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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문화부 장관에 새로 취임하는 플뢰르 펠르랭이라는 여성이 한국계라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인데, 당시 한국언론들은 너나할 것 없이 이를 집중 보도하며 그녀의 성취를 개인의 성공이 아닌 '한국인의 우수성을 증명한 쾌거'로 만들 준비를 시작했다. 허나 사태는 예기치 못한 쪽으로 진행됐는데, 거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녀는 생후 6개월만에 버려져 프랑스로 입양되어 한국어는 커녕 한국에 대한 기억조차 없었고, 자신이 프랑스에 오게 된 경위를 알게 된 후에도 프랑스인으로 살기로 결정해 지금까지 한국을 와본 적도 없다고 했다. 당황한 언론은 그녀와의 인터뷰에서 내내 왜 친부모를 찾지 않는지, 발견되었던 동네에 들를 생각은 없는지, 왜 굳이 '나는 한국인이 아니고 프랑스인'이라고 강조하는지, 한국 술이나 노래, 영화 등엔 관심없는지, 지금이라도 한국어를 배워볼 생각은 없는지 등 끈질기게 '한국과의 인연'을 강요했지만 그녀는 확고하게 자신은 '프랑스인'임을 고수했고 결국 언론에선 '그녀는 사실 한국에서 버림받았다는 기억때문에 아직 한국에 대해 마음의 문을 열지 않은 것 같다. 혹시 동양인 입양아로 낮선 프랑스에서의 삶이 힘들었기 때문은 아닐까, 그녀의 삶 전체가 비로소 이해되는 듯 했다' 며 잘 알지도 못하는 그녀의 속내까지 추궁했고 끝끝내 그녀를 한국과 어거지로 연관시키며 이 전지적 시점의 소설 한편을 머쓱하게 끝내야 했다. -----------------------------------------------------------
한국인이 되기 위한, 아니 어느 한 민족의 구성원이 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인가? 법적 신분인 국적? 유전적 요소? 아니면 개인의 의지? 플뢰르는 명확하게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밝혔기 때문에 오래인 역사적 인물이라면?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에서 활약한 유민출신 중 가장 성공한 사례인 할 필요가 있다. 단지 그의 유전적 요소가 고구려인이라고 해서 고구려가 멸망한지 64년이나 지난 뒤에 태어난 이민 3세대 정도의 그를 곧바로 고구려의 자랑이자 한국인의 쾌거로 연결지어도 될 것인가?
지역에도 고구려인 후손들이 많이 살았기 때문에 제나라는 발해와 함께 고구려인이 세운 제3의 고구려 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일본에 보낸 국서에 스스로를 '고(구)려 국왕'이라 밝힌 발해의 사례와 달리 남겨진 기록 어디에도 그가 스스로 고구려인이라는 의식을 보인 일은 없으며 그의 아들과 손자들 그의 개인적 업적을 고구려인의 성취이자 한국인의 쾌거로 받아들여야 할까?
위대한 고구려의 마침표로 이정기 왕국을 알린다고 하지만, 정작 저자가 고구려가 중국의 역사가 아닌 이유로 강조하는 '독자적인 천하관'을 이정기 왕국에선 찾아볼 수 없다는 점도 문제다.
당나라 황제의 아래인 위치를 유지했고 그에 따라 당나라 황제가 주는 벼슬들을 거부하지 않고 꾸준히 받았으며 일찌감치 아들들에게도 당나라 고위 벼슬을 챙겨주기까지 했는데, 이는 당시 무력으로 득세한
당당히 맞선 제3의 고구려 제나라를 좋게 볼 수가 없어 지금까지 조명이 되지 않고 있다고 안타까워 하지만, 이처럼 이정기에 대해 확실한 건 그가 유전적으로 한국인의 조상이라는 것 뿐인 상황에서 섣불리 그의
골치 아픈 쟁점이 생기는데 바로 고조선의 '위만왕조'이다. 위만은 한나라인으로 고조선에서 일으킨 쿠데타가 성공하여 새로 왕조를 열었다. 저자의 논리라면 위만이 고조선을 정복한 일은 곧 중국이 한국을 그 뿐만 아니라 고조선 멸망 후 설치된 한사군에서도 지배층은 분명히 중국인들이었는데 그럼 중국과 일본의 주장대로 한국 고대사의 고조선~한사군시대는 중국의 식민지였던 꼴이 된다.
