 태어난 아기부터 생명, 인권을 가진 인간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은 임신 3주차 정도부터 임신 여부를 알 수 있게 되었고, 신체가 잘 생겨나고 있는지, 장애가 예상되지 않는지 등을 임신 중에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초음파 사진을 들여다보며 ‘우리 아기 잘생겼네’라고 말하는 예비 부모님들을 적지 않게 볼 수 있다. 혹여나 일찍 출산하더라도 기술의 발전 덕에 인큐베이터 속에서 치료를 받고 퇴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초음파 사진을 보며 이미 아이에게 애착이 생겨버린 부모들은 태어나기 전부터 아이를 한 명의 인간으로 여기고 있고, 일부 집단은 눈코입이 생기기 전이라도 낙태하는 것은 인권 유린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의 발전으로 인간의 범위가 늘어났음은 자명하다. 그렇다면 그 범위를 규정하고, 그에 맞는 법을 개정하는 역할은 누구의 몫인가? 과학을 발전시킨 과학자, 공학자의 몫인가? 그렇지 않다. 그를 담당하는 자들은 다른 분야에 종사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사례에서도 알 수 있듯, 과학의 발전에 따라 학문 간의 상호 작용은 필연적인 것이 되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문이과 통합 사례를 실제로 목격하지 못 했다고 해도, 이미 우리 생활 곳곳에선 통합, 연결이 일어나고 있다. 앞으로도 신약 개발, 인공지능의 발전, IoT의 보편화를 비롯한 다양한 변화가 예상된다. 그와 동시에 그 변화를 따라올 부작용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인공지능에 의해 지배 당하는 인간의 모습은 장난스럽게 이야기되곤 하지만, 실제로 학자들은 인간의 발달 과정을 잘 아는 인문학자를 불러 만약의 상황에 대한 조언을 구하기도 한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학문 간 만남은 우리 생활 속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의 최초 발행일은 2008년이다. 현재 본인이 읽은 책 또한 2008년 1쇄본이다. 그렇다면 약 12년이 지나 이 책을 읽은 셈인데, 10년이 지나 읽어도 유의미한 책이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지난 12년간 양질의 발전이 있었긴 하나, 저자의 문화로서의 과학 접근법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본다. 게다가 우리는 이전 과학을 이어나가는 세대다. 우리는 2008년 저자가 책을 집필한 시점으로부터 현재까지 어떤 가감이 있었는지 알기에, 이 책을 바탕으로 각자의 분야에서 현재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고민할 수 있다. 잦은 변화를 겪는 과학 분야를 인문학적으로 접근해 한 권으로 정리한 유의미한 연구서다.

첨. 2017년 개정판을 읽으면 현대 흐름까지 살필 수 있으리라 예상된다.

r******2 2020.02.29. 신고 공감 1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한 걸음 떨어져 과학 바라보기 / 한 걸음 들어가 과학 바라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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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과학이 좋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과학의 이미지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경제발전의 주역인 ‘과학'기술의 ‘과학’ 일 수도 있겠고, 이성과 논리, 지식의 집합체 라는 인식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중 내가 과학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무엇보다도 누구든 기존의 지식에 질문할 수 있고, 누구든 ‘과연 맞는 지식인가? 더 나은 방안은 없는가?' 하는 의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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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정말 과학이 좋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하는 과학의 이미지에는 여러가지가 있다. 경제발전의 주역인 ‘과학'기술의 ‘과학’ 일 수도 있겠고, 이성과 논리, 지식의 집합체 라는 인식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이 중 내가 과학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는 그 무엇보다도 누구든 기존의 지식에 질문할 수 있고, 누구든 ‘과연 맞는 지식인가? 더 나은 방안은 없는가?' 하는 의문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뉴턴의 고전역학에 상대성원리로 도전한 아인슈타인이 그러했고, 산소를 발견한 라부아지에가 그러했다. 혹자는 이를 과학혁명이라고도 칭하는데, 이는 멀리 가지 않아도 쉽게 볼 수 있다. 바로 과학을 공부하는 학우들에게서 보곤 하는데, 이들과 스터디를 할 때면 교과서에 나열된 수식들과 이론들을 하나하나 점검해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각자 개인 차원에서 끊임없이 과학혁명을 해나가는 중인 것이다.


