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는 미래를 보기 위한 연습이다" 이 책 '인생극장'은 식민지 시대부터 1970년대까지의 한국 고전영화를 함께 감상하고 토론하는 프로그램인 '세상물정극장'을 책으로 그 시대를 살았던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것이다. 1924년생, 1936년생의 지극히 평범한 '그저 그런' 아버지, 어머니에 대한 아들 사회학자가 쓴 자서전이다. 일제강점기시절에 비교적 부유한 시골 이장의 집에서 태어나 보통학교를 다닌 노병욱씨는 코쿠고를 배웠지만 공부에 대한 재능은 없어서 그 이상의 상급학교로 진학하지는 못한다. 1944년에 국민동원령으로 징집되어 일본 오사카에서 종전을 맞이한다. 만주에서 익힌 사진기술로 종전 후에는 파주 삼거리에서 사진관,미군을 대상으로 레인보우 클럽이라는 술집을 운영한다. 이 시절에 아들 사회학자의 아버지가 된다. 김완숙씨는 극도로 가난해서 소학교에서 반장을 도맡아하는 명민함을 가졌지만 그이상의 학교를 갈 수 없었다. 올케의 등쌀에 서둘러 노병욱씨와 결혼을 하고 파주 삼거리에서 레인보우 클럽에서 양공주들을 대상으로 미용실을 운영한다. 이 시절에 아들 사회학자의 어머니가 된다. 박정희같이 어떤 의미에서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람의 일생이 아닌 '그저 그런' 사람의 이야기에 누가 관심을 가지겠는가. 이 책은 특별할 것 없는 '그저 그런' 부모를 위해 이들 사회학자 노명우가 대신해서 쓴 자서전이다. 아울러 그 사회학자의 부모와 동시대를 살았던 우리 부모의 자서전이기도 하다. 타인과 윗사람에게는 그렇게 친절하고 너그러운 사람을 볼 수 없을 정도로 낮은 자세를 취하지만 가족에게는, 특히 아내에게는 한없이 폭력적이고 권위적인 아버지, 가족을 정서적으로 힘들게 하면서 본인만 마음편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아버지다. 그속에서 자식들때문에 신음하며 살아가는 어머니의 모습이 오버랩된다. 아들 사회학자가 써내려간 우리 부모들의 인생극장에는 총연츨자가 기획한대로 움직일 수 밖에 없었던 단역배우들의 지난한 삶이 고스란히 녹여져 있다. 나의 아버지, 어머니의 각각의 인생에는 어떤 슬픔과 분노 그리고 웃음과 재미가 있었을까? 유난히 부모님이 보고 싶어진다. 나도 부모님의 자서전을 써보기로 다짐해본다. 전 방위적 통제기관의 연출 속에서 인생을 살아내는 내 부모의 삶을 나도 자서전으로 남기면서 이해하고 싶다. #인생극장 #노명우 #자서전 #사계절 |
1. 엄마는 내 나이인 마흔둘에도 일을 하고 있었고, 쉰둘에도 일을 하고 있었다. 말수가 적고 웬만한 일에 크게 흔들리지 않았다. 해방 직전인 1944년에 태어나 2000년에 세상을 떠나셨다. 전쟁에 대한 큰 기억은 말씀한 적은 없었지만 피란을 온 육촌지간 9남매가 사랑방에 얹혀 살았었노라 했다. 우리에게는 후덕하기만한 외숙모도 소싯적에는 엄마와 막내 외삼촌을 야단치곤 했다는데. 엄마도 엄마를 일찍 잃었고, 밑으로는 동생을 월남전에서 잃었다. 아버지는 우리 곁에 남았지만 이제 엄마 이야기를 물어볼 곳은 아버지와 외숙모만 남았을 뿐이다. 편찮아 지신지 몇 달 만에(물론 오래도록 아팠겠으나) 그냥 훌쩍 돌아가셔서 이후에 형언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독하게 엄마에 대해서 적어 두었지만, 그건 철저하게 나와 엄마의 그 사이에 대한 이야기였다. 정작 엄마의 궤적을 많이 알지 못한다. 엄마의 인생이 궁금하지 않았던 나이에 훌쩍 떠나셔서 그렇다. 모든 죽음은 역사의 한 켠이 접히고 열리는 일임을. 2. 1966년생인 사회학자 노명우의 신작 <인생극장>에는 작고한 부모의 인생을 개화기부터 식민지 시대, 그리고 한국전쟁과 휴전 이후. 다양한 근현대 한국영화의 장면과 소설을 포개어서 서술했다. 누구나 부모의 생살을 찢고 나오지만 그 인생을 텍스트로 재구성하는 데에는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게다가 1924년생, 1936년생의 부모의 삶을 좇는 일은 한국의 근현대의 생자료를 뒤적거리는 일이나 마찬가지일 테니까. 노명우 교수 부모의 삶이지만 어쩐지 낯설지 않은 데에는 아마도 내가 내 친구들에 비해 나이가 많은 (식민지와 한국전쟁을 두루 거친) 아버지의 막내여서다. 어느 순간 '노인 아버지'만을 대해와서이기도 하다. 한 사람의 인생을 잘 적을 수 있다면, 많은 것들을 적을 수 있지만. 영원히 불가능한 꿈이 타인의 인생을 재구성하는 일이기에 우리에겐 '문학'이라는 불멸의 장르가 남았겠지. 만화책 정용연 <정가네 소사>도 함께 보면 좋을 것 같다. |