불과하며 이를 좌시해선 안되지만, 그렇다고 중국의 억지 논리에 똑같은 방법으로 맞대응하는 것만으로는 위에 언급했듯 문제는 영영 해결되지 않는다. 목표는 어디까지나 동북공정을 분쇄시켜 다시는 이런 소리를 좀 더 차분하고 의연히 대처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 책의 내용 자체에 대해 평하자면, 이따금씩 등장하는 (이정기와 제나라가 고구려역사라는) 저자의 코멘트들을 제외하곤 책의 내용 자체는 전반적으로 만족스럽다. 의외다 싶을 정도로 저자는 자신의 저런 '코멘트'를 자제하고 있으며 여러 사료들을 잘 엮어 이정기와 제나라 55년사를 충실히 설명하고 있는데, 동북공정에 대한 반박은 책의 마지막 장에 별도로 구성되어 있어 역사는 역사대로, 사관은 사관대로 구분한 저자의 구성이 특히 만족스러웠는데,
다만 오타는 그렇다 쳐도 당시의 혼란한 정세와 다양한 등장인물들에 대한 좀 더 친절한 설명, 그리고 지도가 몇 장 더 있었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다.
특히 지도는 p45. p185. p188 로 딱 세장이 나오는데 문제는 이 지도가 이정기의 제나라 영토만 표시하고 있고 그 외의 지역은 아무런 표시가 없는데 책에는 제나라 영토와 인접한 다른 지역들이 수시로 등장한다는 점이다. 이왕 만드는 김에 140페이지 분량의 텀 사이에 한 두 장 더 넣어주고, 인접한 지역들도 함께 표시해줬으면 훨씬 좋지 않았을까 싶다.
저자가 전문으로 연구하는 다른 고구려 유민들-의 역사는 솔직히 재미있고 감정이입도 되어 신나기도 한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난세를 기회로 바꿔 역사에 남긴 큰 족적을 따라가는 건 정말 재미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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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의 고구려 이 책은 이 책은 역사책이다. 고구려가 멸망한 후에 당나라로 끌려간 고구려 유민 중에 이정기라는 인물이 당나라에서 절도사를 지내고, 그의 아들 이납이 제나라라는 국호로 나라를 선포하고 나라를 세운 일에 주목하여, 제나라를 고구려의 후예, 즉 우리역사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의 내용은 이 책은 다음과 같이 5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이정기 시대, 중원에 세운 고구려의 깃발 2장, 이납 시대, 국호를 선포하고 제왕이 되다. 3장, 이사고 시대, 막강한 재력으로 황금시대를 맞이하다. 4장, 이사도 시대, 천하 패권을 놓고 당과 다투다. 5장, 제나라의 최후, 중원 정복의 꿈은 사라지고 간단히 정리하자면 고구려 유민 이정기와 그의 자손들이 중국의 당나라 땅에 제나라를 세우고, 다스렸던, 그리고 당나라와 겨루었던 역사를 기록하고 있다. 저자는 지금 중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역사 왜곡 – 동북 공정 – 의 일환으로 고구려를 중국의 변방으로 취급하여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시도에 반대하고, 고구려 역사의 마침표를 중국의 본토에서 60년간 유지됐던 제나라로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제나라의 역사를 우리나라의 역사로 간주하는 편에 선다. 중국과 제나라가 전혀 다른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든다. 제나라는 고구려의 후손들이 세운 나라라는 것이다. 그래서 제나라를 ‘제 3의 고구려’라 부르고, 이 책의 제목을 그렇게 잡은 것이다. 이정기라는 인물 결과적으로 제나라를 세우게 되는 인물인 이정기를 어떻게 볼 것인가 이정기를 당나라의 관직을 받은 무장으로 본다면 이 책에서 말하는 바와 같은 ‘제 3의 고구려’라는 의미를 굳이 찾을 필요가 없다.
