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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각성, 꿈 그리고 존재 "뇌과학, 명상, 철학에서의 자아와 의식"_에반 톰슨
"[서평]각성, 꿈 그리고 존재 "뇌과학, 명상, 철학에서의 자아와 의식"_에반 톰슨" 내용보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여전히 나인가나는 책장을 펼쳤다. 나는 책을 읽었다. 긴 독서였다. 그리고 나는 책장을 덮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노트북을 열었고 다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 모든 행위의 배후에 내가 있다. 곰곰이 회상해보건대 분명히 내가 했던 행위들이 맞다. 그런데 과연 이 모든 일들이 '나'의 행위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지난 며칠간의 '나'는 모두
"[서평]각성, 꿈 그리고 존재 "뇌과학, 명상, 철학에서의 자아와 의식"_에반 톰슨" 내용보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여전히 나인가
나는 책장을 펼쳤다. 나는 책을 읽었다. 긴 독서였다. 그리고 나는 책장을 덮었다.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나는 노트북을 열었고 다시 나는 글을 쓰기 시작한다. 이 모든 행위의 배후에 내가 있다. 곰곰이 회상해보건대 분명히 내가 했던 행위들이 맞다. 그런데 과연 이 모든 일들이 '나'의 행위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지난 며칠간의 '나'는 모두 동일한 '나'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예컨대 그저께까지만 하더라도 나는 김치볶음밥을 가장 좋아했다. 그런데 오늘의 나는 참치오므라이스를 더 좋아한다. 음식에 대한 서수적 선호도가 역전된 나는 진정 그 전과 '동일'한가? '선호도'를 넘어 종교, 신념, 삶에 대한 철학, 정의관, '자아에 관한 관념'까지 달라졌다면, '나'는 여전히 '나'인가?

자아탐구를 향한 인류의 여정
'나', 즉 '자아'에 관한 의문은 긴 인류의 역사와 함께 치열하게 탐구되어 왔다. 그 탐구의 열망은 종교, 철학, 학문 등 직군을 가리지 않고 지속적으로 피어올랐다. 그리고 비로소 현대과학이 돋보기를 들고 나타났다. 정교한 관측기술을 바탕으로 실시간으로 두뇌의 활동을 관찰하며 '자아'와 '뇌'의 긴밀한 관계를 분명하게 밝혀내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나'와 '의식'은 두뇌의 생물학적 작용에 따른 부산물에 불과하다는 극단적 환원주의자들도 나타났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우리는 '뇌'의 상태에 따라 구조적으로 특정지어지는 결과물에 불과한 것일까? 치열한 수행과 명상을 통해 깊은 의식의 세계를 직접 체험한 명상가들의 지혜는 뜬구름에 불과한 것일까? 탁월한 이성적 탐구를 통해 '진리'에 접근하기 위해 머리를 싸매온 철학자들의 지혜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일까? 

명상과 과학의 만남
이 책 '각성, 꿈, 그리고 존재'는 여기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바로 '명상'과 '과학'의 만남이다. 고대의 지혜와 현대 과학의 통섭이다. 저자인 '에반 톰슨' 교수는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의 교수이며, 주로 철학, 인지과학, 불교 관련 연구를 하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다양한 관점과 해석이 담겨있다는 점이다. '나'라는 궁극의 키워드를 향하여 명상과 과학으로, 현상과 물질로, 상상과 실증으로 거침없이 탐구해 나간다. 이 책의 주제에 대한 탐구도 흥미로웠지만, 하나의 키워드를 향해 '이렇게 다양한 관점과 해석으로 접근할 수 있구나' 라는 방법론의 경험도, '관점의 확장이 주는 가능성과 흥미'에 대한 발견도 의미있는 독서의 포인트였다.