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으로 읽었습니다 그저그런 범인들의 과거 이야기를 통해 지난 100년의 역사가, 사회가 이해되었고.... 다른 세대의 삶들을 바라보는 눈이 더 깊어져서... 이책을 일고 내 안이 더 넓어진 사람이 되었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시대가, 사회가 지정하고 들려주는 대로 생각하고 사는 사람들에대해 경멸이 아닌, 인간적 안쓰러움으로 바라볼수 있게 되었습니다... 길지나다 스치는 동시대 사람들을 향해서도 더 많은 아량으로 대할수 있을것 같습니다... 강추합니다^^ |
가끔 돌아가신 할머니의 삶에 대해 생각한다. 할머니는 늘 1970년대와 80년대의 기억에 대해 얘기하셨다. 그때 고생을 많이 했기 때문이겠지만. 1970년 이전에도 1980년대 이후에도 할머니는 긴 시간을 사셨는데 그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한 적이 없다. 1980년대 이후의 삶은 나도 같이 살았으니까 알지만 1970년대 이전의 할머니의 삶에 대해서는 정말로 아예 아는 것이 없다. 노명우 교수님을 생각하면 부럽기도 하다. 나도 진작 살아계실 때 좀 물어볼걸. 노명우 교수님의 최신작 <인생극장>은 교수님의 돌아가신 부모님을 그리며, 부모님의 증언, 영화, 신문기사, 노래 등 당대의 대중문화를 통해 부모님과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복원하고자 한 작품이다. 종종 할머니의 삶에 대해 떠오를 땐 <인생극장>을 다시 펼쳐볼 것이다. |
1921년생 아버지와 1933년생 어머니를 둔 나는 1966년생 사회학자 아들의 눈으로 이 책을 읽었다.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 전쟁 후의 미군기지. PX 물건을 빼돌려 보따리장사를 하던 내 어머니. 미 헌병과 지프차, 양갈보라 불리던 여자들과 그녀들을 손가락질하던 동네 사람들, 또 그녀들의 밥줄을 위협하던 성병, 뿌려지던 달러와 던져지던 껌을 따라 달리던 내 어린 동무들. 그 장면 어딘가에는 내 부모와 형제들의 모습도 담겨 있었다. 시간 속에 숨겨놓았던 내 어릴 적 기억이 이 책과 함께 되살아났다. 역사적 기록으로 남지 않을 사회학자 아들의 어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내 어머니와 아버지의 일생은 대단한 전기 작가가 쓴 누군가의 일생과 그 무게가 다를까? 자식들도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내 부모의 고생담은 푸념에 불과한 걸까? 원하지 않았지만 견뎌내야 했던 시대의 고통과 아픔과 원망. ‘그저 그런’, ‘보통 사람’, ‘무명씨’ 그들은 각자의 ‘인생극장’에서 제 역할을 충분히 한 사람들이다. 젊어서 이고 진 보따리 때문에 나이 들어 팔을 못 쓰겠다고, 젊어서 무거운 거 들지 말라시는 내 어머니는 그 시대로 돌아가면 또 미제 담요를 몇 개씩 이고 산을 넘으실 거다. 그들의 ‘인생극장’이 막을 내리고 불이 꺼져도 그 여운으로 우리는 지금 살아가고 있는 게 아닐까?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나의 자식들과 함께 읽고 긴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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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어깨에 힘이 없어진 부모님을 보며 어떤 삶을 살아 오셨는지에 대해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오히려 가끔 부모님의 인생 철학과 마딱뜨릴때면 화가나는 날도 있었다. 마치 창신동 채석장의 절벽처럼 검고 높았다. 이 책은 '그저, 그런' 부모님의 삶의 궤적은 조금이나마 엿볼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창신동 채석장의 높이를 많이 낮추어 주는 책이었다. 서평에서 처럼 영화나 드라마로도 만나보고 싶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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