이정기를 고구려 후손으로, 그리고 그가 세운 나라가 고구려의 후예라는 것으로 인정해야만 제나라의 민족사적 의미가 인정되는 것이다. 다시, 이 책은 저자는 우리나라가 중국과 인접해 있으면서 중국의 영향을 받아, 중국에 종속되어 있는 것을 안타까워한다. 삼국이 신라로 통일되면서 중국의 영향력이 극대화 되는 과정에서 고구려의 의미가 퇴색하고, 그런 결과 고구려의 후손이 중국 땅에 세운 제나라가 중국의 역사로 편입된 것을 지적하고 있다. 분명 우리 민족이 세운 나라의 역사가 우리역사에서 거론되지 못하고 중국의 역사로 간주되고 있는 것을 한탄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중국이 동북공정이라는 거대한 프로젝트를 통하여 고구려의 역사를 중국의 변방의 역사로 간주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는 반면에 우리 역사학자들은 방관하고 있는 것이 더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 이런 기록이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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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를 비롯한 대한민국의 일반인들에게 제나라는 생소한 나라에요. 학교에서 배우지도 않았고 춘추전국시대의 제나라와 혼돈되기도 하죠. 역사에 어느 정도 관심이 있었던 저도 텔레비전 프로 등을 통해서 고구려 유민이 만든 국가라는 정도만 알고 있었어요. 이 책에서 다루는 ‘제3의 고구려’인 제나라에 대해서 간단하게 살펴보면, 668년 고구려가 멸망한 후, 많은 고구려 유민(遺民)들이 당나라 땅으로 끌려가 곳곳에 흩어져 살게 되었죠. 특히 요하 서편 대릉하 유역에 위치한 당나라 영주(營州) 땅에는 고구려 유민들이 많이 살았고, 그 유민들의 후손 가운데 이회옥이 있었어요. 그는 안사의 난을 계기로 765년 고구려와 신라 유민들을 규합해 스스로 절도사가 되었고 당에 의해 승인되고 정기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는데, 그 후 당나라와 큰 전쟁이 벌어져 대승을 거두고 당나라 수도 장안에 대한 공격을 남겨둔 시점에서 갑자기 병으로 사망했어요. 그의 아들 이납은 782년 11월 국호를 제(濟)라 칭하고 왕위에 올랐는데 당나라가 번진의 독립성을 인정하자 왕호를 철회해요. 이정기 이후의 제나라 후손들은 819년 이사도가 피살되어 제나라가 멸망할 때까지, 765년부터 4대 55년간 독립된 국가를 유지했어요. 흥미로운 사실은 이정기가 해운압신라발해양번사(海運壓渤海新羅兩藩使)라는 벼슬을 당나라에게 받았을 정도로 제나라는 발해나 신라와 교류가 많았다고 하며 해상왕 장보고도 사실 제나라 도움으로 해상 네트워크를 건설했다고 하네요. 이 책은 제나라 60여 년간 이정기부터 이사도까지 각 인물들이 어떻게 나라를 유지하고 당과 맞서서 세력을 키우게 되는지를 여러 사료에 근거해서 설명을 하고 있어요. 저자는 제나라를 제3의 고구려로 부르며 동북공정을 통해서 고구려사를 통째로 중국사에 편입시킨 중국 학자들을 비판하고 있어요. 문제는 과거 우리나라의 기록에도 제나라를 우리 역사로 취급한 기록은 없고 근대에 와서 육당 최남선이 <국민조선역사>에서 ‘중국 안 넓은 지역을 다스렸던 고구려 유민’이라고 기록한 것이 거의 유일하다고 하네요. 이렇게 과거의 중국 역사책에도 고구려 유민으로 되어 있는 기록을 왜 우리 과거 역사책에는 아무런 언급조차 하지 않았던 이유에 대해, 저자는 ‘당의 제후국임을 자처했던 신라와 유교사상이 지배이념으로 자리 잡은 조선에서, 감히 당과 패권을 두고 다퉜던 고구려 국가 제나라에 관해 함부로 붓을 놀릴 수 없었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어요. G2로 부상한 중국의 동북공정과 평화헌법을 폐기하려하면서 전쟁할 수 있는 나라로 치닫는 경제대국 일본의 과거사 은폐를 넘어선 파상적인 공세에 의해 과거의 역사적 사실들이 왜곡되거나 재해석되고 있는 실정이에요. 문제는 이웃 나라들이 주장하는 역사라는 것이 결국 우리의 역사와 직-간접적으로 연결이 되고 또 충돌하며 심지어는 현재의 영토분쟁 위안부 협의 등에서도 논거로서 등장하고 있는 현실이죠. 즉 여러 측면에서 이웃 나라들의 역사와 우리의 역사 그리고 현재의 외교가 충돌하고 있어요. 너무나도 유명한 E.H. 카(Carr)를 인용해보면 그는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면서 “역사는 정신이다”라고 주장했죠. 