명상의 효과에 대한 현대적 재발견
86 초점 주의 명상을 반복해서 수행하게 되면 많은 주의력 기술이 향상된다고 한다. 첫 번째는 일종의 깨어있음 또는 각성인데, 이것은 산만해진 생각과 느낌에서도 주의하여 초점을 맞추는 것을 잃지 않고 깨어 있을 수 있게 하는 것을 말한다. 두 번째는 산만한 것에 소라집히지 않고 거기서 떨어져 나오는 능력이다. 세 번째는 주의력을 선택된 초점에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기술이다. 이런 기술들을 발달시키게 되면 유연한 주의력을 획득하고 방황하는 마음을 붙잡을 수 있는 예민한 능력을 키울 수 있다.
(...)
열린 자각 명상은 자각의 자각, 또는 심리학자들이 메타 자각이라고 부르는 것을 훈련한다. 열린 자각 명상에서는 메타자각이 사고, 감정, 감각을 목격하는 형태를 보여준다. 그 사고, 감정, 감각들은 순간순간 일어나는데, 그 성질들을 관찰한다. 이런 수행 스타일은 경험의 묵시적 측면, 즉 순간순간 자각의 생생함 정도라든가 일시적인 생각과 감정이 전형적으로 주의를 사로잡고 여러 생각과 습관적인 감정 반응을 자극하는 방식을 아주 예리하게 느끼게 해준다. 이렇게 해서 수행자는 감각, 사고, 감정, 기억을 동일시하는 습관이 어떻게 자아감을 형성하게 되는지를 배우게 된다.

흔하게 알려진 대표적 불교 명상 방법으로 '사마타'와 '위빠사나'가 있다. 이는 현대 학자들에 의해서 '초점 주의 명상'과 '열린 자각 명상'으로 재해석되었다.  전자의 경우 하나의 대상에 또렷한 주의를 유지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주의력 기술'을 향상시킬 수 있다고 한다. 일반적인 주의의 '닻'으로 '호흡'이나 '만트라'가 활용된다. 후자의 경우는 이 순간 떠오르는 '생각', '감정', '감각'들을 알아차리고 비판단적으로 응시하며 흘려보내는 것이다. 일반적인 사고의 패턴이 이러한 요소들에 '이끌려'간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또한 새로운 주의의 '훈련'방식이라고 말할 수 있다. 저녁무렵 드라마를 보던 중, 주인공이 족발을 시켜먹는 장면을 목격하고, 나의 마음에도 '족발에 대한 생각'과 '족발을 먹고싶다는 감정'과 '과거 먹었던 족발의 달콤한 추억'이 떠오르며 어느새 다어이트중임을 잊은 채 배달어플을 실행시키게 되는 것은 '일반적인 패턴'이다. 하지만 '족발생각'과 '족발감정'을 일시적으로 떠오르고 사라지는 '상념'으로 알아차린다면 상황을 다르게 흘러가도록 만들 수 있다. 조금 전까지 '족발을 먹고싶은 나'로서 '나'와 '족발'이 하나였다면, 대상을 알아차리고 비판단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족발생각'이 적어도 '나'가 아닌 다룰 수 있는 '대상'임을 자각할 수 있다. 또한 TV라는 조건에 따라 나타났으며 또 다른 조건에 의해 소멸될 수 있다는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지혜'를 바탕으로 삶의 주도권을 강화할 수 있는 것이다.

명상이 나에게 선물한 내면의 힘
나의 경우 '인터넷 서핑'으로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시간이 많은 편이었다. 지식을 넓히거나 배움을 얻으며 가치있게 활용할 때도 있지만, 중요하거나 시급하지 않은 신변잡기식 뉴스에 이끌려 다니는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이러한 시간을 줄이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해 보았지만 생각대로 잘 되지 않았다. '잠깐'만 접속하고 돌아온다는 것이 어느새 훌쩍 시간을 흐르게 하며 '해야 할'일과 '하고싶은 일'의 기회를 빼앗아가기 일쑤였다. 이러한 문제를 개선하는데 큰 도움을 준 것이 앞서의 '열린 자각 명상', 다른 이름으로 '마음챙김'과 '위빠사나'라고 불리는 명상이다. 나는 시급하지 않은 뉴스를 읽는 것을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렇게 시간을 빼앗겼을까? 평온한 마음으로 '알아차림'한 결과 그것이 '스트레스'와 깊이 연결되어 있음을 자각하게 되었다. 스트레스 상황에서 일시적으로 도피하고자 '단기적 자극'을 이용했던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패턴화' 로 이어졌고 시간이 흐를수록 의식적인 노력만으로는 벗어나기 어렵도록 고착화 되어깄다. 하지만 이러한 '스트레스-도피-자극'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을 이해하게 됨으로써, 각 구간에  한결 기민하게 개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스트레스'라는 숨어있던 방아쇠를 알아차림으로써 '스트레스를 받은 나'가 아닌, '스트레스'를 알아차리는 '나'로서, 삶의 주도권을 키워나갈 수 있었다.