이런 면에서 ‘과학한다'라는 말이 가지는 가장 큰 매력은 바로 누구든 질문할 수 있고 틀릴 수 있는, 열려있는 분위기를 추구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나는 과학의 이런 매력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이런 ‘과학'이 어떻게 하면 이 사회에서 오래오래 널리널리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바로 위와 같은 고민때문이었다. 역사적으로 멀리 보면 종교로부터 탄압받던 시절도 있었고, 가깝게는 환경파괴, 전쟁 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게 되면서 반-과학 분위기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게 되었다. 학생으로서는 어려움 대비 돈을 벌지 못한다는 이유로 학생들 사이에서도 내쳐져버리는 사회적 분위기도 느낄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열려있는 분위기의 ‘과학'이 살아남고자 한다면, ‘과학'은 우리네 삶에 실질적으로 지금보다 유용하다는 얼굴을 갖춰야할 것이고, 다른 분야의 학문과도 좋은 관계를 맺어 그 유용한 쓰임새를 증명해내는 것보다 좋은 방법이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과학'이 타 분야,그리고 우리 삶에 어떻게 관계를 맺어왔는지 알 필요가 있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 융합시대의 과학문화”는 과학이 어떻게 다른 학문과 상호작용을 맺고, 문화로서의 과학이 우리 사회에서 어떻게 동작하는지를 보여주는 책이었다.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에서는 과학과 우리 삶 사이에 상호작용을 알아보기 위하여 과학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는데, 저자는 과학을 일종의 지식 체계가 아니라 구체적인 사회문화적 맥락 속에서 과학자들이 수행하는 활동으로 바라본다. 이로써 과학과 인문학, 과학과 예술, 과학과 건축, 언어, 젠더 법 등 우리 삶을 이루는 큰 줄기들 사이에서 과학이 어떠한 영향을 받고 어떠한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본다. 흥미로운 예시를 다양하게 들어 살펴보는데, 가령 과학과 예술 파트에서는 영국의 화가 존 컨스터블을 예로 든다. 존 컨스터블은 눈부신 석양을 캔버스에 어떻게 옮길 것인가 하는 문제로 오랫동안 고민했는데, 색깔에 대한 과학적 실험을 통해 가장 석양과 근사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고 한다. 


책을 읽으며 재밌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씁쓸했던 것이 이 책이 2008년에 출판된 책이라는 것이다. 06년도 ‘인문학의 위기’가 화두되면서 인문학이 본인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연과학을 끌어안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고 한다. 그러나 강산이 한번 바뀌고도 지났을 14년 후, 20년도에 들어와 인문학의 위기가 극복되었냐고 물어본다면 아닐 듯 싶다. 심각한 것은 자연과학도 이제는 ‘자연과학의 위기’를 외치고 있다는 것인데, 울산과학기술원에 재학 중인 내 학우는 올해 물리학 전공 트랙을 선택한 학생이 단 2명이라고 한다. 타 대학 자연계열 입학생 현황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대학에 들어와 전문적인 과학자로 훈련시키기까지 약 10여년의 시간이 필요하니 어쩌면 우리의 과학은 10여년 후 큰 인력난을 겪을지 모르겠다. 


저자의 책머리 말을 인용하자면

“우선 과학이 자신의 범주 밖에 존재하는 다양한 지식이나 활동과 맺고 있는 접점과 상호작용을 잘 보여주는 것이 미래를 위한 과학 문화의 더 의미 있는 비전을 모색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라고 하는데, 문화를 일궈내기는 커녕 유지할 사람이 남아 있을지가 걱정된다. 책을 출간했던 시기로부터 12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융합'은 여전히 유행 중인데, 과연 우리는 ‘융합’을 통해서 과연 각 분야의 학문이 나아갈 활로를 넓힐 수 있었는지, 아니 그 전에 우리가 겪는 이 ‘융합'이라는 것이 저자가 기대했던 비전의 ‘융합'이었을지 모르겠다.


우리는 일상에서 과학의 여러 얼굴을 마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과학'이라 하면 수식과 이론, 객관적이고도 논리적인 지식의 집합이라는 이미지가 쉽게 떠오르곤 하는데,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 이 책은 그런 이미지에서 한 걸음 물러나 과학 활동의 다른 면모를 살펴볼 수 있게 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과학자, 엔지니어는 홀로 일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더욱 과학자/엔지니어, 그리고 이공계열에서 공부하는 학우들에게 일독을 권하고 싶은데, 이는 우리가 공부하고 사용하고 (나아가 사랑하는) ‘과학’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맥락에서 자리잡고 있는지,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하는 일이 어떤 가치를 가지고 있는지, 타인에게는 어떤 가치로 받아들여지는지 알면 더욱 보람차지 않겠는가?

o****0 2020.02.2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