그러면 과연 역사 정신이라는 것은 무엇이며, 힘의 논리라는 현재에 의해서 일방적으로 과거가 수정될 수 있는지에 대해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과거와 현재와 대화인 역사에 있어 현재의 힘에 의한 일방적인 대화이거나 심지어 과거와의 대화가 단절된다면 과연 그것을 역사라고 부를 수 있을지 의문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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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의 고구려 역사를 잊는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가속화되면서 우리나라 고유의 문화에 대한 침탈이 이어져 오고 있는 상황이다. 외적으로 문화적 침략이라고 말해도 무방하겠다. 그렇지만 내적으로 우리나라 문화에 대한 관심 부족과 연구 부족 등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한 것이 사실이겠다. 그리고 이 사실이 안타깝기도 했고, 또 제3의 고구려라고 하는 제목에 관심이 확 꽂혔다. 우리나라의 강대한 국가였던 고구려는 이름만 들어도 피를 끓어오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북방을 호령하던 그 강대한 고구려의 멸망 이후, 고구려의 백성들은 어디로 갔을까? 발해로 이어지는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제3의 고구려인 제나라에 대한 이야기는 금시초문이다. 역사에 대한 관심이 부족해서였을까? 그런 면도 있지만 제나라에 대한 학계의 관심 부족도 있겠다. 역사 교과서에 제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아직까지 등장하지 않았다. 아니, 내가 배울 때는 그랬다. 어둠 속에 묻혀 있는 제나라에 대한 이야기가 책에 등장한다. 그리고 고구려를 멸망시켰던 당나라와 대륙의 패권을 놓고 다툰다. 와~! 한반도에 머무르고 있던 나라들과 달리 중원대륙을 통치하던 당나라와 소위 맞짱을 뜰 수 있었다니, 참으로 대단하다. 책을 읽으면서 당나라를 멸망시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 천하쟁패!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우리나라의 역사는 단순히 한반도에 머물러 있지 않은 것이다. 대륙까지 진출하였다. 그리고 대륙을 지배하고 있던 나라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만들어줬다. 그런 이야기가 고구려의 멸망 이후 자세하게 나온다. 읽다 보면 고구려의 통치와 관제 등이 나오고, 당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외면당하고 있는 제나라에 대한 이야기! 조사한 저자의 노고와 연구결과에 대하 감탄을 금치 못 한다. 단순히 한 권의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참으로 방대하고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런 저자의 노력이 있어서 제3의 고구려인 제나라에 대해서 알게 됐다. 제나라의 영웅들이 안타깝게 죽는 이야기는 무척이나 가슴이 아프다. 천하쟁패를 눈앞에 두고 사라지다니, 참으로 아쉬운 일이다. 그리고 그런 영웅들의 사후, 제나라는 세상에 우뚝 설 기회를 몇 번이나 잡는다. 그러나 결국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만다. 역사는 승자에 의해 기록되는 법! 제나라의 역사는 우리나라의 역사로 기록되지 않고, 중국의 변방의 이야기로 전락되고 있다. 여러 가지 가설들이 있고, 서로 옳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런 주장과 사실을 명확하게 연구하고 증명하여 우리나라 역사로 포함시켜야겠다. 제나라의 제왕들의 이야기는 마음을 뛰게 만들어준다. 고구려 유민이었던 이정기가 깃발을 높이 치켜들고 중원을 호령하였다. 그리고 천하패권을 쥐기 위한 그와 그의 후계자들 이야기는 뜨거운 열정과 야망이 있다. 오랜만에 역사에 푹 빠져들었다. 재미있고 알찬 시간을 보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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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한국사 광풍입니다. 