122 초점 주의 명상과 열린 자각 명상은 뇌의 주의처리 과정을 증진시키고, 주의 요구 지각 과제의 수행력을 향상시킨다. 이런 연구 결과들은 명상이 뇌에 영향을 미친다는 직접적인 증거를 제공해준다.

이 책은 명상이 주는 인지적 효능에 관한 과학적 연구결과를 제시한다. 또한 그 원리와 과정에 대한 이론적 근거와 과학적 탐구도 부연한다. 나아가 '자아와 의식은 뇌가 창조한 환상일 뿐'이라는 '극단적 환원론'에 맞서 '명상을 통한 체험'이라는 '뇌현상학적 탐구'를 강조한다.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나의 명상도, '지혜의 넓이'와 '체험의 깊이'가 더욱 확장될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종교적 지혜에 대한 과학적 재해석
540 내가 언급한 생물학적 관점은 고대 불교의 개념인 오온(색, 수, 상, 행, 식)에 새로운 이해의 실마리를 줄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오온은 다섯 종류의 기본 정신물리적 활동으로 볼 수 있다. 이것들은 감수능력이 있는 존재 또는 개인을 구성하는 것이다.
(...)
마지막으로, 이런 네 가지 온(색, 수, 상, 행)에 속하는 모든 정신물리적 활동들은 내외수용 감각 또는 성찰이나 기억과 같은 심적 자각을 통해서 파악된 어떤 것의 현존에 대한 자각을 조건 짓기도 하고 그런 자각에 의해 조건 지워지기도 한다. 이런 형태의 자각이 다섯번째 온인 식온에 해당한다.

긴 독서의 압권은 불교의 '오온'을 생물학적으로 재해석한 파트였다. 오온은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의 기본적 구성 요소로서 형태, 느낌, 지각, 성형, 의식으로 열거된다. 이는 근대 과학의 도움이 전혀 없이, 오로지 내적 성찰에 의해서 정립된 지혜다. 그런데 이를 현대의 과학적 지식들을 바탕으로, 특히 생물학적 이론을 바탕으로 이 '오온'을 해석하며 지지한다. 이에 앞서 '아비달마'에서 제시된 '마음의 한 순간'으로서의 '찰나'인 1/65초를 실험심리학적으로 측정해봤던 실험과 함께, 현상학적 지혜를 과학적 탐구로 재해석했던 많은 부분들이 '흥미'와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그동안 얼마나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평가절하하며 살았는가에 대해서 되돌아보게 만들었다.

다시, 나는 누구인가
521 자아는 하나의 존재이거나 개체 같은 것이 전혀 아니다. 그것은 삶의 과정에서 발제하여 발생한 것이다.
(...)
내가 자아를 하나의 존재가 아니라 하나의 과정이라고 말할 때, 내가 의미하는 바는 자아가 '나-됨'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누구인가? 저자는 자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허무주의를 부정한다. 또한 자아가 고정불변의 실체라는 견해 또한 지지하지 않는다. 저자가 말하는 자아는 '과정'이다. '나-됨'의 과정이다. '나'는 그 모든 순간속에서 '나'와 함께 존재하고 있다. '우파니샤드'와 '아비달마'와 '철학'과 '명상'과 '뇌과학'을 넘나드는 긴 여정은 그의 견해에 대한 충분한 지지의 믿음을 제공했다. 그래서 나는 열린 마음으로 저자의 탁월한 견해를 수용했다. 다만 그것을 확신하지는 않는다. 더 열린 마음으로, 자아의 물질적 기반을 잃게되는 날까지 자아탐구의 여정을 이어갈 계획이다. 아마 저자도 그러한 태도를 지지하리라 믿는다.

