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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과 육체 모두 담으려 한 글쓰기 - 버지니아 울프 《끔찍하게 민감한 마음》
"영혼과 육체 모두 담으려 한 글쓰기 - 버지니아 울프 《끔찍하게 민감한 마음》" 내용보기
연필 하나를 산다는 구실로 런던의 저녁 산책을 나서는 버지니아 울프처럼 이 도시를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써줄 이 없을까.“이 사람들은 모두 가난하고 초라한데도 불구하고 약간 비현실적인 모습을 띠며 의기양양하다.(14쪽)”“벌거숭이 나무들 꼭대기에는 붉은빛 도는 노란 불빛의 직사각형 틀이 매달려있다. 창문들이다. 거기에 낮게 빛나는 별처럼 쉼 없이 찬연하게 타오르는
"영혼과 육체 모두 담으려 한 글쓰기 - 버지니아 울프 《끔찍하게 민감한 마음》" 내용보기

연필 하나를 산다는 구실로 런던의 저녁 산책을 나서는 버지니아 울프처럼 이 도시를 이렇게 아름다운 문장으로 써줄 이 없을까.

“이 사람들은 모두 가난하고 초라한데도 불구하고 약간 비현실적인 모습을 띠며 의기양양하다.(14쪽)”
“벌거숭이 나무들 꼭대기에는 붉은빛 도는 노란 불빛의 직사각형 틀이 매달려있다. 창문들이다. 거기에 낮게 빛나는 별처럼 쉼 없이 찬연하게 타오르는 지점이 있다. 가로등들이다. 이 나라와 나라의 평화로움을 유지하고 있는 이 텅 빈 땅은 런던의 광장일 뿐이다.(15~16쪽)”

「거리 출몰하기 : 런던 모험」은 그녀 사후 『나방의 죽음』(1942)에 수록된 에세이인데 같은 제목의 한국 번역본에는 실려 있지 않다. 이 에세이는 1926년 12월에 썼는데 계속해서 교정을 보느라 1927년 10월에서야 발표했다. 도시 구석구석을 살펴보는 울프의 시선이 ‘의식의 흐름’ 기법이 아니고서는 이렇게 아름다울 수 없었으리라.
*‘의식의 흐름’이라는 표현은 울프 부모님의 친구였던 헨리 제임스의 형 윌리엄 제임스(철학자, 심리학자)가 사용한 것에서 기인한다. 
     
    


이어지는 에세이는 울프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칭송한 서식스의 저녁 풍경이다. 「서식스의 저녁 : 자동차에서의 단상들」 (1927, 『나방의 죽음』(1942)에 수록)은 울프가 『등대로』를 출간한 뒤 그 수입으로 자동차를 사 새로운 경험을 하는 인상을 담았다.

“나는 지금처럼 아름다운 순간에는 항상 안달 나게 하는 어떤 침전물이 있다고 생각했다. 눈을 들어 올려다보면 우리가 예상할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더 위대한 아름다움에 압도당하는 것에 대하여 심리학자들은 설명해야 한다. 이제 배틀(지명) 위로는 분홍빛 구름이 드리워져 있으며, 들판은 대리석 무의로 얼룩져 있다. 우리의 지각은 황급히 공기를 불어 넣어 팽창한 고무풍선처럼 급속히 부풀어 오른다. 그런 뒤 아름다움과 아름다움과 아름다움이 터질 듯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것처럼 보였을 때 어떤 핀 하나가 찔러 그것은 터져버린다. 그런데 그 핀이 무엇일까? 내 생각에 핀은 자신의 고유한 무력감과 관련이 있다. 나는 이것을 견딜 수 없고ㅡ나는 이것을 표현할 수 없으며ㅡ나는 그것에 맥을 못 추며ㅡ나는 지배당한다. 그곳 어딘가에 불만이 놓여있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이 받아들이는 모든 것에 대한 지배력을 요구한다는 생각과 관련이 있다. 여기서 지배력이란 우리가 지금 서식스에서 보는 것을 또 다른 사람이 공유할 수 있도록 전달하는 힘을 뜻한다. 그런데 게다가, 핀이 또 한 번 더 찔러 우리는 기회를 놓치고 만다. 아름다움이 오른손, 왼손에 퍼졌기 때문이다. 등 뒤에도 역시 퍼져있다. 그것은 내내 새어나가고 있다. 우리는 욕조와 호수를 채울 수 있는 급류에 골무만 제공할 수 있을 뿐이다.(42~43쪽)”

“태양은 이제 지평선 아래에 있다. 어둠이 빠르게 퍼졌다. 내 자아들 중 어느 누구도 산울타리에서 점점 가늘어지는 우리의 전조등 너머를 볼 수 없다. 나는 그들을 함께 호출했다. ”이제 우리의 이야기를 마감할 때야. 이제 우리 자신을 한자리에 모아야 해. 우리는 하나의 자아가 되어야 해. 어느 게 길이고 어느 게 둑인지 끊임없이 반복해서 비추며 밀어젖히고 나아가는 우리의 불빛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우리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살고 있어. 우리는 무릎덮개에 따뜻하게 감싸여 있으며, 비바람으로부터 보호받지. 우리는 혼자야. 이제 정산해야 할 시간이야. 일행을 통솔하는 나는 이제 우리가 가져온 모든 전리품들을 순서대로 정리할 거야. 어디 보자. 오늘은 수많은 아름다움이 들어왔네.(46쪽)”

감각 하나하나를 핀에 찔린 듯 느끼는 섬세함. 그리고 자신마저도 감각 하나하나에 내려앉은 나비처럼 느끼고 옮기는 작가의 필력에 나는 감탄하며 뭉게구름처럼 따랐다.  
     