유명한 강연자부터 강사까지, 이름있는 역사학자들까지, 한국사를 널리 알리고, 우리 역사에 대한 바른 이해와 교육을 위해서 열심히 일하고 계십니다. 이런 노력으로 한국사는 더욱 비중있는 과목, 혹은 학문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위기의 시대, 급변하는 국제정세나 주변국과의 외교나 안보상황이 닥치면, 내부적인 결속과 국가관이 중요해집니다. 그 동안 우리는 너무 안일했고, 역사에 대한 중요성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지금도 늦지않았습니다. 역사를 업으로 하는 분들은 들어온 나라, 매니아들은 충분히 알고, 이게 사실일까 하는 의문으로 접근하는 시대, 바로 고구려 멸망과 이어지는 부흥운동 시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민족의 방파제, 삼국 중 가장 강성했던 국가, 고구려입니다. 전성기였던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을 비롯해 연개소문과 보장왕으로 이어지는 과정, 신라가 치밀하게 주도한 외세의 힘을 이용한 불완전한 삼국통일 과정, 여기서 많은 논란과 아쉬움이 남지만, 700년 동안 강건했던 고구려는 쉽게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중국의 초강대국 당나라마져도 고구려를 최대의 난적으로 꼽았고, 이를 철저히 억누르고 짓밟기 위해서 갖은 노력을 다했습니다. 왕족을 비롯한 귀족과 백성들을 강제이주 시켰고, 재능있는 장군을 개방적으로 받아들이면서 변방안정과 이민족 토벌에 요긴하게 이용했습니다. 이런 정신적인 뿌리와 정체성을 없애려고 했지만, 우리가 잘 아는 발해의 등장과 고구려 정신은 만주를 비롯한 한반도에도 큰 영향을 끼쳤고, 역사는 계속해서 이어지게 됩니다. 하지만 이정기의 제나라는 우리 역사에서 잘 다루지 않습니다. 역사적 논란과 사실고증, 검증과정, 오늘 날, 중국과의 외교적 마찰이나 압박을 피하기 위해서 그런듯 보입니다. 하지만 역사를 왜곡하거나 폄하된 역사, 수정주의 사학에 입각해서 받아들이면 안됩니다. 우리 주변의 중국과 일본의 역사왜곡과 공정은 치밀하게 진행되고 있고, 그들은 자신들의 역사를 축소하기 보다는 부풀리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왜 우리 역사가 한반도로 국한되었는지, 만주를 호령하며 대륙을 향해서 절대적인 위협을 줬던 선조들의 기상과 역사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특히 이정기의 제나라는 산둥반도를 거점으로 당나라에 맞섰고, 많은 유민을 규합하고, 구출하며 고구려의 부활을 꿈꿨던 나라입니다. 역사적으로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름대로 고구려 정신을 잘 계승하였고, 그 가치를 지키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세력입니다. 중국의 압박에서 벗어나고자, 한반도 국가들과 연대하여 자주적인 노선을 취하기도 했지만, 국가의 존립과 유지는 정말 힘든 과정이었습니다. 나라의 망국은 쉽지만, 부활은 정말 어렵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반도라는 안정적인 위치, 보는 관점에 따라서는 불완전한 지정학적 요소를 해상교류와 무역을 통해서 돌파하려 하였고, 이는 국가의 방향성과 그들의 건국관, 가치관을 엿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는 꽃길을 걸으며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지만, 고구려에 대한 가치, 망국에 대한 설움을 잊지않고, 끝까지 국가의 부활을 꿈꿨던 그들, 시간이 오래되어 그 빛이 희석되었지만, 역사를 배우는 입장에서 그들의 정신을 잊지말고, 보다 깊은 연구를 위해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필 상대가 중국의 역대급 왕조로 손꼽히는 당나라라서, 그 위세가 오래가지 못했지만, 고구려인들이 보여줬던 기상과 힘은 대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훗날 발해의 등장으로 만주에 대한 우리 선조들의 입지가 이어졌지만, 점차적으로 중국에 동화되거나 북방민족에 멸망을 당하면서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 역사에서 만주가 주는 특별함과 중국이 그토록 역사공정과 왜곡을 통해서 자국의 역사로 편입하려는 의도, 축소, 왜곡시키면서 얻고자 하는 전략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우리 역사를 배울 때, 고대사에 대한 사료가 부족하고, 검증이 불완전하다는 이유로 언급조차 되지 않는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들이 많습니다. 