존재를 넘어 창조의 놀이를 향하여
아이는 순진무구요 망각이며, 새로운 시작, 놀이, 제 힘으로 돌아가는 바퀴이며 최초의 운동이자 신성한 긍정이다.
그렇다. 형제들이여, 창조의 놀이를 위해서는 신성한 긍정이 필요하다. 정신은 이제 자기 자신의 의지를 의욕하며, 세계를 상실한 자는 자신의 세계를 획득하게 된다.
-프리드리히 니체, 정동호 역,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p. 41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니체가 말했던 세계를 상실한 '자'와 세계를 획득한 '자'는 과연 동일한 '자'였을까? '극복되어야 할 그 무엇'으로서의 '자아'와 '위버멘쉬'로서의 '자아'는 과연 동일한 '자아'였을까? 그가 말했던 '순진무구의 망각'은 '자아에 대한 망각'이요, '새로운 시작'은 '새로운 자아'로서의 삶이요, '놀이'는 '새로운 자아'를 창조하는, 신선한 긍정의 운동이 아니었을까?

나는 책장을 펼쳤다. 나는 책장을 덮었다. 책이라는 교량을 건너온 나는 다시, 나에게 묻는다. 너는 누구야? 소리가 들려온다. 비로소 '놀이'의 시간이다.

[인용]
44 붓다는 유명한 비유에서 명색과 의식이 서로 의지한다는 것을 두 개의 갈대 묶음이 서로를 지탱하는 것에 비유한다. "벗이여, 그렇다면 비유를 들겠다. ... 예를 들어 두 갈대 묶음이 서로 의존하여 서 있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로 명색을 의존하여 의식이 생겨나고, 의식을 의존하여 명색이 생겨난다."

118 더 놀라운 점은 티베트 승려의 감마 진동수 패턴이 특히 강하고 잘 구조화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감마 뇌파의 크기(진동의 진폭)는 이전에 건강한 사람들에게서 볼 수 있었던 어떤 것보다 훨씬 컸다. 그리고 이런 빠른 진동수의 위상은 정확하게 동기화되어 있었다.

176 자각몽을 꾼다는 것은 더 심오한 의문을 제기한다. 내가 '나의' 자각에 대해 말할 때, 정확하게 누가 이 자아인가? 내가 "나는 꿈꾸고 있다는 것을 내가 안다."라고 말할 때, 누가 '나'인가? 내가 '나의' 부분적 꿈 조절을 서술할 때, 누가 행위자 또는 조절자인가?

518 단일한 실체적 자아가 없다는 것으로부터 사람, 행위자, 주체가 없다고 추론하는 것은 허무주의자 또는 단멸론자의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극단적인 허무주의를 오늘날의 뇌과학자와 뇌철학자에게서 발견한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n****n 2018.02.15.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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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꿈 그리고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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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붕뜨고 있습니다. 점점 높이오르며 저는 천정에 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 밑에 내가 누워있습니다. 내가 죽은 걸까. 내 영혼이 빠져나가고 있는 걸까. 보면서 두려웠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의식이 돌아와 현실로 왔습니다. 내가 어렸을때 겪은 유체이탈경험입니다. 꿈이었을까요. 정말 오래전에 기억인데 아직도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생생한 장면은 아닙니다만 그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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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로 붕뜨고 있습니다. 점점 높이오르며 저는 천정에 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저 밑에 내가 누워있습니다. 내가 죽은 걸까. 내 영혼이 빠져나가고 있는 걸까. 보면서 두려웠습니다. 그러면서 나는 의식이 돌아와 현실로 왔습니다. 내가 어렸을때 겪은 유체이탈경험입니다. 꿈이었을까요. 정말 오래전에 기억인데 아직도 어렴풋이 떠오릅니다. 이제는 생생한 장면은 아닙니다만 그 당시에는 정말 생생했습니다. 이 경험인지 꿈인지의 유체이탈(OBE)을 <각성, 꿈 그리고 존재>의 저자 에반톰슨도 어릴때 했다고 합니다. 전 죽다 살아난 기억으로, 등골이 오싹했던 순간이었습니다. 죽음이란 무서운 서늘함이죠. 유체이탈을 어찌풀어갈지도 궁금했습니다.