    


「탈란드 하우스」(1940년 9월 울프의 일기에서 발췌)의 ‘탈란드 하우스’는 울프의 소설 『등대로』, 『파도』, 『제이콥의 방』의 무대이기도 했는데, 울프가 아기였을 때 처음 갔던 집, 어머니가 죽은 뒤 영원히 잃어버린 집이다. 그녀가 이곳에서 느낀 ‘행복’이 어떠했는지 다음 문장이 잘 말해준다.

“오크나무 열매들, 이파리 뒷면에 포자가 무리 지어 있는 양치식물들, 레가타, 찰리 피어스, 정원 문이 덜컥거리는 소리, 따뜻한 현관 계단에 득실거리는 개미들, 압정들을 사던 일, 뱃놀이, 헤일즈타운 늪에서 나던 냄새, 트레베일의 농가에서 반을 가른 빵에 콘월크림을 발라 홍차와 함께 먹던 일, 공부할 때 밑바닥까지도 빛깔을 바꾸던 바다, 벌집처럼 생긴 의자에 앉아 있던 늙은 볼첸홈 씨, 잔디밭 위에 점점이 흩뿌려진 느릅나무 잎사귀들, 이른 아침 집 위로 날아가면서 까악까악 울던 까마귀들, 잿빛 뒷면을 드러내던 에스칼로니아 잎사귀들, 헤일에서 화약고가 터지면서 오렌지 씨처럼 공중에 활 모양을 그리던 일, 여기저기 잔뜩 떠 있는 부표. 이런 것들이 어떤 이유에선지 내 마음속에서 세인트 아이브스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들이다. 일관성 없이 부조화스럽게 잡다한 일련의 것들, 드리워진 그물을 표시하는 조그만 코르크 부표들이다.(75쪽)”


    
「나는 속물인가 」(1936)는 그 유명한 지식인들의 비공식 모임인 ‘블룸즈버리 그룹’의 리더인 몰리 매카시가 만든 ‘회고록 클럽’의 미션으로 쓰게 된 글이다. 울프는 모임 회원들과 자신이 속물이 아닌가 탐색하다가 당시의 속물적인 모임들과 그 분위기를 떠올린다. 르포 같기도 하고 소설 같기도 해 흥미롭다. 사교 모임의 여왕이 되고 싶었던 시빌이 남편을 잃고 가세가 기울어 집을 팔고 가는 와중에도 자신이 헨리 제임스와 친했다고 울프에게 감명을 주려고 애썼던 것을 기억해낸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한 가지를 발견해냈다. 속물근성의 본질이 다른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고 싶어 한다는 데 있다는 것이 그것이다. 속물은 새처럼 팔랑거리는 머리를 가진 토끼 대가리처럼 경망한 존재로, 자신의 지위를 공고히 하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이 믿도록 사람들 앞에서 늘 명예나 칭호를 과시하며, 자기 자신도 진짜로 믿지 않는 것을 믿도록 도와준다. 자기가 다소 중요한 인물이라는 것을 말이다.(87~88쪽)”

 


「끔찍하게 민감한 마음」(1927)은 작가 캐서린 맨스필드가 폐결핵으로 죽은 지 4년 뒤 그녀의 남편이 편집, 발간한 그녀의 『일기』를 읽고 울프가 쓴 글이다. 울프는 자신의 일기에 “그녀의 글쓰기에 질투가 난다. 여지껏 질투심을 느꼈던 유일한 글쓰기이다”라고 썼다. “끔찍하게 민감한 마음”은 맨스필드가 일기에서 사용한 말이다. 울프가 이 글에서 인용하고 있는 맨스필드 문장들을 보면 정말 두 사람의 ‘의식의 흐름’이 유사하다 싶었다. “나의 보이지 않는 것들, 나의 미지의 것들이여 오라, 우리 함께 이야기하자꾸나”라는 맨스필드의 문장은 앞서 소개한 「서식스의 저녁 : 자동차에서의 단상들」에서 울프가 보여준 정서와 글과 무척 닮았다. 또 맨스필드가 병세가 심해져 분열된 자신에 대해 어렵게 글을 써나가는 것을 보고 먼 훗날 그녀가 죽음을 생각했을 때 동병상련을 느끼지 않았을까. 

 


    
말미에는 새뮤얼 테일러 콜리지가 쓴 『은행가, 토머스 쿠츠의 삶』(1920)을 읽고 비평을 소설처럼 풀어쓴 「돈과 사랑」과 울프의 유서를 살펴볼 수 있다. 자신에게 누구보다 행복을 선사한 남편에게 자신은 불행만을 주고 있다는 자책이 가득 적혀 있다. “내가 하고픈 말은 내 삶에서 누렸던 모든 행복을 당신에게 빚졌다는 거예요. …(중략)… 이제 더는 당신의 삶을 망치고 싶지 않아요.” 자신이 미쳐가고 있다면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걸까. 유서 가득 적힌 “행복”이란 단어를 보면서 삶에서 그것은 끔찍이도 어려운 일이라는 걸 곱씹으며 책을 덮었다. 


    
“단어는 하나의 영혼뿐만 아니라 하나의 육체까지 부여받는다.”


    
오늘도 흐렸고 나는 울프와 이 하루 사이에서 잠 못 이뤘다.

 

 

 

 

 

 

 

 

 

g******i 2018.03.28. 신고 공감 2 댓글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