고구려 부흥운동, 백제 부흥운동, 발해 부흥운동 등에 대한 언급과 관심이 많아져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서 고대사에 대한 새로운 접근과 해석이 필요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고, 사람들이 잘 모르는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을 조명하고 있는 점에서 그 가치가 높습니다. 꼭 접해 보시기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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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학교 사학과 교수였던 지배선이 쓴 책이다. 고구려가 멸망하고 그 후손들은 당나라의 관리를 받는다. 패국의 백성에게 많은 선택지는 없었다. 노예의 처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반란을 일으키거나 군인으로 출세해야 했다. 대조영은 만주에서 발해를 세웠다. 그리고 고선지, 이정기 등은 군인으로 출세했다. 이 책은 이정기에 대한 이야기다. 대개 그렇듯 당나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지방에 대한 통치력이 약해진다. 명목상의 지배만 있고 절도사들이 할거하는 시대다. 이정기는 용맹한 군인으로 민심을 얻어 산동에서 독립한다. 당시 산동에는 고구려의 후인들이 많았고, 철과 구리광산으로 부를 축적할 수 있었다. 발해와의 무역도 있었다. 특히 당시 당의 임금이 지방에 대해서 유화책을 펴고 있어서 이정기는 독립할 수 있었다. 이정기의 독립왕국은 4대째 이어진다. 생각보다 긴 세월이다. 물론 이정기가 뛰어난 통치술과 균형감각을 지닌 영웅적 기상의 소유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전히 남아있었던 고구려민족의 힘이 미친 결과이기도 했다. 이정기에 대한 중국 역사서의 기술에서 '고구려'는 계속해서 등장하는 키워드다. 제나라의 마지막은 비참하다. 제나라의 위협을 분쇄하기 위하여 주변 절도사들을 모두 동원한 총공격 끝에 내부배신으로 멸망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왕 이사도와 두 아들은 모두 참수되고, 남은 가족들은 중국 각지로 흩어진다. 이후 제나라 영역에서 이어진 학살으로 피가 엄청나게 흘렀다고 한다. 다시 고구려의 후손들이 나라를 세울까 걱정한 당나라는 집중적인 강경책으로 산동을 다스리고 그렇게 마지막 고구려인의 기록은 끝난다. 이정기의 제나라에 대하여 전문 역사가가 대중적으로 펴낸 책이라 읽어볼만 한 책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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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제나라라고하면 춘추전국시대의 제나라를 떠올리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나도 그런 사람중 한명이다. 그런데 당나라시대에 제나라가 존재했다니 거기에 그 나라가 고구려의 후예인 이정기 장군이 초석을 다져, 아들인 이납이 세운 독립국가라니 그동안 알고 있던 역사 상식을 뒤집는 글에 이 책을 선택했다. ![]()
저자 지배선 교수는 연세대에서 역사를 가르치며 국내에서 거의 유일한 고구려 유민 연구자라고 한다. 이 책의 근거도 우리나라 역사에는 거의 찾을 수 없고 중국 역사서에서 찾아 연구한 결과라 한다. 책은 고구려가 멸망하고 발해가 건국했지만 많은 고구려 유민들이 당나라 노예로 끌려갔으며, 이정기 장군 또한 노예로 전락했으나 이정기 장군은 노예 신분을 벗기 위해 군에 들어간다. 군에서 많은 공적을 쌓고 산둥반도 6주의 절도사로 부임한다. 이정기 장군은 당 시대 많은 절도사 지역을 토벌한다는 명분으로 15개 주까지 영토를 확장한다. 그 당시 그가 확장한 영토는 한반도보다 넓었으며, 인구가 약 500만명에 이르는 대세력이 된다. 