저자 에반톰슨은 우리가 별로 자각하지 않는 의식에 대해, 존재에 대해 명상시각으로, 뇌과학바탕으로, 달라이 라마의 의견까지 참여시켜 아시아철학과 서양철학사이에 대화를 불러냅니다.

저자 에반톰슨은 토론토대학에서 철학박사학위를 받고 블리티스 콜롬비아 대학의 교수입니다. <몸의 인지과학>,<생명속의 마음> 등의 저서가 있고 모두 한국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에반톰슨은 인문학강의를 하시던 부친에게서 명상수업을 받아 인도 불교쪽에 어릴때부터 영향을 받고 자라서 자연스럽게 자아에 대해 인식에 대해 공부를 하여 인지과학과 명상을 통해 내적 성찰을 결합했다고 합니다.

<각성,꿈 그리고 존재>는 의식으로부터 시작합니다. 의식은 깨어있는 겁니다. 이 깨어있음은 빛남과 앎으로 정리합니다. 빛남은 드러내는 힘이고, 앎은 파악하는 능력이라고 합니다. 의식은 깨었을때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수면중에도 스며들어 있다고 합니다. 스며들어간 의식을 인도철학에서는 조야와 미묘한 의식으로까지 구분을 합니다. 이러한 점에서 인도철학의 깊이를 가늠할수있는 겁니다.

달라이라마가 물리학을 공부하고 뇌과학까지 토론하는 내용에서 그의 열림을 보게 됩니다. 의식은 뇌와 독립적이라고 주장하지만 계속적으로 과학자들과 논의를 이어갑니다. 저자가 말한대로 뇌과학이 불교에게 의식이 독립적임을 증명하라고 하지만 불교는 뇌를 알기 전부터 순수자각을 느끼며 마음의 평화를 위해 명상해왔다는겁니다.

저와 저자가 같은 경험을 했던 유체이탈경험을 이야기해보면, 유체이탈경험은 탈신체경험보다는 변형된 체화라고 합니다. 1인칭과 3인칭의 왕래라고 보고, 이를 상상의 창조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유체이탈경험은 자각몽과도 유사하다고 합니다.

자각몽은 참 애매한 상황입니다. 자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깨어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아시아에서는 꿈요가라고 현실도 꿈이라고 해서 꿈으로 유도하는 기법이 존재를 하고 유럽에서는 현실성검점이라고 상태점검을 해보는 방법이 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자각몽은 악몽일때, 느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벗어나야해. 깨야해. 하며 식은 땀을 흘리며 깨어납니다. 꿈의 무서움이 생생합니다. 도망가다 깨기도 하고 다만 그것이 애매할때도 있습니다. 이게 꿈이야라고 생각한것이 경험속의 꿈의 행위인지 정말 의식이 꿈과 혼합되어 있는건지는 분간하긴 어렵죠. 다만 자각몽과 가위눌림사이의 대조를 통해 답이 있을수있다는 생각은 듭니다.

<각성,꿈 그리고 존재> 개인적으로는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인도철학과 불교, 뇌과학, 인지과학 그리고이 사이를 거미줄처럼 연결하는 철학적 함의들, 현실에서 돈벌이에만 치중한 무식한 자의 식량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에반톰슨의 노력이 꿈처럼 저에게도 인간이란 무엇이고 나는 또 무엇인가하는 존재론적 의문이 이 책을 읽으며 마음을 뜨겁게 합니다. 쉬운책은 절대아닙니다만 비전공자에게도 쉽게 전달하기 위해 세심하게 기술했음도 알수있는 책입니다. 즉 노력하면 이해할 수있는 수준이라는 겁니다.20세때 치열하게 싸우던 영혼의 존재여부의 문제가 다시 논쟁속으로 들어가고 싶게 한 책이었습니다.

끝으로 이 책을 통해 에반톰슨이 불교를 뇌과학으로 풀어보기 위한 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YES마니아 : 플래티넘 x****s 2018.02.14.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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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꿈 그리고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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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꿈 그리고 존재   주로 불교 관련 연구를 통한 글을 쓰고 활동을 하고 있는 에반 톰슨은 이 책에서 불교와 의식 인지과학과 요가 철학, 명상을 과학과 연결하며 인간에게 뿌리를 두고 이 세상을 초월한 영적 이야기들을 말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매우 분량이 많다. 두께도 크고 해서 읽기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만큼의 마음의 지식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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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성 꿈 그리고 존재

 

주로 불교 관련 연구를 통한 글을 쓰고 활동을 하고 있는 에반 톰슨은 이 책에서 불교와 의식 인지과학과 요가 철학, 명상을 과학과 연결하며 인간에게 뿌리를 두고 이 세상을 초월한 영적 이야기들을 말하고 있다. 또한 이 책은 매우 분량이 많다. 두께도 크고 해서 읽기에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 만큼의 마음의 지식과 만족감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한들 영혼의 상태와 영혼후의 사후세계를 밝힐 수가 없는 영역이다. 그러므로 진화론과 과학만 믿고 신비한 현상들을 무시하는 과학광신도가 되어선 안된다. 반대로 종교적 광신도도 되어선 안된다. 이 책이 그 균형을 조금 맞추어주는 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의식의 본성에 대한 탐구이기에 마음 깊숙한 의식의 세계에서 펼쳐지는 놀라운 현상들은 우리 마음을 열어 소통할 수 있도록 만들어준다.

 

의식과 관련된 거의 대부분을 거론하므로 공부도 되는 독서가 될 것이다. 물질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보면 더없이 좋은 책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육체를 가지고 이 세상에 살기에 이 땅에서만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우리의 심령 깊숙히 보지 못하고 우주의 큰 그림들을 알 수 없게 된다. 저자는 의식이라는 주제를 가지고 우리를 심연의 세계로 안내해주고 순수 자각과 불교에서 말하는 정신세계를 분석하며, 우리의 꿈과 존재, 실재에 대한 저자의 깨달음과 지식들을 전해준다.

 

저자는 빠질 수 없는 죽음을 이야기한다. 죽음은 다양한 각도로 해속될 필요가 있다. 종교적 죽음에 대해서도 알고 있어야 하고 일반적인 죽음속에서 의미를 알아야 되며, 철학적이고 정신분석학적인 설명으로 접근도 해야 한다. 붓다는 사람에게 초점을 맞춘다. 인생살이 돌고 도는 세상이기에 가지려고 하지 말고 버리라고 말한다. 자신을 버리고 놓아주고 이로움을 설파하여 세상과 자연에게 열매가 되라고 가르친다.

 

불교의 깨우침들로 의식과 자아, 명상, 의식의 세계를 논하는 저자의 논지는 탁월하다. 꽤 두껍지만 읽을만한 가치를 선사해준다. 자아는 무엇인가? 내가 아님을 왜 인정하지 못하는가, 나 자신이 파괴되고 동시에 타인에 대한 경계심이 감추어져 반복되는 과정들이 어느 새 내 자아가 빠져 나올 수 없을 정도의 중독이 되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 

 

뇌과학자들의 자아 타령과 의식의 자아는 다르다. 하지만 연결되어 있다. 이 책은 과학의 허상과 과학의 경계성을 그어 과학도 인정하고 매어있지 않는 자유함을 선사해준다. 오랜 시간동안 나 자신과 우주를 생각하며 집중하여 읽어야 할 귀한 책인것만은 분명하다.

l*****c 2018.02.13.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