통일 신라의 인구가 약 300만인 것을 가만하면 엄청 번영을 이룬 지역이다. 이정기 장군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당시 당나라의 수도인 낙양을 점령하기 위해 운주로 군사를 이동한다. 운주는 낙양과 약 150㎞의 거리에 있다. 이정기 장군은 운주에서 군사 훈련과 낙양으로 가는 수로를 막고 많은 물자들을 통제하기 시작한다. 하지만 하늘의 뜻이 이정기 장군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이정기 장군은 40대 후반에 암으로 그만 사망하고 만다. 이정기 장군은 항시 나는 고구려의 후예다를 강조했다고 하니 더욱 안타까울 뿐이다. 이후 이정기 장군의 아들인 이납이 제나라를 국호로 당당히 당나라의 심장부에 독립국가를 건립한다. 이런 역사를 왜 우리는 모르고 있는가? 물론 제3의 고구려가 아닐 수 있고 당의 역사일 수도 있지만 우리 고구려의 후예가 이렇게 당나라를 몰아세우고 당나라 속에 또하나의 나라를 세운 위대한 업적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것은 중국이 고구려를 지방제후국으로 자국 역사에 편입시켜 중국과 고구려를 동일체하려는 음모를 막아야 할 당면 과제 때문이다. 제나라는 중국과 고구려인이 완전히 다른 존제임을 웅변하는 역사적 실체이기 때문이다. 한민족의 일원으로서 우리가 가르치지 않은, 아니 않고 있는 역사에 대해 더욱 더 연구하고 찾아내 널리 알려야 하지 않을까?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은 의미있다. 이 책이 건승하길 기대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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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내용을 처음 접했을 때도 앞서 쓴 고려거란전기와 같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제3의 고구려라고? 그럼 제2의 고구려는? 아, 발해였지. 근데 또 있었나? 일단, 작가 '지배선' 님을 검색했다. 고구려와 제나라에 관한 책을 2권이나 더 집필하셨던 분이셨다. 아하... 알고 보니 중국의 동쪽. 그러니가 산둥반도부터 해서 15개주를 차지했던 이정기. 한반도 영토만큼이나 큰 나라였다. 그런데 당나라가 있었는데 왠 제나라 ? 고구려 유민들이 세운 나라였다. 신라와 당이 연합해 백제를 무너뜨리고 고구려를 무너뜨려 너무도 아쉬운 통일을 이뤘다. 고구려가 그 광할했던 영토를 가진 상태에서 통일했다면... 중국의 1/5은 현재 우리나라의 영토였을지도 모른다. 그 시기에 이주했던 고구려 유민들이 중국에 남아 거기서 다시 국가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게 작은 나라가 아니라 너무도 큰 나라다보니 당나라에서도 쉽게 무너뜨릴 수도 없었다. 더욱이 중원을 호령했던 당나라와 일전을 벌이면서 당과 일전을 벌인 '이사도' 비록, 중원을 제패하겠다는 꿈은... 제나라가 3등분이 나면서 결국 그 결속력과 힘을 잃고 무마되었지만 그 용매와 기상을 다시 한번 엿볼 수 있었다. 이정기와 그의 아들 이납, 이납의 둘째 아들 이사고. 제나라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현재도 조용히 진행되고 있는 중국의 동북공정을 위해서라도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꼭 발해만이 아니라 제나라의 존재와 가치, 역사에 대해서도 알아야 한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 우리것을 제대로 알아야 우리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비록 60년에 불과한 국가였어도 기상만큼은 결코 대제국 당에 뒤지지 않았던 제나라. 꼭 가슴깊이 새겨야 할 이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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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진 우리의 역사 ! 책 제목에서도 나왔듯이 제3의 고구려, 웅대한 고구려의 기상을 느낄 수 있는 이정기와 제나라 60년사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로 고구려의 역사가 중국의 지방국가로 전락해 편입되어가는 과정 속에서 고구려의 유민이자 후손으로 당나라 중심부에서 멀지 않은 지금의 산둥성 일대를 4대에 걸쳐 60여년간 실질적인 지배를 해온 이정기 일가와 그들의 역사를 제3의 고구려 책을 통해 저자의 생생한 목소리로 살아숨쉬듯 1300여년 전의 중국대륙을 호령했던 이정기와 제나라 60년사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고루려의 기상과 정신을 이어받은 이정기와 약 4대에 걸쳐 이정기 - 이납 - 이사고 - 이사도 가문이 당나라의 공세를 견뎌냈고 때로는 당나라를 직접 공략할 계획을 수립까지 하며 웅대했고 찬란했던 이정기와 그의 뒤를 이어 중국 대륙의 중심부를 차지하며 위세를 떨쳤던 이정기 가문의 역사이자 제3의 고구려 역사가 내게로 다가왔다. 고구려의 유민출신으로 발해를 건국했던 대조영과 유민 출신 장군으로 사라센 제국의 동맹국을 정벌했던 고선지와는 다르게 우리에게는 접하기 쉽지 않고, 잘 알려지지 않은 제3의 고구려의 역사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다가온다 이정기는 고구려의 후손으로 그의 조부대에 혹은 그 윗대가 당의 고구려의 공격으로 끌려갔던 고구려 포로 중에 하나라고 짐작된다. 그가 당의 역사에 등장하게 된 계기는 당시 치정절도 비장이었던 이정기가 왕현지의 아들을 죽이고 후의힐을 군수로 옹립하면서 부터다. 당시 당나라는 안녹산의 난을 거치며 상당히 혼란스러웠고 그 당시 이정기는 이런 상황을 잘 이용해 공을 세웠다고 한다. 후의힐을 제거하고 절도사의 직위에 오른 이정기는 한때 낙양을 공략하려 했지만 그의 악성종양 때문에 젊은 나이에 요절했다. 안타까운건 이정기 뿐만이 아니라 그의 후계자였던 이납까지도 젊은 나이에 요절한다. 하지만 그는 이정기의 세력을 물려받아 세력권을 지키고 세력확대에 노력을 했고 마침내 제나라를 건국하게 된다. 이납의 후계자는 이사고로 주변 벌도사들을 견제하고 세력을 확장시켜 나가 당 조정으로부터 검교사도의 관직을 받게 된다. 다만 그 역시도 젊은 나이에 요절한걸 보면 가문의 유전적 질병과 연관이 있을 것이다. 이정기의 제나라 60년은 이사고의 후계자인 이사도때 절정에 달한다. 모든 역사가 그렇듯 명과 암이 있기에 지어시의 제나라 60년의 최후는 결국 부하였던 유요가 당과의 내통 끝에 끝을 맺게 된다. 책을 덮으며 화려했던 이정기와 제나라 60년사가 내 마음의 한 귀퉁이를 차지한다. 허전하다는 표현이 맞겠지만서도 책을 한 페이지씩 넘기며 흥분과 열광의 도가니로 휩싸이게 해줬던 이정기와 제나라 60년사 제 3의 고구려에 아쉬움을 남기며 끝을 맺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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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TV에서 이정기에 대해 다룬 역사스페셜 다큐 예고편을 보고서는 저건 꼭 봐야겠다하고선 감쪽같이 잊어버린 적이 있었는데 이 책을 보는 순간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못했던 '이정기'란 인물에 대한 기억이 떠올랐다. 역사에 대한 흥미를 늘 가지고 있었고 중학교때까지 제일 존경하는 인물이 광개토대왕이라고 말할 정도로 고구려에 대한 애정이 있었지만 발해를 세운 대조영과는 달리 '이정기'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기에 책을 읽으며 적잖은 충격을 받게 되었다. 학창시절 기억을 떠올려봐도 '이정기'라는 인물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었기에 거기서 오는 충격도 상당했지만 다큐나 책으로 '이정기'란 인물을 쉽게 접할 수 없었기에 더욱 고구려인으로서의 자부심을 이어갔던 '이정기'란 인물에 대해 궁금증이 들게 됐던 것 같다. 더욱이 중국의 동북공정 프로젝트로 인해 고구려가 중국의 지배하에 있었다며 사실화하는 듯한 발언을 시진핑 주석이 했었고 중국 식민지에 대한 이야기가 논란이 되고 있기에 더 늦기 전에 '이정기'란 인물이 세웠던 '제나라'에 대해 알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행운이란 생각마저 든다. 중국의 동북공정이 사실화되어지면서 고구려사가 철저하게 왜곡되어지는 시점에서 '이정기'란 인물은 동북공정 프로젝트를 반박할 중요한 인물이기에 한국 사학계나 한국사에서 매우 중요한 인물이 아닐 수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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